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행복을 위해 이 시간들을 하나 둘 모은다.
6개월 전쯤 새 핸드폰을 샀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같은 사장님께 핸드폰을 사곤 했었는데, 이번에도 그 사장님께 핸드폰을 계약하면서 이전 핸드폰에서 새 핸드폰으로 데이터를 옮기면서 그 시간 동안 아저씨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었다. 자주 보는 사이는 아니어도 2~3년에 한 번씩 오랜 기간 거래를 해온 사이여서 그랬을까, 내가 딸 같고 편해서였을까. 아저씨는 그날따라 자기 얘기를 구구절절 많이도 늘어놓으셨다. 아저씨도 우리 아빠처럼 장성한 딸이 둘이다. 한참을 첫째 딸은 어떻고 둘째 딸은 어떤지 이야기를 하시더니, 딸들이 중학생이었을 때부터 아름아름 적금을 들어 돈을 모아두었고 대학교 2학년 때쯤 두 딸 다 해외여행을 보내줬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게 본인이 자녀를 키우면서 가장 잘했던 일 중 하나라고 하셨다. 아저씨의 뿌듯해하시는 표정을 보니 듣는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간 여행을 두 딸도 무척 고마워한다고, 그게 좋은 경험이 됐는지 둘째 딸은 지금도 외국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따님 소식까지 덧붙이셨다.
그러다 둘째 따님 자랑을 잠시 하시더니 (공부도 잘했고 성격도 좋았다는) 내가 모아둔 코카콜라 컬렉션을 보시고는 생각이 났다며 어릴 적부터 모으던 우표 이야기를 꺼내셨다. 용돈을 모아 소중하게 하나씩 하나씩 모으셨다는 수천 개의 우표들. 너무 소중해서 딸 둘을 앉혀놓고 그 우표들에 대해 하나하나 추억 이야기를 하시곤 했다고 했다. 그런데 해외에서 사업을 하시다가 크게 망해서 급하게 귀국을 하게 되면서 그 우표 수집한 것을 놓고 오게 되었다고… 그걸 생각하면 아직도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하시며 잠시 동안 허공에 시선을 던지며 몇 초간 그 아픔을 주체하지 못하고 드러내시던 아저씨. 그 시선과 침묵이 너무 무거워 잠시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때 가지고 있던 피아노도 누구에게 주고 오셨다는데, 해외까지 이고 지고 갔던 소중한 피아노를 다시 가지고 오지 못해 못내 아쉽다고 하셨다. 그 피아노도 크게 돈이 생겨서 산 것이 아니고, 커피 한 잔 사 마실까 하다가 ’아니야‘ 하고는 은행에 저금하고, 뭐 사 먹을까 하다가 뭐 살까 하다가 ‘아니야 ‘하고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한 푼 두 푼씩 모아서 샀던 피아노였다고… 그래서 더 소중하고 의미 있었던, 아저씨 말에 의하면 가족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하는 피아노였다는데… 그 한 푼 두 푼 아껴 모았을 아저씨의 마음과 그 돈들이 모이고 모였을 시간을 생각하니 나까지 그 피아노가 영 아까워졌다. 참 얼마나 가족에게, 딸들에게 마음을 다했던 아저씨인가.
물론 이야기 끝에는 말이 너무 많았다고 민망해하시며, 자기가 잘한 것만 말해서 그렇지, 그게 10%라면 잘 못한 게 90% 일 거라고… 자기도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이라고 머쓱해하시던 아저씨. 그렇게 쭉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그 이야기들이 귀찮다거나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로 들리지 않았다. 나는 사실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나의 이야기를 말하기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누구랑 얘기를 나누면 상대가 말할 동안 내가 할 말을 생각하고 있을 때가 많은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그날은 온전히 집중해 상대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게 좋았다. 우리 아빠가 딸들 얘기를 하면 무슨 얘기를 하실까? 그런 생각도 해보면서 말이다. 그리고 나는 내 아이들에게 어떤 마음인가 돌아보면서…
마지막으로 아저씨는 전체 이야기를 마무리하듯 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인투더 와일드‘라는 영화를 봤는데 무척 좋았다고 하시며 줄거리를 설명해 주시더니, 주인공의 마지막 대사가 너무 인상적이었다고 하셨다. 그 대사도 말씀해 주셨는데, “Happiness only real when shared”라는 대사였다고 하셨다. 아저씨는 그 대사처럼 ”행복은 ‘함께 할 때’ 비로소 진짜가 된다.“고 하셨다. 나 혼자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한 푼 두 푼 가족들을 위해, 한 덩이 두 덩이 딸들을 위해 마음을 모아 그것을 함께 나눌 때 아저씨의 행복은 진짜가 되었을까? 나는 아저씨의 그 기쁜 표정 그리고 슬픈 표정을 통해 그 행복이 진짜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의 행복은 진짜가 될 수 있을까? 사실 나는 나를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 혼자만의 시간이 무척이나 중요하고, 나를 위하는 마음이 중요한 사람이다. 그래서 아이의 방학기간이 쉽지만은 않다. 하루 종일 아이와 있다 보니 내 시간을 가지기 어렵고, 나보다 다른 것에 마음도 신경도 더 많이 써야 한다. 몸도 마음도 급격하게 에너지가 고갈되어 간다는 걸 하루하루 느끼는 요즘이다. 이번 주는 특히 아이를 위해 여기저기 많이도 다녔던 한 주였다. 별자리 체험도 가고, 도시유적전시관에도 가고, 음악회도 가고, 오늘은 내 운동도 취소하고 아이와 보드게임 체험 축제도 다녀왔다. 하필 내 생리기간까지 겹쳐 피로감은 배가 되었고, 몸도 마음도 분주했지만 즐거워하는 아이를 보니 이렇게 아름아름 쌓여가는 시간이 ’진짜’ 행복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문득 여름방학, 겨울방학 때 나와 내 여동생을 데리고 박물관, 미술관등 여기저기 열심히 데리고 다녀주시던 엄마가 생각났다. 그때 무얼 봤고, 무얼 체험했고, 무얼 배웠는지 보다 더 기억에 남는 건 그 시간들을 만들어주던 엄마의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 어린 나이에도 나는 엄마의 그 애씀이 고마웠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시간들이 좋았고, 지금껏 그 시간들의 느낌들이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은 것이리라. 엄마와 함께 보냈던 그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나의 진짜 행복이 된 것이다. 내 아이도 그러길 바라본다. 엄마 손잡고 여기저기 다녔던 이 기억들이 아이에게 차곡차곡 쌓여 그것이 진짜 행복이 되길 바라본다. 힘들어도 내 몸과 마음을 아이와 함께 나눌 때, 그것이 비로소 진짜 행복이 되기를... 그렇게 이 방학을 너와 차곡차곡 모아야지… 적금 붓듯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