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카맣게
이틀 전 아침에 있었던 일이다. 겨울이라 해가 늦게 떠서일까 첫째가 방학이기 때문일까 요즘 아이들과 나는 아침에 늦잠을 잘 때가 많아졌다. 원래는 첫째가 일찍 등교를 해야 하니 그 시간을 맞추느라 둘째까지 일찌감치 유치원을 갔는데, 첫째가 방학인 요즘은 둘째까지 늦은 등원이 일상이 되었다. 나는 그날도 평소처럼 여유롭게 등원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통의 전화가 오기 전까지는 여유로웠다. 유치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는 걸 알고는 통화버튼을 누르기까지도 나는 선생님이 나에게 아침부터 전화를 하신 이유를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다 나는 통화버튼을 슬라이드 하며 (무조건) 반사적으로 냉장고 앞으로 달려갔다. 냉장고에는 여느 때처럼 둘째의 유치원 일정이 적힌 에이포 용지가 붙어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짧은 1초도 안 되는 순간에 깨닫고 말았다. 오늘이 바로 둘째 수료기념 여행날이라는 것을… (‘어떻게 그걸 잊을 수가 있지? 이게 맞아? 아 미치겠네!!‘) 너무 놀라 선생님께 어버버 제대로 된 말을 뱉지도 못했다. 키즈노트로 전화를 건 담임 선생님 목소리가 나에게는 들려왔으나 어쩐 일인지 선생님은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신 듯했다. 차라리 그게 다행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하마터면 ‘아씨! 젠장!‘ 이런 마음의 소리가 밖으로 나갈 뻔했으니까. “아 선생님!! 아.. 저.. (둘째 팔을 붙들고 잠바를 찾으러 서두르며) 아.. 아아!!… 죄송해요!”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지 못했다. 다행히 선생님은 듣지 못했고 전화가 끊겼다.
나는 서둘러 둘째 잠바와 유치원 가방을 챙겨 들고 부리나케 집을 나섰다. 입에서는 계속 ”아!! 미치겠다! 망했다!! 하! 여름아 빨리!!!”를 두서없이 외치며 나는 그야말로 정신줄을 놓치고 말았다. 1층에 내려와 애 손을 잡고 달려가면서 (마음만은 전력질주를 하고 있었지만 애 손을 잡고 있으니 사실상 달리는 것도 아니었다.) 유치원에 전화를 걸었다. 원장선생님이 받으셨다. “원장선생님 죄송해요!!! 지금 가고 있어요!!!” “어머니 어디세요??” “아직 저희 아파트예요ㅠㅠ” “거기 그냥 계세요~ 가는 길에 여름이 태워 갈게요~!” “네 ㅠㅠㅠ”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우리는 아파트에서 유치원 버스를 타는 약속된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기서 우리는 유치원 버스를 기다렸다. 그제야 나는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벌렁거리는 심장을 어찌하지 못하며 안절부절못하는 나와 달리 아이는 평온했다. 왜 그 평온함에 나는 더 미안함이 몰려왔을까. “여름아, 엄마가 간식 준비 못해줘서 미안해…” “괜찮아! 선생님 기다리는 동안 저기 편의점 가서 사 오면 되지 않을까?” 아이는 심지어 나에게 해결책까지 제시해 주는 여유를 보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유치원은 우리 집에서 제법 가까웠다. (옆 아파트에 있는 유치원이었다.) 그래서 버스는 우리가 기다렸다고 말하기도 민망하게 바로 도착했다. 그걸 아는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아… 버스가 금방 올 거라서 편의점 갔다 올 시간은 없을 것 같아.ㅠ 미안해…”
정말 유치원 버스는 금세 왔고, 나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미안함으로 덮어내며 선생님께 머쓱하게 인사를 했다. 유치원 체육복에 운동화를 신은 아이들 틈에 (소풍을 갈 때면 그렇게 입도록 권고되었다.) 체육복도 안 입고 크록스를 신은 내 아이가 올랐다. 다른 아이들이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는데 그렇게 얼굴이 화끈거릴 수가 없었다. 여름이를 자리에 앉히시며 나를 돌아보시곤 선생님이 “간식은요?” 하고 물으셨다. 그저 확인을 하신 것일 텐데, 나는 중죄를 지은 것 마냥 작아졌다. “못 챙겼어요 ㅠㅠㅠ” “아! 친구들이랑 나눠먹을게요~!” 그렇게 유치원 버스문은 닫혔고, 나는 아이에게 씩씩하게 인사를 건네지 못했다.
