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마음이 무거운 이유.

마음의 짐을 대신 져주는 일.

by 장새미

초등학교 1학년인 첫째(가을이)의 건강검진 결과가 나왔더랬다. 학교에서 지정한 병원에 가서 몇 가지 검사를 받았었는데 그중 시력이 좀 낮게 나왔다. 그러니 추가 검진을 받고 조치를 취하라는 권고가 있었다. 동네 안과를 알아보고 가서 검진을 받아보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일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시력이 심각하게 나쁜 것도 아니었고, 여러 가지 다른 분주한 상황이 있었던 것도 맞지만, 미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얼마 전 첫째가 먼저 안과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나 안과 가야 하지 않아? “


뜨끔했다. “응… 맞아…” 그러고는 나는 대뜸 나의 속마음을 꺼내놓았다. “그런데 병원 가기 싫어. 가을이 안경 써야 된다고 할까 봐 무서워서 가기 싫어… 엄마는 병원이 싫어!” 이 얼마나 철없는 대답이었는지… 그런데 그런 나의 대답을 듣고는 첫째가 말했다. “그래도 병원을 가서 검사를 받아야 아픈지 안 아픈지 알 수 있고, 아프다 그러면 빨리 치료를 받는 게 더 좋은 거잖아~“ 맞는 말이다. 어느 대사가 엄마고, 어느 대사가 딸인지… 누가 봐도 역할이 뒤바뀐 기이한 대화를 나누고도 나는 며칠을 더 미루다 안과 예약을 잡았다.


치아 교정문제도 그랬다. 첫째가 영구치가 비뚤게 나와 교정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치과에서 들었다. 그렇게 교정에 대해서 알아보는데, 의사들마다 의견이 달랐다.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는 의사도 있었고, 영구치가 다 나온 뒤에 하는 게 낫다는 의사도 있었다. 제안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였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나조차 겪어보지 않은 일이었다. (교정은 남편이 했다.) 뭘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지 나는 알지 못해 아직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혼자 심란해할 뿐이다.


왜 나는 이 일들에 이렇게 힘겨워하는 것일까? 왜 이렇게까지 고민하고 걱정하는 것일까?


얼마 전 받았던 내 건강검진 결과지도 도착했다. 나에게도 여러 가지 권고 사항과 추적관찰과 관리를 요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고, 의연하게 받아들였다. 내 몸에 대해서도 그렇게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왜 나는 아이의 몸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는 이리도 혼란스러워하는 걸까?


아이의 몸은 내 몸이 아니지만, 아이의 몸에 대해서는 늘 마음이 무겁다.


나는 중학교 때 시력이 안 좋아져서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내 마음은, 안경을 쓰게 된 것에 대해 별로 아무렇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나보다 우리 아빠가 훨씬 더 속상해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부모님 두 분 중에서 시력이 나쁜 쪽은 아빠다. 아빠는 시력이 아주 안 좋은 편에 속한다. 그래서 안경을 오랫동안 쓰셨다. 아빠는 그런 아빠의 좋지 않은 시력을 내가 물려받은 것 같아서 속상하셨을까. 안경을 쓰면 여러 가지 불편한 부분들이 있는데 그 불편함을 너무 잘 아는 사람으로서 내가 그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게 속상하셨을까. 아마 둘 다였지 싶다.


내 남편도 벌써부터 걱정이 한가득이다. 그는 가족력으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편에 속한다. 운동도 하고 식단조절도 나름대로 했지만, 이번 건강검진에서도 결과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는 우리 아이들에게 그러한 부분을 물려주게 될까 봐 걱정한다. 아이들에게 아직 증상이 나타난 게 아닌데도, 남편은 지레 걱정하고 고민한다.


부모는 왜 아이의 건강문제에 대해서 아이보다 더 속상해하고 걱정하고 고민할까?


나도 나의 부모님을 닮았다. 나는 아빠를 닮아 일찍부터 흰머리가 났고, 지금도 흰머리가 많다. 그건 제법 불편한 일이지만, 그래도 난 아빠를 닮아 머리숱이 많다. 우리는 안 좋은 것만 물려받지 않는다. 좋은 것도 물려받는다. 그리고 자식으로서의 나는, 설령 안 좋은 것을 물려받았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부모를 원망하거나 불행해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내가 부모입장이 되면 또 그게 그렇지만은 않다. 자식보다 내가 더 유난을 떨게 되는 것이다.


내가 요즘 보고 있는 미국 드라마인 “지니&조지아”에서도 그렇다. (지니는 딸이고 조지아는 엄마다.) 드라마에서의 부모들도 늘 자식에게 더 나은 삶을 주고 싶어 한다. 자신이 겪은 고통을 아이가 겪지 않게 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는 것도 주인공 엄마다. (조지아가 계속해서 반복해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이 있다. “나는 나쁜 엄마인가?”) 그런데 그러한 부모의 노력들이 언제나 아이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아이는 더 상처를 받기도 하고 더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부모의 마음은 다 비슷하다. 좋은 것만 물려주고 싶은 마음. 안 좋은 것은 안 물려주고 싶은 마음. 그런데 그것은 과연 가능한가? 아니다. 안 좋은 것을 물려받은 아이는 불행한가? 그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걱정과 고민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일까?


어쩌면 아이가 해야 할 걱정과 고민을 대신하는 것이 부모가 지는 짐이 아닐까. 내가 대신 아파줄 순 없어도, 아이 대신 걱정과 고민을 짊어져 주는 것. 그게 부모가 아닐까. 내가 아이의 교정문제로 걱정고민을 하는 것을 알게 된 우리 엄마는 (아이의 외할머니는) 아는 치과의사분에게 전화를 걸어 이래저래 조언을 받아다 주었다. 나는 내 아이의 고민의 대신하고, 우리 엄마는 내 고민을 덜어주려 애쓴다. 자녀의 자녀 일로도 마음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여전히 애쓰는 엄마. 그래서 엄마의 마음은 결코 가벼워질 수가 없다.


중학생인 내가 안경을 쓰면서 별 다른 마음의 짐이 없었던 것도 우리 아빠가 나 대신 그 짐을 져줬기 때문이 아닐까. 마음의 짐을 져주는 일. 부모의 마음은 그래서 늘 무거운가 보다.


나를 꼭 닮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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