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처보다 네 상처에 더 아플 때
지난 일기에 나는 이런 내용을 썼었다. 나의 아이가 성취하는 것들이 나에게 얼마나 기쁨으로 다가오는지 말이다. 이번 일기에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아니 어쩌면 같은 이야기 일지도 모르겠다. 지난주, 내가 운동을 하다가 다치는 사고가 있었다. 발등을 깊게 파여 난생처음 구급차도 타보고, MRI도 찍어보았다. 다행히 힘줄까지 다치진 않아서 국소마취를 하고 봉합수술을 받은 뒤 하루 입원하고 퇴원했다. 사고는 언제나 예상치 못하게 갑자기 찾아오고, 당연하게 누리던 일상을 한순간에 빼앗겼지만 그래도 나는 그 안에서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이만하길 다행이라며, 뼈나 힘줄이 다치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나를 간호해 주러 달려와줄, 또 내 아이들을 돌봐줄 동생이 가까이 사는 것에 감사했고 아이들이 방학이 아닌 것과 내 생리가 시작하는 게 아니라 거의 끝나가고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내가 다쳤을 때 신속하게 나의 처치와 신고를 도와준 분들에게 감사했고, 내가 입원한 병원에 지인분이 간호사로 계시는 것에 감사했다. 더불어 나를 걱정해 주고,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도 감사했다. 다치고 보니, 그래서 무언가를 잃고 보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가졌던가 새삼 깨닫게 되면서 이렇게 한 번 나를 멈춰 세우시는 시간들을 통해 내가 많은 것들을 돌아보고 새로이 알게 되었다고 또 감사했다.
그런 나를 보면서 나는 스스로를 제법 기특해했다. 다친 것은 속상하지만, 그것을 내가 성숙하게 받아들이고 견뎌내고 있다는 것이 대견했다. 이렇게 내가 좀 더 어른이 되어가는 건가 그런 생각도 했더랬다. 나는 진심으로 내가 믿는 신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에게 그런 사고가 있고 맞이한 주말, 또 다른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내가 발이 아프니 밖에 나가 놀기가 어려워 아이들이 집에서 놀고 있는 여유로운 때였다. 두 아이는 안방에서 역할 놀이를 하며 신나 있었고, 남편과 나는 각자 소파와 거실의자에 앉아 개인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첫째가 방에서 나와 방문 옆에 서서 아빠에게 무어라 말을 하고 있을 때였다. (어느 사고나 다 그렇듯 사실 정확한 상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갑자기 첫째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 비명소리에 나는 아이를 쳐다보았고, 즉각 상황을 파악했다. 첫째 손이 열린 문의 틈(경첩이 있는 쪽)에 끼어있었는데, 둘째가 그것을 모르고 문을 닫으려 했던 것이다. 그걸 보고 나는 달려가며 “여름아!! 여름아!!” 소리쳤지만 상황을 알지 못하는 둘째는 문이 꽉 닫히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기며 문을 닫기 위해 밀고 있었다. 내가 얼른 달려가 문을 열고 첫째 손을 빼내었지만 아이는 더욱 소리를 지르며 방방 뛰기 시작했다. 괴로워하는 아이를 남편이 안아 달래는 사이 나는 구급상자를 꺼내왔다. 내가 다쳤을 때도 이렇게 까지 당황하지 않았는데 (내 상처가 훨씬 깊고 심하고 징그러웠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머리와 가슴이 따로 움직이는 듯 버둥거렸다. 아이가 괴로워하는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제정신을 차리기 어려웠고, 아이 손을 소독해 주면서도 이게 맞나? 다음은 무얼 해야 하지? 질문들은 쏟아지는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답변을 찾지 못했다. (그때를 회상하며 글을 쓰는 지금도 얼굴이 일그러지며 괴롭다.)
남편도 나도 무척 당황했다. 당황한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쓰며, 병원도 알아보고 간호사인 지인들에게 아이 상태를 사진 찍어 보내며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했지만 사색이 된 우리 둘의 얼굴에 둘째까지 겁을 잔뜩 집어먹었다. 둘째는 ”내가 미안해. 누나 손이 있는 줄 몰랐어. “ 사과를 했지만, 엄마 아빠는 여전히 패닉 상태였다. 그래서 둘째는 놀아달라고 책을 읽어달라고 때를 써서라도 엄마아빠의 관심을 돌려보려 애를 썼지만, 관심은 돌려지지 않았고 (실제로 내가 책을 두권이나 읽어주기 했지만) 결국 투정을 부리다 울며 잠이 들었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첫째 손에 냉찜질을 해주며 우왕좌왕하다 한참만에 겨우 결론을 내렸다.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니 당장 응급실을 갈 일은 아닌 것 같고, 내일 수부를 전문으로 하는 의사에게 가서 검진을 받아보자. 그것이 우리의 결론이었다.
