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 한 줌 드리고, 깨우침 한 포대를 얻어왔을 때.
산청에 수해복구 봉사를 다녀왔다.
그런데 이걸 ‘봉사’라고 부르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손을 보탠 것은 맞는데, 내가 보탠 손은 지극히 작아 보이고, 그곳에서 내가 경험하고 느끼고 배운 것은 훨씬 커 보였기 때문이다. 한 줌 보탰는데, 한 포대를 얻어 온 것 같달까. 그래서 그 시간들이 귀하고 감사했다. (그래서 그것들을 어떻게든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쓴다.)
알고 지내는 언니네 가족이 경상남도 산청에 살아 SNS로 그곳의 소식들을 들을 수 있었다. 마음이 가는 일이었다. 소식을 들으면서 피해복구를 위해 모금을 한다기에 모금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어떠한 방식이든 더 적극적으로 돕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다. 그러다 언니가 SNS에 올린 한 글을 읽고, 나의 그 마음은 산청에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산청의 정확한 수해 피해 농가수, 가구수는 아직 집계되지 않았지만 제가 지난 일주일 간 다녀본 바에 따르면 신안면, 생비량면, 신등면, 단성면, 산청읍, 오부면 등 산청의 거의 전 지역에 광범위하게 도로 붕괴, 농장 침수, 논밭 유실, 산사태 등의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중앙정부도, 산청군도 수해복구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지만 이 정도 규모의 큰 재난은 공공의 영역에서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수준임이 분명합니다. 몇 년간 공들여 가꾸어 온 농장이 진흙더미가 되어버린 농민들에게는 단 하루, 2~3시간 의 봉사라도 큰 힘이 되는 것을 옆에서 생생히 지켜보았습니다. 다음 주부터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될 거예요. “농사일 한 번도 해본 적도 없는 내가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피해복구는 국가가 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마음 대신 일할 수 있는 복장으로 한나절만 산청의 피해복구 현장에 잠시 들러보시는 건 어떨까요? 기후위기는, 재난은 더 이상 먼 곳에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런 일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혹은 같은 일이 일어났을 때에 우리가 다 같이 일어서기 위해서는 재난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산청에 방문해 주세요. 혹시 머무를 곳이 필요하시면 무료 숙소를 연결해 드릴 수 있습니다. 봉사한 후 맛있는 밥도 함께 나눌 수 있습니다.“
나의 그 마음은 어디서 기인한 것이었을까? 아마도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미안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미안했다. 나는 평생을 계속 도시에서만 살았기에, 이러한 자연재해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적이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어른이 된 (나는 과연 어른인가;;) 지금은 안다. 계속되는 자연재해 안에서 내가 직접적인 피해자였던 적은 없지만, 늘 나는 간접적인 가해자였다는 것을 말이다. (아니 직접적인 가해자였던가?) 지구가 이렇게 아픈 데에는 나도 책임이 있는 것인데, 지구를 다시 돌보는 데에는 게으르고 무관심하지 않았던가. 결국 그 폭우에 쓸려내려 간 생명과 삶에 나도 책임이 있는 것인데 말이다. 아마도 나는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 미안함이 있었던 것 같다. 그동안의 나는 그 책임을 대부분 피하고 살아왔지만,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미약할지라도 나의 책임을 감당하고 싶었다.
