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딸이 운전하는 차를 탔을 때
오늘은 엄마, 아빠, 동생과 함께 국립현대미술관을 가기로 했다. 각 가정마다(한 때는 우리 넷이 한가정이었지만, 이제는 세 가정이 되었다.) 다 차가 있고 네 명 모두 운전 가능자이지만, 우리는 내 차 한 대로 함께 가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뒷좌석에 카시트 두 개를 떼고 그 자리에 엄마와 동생을, 조수석에는 아빠를 태우고 미술관을 향해 운전을 했다. 이제는 내가 벌써 본격적으로 운전을 한지도 10년이나 되었지만, 엄마는 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족들이 다 함께 어디를 가는 것이 여전히 새삼스럽고 감개무량하다는 듯 이야기했다. 내가 운전을 할 줄 알아도 내 차 뒷좌석에는 항상 카시트가 두 개나 달려있기도 하고, 엄마나 아빠 두 분 다 운전을 잘하시기 때문에 다 같이 움직일 때는 대부분 내가 엄마 아빠 차 뒷좌석에 타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사실 아이들이 있으니 각자 차를 타고 갈 때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지난번에 함께 미술관에 갈 때 운전을 안 하고 내 차를 타고 가셨던 게 편했던 모양이신지 이번에도 내 차로 가자고 하시길래 나는 뒤에 카시트 두 개를 트렁크로 떼어놓게 된 것이다. 두 아이를 태우고 다니던 차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차로, 뒷좌석에 있던 내가 운전석으로 온 모양새가 아직은 부모님에게도 덜 익숙하긴 한 모양이다.
나는 그런 엄마의 말에 내 첫차(레이)를 타고 네 식구가 강원도 여행을 가던 일을 떠올렸다. 그 서툰 운전실력으로 미시령 꼬불길을 오르던 그 기억. 그때는 내비게이션 보는 것도 익숙지가 않아서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운전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고속도로에서 엄마 아빠가 서로 누구는 여기서 빠져라 누구는 아니다 그냥 직진해라 하면서 서로 다른 의견으로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통에 내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망설이다 다른 차와 부딪힐 뻔하고 말았다. 나는 놀란 마음에 소리를 빽 지르고 말았다. “이제 나 운전하는데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 내가 알아서 할 거야!!!!” 내가 부모님에게 버릇없이 소리를 질렀음에도, 부모님은 나를 나무라시는게 아니라 바로 나에게 사과를 하셨다. 나는 그때 느꼈던 것 같다. 운전석에 앉은 사람은 이렇게 존중받는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그 때 내가 어른이 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소리를 지른 것은 잘못이지만(어른은 소리를 질러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부모님은 자녀로서의 나를 나무라기 보다는 운전자로서의 나를 존중해 주신 것이다. 그만큼 운전자에게는 큰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리라. 어른이 되는 것은 그런 것일까?
이렇게 강원도 여행 얘기를 하다 보니, 제주도 여행 때도 생각이 난다. 신혼 초였다. 임신한 동생과 엄마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제주도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그때도 나는 여전히 초보 운전자라 할 수 있었는데, 그렇기에 차를 렌트하고 나도 운전자로 등록은 해두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한 것일 뿐 운전은 엄마가 하셨다. 그런데 여기서 그 혹시 모를 일이 발생하고야 말았다. 사려니숲길에 도착하고 주차를 했는데, 엄마가 그때부터 구토증세를 보이기 시작하신 것이었다. 점심에 먹은 것이 잘못된 것인지, 엄마는 증상이 심해 운전은커녕 병원으로 가는 길에도 계속 멈춰 서야 하는 상황이었다. 자연스럽게 내가 운전을 해야 했다. 당황스러웠다. 잘 알지도 못하는 초행길을 운전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엄마가 구토를 할 것 같으면 길을 가다가도 멈춰서 화장실을 찾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뒷좌석에는 임신한 동생까지 있었다. 부담이 이만저만 아니었기에 무슨 정신으로 그 산길을 내려왔는지 모르겠다. 가까스로 시내 병원에 도착해서는 정신이 쏙 빠진 상태로 대기의자에 앉아 멍하니 진료를 들어간 엄마를 기다리는데, 간호사가 우리 엄마 이름을 부르며 보호자를 찾았다. 내 엄마 이름 뒤에 붙은 ‘보호자’라는 말에 내가 ‘네‘하고 대답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런데 간호사는 나를 찾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엄마의 ’ 보호자‘였다. 나는 그것이 적잖이 충격이었다. 그때도 나는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되고 싶지 않았던, 이렇게 될 줄 몰랐던 어른이 내가 되었구나. 어쩌지 하는 걱정이 앞섰다.
강원도를 가는 길에, 제주도 병원에 가는 길에, 미술관을 가는 길에 부모님을 태우고 운전하는 나는 그렇게 어른이 된 것이었다. 엄마는 아마도 그녀의 보호 아래 있던 뒷좌석의 딸아이가 어느새 커서 그녀의 보호자가 되고, 운전석에 앉아 자신을 태우고 길을 간다는 사실이 마음을 이상하게 간질였을 것이다. 이 낯선 역할의 전환이 여전히 새삼스럽기도, 대견하기도, 걱정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내가 그 마음을 어렴풋이 짐작하는 것은 나도 내 딸아이를 보면서 그런 마음을 갖기 때문일 것이다. 쪼꼬만 꼬맹이가 어느새 커서 커다란 가방을 메고 학교를 가는 것이 새삼스럽기도, 대견하기도, 걱정스럽기도 한 것이다.
영화 맘마미아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주인공 도나가 결혼하는 딸의 머리를 빗어주며 부르는 노래가 있다. 그 노래에는 ”Slipping through my fingers all the time “이라는 가사가 반복되는데, 아이가 커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모래가 손가락에서 빠져나가는 것처럼 아이가 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고 표현한 것이다. 언제나 내 손 안에서 내가 지켜줄 수 있을 것 같던 작은 아이가, 어느새 커서 내가 지켜줄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가는 것을 볼 때의 엄마의 마음을 참 잘 표현한 노래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게 엄마 손에서 빠져나가야 아이는 어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리고 그렇게 어른이 된 아이가 내 손을 잡아주는 보호자가 되어 돌아와 준다면 그것이 감사 아니겠는가. 인생은 그렇게 뒷좌석에서 운전석으로 갔다가, 다시 뒷좌석으로 돌아오는 일 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