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태여” 말해주세요

얼마나 사랑하는지

by 장새미

나는 ‘표현’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나는 얼마나 표현하느냐,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생각보다 관계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안다. 표현을 하고 안 하고는 천지차이고, 같은 표현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나에게 얼마 전 그 ‘표현‘의 힘을 강력하게 경험한 일이 일어났다.


여느 때처럼 둘째 아이를 재우려고 아이 침대에 같이 누워 있을 때였다. 나는 종종 둘째에게 한 번씩 안아달라고 말할 때가 있는데, 그날도 그랬다. 첫째 때와는 달리 둘째는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아기라는 생각이 있어서 크는 게 아쉬울 때가 한 번씩 있다. ‘더 크면 나를 이렇게 안아주지도 않겠지.’ 하는 생각과 함께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많이 안아달라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면 아이에게 엄마 좀 안아달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한 번씩 아이가 내 품에 폭 안겨오면 말 그대로 행복하다. 그날따라 나는 그 행복하다는 감정에 집중했다. 그리고 문득 아이에게 그걸 말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여름아, 엄마는 여름이가 안아주면 너무 행복해져^^“


내가 그 말을 하는데 아이의 표정이 변하던 것을 다 보아야 했다. 아이는 미소를 지으며 환희에 찬듯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 표정 안에 무엇이 담겨 있었다고 말해야 할까. 놀람, 기쁨, 자랑스러움, 사랑, 뿌듯함, 설렘 그 모든 것이 섞인 듯한 표정. 아, 그것은 ‘사랑’을 눈으로 본 사람의 표정이었다. ‘사랑’을 귀로 들은 사람의 표정이었다. 나는 늘 아이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늘 아이가 안아주면 행복하다고 느꼈었다. 다만 그것을 아이에게 말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 나의 마음은 늘 같았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아이에게 그 마음을 표현하고 나자 아이는 마치 그 사랑을 처음 느껴보는 듯 보였다.


나는 말 한마디로 아이를 행복에 잠기게 했다. 그리고 아이를 꼭 안아주는데 그 포옹은 이전의 포옹들과는 전혀 다른 포옹이 되었다. 아이는 이제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이다. 자신의 포옹이 엄마를 행복하게 한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아 자존감은 이렇게 높여주는 거구나!‘ 싶었다. 그리고 나도 그 이후로 아이가 안아줄 때마다 분명하게 더 행복해진 다고 느꼈다. 더불어 내 자존감도 올라가는 것이었다. 말의 힘이란 참으로 놀라운 것이 아닌가.


그 이후로 내가 커디션이 안 좋은 날이었던가. 아이가 두 팔 벌려 나에게 다가오면서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내가 안아줄게~ 내가 안아주면 엄마 힘나잖아~” 그렇게 말하며 아이가 나를 안아주는데 나는 ‘사랑‘이라는 건 이런 촉감과 온도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저조한 컨디션에도 나는 그 말에, 그 포옹에 웃게 되었고 실제로 몸상태도 좋아지는 것만 같았다. 내가 그날 아이 옆에 누워 그 말을 안 해주었더라면 나는 이런 행복과 기쁨을 맛보지 못했겠지. 이것이 나의 말 한마디가 나에게 천냥빚을 값은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내가 상대도 다 알만한 뻔한 마음을 ‘구태여‘ 말로 내뱉을 때. 그 마음은 실체가 되고, 그 실체는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 나는 그것을 둘째 아이를 통해 보았다. 사람이 나쁜 마음은 표현하지 않으려고 해도 자연스럽게 표현이 되기 마련이다. 기분 나쁜 것, 불쾌하고 화가 나는 마음은 그렇다. 그러니 그것은 애쓸 필요가 없다. 오히려 너무 드러나지 않도록 애를 써야 할 때가 많다. 그런데 좋은 마음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구태여 표현하려고 해야만 겨우 드러나는 것. 기쁜 것, 사랑하는 마음, 설레는 마음은 그렇다. 그러니 그것은 애를 써야 하는 것이다. 노력해야 되는 것이다. ’구태여’ 말해야 하는 것이다. 얼마나 사랑하는지.



매거진의 이전글”나를 울게 만드는 강의는 처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