머리로는 결론이 났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남편을 붙들고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동안 제법 잘 유지하고 있던 평정심이 아이가 다침과 동시에 와르르 무너졌다. 그리고 나는 그런 내 모습에 또 한 번 당황스러웠다. 상처의 심각성으로 보더라도 나는 응급실에 바로 가야 하는 상황이었고, 딸아이는 아니었다. 살이 까진 것도 나는 봉합 수술이 필요할 정도로 심했지만 아이는 연고만 발라도 되는 수준이었다. 지난주에 내가 겪은 사고와 비교하면 이것은 훨씬 (그것이 무게가 있다면) 가벼운 사고였음에도 나는 내 마음을 쉽게 다잡지 못했다. 내 아픔보다 아이의 아픔에 내가 훨씬 더 마음 아파한다는 것에 나는 새삼 놀랐다. 이게 이렇게 무너질 일인가. 사고의 경중을 떠나서 그 연속성에 마음이 어려워진 것 일수도 있겠지만, MRI를 찍고 힘줄이 끊어졌으면 척추에 마취주사를 놓아 전신마취 후 수술하고 힘줄이 끊어지지 않았으면 국소마취 후 수술을 하겠다는 말을 듣고 내 검사 결과를 기다리던 시간보다 다음날 엑스레이를 찍고 아이의 뼈에는 이상이 없는지 검사를 받기까지의 시간이 나에게는 더 괴로웠다는 점이 이상했다. 그리고 다행히 나도 힘줄에는 이상이 없다는 소견을 들었고, 아이도 뼈에는 이상이 없다는 소견을 들었지만 아이의 결과를 들었을 때가 더 안심이 되고 기뻤다는 점도 낯설었다. 이런 마음은 무얼까. 왜일까?
부모의 마음이란 그렇고 엄마의 마음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내 상처보다 아이의 상처에 더 크게 아파하는 것. 아이의 일에 있어서는, 무게를 재는 내 마음의 저울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결국 아이의 일에 훨씬 무게가 실린 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래서였을까. 마침 나의 사고가 있기 전날 해외로 떠난 부모님에게 나는 내 사고를 바로 전하지 못했다. 여행 중에 마음 아파할 부모님의 마음을 나도 부모가 되어보니 조금이나마 짐작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동안의 나는 남편이랑 싸워도 당장 엄마한테 전화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하는 철부지였다. 그때는 몰랐다. 엄마가 나보다 속상할 것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이번에 나는 3일이 지나고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나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드렸다. 이상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내 상황을 전달할 때는 웃으며 이야기했는데, 엄마한테 다친 얘기를 할 때는 눈물이 났다. 아마 두 분이 유일하게 나의 아픔에 나보다 더 아파할 것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걸 이제야 알았다. 딸아이의 아픔에 내가 이렇게 아파해보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그 마음.
나는 소위말하는 ‘감정적인 ‘ 사람에 속한다. 그리고 나는 내 감정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 내가 가장 신경 쓰는 것 중에 하나인 사람이다. 그런 내가 어쩌다 부모가 되어, 타인의 일에 내가 더 기뻐하고, 내가 더 슬퍼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것 또한 나의 감정이지만, 그것이 타인으로부터 기인한다는 것이 요즘 나에겐 새삼스럽고 놀랍기 그지없다. 얼마 전 읽은 책에서 ‘수전 손택’은 이런 말을 했다. “실제로 체험해 보기 전까지는 진심으로 실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실로 그렇다. 내가 부모가 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부모의 마음. 거꾸로 생각하면 그런 것이다. 나도 부모에게 그런 마음을 받았다는 것. 나보다 나의 일에 더 기뻐하고 더 슬퍼하는 그런 사랑을 받았다는 것. 부모가 된다는 것, 엄마가 된다는 것은 정말 놀라움의 연속이다. 내가 알지 못했던 감정, 내가 알지 못했던 사랑을 알게 되니까. 그 새로운 세계는 아프고, 놀랍고, 눈물 나게 벅차오른다. 나는 앞으로 또 얼마나 아프고 놀라고 벅차오를까. 또 얼마나 더 다양한 모양의, 색깔의 기쁨과 슬픔을 누리게 될까. 이걸 기대된다고 해야 하나 무섭다고 해야 하나. 결국 이 감정은 마무리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