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판 어바웃타임

내가 지나온 시간을 너를 통해 다시금 새롭게 살아본다.

by 장새미

나는 늘 나의 ‘성취’에 집중하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성취 자체라기보다는 ‘성취감’이 중요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성취감’이 나의 행복에 상당한 지분을 차지했었다. 그런데 가사를 전담하고 육아를 하면서 나는 내 행복의 상당 지분을 빼앗기고 말았다. 가사는 성취감을 느낄 틈도 없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기 때문이었다. 설거지를 다 함과 동시에 또 다른 설거지 거리가 쌓이고, (빨래도 마찬가지다. 하루에 몇 번을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청소는 하기 무섭게 다시 어질러진다. 생활용품들을 사서 정리해 넣고, 냉장고에 음식을 사다 넣어도 채우는 것이 목표가 아니고, 잘 쓰고 먹는 것이 목표이기에 비움과 채움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즉 가사는 마감이라는 게 없이 끊임없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일이기에 성취감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육아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육아는 마감이나 완성이 없는 분야인 데다, 반복되는 것도 아니어서 실력이 늘기도 어렵다. 첫째보단 둘째가 더 키울 만은 하지만 결국 둘은 전혀 다른 인간이므로 또 다른 육아의 세계가 열린다고 보는 게 맞다.


그런데 요즘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새로운 감정을 경험하고 있다. 이 감정의 이름을 뭐라고 해야 할까. 내가 성취하는 게 아니라 남이 성취하는 것인데 내가 행복감을 느끼니 말이다. 그리고 그 감정은 첫째를 통해서 주로 왔다. (첫째 아이기에 아이의 처음이 나의 육아에서도 처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것도 그랬다. 학교는 애가 가는데, 변화하는 많은 것들에 내가 다 긴장되고 설레고 그랬다. 이미 학교를 지겹게 다녀본 엄마도 이렇게 떨리는데, 그 많은 변화들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아이가 기특했다. 학교 후문이 우리 집(아파트니까 우리 동) 코앞이었지만, 집 현관문에서 인사하고 헤어져 혼자 씩씩하게 학교를 걸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며 내가 다 벅찼고, 그러다 친구를 만나 친구손을 잡고 학교 건물 모퉁이로 사라지는 아이의 뒷모습에서는 코끝이 찡하게 이름 모를 감정들이 올라왔다. 학교 건물 모퉁이에서 아이가 사라질 때까지는 내가 아이의 뒷모습이라도 볼 수 있지만, 아이가 그 모퉁이를 지나고 나면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간 듯 나는 알지 못하는 세계로 아이가 걸어 들어가는 것 같았다. 실제로도 그랬다. 학교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은 선생님들께서 이렇게 저렇게 아이의 생활을 전해주시지만, 학교는 그렇지가 않다. 나는 그저 짐작만 해보는 그 세계에서 너는 어떠했을까. 그런데 웃는 낯으로 하교를 해주니 그저 기특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둘째는 4살 때부터 네발자전거를 신나게 탔는데, 첫째는 자전거에 크게 흥미가 없었다. 둘째보다 더 나이가 들고 사준 자전거였지만, 탄 횟수로는 둘째가 첫째를 훨씬 앞섰다. 그러다 주변에 두 발 자전거를 타는 친구들이 생기면서 첫째도 두 발자전거를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다. 네발도 잘 탄다고 하기 애매했는데, 두발이라니. 가르쳐줄 생각을 하니 까마득했다. 첫날 공원에서 두 발자전거를 잡아주다가 나는 얼마나 숨을 헐떡였는지 모른다. 허리가 더 아픈지 폐가 더 아픈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몇 초간 내가 손을 떼고 아이가 직진을 했다는 것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이는 두 발자전거가 재밌었는지 내 칭찬이 좋았는지 모르겠지만, 다음날도 공원에 가자고 성화였다. 나는 자신이 없었다.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안 나가고 싶었지만 억지로 억지로 공원에 나갔다. 그런데 몇 번 잡아주자마자 아이가 혼자 중심을 잡고 나간다. 비틀비틀거리다가도 이내 돌아온다. 그렇게 아이는 혼자 두 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이틀만의 쾌거였다. 공원에 앉아 우리를 구경하시던 할아버지도 일어서서 아이에게 잘 탄다며 응원을 보내주셨다. 그 모습을 보는데 내가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너무 즐겁고 짜릿하다. 내가 뭔가를 해낸 것도 아닌데, 내 아이가 두 발자전거를 타게 된 것이 나에게 이런 행복을 선사해 줄 줄이야.