감사하게도 그런 생각에 있어서 나와 남편의 마음은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봉사를 갈 수 있었다. 사실, 우리 둘 만의 마음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 부부에게는 두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친정 부모님도 같은 마음으로 2박 3일간 아이들을 기꺼이 봐주기로 해주셨기에,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우리의 손과 발로 옮길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또한 감사함이다. 그렇게 해서 봉사를 가겠다고 하자마자, 언니는 우리를 재워 줄 집을 알아봐 주었다. ‘햇살‘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본명이 아닌 마을에서 불리는 이름이다.) 그분은 이름처럼 따스한 분이었고, 함께 봉사를 하다가 어머니 상을 당하셔서 부산으로 내려가셨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빈 집의 안방까지 (우리 이후에 오신 또 다른 봉사자에게) 내어주시는 분이었다. 어디 가서 내가 (우리가) 이러한 환대를 받아 보겠는가. (아무 대가 없이 말이다.) 새벽에 함께 일어나 봉사 가기 전 햇살이 내려준 따뜻한 황차는 몸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해 주었는데, 봉사가 끝나고 집으로 올라온 지금까지도 그 황차로 데워진 마음이 따땃… 하다. 밤에 도착해 올려다 본 하늘에 쏟아질 것 같던 별들과 아침에 일어나 본 해가 뜨고 있는 지리산의 모습은 또 얼마나 선물 같았는지. 지리산은 보면 볼수록 넓고 푸근했다. ‘어머니 산’이라고 불린다는 말을 듣고 나는 무릎을 딱 쳤다. 왜 그렇게 부르는지 직접 가서 본 사람은 모두 이해하리라! 그런데 그렇게 아름다운 그곳이, 얼마나 처참히 망가졌는지 그 모습을 본 사람은 모두 경악하리라!
보고도 믿기가 힘든 광경이었다. 수 없이 많은 비닐하우스들이 마치 거인이 밟고 지나간 것처럼 처참히 쓰러져 있었고, 그나마 서있는 비닐하우스도 들어가 보니 거의 꼭대기까지 물이 찼다가 빠진 터라 토사로 뒤덮여 있었다. 하우스 위까지 묻어있는 토사자국이 그걸 말해주고 있는데도, 그걸 내 눈으로 보면서도 나는 그때의 광경을 감히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었다. 우리가 봉사를 갔던 하우스 농부님도 발목, 무릎, 허벅지, 무섭게 차오르는 물에 몸만 겨우 빠져나왔다고 하셨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이야기만 전해 듣는데도 등골이 오싹하다. 키우는 개의 목줄도 못 풀어주고 나올 정도로 긴박했다는데, 9개 동의 딸기 농사가 전부 허사로 돌아간 것을 슬퍼하시기보다 그 개를 구해내주지 못한 것에 더 아파하시는 그 마음을 나는 또 감히 상상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그러면서도 밤에 그런 사달이 나지 않고, 낮에 대피하게 돼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며. 그 처참함 속에서도 감사의 제목을 찾아내는 농부님의 욕심 없이 맑은 마음은 내게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농부님들의 속마음을 내가 다 들여다볼 수는 없었겠지만은, 농부님들은 모두 이 상황을 원망하는 말은 하지 않으셨다. (나는 내가 조금만 손해를 보게 돼도 그 상황을, 혹은 누군가를 또는 나 자신을 얼마나 원망했던가.) 그때 운명을 달리했으면 이렇게 복구하면서 고생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하는 그 농담 섞인 말과 미소 뒤에는 함께 고생하는 봉사자들에게 보내는 고마움과 미안함이 있었고, 더 깊숙이에는 생명을 건진 것에 대한 감사와 구해내지 못한 10명(정확한 집계는 아닐지 모르지만)의 생명에 대한 (그리고 수많은 동식물들에 대한) 미안함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그 순수하고 맑은 마음들에 나는 따끔하게 매를 맞은 듯도 했고, 한없이 푸근하게 안기는 듯도 했다.
그동안의 나는, 나의 마음은, 나의 손은 얼마나 욕심거리로 가득하고 이기적이었는지. 돈 한두 푼에 (모자라서라기 보다는 아까워서) 부들부들 떨던 내 손이 부끄러운데, 그 손으로 그 토사들을 퍼내고 또 퍼내고 나면 조금은 내 손도 순수해 질런지. 그러길 바라는 마음으로 젖은 흙을, 마른 토사를 퍼냈다. 아마도 내 평생 가장 많은 흙을 만지고, 흙먼지를 마신 이틀이 아니었겠나 싶다. 손끝이 아릴 정도로 흙을 퍼내면서 망가진 손은, 이 ‘정직한’ 노동에 도리어 깨끗해지고 있었다. 예수님이 원하신 손은 이런 손이 아니었을까. 그동안의 내 손은 너무 이상하리만치 깨끗했던 것이다. 나만을 위했으니까. 처음에는 이렇게 손으로 하나하나 퍼내서 언제 다하려나 싶었는데, 함께 모인 손들은 요령 없이 정직한 노동이 얼마나 힘이 있는 것인지를 보여주었다. 까마득했던 일들이 하나하나 정리되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야말로 ’희망’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아, 희망이란 단어는 이럴 때 쓰는 것이구나.
