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울게 만드는 강의는 처음이야...“

강의랄 건 없었지만…ㅎ

by 장새미

교회 수련회에서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주제를 정하라기에 나는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글쓰기‘에 대해서 무얼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대뜸 가서 이야기를 나누려 하면 횡설수설할 것 같아서 노트를 펼쳤다. 노트에 내가 글쓰기를 하며 좋았던 점들을 이렇게 저렇게 적어보았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할까 싶어 어떻게 글을 쓸 것인지, 어떤 글을 쓰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내 생각들을 적어 내려 가 보았다. 50분 동안 3명과 이야기를 나누고, 10분 쉬고 다시 50분 동안 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주어진 첫 시간에 나는 내 앞에 앉은 세 사람에게 내가 준비했던 (적어왔던) 생각들을 이야기했다. 이후에 간략하게 질문을 주고받았는데 왠지 내 이야기가 그들 마음에 가닿지 않은 기분이다. 나는 남은 시간에 내가 썼던 글 한 편을 읽어주기로 했다. 그러다 글의 끝문장에서 나는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그런 내 모습에 참여자 언니 한 명도 눈물을 보였다. 다른 두 사람도 무언가 느끼는 바가 있는 표정이었다. ‘아~ 이제 알겠다!’하는 표정이랄까? 내가 쓴 글을 듣고 나서야 내가 앞서 이야기했던 내용들이 이해가 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정확한 워딩은 생각나지 않지만 내 느낌뿐만 아니라 참여자 스스로 그렇다는 피드백이 있었다.)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인가. 내 글을 본 것은 아니고 들은 것이긴 하지만 글쓰기에 대해 백 번 이야기하는 것보다 글 한 편을 보여주는 편이 더 효과가 있었다 하겠다.


그리고 더 효과가 확실한 것은 보고 듣는 것보다 내가 직접 해보는 것이지 않겠는가.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아 직접 써보게 할 수 있으려나 했지만, 내 글을 들은 그들의 표정을 보고 나자 나는 그들에게 꼭 글을 직접 써보게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아, 글을 완성하거나 길게 쓰지는 못하다 하더라도 직접 한 번 써보자 하였는데 웬걸. 다들 줄줄줄 써내려 가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주어진 시간보다 더 쓰기를 원하기에 뒤에 있을 쉬는 시간까지 끌어다 글 쓸 시간을 주었다. 나는 잔잔한 재즈음악을 틀어주었고, 세 사람이 바닥에 엎드려 글을 쓰는 모습을 보는데 ‘아름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리고 내가 무언가 그들에게 전달했다는 것보다 그렇게 그들이 글을 써보는 시간을 마련해 줬다는 데에 대한 뿌듯함이 더 컸다.


나는 앞서 ‘공개적인’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장점들을 나눴었고, 기회가 되면 공개적인 곳에도 꼭 글을 써봤으면 좋겠다고 권했었다. 그래서 나는 글을 공개하는 경험도 주고 싶어 그 자리에서 쓴 글들을 서로 앞에서 읽어 달라고 부탁했다. 당황한 기색은 있었으나 거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다 한 오빠가 자기가 쓴 글을 읽다가 눈물을 보였다. 20대 초반부터 봐왔던 오빠였다. 그런데 나는 그 오빠가 우는 모습을 그날 처음 보았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나도 그렇다고 했다. 아까 읽어준 내 글을 쓸 때 나는 카페에서 울었고, 이날 읽어줄 만한 글을 선정하려고 읽다가 또 한번 울었으며, 오늘을 여기서 그 글을 읽어주다가 또 울었다고 말이다. 같은 사람이 같은 글 때문에 3번을 울었다. 정확히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것이 글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글을 쓰면서 겪은 그런 값진 경험을 짧은 시간이지만 그 오빠도 그 자리에서 비슷하게 겪어본 것 같아서 감사했다. 역시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이 가장 강력한 전달력을 가진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두 번째 그룹이 함께 하게 되었을 때는, 내 얘기는 짧게 하고 글 쓰는 시간을 길게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엔 예상치 못하게 질문의 시간이 길어졌다. 공개적인 글쓰기에 대한 나의 이야기를 듣고 한 사람은 솔직하게 쓴 자신의 글이 너무 날것이라 공개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일기장에 쓴 그 글들이 절대 공개되면 안 되기에 자기가 죽으면 제일 먼저 불태워야 할 것이 그 일기장이라고 했다. 나도 그렇게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리고 나도 그런 글은 공개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렇게 쓰레기 같은 날 것의 내 마음이 진짜 내 마음일까? 진짜 나일까? 나는 그것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그 당시에는 너무 화가 나고 슬퍼서 쏟아내듯 글을 썼지만,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면 진짜 나는 그것과 다른 모양이었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공개된 곳에 글을 쓸 때 더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게 되고, 감정덩어리에서 건져낸 정제된 나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물론 공개된다는 부담감에 거짓의 꾸며낸 내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계속해서 쓰다 보면, 정리된 나와 거짓된 나를 헷갈리지 않고 구분할 수 있을 때가 오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나의 글쓰기도 성장하는 게 아닐까.


또 다른이 도 비슷한 문제를 이야기했다. 종종 글을 써놓고 나면 타인에게 공개는 고사하고 자기 자신도 그 글을 보는 것이 마음이 어렵다고 했다. 나는 맞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글 쓰는 걸 ‘토한다’고 표현한 것에 격하게 공감한다고 이야기했다. 내가 한 토를 내가 바라보는 것도 괴로운 일이라는 걸 나도 안다. 하지만, 내가 그다음으로 (앞으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아프고 괴롭지만 그 토사물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해야만 한다는 것도 안다. 괴롭고 힘든 일일수록 더 오래도록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는 점은 잔인하다. 하지만, 그러고 나면 분명히 그것을 넘어서게, 혹은 받아들이게 되는 일이 일어나고야 만다. 그래서 나는 힘들더라도 그 글을 스스로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내가 썼던 (내가 마주하기 힘들어하는) 그 글과 같은 내용으로 다시 또 글을 써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사실 나도 그렇게 해본 적은 없었다. 그런 내가 어떻게 그 자리에서 그 방법을 제안해 주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감사하게도 듣는 이는 그 조언을 매우 의미 있게 받아들였다. 이후에 그 세 사람도 자신을 돌아보는 멋진 글쓰기 시간을 가졌고, 자신의 글을 읽으며 울컥하는 순간도 맞이했다.


내가 이렇게 누군가에게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어떤한 경험과 조언을 건네줄 수 있었던 것은 5년간 꾸준히 글을 쓴 것이 나름의 내공을 발휘하게 된 것일 수도 있을 테고, 보이지 않는 신의 도움의 손길이 함께한 것일 수도 있을 테다. 나에게도 ‘글쓰기’에 대해 누군가와 이렇게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경험해 보게 된 것은 처음이었는데, 혼자 쓸 때는 희미했던 글쓰기의 힘을 선명하게 눈으로 보고 느껴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감사하다. 역시! 쓰기는 옳다! 계속해서 쓰기로 나아가자! 쓰면서 나를 토하고 그것을 들여다보고 울기도 하자! 그렇게 우리는 어딘가로 또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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