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생각한 오늘
오늘은 필라테스를 가는 날이다. 그런 날이면, 나는 아침에 더 부산을 떤다. 과일들을 열심히 깎아줬는데 애들이 먹지는 않고, 자꾸 컵에 따른 우유에 빨대를 꽂아 후후 불면서 장난을 친다. 우유에 꿀을 타 먹는 것 까지도 흔쾌히(?) 허락해 줬는데, 우유 거품이 식탁 위로 흘러넘치는 꼴을 보자 잔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얼른 과일을 먹으라는데도 아이들은 정신이 딴 데 가 있다. 언제까지 아침을 먹으라고 다그치며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가을이에게 옷을 입으라 했는데, 또 머리가 아프단다. 아무래도 학교가 끝나고 소아과에 가봐야 할 것 같다. 지난 캠핑을 다녀온 뒤부터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4일째 두통을 호소하니 말이다. 등원보다는 등교 시간이 빠르니, 가을이부터 옷을 갈아입히고(갈아입힌다기보다는 제 스스로 입는 거지만) 나는 내 외출 준비를 위해 세수를 한다. 꺼내놓은 여름이 옷은 가을이에게 부탁한다. 여름이를 준비시키기 위해 너무도 쉽게 협박을 늘어놓는 나와는 다르게 (“엄마 말 안 들으면 칭찬스티커 붙인 거 떼버린다!”) 가을이는 다정하게 여름이를 달래고 구슬린다. 그렇게 여름이 옷을 입히는 가을이. 그런데 옷을 입히다 말고 잠시 장난을 치는 가운데 여름이가 침대에 누워있는 가을이를 밟고 지나간다. 나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열려있는 창문으로 소리를 들은 이웃들이 미친 여자라 생각할 것 같다 싶을 정도로 나는 여름이에게 무섭게 소리를 질렀다. 그만큼 누나를 밟고 지나가는 것은 아주 나쁜 행동이며, 다시는 해서는 안될 행동이라는 것을 아이에게 주지 시키고 싶었다. 아이는 겁을 먹을 듯했다. 사실 나는 그러길 바랐다. 누나에게 사과를 시키고, 누나를 안아주라고 했다. 아이는 울듯이 사과를 했고, 누나를 안아준다기보다는 안기는 식이었다. 가을이는 그런 여름이를 측은하게 생각했나 보다 잔뜩 기가 죽은 여름이를 안아 달래주며, 엄마가 여름이한테 가르쳐주려고 그런 거라고 여름이가 잘못한 게 아니라는 말까지 해준다. 적극적인, 혹은 극적인 위로다. 하지만 방금은 여름이가 잘못한 게 맞다. 그렇지만 나는 가을이의 위로를 정정해주지는 않았다. 그저 여름이가 누나의 그런 사랑을 맘껏 누리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러는 사이 가을이가 평소 등교하던 시간이 지나버렸다. 나는 시간을 확인하곤 아차 싶었다. 여름이 옷을 입히는 건 이쯤 그만두고 얼른 가방 메고 등교하라고 아이를 재촉했다. 그렇게 가을이를 얼른 보내고, 나는 여름이 옷을 마저 입혔다. 유치원에서 추석 행사가 있는 날이라 한복을 입혔는데, 어제 이발까지 싹 하고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아이가 어여쁘다. 아이를 집 안에 예쁜 곳(화분들 앞)에 세우고는 사진을 찍어주었다. 이제는 제법 이렇게 저렇게 (한 손 브이, 두 손 브이, 꽃받침 등등) 포즈를 취하는 여유가 생겼지만, 표정은 영 어색하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기에, 활짝 웃어보라고 해보아도 아이의 표정은 도리어 더 경직되는 듯하다. 여러 장 찍었지만 자연스러운 표정은 나오지 않았다. 유치원 가방을 메고 자전거를 타고서야 아이의 표정은 한결 자연스러워졌다. 자전거를 탄다는 건, 아이에게는 늘 즐거운 일인가 보다. 아이의 표정이 그것을 말해준다. 둘째까지 유치원에 들여보내고 나는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카페로 향한다. 언제부턴가 내가 운동가는 길을 기대하게 된 건, 운동 가기 전 미리 나와 아무도 없는 조용한 카페에서 (혹은 날씨가 좋다면 공원 벤치에서) 책을 읽는 시간을 만들어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아침부터 그리 부산을 떠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 책을 읽는 그 몇십 분을 마련하기 위해 아이들을 더욱 재촉하는 것이다. 나는 조용히 책 읽는 시간이 좋다. (그 시간을 정말로 좋아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엄마에게 말했다. 