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크고 있나요?

네, 많이 컸네요.

by 장새미

아이들과 매일의 육아를 반복하는 엄마는 역설적이게도 내 아이들이 크고 있다는 것을 남들보다 늦게 알아차릴 때가 많다. 사람들이 “어머 가을이(첫째) 많이 컸네요^^” “여름이(둘째) 다 컸네~”해도 웬일인지 별 감흥이 없다. 내 눈에는 어제도 그저께도 지난주에도 아이가 똑같았던 것 같아서 말이다. 심지어 아이들도 나에게 자주 이야기 한다. 전등스위치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면서 “엄마! 나 이제 이거 혼자서 누를 수 있어! 나 많이 컸지?!” 하는 아이에게 “우와~그러네~ 많이 컸네~^^“ 하고 대답하지만 그다지 놀랍지는 않다. 놀라운 척을 해줄 뿐.


그렇게 하루하루가 비슷하게 잔잔히 흘러가는 듯하다가, 한 번씩 파도가 철썩하고 칠 때가 있다. 아직까지는 내 손이 필요할 때가 많은 어린애들이라고 생각하다가 한 번씩 아이들의 성장에 놀라게 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오늘 아침이 그랬다. 아침 7시 반에 알람을 맞춰놨는데 둘째는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날 때가 많다. 나는 아이의 부스럭부스럭 거리는 소리를 애써 못들 은척 하며 이불을 끌어당긴다. 평소 같으면 나를 깨우며 아침밥을 달라 성화였을 아이가 어쩐 일인지 나를 찾지 않는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고맙다. 혼자서 노는가 보다 하며 기특한 마음까지 든다. 그렇게 한참을 침대 위에서 감은 두 눈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을 때, 문득 북쪽에 있는 아이방이 추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찬 바닥에 앉아 자동차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 아닌가 싶어 히터라도 틀어주어야겠다는 생각에 아이방으로 건너갔다. 그런데 나는 아이 방을 보고 놀랐다. 방이 말끔히 치워져 있는 게 아닌가. 어제 누나랑 놀다 자서 이렇게 저렇게 어질러져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이는 혼자서 방 정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에는 가지고 논 장난감 좀 정리하라고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장난감을 갖다 버리겠다고 협박을 하지 않는 이상 정리를 잘하지 않는 둘째다. 그런 아이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아무도 시키지 않은 방정리를 알아서 하고 있는 그 상황이 나는 퍽 당황스러웠다. 당황스러움도 잠시, 감격스러운 마음을 안고 히터를 틀어주고는 아이 침대에 앉아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질러진 인형들까지 침대에 정리를 마친 아이는 비행기 장난감을 하나 꺼내와서 가지고 논다. 그저 철부지 막내라고만 생각했는데, 너도 많이 컸구나. 이 기특함과 대견함을 아이에게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나는 아이를 안아주고 뽀뽀해 주고 칭찬의 말들을 건넨다. 그러고는 참을 수 없는 질문도 건넨다. “어떻게 방정리 할 생각을 했어?” 아이는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한다. ”그냥, 방이 더러워서.“ 대체 언제까지 장난감을 쫓아다니며 정리해줘야 하나 싶었는데, 어느새 너는 시키지도 않은 정리를 스스로 할 줄 아는 아이로 자랐구나. 아침부터 감동의 파도에 넘실거리는 나다.


첫째도 문득 많이 컸구나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며칠 전 아침, 아이는 나에게 ‘민감’한 게 뭐냐고 물었다. 예를 들어가며 설명을 간략하게 해 주었다. 그랬더니 아이가 무슨 말인지 알겠다고 하면서 나에게 또 묻는 것이었다. “엄마, 나는 뭐에 민감한 것 같아?” 나는 그 질문에 생각이 많아졌다. 감각이 예민하고 자기 의사가 분명한 (말하자면 고집이 센) 둘째에 비하면 첫째는 어느 면에서든 무던한 아이였다. 민감하게 반응할 때가 별로 없었던 것 같아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색깔? 하고 애매한 대답을 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첫째였기에 그렇게 대답했지만 그 대답을 하면서도 나는 그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도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다 아이는 스스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내놓았다. “나는 ‘느낌‘에 민감한 것 같아.“ 그 말을 듣는데, 나는 무릎을 탁 쳤다. 그래! 맞아. 너는 그런 아이지! 너의 느낌에도, 그리고 다른 사람이 느꼈을 느낌에도, 느낌적인 느낌에도 아이는 민감하게 반응하는 아이였다. 아이의 대답에 나는 새삼 깨달은 것이다.


그런 대화를 짧게 나누고 아이가 등원을 했는데, 나는 그 대화가 계속 마음에 남았다. ‘아… 이제는 나보다 네가 너 자신을 더 잘 아는 때가 되었구나. 어느새 너는 그렇게 컸구나. 엄마가 널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구나. 난 이제 널 모르는구나. 너는 이제 너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구나…“하는 마음의 파도가 일렁일렁였다. 기특하면서도 헛헛했다. 이제는 널 나와는 다른 존재, 날개를 달고 나에게서 멀리 날아갈 존재로 인식해야 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슬프지만 대견했다. 네가 너를 그렇게 알아간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애 말 한마디에 내가 너무 과장된 생각을 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네가 컸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이번 한 주는 아이들이 많이 컸다는 걸 새삼 느끼는 한 주였다. 그러다 나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나는? 나는 얼마나 컸지…?


아침에 혼자 방정리를 해놓은 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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