“앞이 캄캄하고 막막했는데 찌는듯한 폭염 속에서도 땀 뻘뻘 흘려가며 도와주시는 덕분으로 차차 힘을 내어봅니다. 정말 고개 숙여(공손히 두 손 모으고 꾸벅) 감사드립니다^^(하트하트하트)“ 봉사가 끝나고 카톡창에 올라온 농부님의 감사인사에 고개 숙여(공손히 두 손 모으고 꾸벅) 감사한 것은 내 쪽이다. 내가 어딜 가서 이런 값진 노동을 해보겠는가. 내가 어디 가서 ‘함께함’의 이 묵직한 값어치를 느껴보겠는가. 줄줄 흐르는 땀이 불쾌하지 않았고, 뒤집어쓴 흙먼지마저 뿌듯했던 것은 나의 애씀이 누군가에게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장거리 운전에도 피곤함을 잊고 우리 둘은 수다 꽃을 피웠다. 그곳에서 만난 멋진 사람들 그리고 우리가 보고 느낀 것들을 나누는데 우리는 자못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의 삶의 단편으로도 우리는 무척 많은 것을 배웠고, 지리산 자락의 상처 입은 단편을 보고도 우리는 끊임없이 감탄했다. 그리고 말은 안 했지만, 우리 둘도 그들처럼 좀 더 멋진 사람으로 성장하자고 서로를 그렇게 끌어주고 밀어주며 격려하자고 다짐했던 것 같다. 이번 경험만으로도 우리 부부의 색깔이 더 다채롭게 빛나게 되었다고 느꼈으니 말이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나는 봉사자들이 함께 있는 단체 카톡창에 남았다. 그곳에서는 여전히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돕고자 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연결되고 있었다. 촘촘히 짜여지는 그 그물에 계속해서 희망이 건져 올려지는 것을 나는 볼 수 있었다. 지인분이 폭우로 하우스가 다 부러지고 당장 입고 작업할 옷이 없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여기저기서 옷을 보내주겠다는 답장이 이어졌다. “봉사현장이 워낙 변수가 많다 보니 급하게 일손이 필요한 상황들이 생기는데 그때마다 찰떡같은 도움의 손을 척하니 내밀어주시니 모두들 고맙습니다.” 그 카톡창을 운영하는 분의 말이었다. 정말로 그랬다. 그 모습들을 그저 글자의 나열로 보는데도 그림이 그려지고, 그 그림은 한없이 아름다웠다.
내가 머물렀던 집의 ‘햇살’에게 인사도 하지 못하고 돌아온 것이 마음에 걸려 집에 돌아와 메시지를 보냈더랬다. 따뜻한 환대에 감사했다고 말이다. 그리고 장례를 치르고 있다는 햇살에게 답장이 왔다. “인연이 참 소중하고 귀합니다. 짧게 만나 아쉽지만 다음에 언제 놀러 오세요. 늘 열려있고 환대할게요. 저희 집엔 여러분들이 묵고 저희 가족은 휴가 간 친구집에서 묵었어요. 세상은 이렇게 연결되어 있어요. 손 내밀고 잡아주는 사람들이 있어 든든합니다. 산청에 꼭 놀러 오세요(하트하트하트)” 세상은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는 그 말이 유독 마음에 남았다. 나도 이번 봉사를 통해서 사람과 사람이 그리고 자연과 사람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뼛속 깊이 느꼈으니 말이다. 올해가 ‘산청 방문의 해‘라고 한다. 여전히 도움의 손길들이 간절한 그곳에 더 많은 방문들이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람과 사람의 연결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서 자연과 사람이 화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고작 2박 3일 다녀와서는 말이 길다. 그렇지만 더 긴 이 여운은 어찌할까. 산청에 가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