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엄마보다 네가 낫다.
지난주에 있었던 일이다. 러닝을 하러 나가려 했는데, 아침에는 너무 추워 뛰기 싫었다. 그러다 해가 중천에 뜬 대낮에는 좀 덜 춥지 싶어서 첫째가 피아노학원을 간 사이 러닝을 하고 오기로 했다. 50분 수업이니, 6킬로 정도 뛰고 오면 되겠다는 계산이 섰다. 그런데 그렇게 계산하고 나갔는데도 내가 (예상했던 시간보다) 몇 분 늦게 집에 도착하고 말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하필, 그날따라 아이가 학원에서 몇 분 일찍 하원을 한 것이었다. 거기서 우리는 엇갈렸다.
나는 부지런히 뛰어 집에 들어왔다. 거실에 아이의 잠바와 책가방이 던져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가을아!!! 가을아!!!“ 그런데 아이가 대답이 없다. 초조한 마음과 함께 언성이 높아진다. ”가을아!!! 가을아!!!“ 방을 둘러보지만 아이가 없다. 아이의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 조용한 집이 소름 끼쳤다.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 나에게는 별의별 생각이 다 스쳐 지나간다. 집에 없다면 어디로 나간 것일 텐데, 대체 어디로 갔을까? 그렇게 혼자 나갔다가 나쁜 사람이라도 만났으면? 어디서 혼자 헤매고 있는 거라면? 어디서부터 아이를 찾아봐야 하지? 사고가 난 건 아니겠지? 납치?? 아 진짜 핸드폰을 사줘야 하는 건가? 거짓말 안 하고 5초도 안 되는 순간에 이것보다 훨씬 다양한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마치 뇌가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것 같달까?
그런데도 머리보다 몸이 빠르게 반응했다. 나는 베란다 창문을 열고 밖을 향해 아이의 이름을 외쳤다. “가을아!!! 가을아!!!” 멀리 못 갔을 것이라 생각하고 이 근처에 있다면 내 소리를 듣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사실 무슨 생각을 하고 행동한 건 아니었다. 본능적이었달까.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는데 뛰어가고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아이도 내 목소리를 듣고 나를 쳐다보았다. “엄마!!!” 하며 아이는 눈을 훔친다. 눈물이 터진 게다. “엄마 여기 있어!!! 가을아 엄마 여기 있어!!!” 나도 갑자기 긴장이 확 풀리면서 울컥한다. 집으로 다시 뛰어오는 아이를 마중하러 나도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아이는 혼자 다닐 때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중간에서 만났다. 아이는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아이를 안고 계속계속 미안하다고 했다. 엄마가 운동하러 나갔다가 조금 늦었다고 너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러게 우리는 극적인 상봉과 함께 집으로 들어왔다.
아이는 집에 왔는데 엄마가 없어서 놀랐고, 통화가 되는 시계로(아이에게는 통화와 간단한 문자가 되는 시계가 있다.) 엄마한테 전화를 걸려고 했는데 하필 배터리가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계속 전화를 걸었는데도 못 받았구나…) 더욱 당황했을 아이는 학교에 갈 생각을 했다고 했다. 담임 선생님께 가서 도움을 청하며 엄마에게 연락을 해달라고 하려고 했다는 아이. (우리 집은 학교 바로 뒤에 있어서 학교와 무척 가깝다. 아마도 계단으로 아이가 내려가는 사이 내가 엘리베이터로 올라오면서 엇갈린 듯하다.) 나는 아이의 대처에 놀랐다. 믿을 만한 어른을 찾아가 도움을 구하려 했다는 것이 기특했다. 아이에게 너무 잘했다고 칭찬했다. 다만, 혼자서 밖에 나가는 것은 위험하니 다음부터는 집에서 (문 잘 잠그고) 엄마를 기다리라고 가르쳐 주었다. 엄마가 금방 올 테니 말이다. 시계 배터리가 없을 땐 다시 충천을 했다가 연락을 해도 되고, 집에 엄마 아이패드가 있다면 아이패드를 이용해서 엄마에게 연락할 수도 있다고 알려주고 방법도 설명해 주었다.
그런 대화들을 하는데 아이는 자꾸만 내 눈을 확인한다. 내가 우는지 보는 것이다. 어린 네가 그 상황이 훨씬 더 무섭고 힘들었을 텐데, 너는 그 와중에도 나의 마음을 돌보려 하는구나. 자기 마음도 미처 다 추스르지 못한 아이가 내가 우는지 확인하려고 자꾸만 내 얼굴을 쳐다본다. 너의 걱정 어린 그 표정을 알아본 나는 눈물을 꾹꾹 참으며 이야기했지만, 뒤늦게 나는 결국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 몇 분간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몰아쳤던 감정의 파도가 한차례 지나가고 나서,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이를 향한 미안함과 안도감, 슬픔과 감사가 뒤섞인 뭐라 정의할 수 없는 눈물이었다.
처음엔 핸드폰을 사줘야 하는 건가 하는 단순한 생각이 앞섰었다. 아이에게 그런 상황을 겪게 했다는 나 자신에 대한 분노와 불안함에 그것이 확실한 해결방법인 듯 느껴졌다. 그런데 가만히 돌이켜보니 아이는 그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하고 훌륭한 대처를 했던 것이었다. 결국 그것은 아이가 잘 크고 있다는 반증이 되는 것이다. 그거면 됐다.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아이는 값진 교훈을 얻었을 테다. (나 또한 마찬가지지만) 앞으로 같은 혹은 비슷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아이에게 가르쳐 주었으니 그걸로 또 된 것이다. 아이를 잃어버린 것은 (아이와 엇갈린 것은) 짧은 순간이라 할지라도 다시 겪고 싶지 않을 만큼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일이었지만, 이 일을 통해 우리는 배웠고, 분명 성장했다. 왠지 아이만 성장하고, 나는 또 아이의 걱정 어린 눈빛을 받을 것만 같지만…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