한 달 전부터 미리 공지가 되어 있었던 소풍이었다. 심지어 하루 전에도 유치원에서 따로 공지를 한 번 더 해주셨었다. 나중에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담임선생님이 전화를 주시기 전에 유치원에서 전화가 한 번 더 와있었던 상황이었다. 나는 어떻게 이 소풍을 이렇게도 새카맣게 잊을 수가 있었을까. 첫째 유치원 다닐 때도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정말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걸까. 나 때문에 출발이 조금 늦어진 것도 죄송할 따름이었지만, 나는 아이에게 미안함이 당혹스럽게 몰려왔다. 유치원 버스가 우리 아파트를 채 벗어나지 못했는데, 나는 아이를 버스에 태우고 몇 걸음 옮기자마자 울컥했다. 그렇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들어서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 운동 간 사이 첫째를 봐주기 위해 아침 일찍 우리 집에 와있던 동생이 물었다. “여름이 잘 갔어? 근데 왜 울어~” “여름이한테 너무 미안해서ㅠㅠㅠ” “그럴 수도 있지 뭘~ 괜찮아~~~” 동생의 위로에도 나는 아직 나의 실수를 받아들이지 못해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그냥 완전 아예 잊고 있었어 아예!” 나는 허망한 표정을 지어 보였을까. 아니, 나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소풍 가서 재미나게 노는 아이가 아니라 홀로 간식 없이 멀뚱히 앉아 있는 아이의 환영이 나를 괴롭혔다. “정작 여름이는 재미나게 놀고 올 거야~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럴 때가 있어~ 그렇게 잊어버릴 때가 있어~!! “ 동생 말이 맞았다. 그런데도 나는 한동안 그 환영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첫째 방학에 몸도 마음도 분주했던 것이 한몫했을 테지만, 요즘 내가 하는 고민과 걱정, 불안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나는 그것 때문에 평소에도 마음이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외면하기 위해서 자꾸만 신경을 다른데도 돌리려고 했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책 대신 자극적인 넷플릭스 드라마를 몰아 보았다. 혼자 가만히 생각할 시간을 나에게 주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면 그 모든 고민과 걱정, 불안이 한꺼번에 나에게 몰려올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단체 카톡창의 대화들도 읽는 둥 마는 둥 하고 유치원 공지 사항도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젯밤에 쏟아지는 잠을 참아가며 드라마를 볼 그 시간에 잠깐만 그 공지사항을 확인했더라면 아이에게 이렇게 미안할 일도 없었을 텐데…
그리고 생각해 보니 그날 아침에도 나에게는 소풍을 알아챌 수 있는 힌트가 있었다. 전날 밤 드라마를 몰아보다 늦게 잠든 내가 졸음을 이기지 못해 아침 알림 소리를 외면하고 있는 그 비몽사몽간에 둘째가 나에게 와 조잘조잘 이야기를 했더랬다. 지난 소풍 때 (아이랑 제일 친한 친구 엄마가 내 아이 도시락까지 싸준 소풍날이었다.) 이모가 싸준 도시락 너무 맛있었다며 또 그 도시락 또 싸달라고 하자는 아이였는데,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도 ‘뜬금없이 소풍 도시락 얘기를 왜 꺼내지?‘ 그런 생각만 하고 있었다. 왜 아이가 그 말을 할 때 나는 주의 깊게 듣지 앉았던 걸까. 하나부터 열까지 후회가 몰려오지 않는 부분이 없었다.
도시락을 싸가야 하는 소풍도 아니고 그깟 간식 하나 못 챙겨 보낸 것 가지고 (물론 체육복도 안힙히고, 바깥활동에는 위험하니 신기지 말라는 크록스도 신겨 보냈지만) 눈물까지 보일일인가. 그건 아마도 나의 마음의 불안함이 내가 응당 해내던 일상의 일들을 이렇게 무너트렸다는 데에서 오는 속상함의 혹은 분노의 눈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런 내가 안쓰러웠고, 소풍날을 기대했을 아이가 안쓰러웠다. 이 씁쓸함이란…
하원 후 나는 여전히 미안한 마음으로 아이에게 소풍 때 간식 없어서 어떻게 했냐고 물었다. 아이는 친구들이 나눠줘서 같이 먹었다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자기는 음료수가 없었지만, 선생님이 배맛(?) 음료수가 있어서 주셨다고. 아이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했다. (그래도 역시 간식 못 사준 게 마음에 걸려있던 나는) 저녁식사 후에 나가서 간식을 사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아이는 괜찮다며 집에 있는 간식 먹으면 된다고 거절했다. 그런 아이에게 나는 고마웠을까 미안했을까. 나도 내 마음을 여전히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이 감정들이 벅차다. 정신 차려야 하는데… 큰일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지 않고, 잊어야 할 것들을 잊고 살고 싶은데 그게 참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