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훨씬 멋지다는 것을.
밥투정을 하는 둘째에게 버럭 화를 냈다. 먹기 싫으면 굶으라고 소리쳤다. 밥은 남편이 차렸는데 왜 내가 더 화가 났을까.
둘째는 편식이 심한 편이다. 나의 나름의 분석으로는 (내가 좀 애를 이해해 보고 싶어서 생각해 봤다.) 촉각, 청각 같이 감각에 예민한 아이라, 새로운 음식에 대해서도 일단은 거부 반응을 보이는 듯하다. 수많은 고민 끝에 도전해 본 음식이 맛있으면 잘 먹지만,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느끼면 절대 먹지 않는다. 그러다 둘째는 김을 좋아하게 되었고, 뭐 먹겠냐고 물어보면 맨날 밥에 김을 먹겠다고 답한다. 국에서도 건더기는 다 빼달라고 하고, 탕수육도 소스를 찍지 않고 먹는다. 다양한 재료가 섞여있으면 먹지 않는다. 눈에 분명하게 김! 밥! 이렇게 구분되어 보여야 안심하고 먹는 듯하다. 아무튼 먹는 데 있어서 무지하게 까다로운 아이다.
그날은 왜인지 새삼스럽게도 식사에 또 까탈스럽게 구는 둘째에게 질리고 말았다. 아마도 그날, 내가 무척 피곤했던 모양이다. 어떻게 맨날 밥에 김만 먹냐고 주는 대로 좀 먹으라고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이는 대뜸 화를 내는 엄마에게 제법 서운했던 모양이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나에게 사과를 요구한다. 자기에게 사과하라고 야단이 났다. 그 말에 더 화가 난 나는 대뜸 소리쳤다. ”열심히 밥 차려준 아빠에게 너나 사과해!!“
(나와는 다르게) 내 말을 들은 아이는 아빠에게 바로 사과를 했다. 그러고는 나에게 다시 사과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자기도 사과를 했으니, 엄마도 사과를 하라는 것이다. 그래, 네가 사과를 요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사실 그렇게 까지 화를 낼 일은 아니었다. 네가 편식을 하는 것을 염려해서였다면, 대뜸 화를 낼게 아니라 편식의 위험성을 알려주었으면 될 것을, 나는 나의 피로함을 너에게 화풀이한 것 밖에 되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그렇게 편식하다가는 계속 그렇게 난쟁이 똥자루로 살게 될 거라고 아이를 놀려대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나는 쉽사리 화가 가라앉지 않았고, 아이에게 사과를 하고 싶지 않았다. ‘편식하는 게 잘못이지!‘ ‘내가 뭘 잘못했어!‘하는 억지스러운 마음을 누르지 못했다. (아이와 다르게) 나는 바로 사과를 하지 못했다. 아이를 붙잡고 엄마가 화를 낸 이유(사실 그것 때문이 아니면서)와 편식을 하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았다. 내가 그렇게 ‘사과’를 뒤로 미루는 동안에도 아이는 내 눈에서 눈을 떼지 않고 고개를 끄떡이고 대답까지 착실하게 붙여가며 내 말을 끝가지 경청했다. 나는 아이에게 그런 잔소리를 할 자격이 있었나. 내 잘못을 마치 아이 잘못인 양 덮어가며 되지도 않는 훈수를 두는 나를 아이가 뚫어지게 쳐다보는데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던가. 그랬던 것 같다. 그 마음을 애써 감추기 위해 나는 “그래도 난쟁이 똥자루 된다고 한 것은 엄마가 미안하다”며 사과인 듯 사과 아닌 사과 같은 사과를 하고는 웃었다.
장황했던 내 사과는 진심이었을까. 아니었던 것 같다. 아마도 담백했던 아이의 빠른 사과가 더 진정성 있었다 하겠다.
그런데 자기 전, 아이가 나를 찾아왔다. (그날은 내가 첫째를, 남편이 둘째를 재우는 날이었다.) 또 엄마랑 자고 싶다며 투정을 부리러 온 줄 알았는데, 아이는 대뜸 나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갑작스러운 사과에 당황한 나는 “왜? “라고 물었고, 아이는 아까 저녁 식사 때 이야기를 꺼냈다. 자기가 밥 먹다가 사과 먹겠다고 고집부려서 미안하다는 여름이… 아빠가 해준 장조림덮밥이 마음이 안 들었던 아이는, 맨밥을 내놓으라고 난리를 치고는 마땅한 반찬이 없자 사과를 깎아달라고 고집을 부렸더랬다. 결국 아이는 정말 맨밥에 사과를 반찬처럼 먹었다. 그걸 잠들기 전 나에게 다시 한번 사과하러 왔던 것이다. 이렇게 아이는 저녁 식사 시간에도, 잠들기 전에도 나보다 그가 큰 사람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철부지 막내라고만 생각했는데, 밥투정에 잠투정을 하는 애기라고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아이는 내가 요구한 사과부터, 내가 요구하지 않은 사과까지 멋들어지게 해내고는 나에게 입 맞추고, 옆에 있는 누나에게 입 맞추어 주었다. 아이는 그런 사랑을 할 줄 아는 아이였다. 또 나만 부끄럽다. 또 내가 무늬만 어른이다.
오늘도 아이에게 배운다. 나의 잘못을 빠르게 인정하는 것이 훨씬 멋지고, 그것을 바로 사과하는 것이 더 성숙한 태도라는 것을 말이다. 그날의 일을 돌이켜 일기를 쓰면서, 이제야 나의 잘못을 깨닫는 나는 너에게 닿지 않을 사과를 한다. 이것은 사과가 될 수 있는가. 너의 사과는 새콤달콤한 햇사과 같았는데, 나의 사과는 푸석하고 물러버려 맛없는 사과 같다. 미안해 여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