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방학에 엄마가 갓생 사는 방법

엄마보다 나은 딸 덕을 본다

by 장새미

어제 아침, 나는 아이들보다 늦게 잠에서 깼다. 이걸 깨어났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너무너무 피곤했다. 나는 이 피로함을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진심을 말해버리고 말았다. “아~ 아침 차리기 싫다 ㅠㅠㅠ”


한 달 넘게 이어진 아이의 방학이 지난하다. (아직도 한 달이나 더 남았는데…) 그중에서도 제일 부담인 것은 아무래도 삼시 세끼다. 가뜩이나 요리에 취미도, 관심도, 의욕도 없는데 하루에 세 번씩 밥을 해내야 하니 곤욕이다. 그중 아침이 가장 간단하고 대충인데도 그마저도 차리기 싫다며 앓는 소리를 한 것이다. 그런 내가 엄마로서 부끄럽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그것이 진심이었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하겠다. 나는 그런 말을 뱉으면서 다시 이불을 끌어당겼다.


그런데 나의 그 말에 첫째가 얼른 부엌으로 뛰어 나갔다. 그러더니 전날 한살림에서 사 온 시리얼을 꺼내어 그릇에 담고 우유를 꺼냈다. 시리얼이 담긴 그릇에 우유를 붓고는 둘째를 부른다. 그렇게 첫째는 둘째와 둘이 앉아 아침을 먹는다. 안방 침대에 누워 부엌에 앉은 두 아이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고마움이었을까 미안함이었을까. 아마도 감동적이라는 말이 더 부합했을 것이다. 기특했다. 그런데 더 기특한 것은 이후의 첫째의 태도였다.


둘째는 시리얼을 먹다 말고 거실을 돌아다녔다. 아마도 장난감을 갖고 놀고 싶었을 것이리라. 그런 둘째를 식탁으로 되돌아오게 하기 위해 내가 주로 쓰는 방법은 협박이었는데, 첫째는 둘째를 어르고 달래 식탁으로 돌아오게 했다. 그러면서도 누나가 시리얼을 먹여줬으면 좋겠다는 둘째의 요구에도 기꺼이 응해주는 여유까지 보인다. 그런 첫째를 보고 있노라면 나는 정말 무슨 복을 타고나서 저런 아이를 얻었을까 싶다. 그리고 그런 네가 신기하다.


너는 어느 별에서 왔을까? 그 별에서 어쩌다 내 딸로 이렇게 온 걸까? 나는 알 방법이 없다. 그저 감사할 뿐.


그러다 문득 가끔 언젠가 다가올 너의 사춘기가 무섭기까지 하다.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는데, 사람마다 평생 써야 할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데. 너는 지금까지 쓰지 않은 그 지랄들을 다 언제 몰아 쓰려고 그러는 건지. 엄마는 너에게 언제 올지 모를 그 미래가 가끔은 두렵다. 하지만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나는 현재에 일단 감사하련다.


39살 먹은 엄마도 하는 지랄을 9살인 네가 하지 않고 사는 걸 보면, 대체적으로 네가 엄마보다 나은 딸이라는 걸 나는 자꾸만 확인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반복되는 확인으로 힘을 얻는다. 엄마보다 나은 네가 있어 이 지난한 방학도 힘을 내어 견딜 수 있다. 남은 방학도 힘내 보자! 아자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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