두발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첫째

피아노 학원도 그랬다. 첫째는 지금까지 학원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그동안 내가 몇 번 제안해 본 적은 있지만, 아이는 늘 원하지 않았다. 원하지 않는 것을 억지로 강요해서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다 지난주, 피아노 학원에 가서 상담은 받아보겠다고 해서 아이와 함께 피아노학원을 찾아갔었다. 내 손을 꼭 잡으며 아이는 떨린다고 했고, 그게 뭐라고 나도 괜히 떨렸다. 아이는 학원의 모습이, 그 안에서 피아노를 치는 동갑내기가 좋아 보였던 모양이었을까. 선생님이 다정해 보인다며 피아노학원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고, 당장 내일부터 나가고 싶다 했다. 그렇게 아이는 이번 주부터 피아노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첫날 아이는 수업이 끝나고 집에 와 너무너무 재밌었다며 잔뜩 신이 났다. 그 모습을 보는데 내가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너무 재밌어서 꿈에 나올 것 같다는 아이의 말에, 나는 꿈에 나올 것처럼 무언가를 재밌어해 본 것이 언제였던가 까마득하면서도 그 꿈을 나도 같은 꿀 듯이 즐겁다. 오늘 피아노 학원 가는 날이지? 하며 하루를 기대하는 모습에서, 나에게 손을 흔들며 살랑살랑 학원으로 뛰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에서 (첫날만 데려다주고 그다음부터는 혼자 보냈다.) 나는 새로운 종류의 행복을 맛보았다.


나는 이 감정의 이름을 모른다. 그동안의 나는 늘 나의 감정이 먼저였다. (육아는 타의에 의해서 그것을 우선할 수 없을 때가 많았지만 늘 우선하고 싶었던 것은 사실이다.) 나의 성취가(성취감이) 먼저였다. 아이가 영어를 잘하길 바라는 마음보다 내가 영어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고, 아이가 책을 많이 읽기 바라는 마음보다 내가 책을 많이 읽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던 내가 아이의 새로운 도전에 설레고, 아이의 성취에 짜릿함을 느낀다. 그것은 그동안 내가 행복을 느끼던 ‘성취감‘과는 확실히 다른 것이었지만 훨씬 풍성했다. 나 혼자의 성취에서 느끼던 행복도 행복이었지만, 지금의 이 행복은 그때의 행복과는 또 다른 행복인 것이다. 행복의 범위가 커졌다고 해야 할까? 초콜릿의 단맛만 알다가 수박의 단맛을 알게 된 것처럼 말이다.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내가 이런 감정의 영역을 알 수 있었을까? 아마도 몰랐을 것이다. 내가 다 겪었던 시간들이라 할지라도(나도 학교 다녀봤고, 혼자 등교해 봤고, 두 발자전거를 타봤고, 피아노학원을 다녔지만) 그것을 너로 인해 다시 새롭게 살아 볼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감사하다.


그런 의미에서 늘 너의 길을 응원한다. 너는 너대로, 나와는 다르게 걸어갈 너의 길들이 기대된다. 그리고 그 길을 걷는 너의 걸음걸음을 옆에서 내가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다채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놀라며, 오늘도 너의 엄마가 나라는 것에 감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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