인생에 책 읽는 시간이 따로 더 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일상 안에서 따로 책 읽는 시간을 만들어 내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런데 그 시간이 너무 좋으니 내가 가진 24시간 이외에 독서 시간이 플러스 알파로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잠시 해본 것이다. 엄마는 그런 나에게 아빠를 너무 따라간다며 웃는다. 그렇다. 나의 아빠야 말로 그런 엉뚱한 생각을 나보다 더 자주, 많이 혹은 간절하게 했을 사람이다. 지난주 보부아르의 책을 재미나게 읽고 이번 주는 사르트르의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사람이 이름이 많이 나와 영 사람을 헛갈리게 하더니 (나는 사람이름에 약하다.) 드디어 관계 설명이 끝나고, 이 책이 퍽 흥미로워지기 시작했다. 이럴 때 나는 쾌감을 느낀다. 책이 흥미로워지는 순간이 찾아올 때, 다음 책 읽을 시간이 더 기대가 된다. 그런 기대를 뒤로 하고 나는 운동을 갔다. 나는 5대 1 그룹수업을 듣는다. 필라테스는 내가 유일하게 장기간 계속하고 있는 운동이다. 만 3년이 지났고 4년 차다. 나는 타고난 몸치이지만, 내가 들인 시간과 돈과 땀은 그래도 내가 조금은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오늘도 원장 선생님은 나만 동작을 다른 게 시키셨다. 더 어렵게 말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다른 수강생들은 한 손은 손잡이를 잡고 하는 동작이라면 나는 양손 다 앞으로 나란히를 하고 하라던지, 다른 수강생들이 500g짜리 볼을 들고 하는 동작을 나는 1kg짜리 볼을 들고 하라고 한다는지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나를 더 힘들게 하기는 해도, 내심 뿌듯하기도 하다. 내 몸이 그것을 견딜 수 있을 만큼 더 강해졌다는 것은 퍽 기분 좋은 일이다. 오늘은 운동 끝나고 약속이 있어 얼른 집에 와서 부랴부랴 씻었다. 나에게 캠핑용 전기매트를 빌리러 온 유리언니랑 보미도 불러 점심을 함께 먹었고, 카페에 가서 즐거운 대화도 나눴다. 가을이 하교 시간에 맞춰 집에 돌아가야 하므로 우리는 헤어졌고 나는 아이를 마중하러 갔다. 오늘도 학교에서 머리가 아팠느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그랬다고 했고, 나는 피아노학원 선생님께 오늘은 결석을 하겠다고 알리고 아이를 데리고 소아과를 향했다. 예상은 했지만 내 머릿속의 생각을 의사의 입을 통해 들으면 안심이 되는 것이다. 피로나 일교차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하셨고,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만큼 계속 두통이 지속된다면 안과에 가서 검사를 받거나 더 심한 경우 대학병원 가보라고 하셨다. 아이와 가벼운 콧물 약만 처방받아 나왔다. 기왕 학원도 빠졌는데 이대로 가기는 아쉽다. 아이에게 머리핀을 사고 가겠냐 물으니, 아이의 표정이 한껏 밝아진다. 그런데 아이가 머리핀 가게에서 한참을 망설이다 고른 머리핀이 생뚱맞다. 하지만 그것은 내 생각이다. 내 취향이 아니었다는 것이겠지. 크면서 무채색 옷, 그중에서도 검은색 옷을 주로 골라 입더니 이상하게 핀은 분홍색, 머리띠는 초록색을 고르는 아이가 나는 좀 당황스럽다. 그 맘을 누가 알겠는가. 머리핀 하나도 마음대로 못 고르게 하는 엄마는 되고 싶지 않아서 애써 쿨한 척 얼른 계산을 해주었다. 아이 머리핀은 2만 원 넘게 플렉스를 하고 나서 내 립글로스 하나 사는 것은 망설이는 내가 또 우습다. 올리브영에서 9,900원으로 세일하는 립글로스를 열었다 닫아보고는 그냥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쿠팡에서 7,800원에 파는 걸 보고는 마음이 흔들렸다. 아, 쿠팡 악덕기업이라 불매운동 하고 있는데…(나 혼자…ㅋ) 2000원 차이가 왜 내 물건 살 때만 크게 느껴지는 것인지 나는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오늘 특별한 사건이 없었어서 일기를 뭘 쓰나 하고 있다가 그냥 있었던 읽을 주욱 써보자 했는데. 소설처럼. 이렇게 얘기가 길어지다니… 놀랍다. 역시 쓸 일이 없는 게 아니라 내가 안 쓴 거였다. 쓸게 너무 많아 오늘은 이만 줄여야겠다. 참내….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