지금이 제일 좋을 때.
첫째를 키울 때는 별로 공감하지 못했던 말들이 있다. 내가 어린아이 손을 잡고 공원에 나가면 어르신들이 ‘엄마미소’(엄마미소란 뭘까? 하지만 나도 엄마미소를 대체할 딱 맞는 단어를 찾지 못했다.)를 지으며, “애들 금방 큰다. 지금이 제일 좋을 때“라고 하실 때 말이다. 그때는 애랑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게 내가 더 답답하고 미칠 것 같아서, 그렇다고 어린애를 데리고 딱히 갈 곳도, 할 것도 찾지 못해 공원을 나온 건데 말이다. 시간이 그렇게 더디 흐를 수가 없고, 언제 수유 끝나나, 언제 이유식 끝나나, 언제 기저귀 떼나, 언제 혼자 자나 하면서 제발 이 육아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이 시간들이 지나가기를 간절히 바랄 때였다. 애가 예쁘고 귀엽다는 것에서는 좋을 때라는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앞에 ‘제일‘이 붙는다는 것에는 의문점이 생기고는 했다. 게다가 금방 큰 다뇨? 이렇게 공원에 나와 걷기까지 내가 지새운 밤들이 얼만데! 그 끔찍한 젖몸살을 거치고, 바닥에 흘린 이유식을 엎드려 닦으며, 언제쯤 안 흘리고 먹나 그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금방 큰다고 하기엔 나에게 1년이, 아니 하루가 너무나도 길었다.
그런데 둘째를 낳고 보니, (아니, 정확히는 둘째가 돌이 지나고 나서야) 이제야 나는 그 어르신들의 말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아이가 걷기 시작하고, 말을 시작하고, 내 눈을 보면서 웃고, 그렇게 웃다 안기고, 안겨서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때 이 시간들이 이대로 멈추었으면 싶었다. 이 시간들이 생각보다 금방 끝날 거라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첫째가 그 시간들을 지나서 커버린 것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 아장아장 걸어서 허리를 구부리고 손을 잡아줘야 하는 시간들이 생각보다 짧고, 내가 안아서 재워야 하는 시간들이 생각보다 짧고, 내가 먹이고 씻겨줘야 하는 시간들이 생각보다 짧다는 사실을 말이다. 뭐든 처음엔 잘 모르니까, 언제 끝날지 모르니까 그 시간이 영원한 듯 느껴지지만, 지나 보면 안다. 그 시간들이 결코 영원하지 않았다는 것을.
육아 난이도로 치자면 둘째에 비해 첫째가 수월한 아이였는데도 나는 그 시간들을 내가 충분히 즐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종종 첫째 어릴 때 사진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이렇게 귀여웠는데! 이렇게 예뻤는데! 더 예뻐하고 귀여워해주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이제는 내 품에 쏙 들어오지도 않고, 내 손길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 아이를 보면서 그 시간들이 끝났음을 실감한다. 그래서 둘째가 더 귀엽고, 그 귀여움을 나는 조금이라도 더 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둘째가 그렇게 귀여울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번이라도 더 안아주고 싶고, 한 번이라도 더 엉덩이를 토닥여주고 싶고, 한 번이라도 더 뽀뽀를 하고 싶다. 그렇다고 둘째 육아가 안 힘들다는 건 아니지만 첫째에 비하면 투정에도 더 관대해지고, 애정표현도 더 많이 하려고 한다.
이탈리아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남부에 있는 ‘포지타노’에 도착해 예약해 둔 숙소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구글 지도를 켜두고 구불구불 계단으로 된 좁은 골목을 지나 해안도로를 한참을 걸어도 숙소가 나오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커다란 캐리어가 원망스럽고, 구글 지도는 의심스러웠다. 우리는 한참을 걷고 또 걸어서야 겨우 숙소에 도착했다. 항구에서 이렇게 먼 숙소였다니!!! 리뷰들이 잘못된 게 틀림없다 생각하며 이 길을 어떻게 매일 오가나 걱정이 되기까지 했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다음 날부터는 그 길이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처음에는 그렇게 멀다 느껴졌었는데, 한번 가본길이라 지도를 계속 확인할 필요도 없었고 아름다운 해안가를 바라보며 걸으니 이 길을 이렇게 걸으며 오갈 수 있도록 항구에서 좀 걸어 올라가야하는 곳에 숙소를 잡기를 잘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육아도 그런 것 같다. 둘째라고 첫째보다 수유를 짧게 하거나, 기저귀를 더 일찍 떼거나 하는 것도 아닌데, 그 시간들이 덜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그 길을 이미 내가 한 번 걸어와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길이 언제쯤 끝나는지도 안다. 그 사실만으로도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그 아름다운 풍광을 볼 시간이 많지 않음을 알기에, 그 길을 걷는 것이 고되다기보다 선물같이 느껴졌듯이 이 아이의 어린 시절을 볼 시간이 많지 않음을 알기에, 그 어린 시절에만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선물처럼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걸 깨닫고 나니, 첫째와의 시간도 더 귀하게 느껴진다. 초등학교에 첫째를 입학시키며 내심 겁이 났던 것은, 유치원 때보다 하교시간이 훨씬 빠르다는 것이었다. 몇 시간이나 집에 빨리 오게 되니 육아 피로도가 올라갈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나랑 놀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첫째가 하교하고 둘째 하원 전에 몇 시간 둘만이 함께 하는 시간이 선물처럼 느껴진다. 첫째도 나와 둘이 데이트하는 시간이 너무 좋다고 하니 감사하다. 나도 그 시간들을 더 적극적으로 누리자 싶다. 나중엔 친구랑 놀지 엄마랑 놀지 않을 테니 말이다.
끝을 알고,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음을 아는 것은 분명 힘든 시간을 좀 더 즐겁게 누리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육아가 쉬워진다거나, 힘들지 않아 진다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어차피 걸어야 할 길이라면, 이 길이 끝을 지도로 쫒으며 걷기보다 아름다운 풍광을 보며 걷는 게 낫지 않겠는가. 나에게 엄마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네었던 어르신들도 정작 아이를 키우실 때는 힘드셨을 테지만 지나 보니 그때가 ‘가장‘ 좋았을 때라고 회상하시는 게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그 가장 좋았을 때를 지나는 나는 이 길을 즐기고 누리도록 하자! 그 엄마 미소를 지금 지어 보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