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 어린 말로도 한 냥 빚을 갚지 못하는 아이러니
오전에 아이들을 등교&등원 시키고,
난장판이 된 집을 대충 치워두고 약간의 편두통을 느끼며 잠깐 앉아서 한숨 돌리고 있는데,
남편에게 갑자기 카톡 메시지가 왔다.
To. 내가 사랑하는 당신에게
오늘도 수고했어.
이 말이 얼마나 부족한지 알지만, 그래도 꼭 전하고 싶어.
청소하고, 정리하고, 밥 차리고…
사람들은 당연하다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나는 알아.
그 모든 일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마음이 들어가는지.
나는 네가 기계처럼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루하루 우리 가족을 위해 마음을 쏟는 사람이라는 걸 느껴.
그리고 그 마음이 얼마나 귀한지, 나는 매일 감동해.
혹시라도
“나는 왜 이렇게 지치지?”
“이걸 왜 혼자 다 해야 하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면,
부디 기억해 줘.
넌 절대 혼자가 아니야.
나는 늘 네 편이고,
앞으로는 더 잘 도울게.
말하지 않아도 알아채는 남편이 되려고 노력할게.
오늘은 그냥 내가 해줄게.
너는 잠깐 쉬어줘.
그리고 잊지 마 —
지금의 너도, 지쳐 있는 너도,
나는 변함없이 사랑하고 있어.
From. 언제나 너의 편인 남편이
누가 봐도 어디선가 퍼온 글이었다. 첫 문장에서부터 나는 그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내 남편이 아닌 누군가가 적었을 이 글을 읽는데 눈물이 났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말들이, 나의 수고를 인정해 주는 말들이, 나의 어깨를 도닥여 주었기 때문이었다.
본인이 쓴 글이 아님을 바로 눈치챈 나를 놀랍게 생각하는 남편이 귀여웠고,
퍼온 것은 맞지만 자기도 같은 마음이라는 남편의 말에, 남편이 쓴 글인 셈 쳐주기로 했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라고… 고맙다고 했다. (우는 이모티콘과 함께) 그 말에 남편은
“여보는 나한테 가장 소중한 사람이에요 여보가 웃으면 나도 최고의 하루예요“(웃는 이모티콘과 함께)라고 답했다.
나는 오늘 깨달았다. “빌려온 말”로도 천냥 빚을 값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남편은 아마 모를 것이다. 이 빌려온 말들이 얼마나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는지 말이다.
이 빌려온 말들로 내가 다시 일어나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돌릴 힘을 얻었다는 것을 말이다.
피아노 학원을 다녀온 첫째가 더우니 빙수가 먹고 싶다 했다.
그래서 첫째와 빙수를 사 먹으러 카페를 갔다.
아이에게 작은 1인 망고빙수를 사주고, 나는 콜드브루 라떼를 마셨다.
달콤하고 시원한 망고빙수에 신이 난 아이를 보고 있자니
흐르는 땀에 눅눅했던 내 마음까지 산뜻해진다.
그래서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는 가을이가 웃으면 행복해져.(미소 지으며)“
나도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값아보리라 생각했나 보다.
요 며칠 아이를 속상하게 했던 나의 말들을 만회해 보려고 말이다.
그런데 그런 내 말을 들은 아이가 대답했다.
“난 엄마가 안 웃어도 엄마가 있어서 기뻐.(활짝 웃으며)“
아…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내가 감히 너에게 빚을 값으려 했구나… 도리어 빚이 잔뜩 더 생겼다…
어찌 너에게 받은 사랑을 다 값으리…(하트)
나는 오늘 또 한 번 깨달았다. 내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로도 나는 아이에게 그 어떤 빚을 값을 수 없다는 것을.
아이가 웃으면 행복해진다는 나의 말이,
내가 안 웃어도 (즉 나의 어떠한 조건이 아니라) 내가 있어서 (즉 나의 존재만으로) 기쁘다는 아이의 말보다
어찌 무거울 수 있단 말인가.
나의 한없이 가벼운 행복에 돌덩이 같이 묵직한 사랑을 얹어주는 네 덕에
나의 마음은 훨훨 날아가 증발해버리지 않고, 묵직하게 내려앉아 뿌리내릴 수 있었다.
너는 모르겠지. 너의 말들로 나는 사랑의 빚더미에 앉았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그 빚에 허덕이느라 행복하다.
갚지 못할 사랑에 벅차다.
오늘은 그런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