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자체가 사랑인 존재. 어린이.
저녁 식사 후 자유시간을 가지러 나갈 준비를 하는 나에게 가을이(첫째 만 6세)가 말했다. “엄마 혹시 카페에서 책 읽고 글 쓰고 할 거면 (어떻게 알았지?ㅋㅋ) 그거 가져가요.” 학교 방과 후 수업인 ’ 핸드아트‘ 시간에 만든 티코스터를 말하는 것이다. 가을이는 그것을 나에게 선물했다. 나는 카페에 왔고, 애플망고주스 아래 하얗고 푸른색이 섞인 그 티코스터를 깔았다. 그리고 나는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고 느꼈다.
남편은 얼마 전 아는 형들과 식사자리를 가졌는데, 그중 한 형이 4살 배기 아들이 맨날 엄마만 찾는 것에 내심 서운한 마음이 든다고 했단다. 그렇다. 결국 아이가 나를 찾는 것은 사랑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나는 그 사실을 대게 잊고 지낸다.) 그날도 둘째는 저녁식사를 하는데, 아빠랑 엄마가 자리를 바꿨으면 좋겠다고 했다. 둘째 옆에는 남편이, 첫째 옆에는 내가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 옆에 엄마가 앉았으면 좋겠다는 둘째. 그 옆자리로 가면 혼자서 제 식사를 알아서 하는 첫째와 달리 이런저런 치다꺼리를 해야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옆자리가 사랑이라는 것을.
나는 ‘신’의 사랑이 가장 완벽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하는 사랑으로는 신의 사랑을 따라갈 수 없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신의 사랑의 어느 한 단면을 크게 경험해 볼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내가 아이에게 보여주는 사랑에서 그렇게 느꼈지만 (내가 이렇게 이타적인 사람이었다니! _ 물론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내 안의 악마도 보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아이에게 받는 사랑에서 더 그러한 것을 많이 경험한다고 느낀다. 실은 내가 아이에게 주는 사랑보다 아이가 나에게 주는 사랑이 더 신의 사랑을 닮았다 생각한다.
가을이는 얼마 전 나에게 뜨끔 없는 질문을 했다. 침대 위에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폴짝 침대로 뛰어오르며 나에게 묻는 것이었다. “엄마는 뭘 제일 좋아해? “ 나는 읽던 책을 잠시 덮고 아이를 보며 고민 없이 말했다. “엄마는 책 읽고 그림 그리고 글 쓰는 거!” 그러자 아이는 웃으며 또 묻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뭐게?” “뭔데?” ”우리 가족! 엄마랑 아빠랑 여름이!“ 그렇게 대답하고는 티 없이 맑게 웃는다. 나는 아차 했다. 어쩌면 엄마인 나보다 아이가 우리 가족을 더 사랑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 부끄러워졌다.
어느 날은 저녁식사를 이르게 한 탓에 자기 전 배가 고파진 나와 아이들은 식빵을 한 조각씩 구워 먹었다. 이 식빵은 구워서 우유에만 찍어먹어도 맛있다는 아빠의 말에 아이들은 그렇게 했고, 나는 식빵에 잼을 발라 먹었다. 둘째는 나에게 엄마도 우유에 찍어먹으라며 괜한 투정을 부렸고, 나는 각자 자기가 원하는 데로 먹는 거라며 엄마는 잼을 발라 먹을 거라고 우겼다. 그렇게 나와 둘째가 투닥거리고 있는 사이로 또 첫째가 웃으며 얼굴을 들이민다. 그러고는 하는 말이 “엄마! 이 빵을 제일 맛있게 먹는 방법이 뭔 줄 알아?” 하고 묻는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도 잠시, 아이의 뜬금없는 질문이 귀찮았지만 나는 “뭔데?” 하며 짐짓 궁금해하는 척하며 물었다. 그러자 아이의 대답이 ‘정답‘이다.
“가족들이랑 같이 먹는 거!”
아…. 나는 졌다. 내가 어떻게 이 아이의 사랑을 따라가랴. 과연 저것이 정답이 아니던가. “우유를 찍어먹어라!” “싫다! 잼을 발라먹을 거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로 투닥거리고 있는 우리 두 사람 사이에 아이는 ‘사랑‘이라는 정답을 내놓았다. 아이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한다는 자체가 이 빵을 가장 맛있게 한다고 했다. 우리가 함께 둘러앉아 빵 한 조각을 먹으며 누리는 이 시간을 아이는 ‘사랑’이라 했다. 나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빵을 먹는 내내 멍하게 아이의 대답을 되새겨 볼 뿐이었다. 나는 오늘도 아이에게서 도리어 사랑을 배운다.
나는 아이에게서 사랑을 배우는데, 그럼 아이는 어디서 그런 사랑을 배웠을까? 아이가 자기 안에 그러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 건, 아마도 아이의 존재 자체가 사랑이기 때문일 것이다. 존재 자체가 사랑인 존재. 그것이 아이들이 아닐까. 어린이날을 지나며 나는 생각한다. 신이 나에게 이런 어린이를 둘이나 보내주신 건. 나에게 그만큼 가르쳐줄 사랑이 많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감사하다. 나에게 이런 사랑을 둘이나 보내주셔서 말이다. 아이들 덕에 나는 사랑을 배우고, 사랑을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고, 귀로 듣고, 온몸으로 온마음으로 경험한다. 그보다 더한 행복이 있을까. 모르겠다.
어린이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