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말아야지…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할 때, ’작가소개’란에 나에 대해 무어라 설명을 해야 했다. 그 ‘작가소개’ 란에 나는 이렇게 적어 넣었었다. “새미. 샘물처럼 솟아오르라고 지어주신 이 이름이 참 마음에 들지만, 지금은 ‘엄마‘ 혹은 ’여보’로 더 많이 불리웁니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내 이름으로 불리기보다 어떤 호칭으로 더 많이 불리게 되었다. 특히, 나는 단기간에 얼마나 많이 ‘엄마’라는 존재로 불리웠던가. 상황이 그렇다 보니 내 이름이 ‘새미‘라는 걸 자꾸만 잊어버린다. 진짜 내 이름을 잊어버린다기보다, 내 이름에 담긴 좋은 의미를 잊어버린다. 그러다 한 번씩 내 이름이 ‘새미’였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되새기게 되는 순간들이 생긴다.
작년 여름, 나는 좋아하던 작가분이 쓴 소설을 읽게 되었다. 신유진 작가의 [페른베]라는 소설이었다. 나는 그 책을 두 번 읽었고, 좋았던 문장에 노란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는 나로서는 그 소설에 수많은 문장을 노랗게 칠했지만, 딱 한 문장만 꼽으라면 가장 먼저 이 문장이 떠올랐다. “하지만, 마르셀 뒤샹은 소변기를 ‘샘‘이라 불렀어요. 뒤샹이 ’샘’이라 부른 순간, 그건 하나의 작품이 되었고요. 샘.” 샘. 그건 바로 내 이름이다. 발음하기 편하라고 샘을 ’새미‘라고 풀어 받침을 없애 지어주신 나의 이름. 이 문장은 소설 초반에 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하는 주인공에게 상담요청자가 한 말이다. 그는 친구들이 자신을 ‘변기’라고 부른다고 털어놓았다. 그 별명은 오물 처리반 일을 하는 자신의 직업 때문이라 믿는 그는 자신이 그 일을 할 수 박에 없는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하고는 마지막에 마르셀 뒤샹의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 ‘샘’이라는 작품은 남성용 소변기에 ‘샘’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렇게 평범한 남성용 소변기는 작가가 이름을 붙여주자 ‘작품‘이 된 것이다. 이렇듯 무엇으로 불리는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샘. 나다. 새미. ‘샘’을 두 글자로 늘린 이름. 샘물처럼 솟아오르라고 지어주신 나의 이름. 하지만 나는 간혹 가정주부로 일할 때, 즉 ‘엄마‘라고 불릴 때, 혹은 ’여보‘라고 불릴 때 나 자신이 변기가 되어버린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아이들이 어지른 것을 치우고 또 치우고, 더러워진 그릇들을 닦고, 오염된 옷들을 빨고, 바닥을 쓸고 닦고, 망가진 물건들을 고치고, 아이들과 남편의 수많은 감정들을 받아내고, 신경 쓰고, 그 과정을 무수히 반복하고… 그러다 보면 원래의 나는 온데간데없고 더러운 오물을 받아내고 처리하는 그런 나만 남은 기분이다. 그런데 그런 나를 ’샘‘이라 부르면 (’새미’라 부르면) 나는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이다. 우리 아빠도 내 이름을 그렇게 지으셨을 것이다. 하나의 작품에 이름을 붙이듯이… 엄마는 종종 이야기하시곤 했다. 아빠가 내 이름을 짓기까지 얼마나 고심하고 애썼는지에 대해서… 그렇다 나도 그런 귀한 작품인 것이다. 그러니 나는 그 소설의 그 문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도 하나의 작품임을 잊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내 이름을 기억해야지. 내가 ‘샘(새미)’임을 잊지 말아야지 되뇐다.
내가 아무리 되뇌어도 누가 불러주지 않으면 자꾸만 잊는다. 그렇게 또 내 이름을 잊고 지내다 얼마 전 다시 내 이름을 상기하는 일이 생겼다. 일요일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몇 개의 찬양을 부르고 있었는데 그중 한 찬양의 가사가 갑자기 컥 하고 목구멍에 걸린 것이다. 그 노래는 전체 가사가 아주 짧았는데 이런 가사였다. ”주님 너를 항상 인도하시리 메마른 땅에서도 너를 만족시키리 너는 물댄동산 같겠고, 마르지 않는 샘 같으리“ 마지막 부분의 그 ‘샘’에서 나는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쩍쩍 갈라지도록 마음이 말라있는 상태였다. 마르지 않는 샘. 물이 계속 퐁퐁 솟아나는 그런 샘. 내가 바로 그런 샘인 것을 다시금 인식하게 되는 그 순간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익히 알고 있던 찬양이었다.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그 가사가 이렇게 와닿았던 적이 있던가. 그 가사 안에 ‘샘’이 나온다는 사실도 새삼스럽다. 그런데 내가 마르지 않는 샘이라는 사실을 내 목소리로 노래하는데 사람들이 깜짝 놀라 나에게 휴지뭉치를 건네 줄 정도로 나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내가 내 이름을 부르는데 눈물이 났다.
추운 겨울. 아이들의 방학 기간이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첫째는 심지어 두 달간 방학을 한다. 이 방학기간, 나는 하루동안 ‘엄마’라는 호칭으로 몇 번을 불릴까… 그래서 자꾸만 잊는다. 나를 ’새미‘라 불러주는 이는 없는데, 엄마! 엄마! 엄마! 물론 엄마라는 고귀한 이름으로 나를 불러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더없는 감사이긴 하지만, 그 엄마로서 내가 단단하게 서있기 위해서는 한 번씩 내 이름으로도 나를 불러줘야겠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작품인 나를 잊지 않도록. 마르지 않는 샘인 나를 잊지 않도록… 이런 멋진 이름을 나에게 지어주신 아빠께 심심한 감사를 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