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에 대하여

”엄마 낭만이 뭐예요?“

by 장새미

지난주, 첫째가 ‘낭만‘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아이는 자주 모르는 단어 뜻을 나에게 물어온다.) 나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분명 ’낭만’이라는 말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 나는 알고 있었는데, 그걸 다시 나의 말로 설명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퍽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이런 일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난다.) 그렇다면 나는 그 단어를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알고 있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어쨌든 나는 아이에게 어떠한 대답이라도 해주어야겠기에, 핸드폰으로 ’낭만’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기에 이르렀다. 네이버는 낭만을 나에게 이렇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낭만은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람이나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그러나 나는 이 설명조차도 아이에게 그대로 전해줄 수가 없었다. 아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난해한 설명이었다. 나는 그 말들을 적당히 풀어서, 그리고 어떠한 예를 들어서 아이에게 설명을 해주었던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설명을 해주었다기보다는 나는 또다시 얼버무렸던 것 같다. 아이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고…


속 시원히 ‘제대로‘ 낭만이라는 단어를 설명해주지 못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 이후로 일주일 동안, 생각보다 자주 ’낭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단어를 떠올릴 때면 나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들을 하고는 했다. ‘내가 알고 있는 (혹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낭만이란 무엇일까?’, ‘내 삶에는 낭만이 있는가?‘, ‘낭만이란 진짜 무엇일까?’ 그리고 그러한 질문들을 반복하면서 내가 제일 많이 생각했던 부분은 ’내 삶에 낭만이 있는가?‘였다. 그렇게 내 삶 속에서 낭만을 찾으려 애쓰던 나에게 문득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지난 2월 12일 새벽에 내 일기장에도 썼던 장면이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다 말고,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을 꼭 글로 남겨야겠다 싶어서 거실 소파로 나와 작은 스탠드를 켜놓고 썼던 문장들이다.


나는 그날 일기에 이렇게 썼더랬다. “어느 날 아이들이랑 앉아 레고를 하다가 느꼈다. 내가, 우리 네 식구가 함께일 때 가장 충만하다고(행복하다고) 느낀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은 나에게 낯선 감정이었다. 나는 나와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방학? 아이들과 있는 거? 힘들다. 진짜 힘들다. 그런데 그 힘듦을 포함해 나는 충만하다.“ 그리고 그 일기 뒤에 나는 ‘충만하다’는 것이 무엇 일지를 고민한 흔적이 있었다. 사전적으로는 ‘한껏 차서 가득하다‘라는 의미의 충만하다를 나는 내 마음 상태를 표현하는데 썼다. 말 그대로 마음이 한껏 차서 가득한 느낌이었다. 그것도 좋은 것으로 가득 찬 느낌. 더 이상 마음에 바라는 것이 없을 만큼 충분하다고 느끼는 것 말이다.


내가 내 삶의 낭만을 떠올리려 할 때 나는 그때의 그 충만한 마음을 떠올렸다. 그것이 내 삶의 낭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두 달간의 기나긴 겨울방학의 한가운데였다. 아무리 순하고 착한 첫째라고 할지라도 아이를 하루 종일 데리고 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동생이 아르바이트를 간 시간에는 조카도 함께 봐주어야 했고, 나에겐 둘째도 있었다. 몸도 마음도 쉴틈이 없는 겨울이었다. 그런데 그 지난한 방학의 한가운데서 나는 충만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앞뒤가 맞지 않았다. 낭만은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람이나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그것은 분명 낭만이었다. 아이들이랑 하루 종일 붙어 있는 게 힘든 현실이었지만, 그 현실에 매이지 않고 나는 감상적이고 이상적인 태도를, 심리를 가졌던 것이다. 몸도 마음도 지치고 힘들지언정 아이들과 레고를 하며 앉아 아이들의 웃는 얼굴을 보고 나도 따라 웃는 그 순간에 나는 충만했다.


나는 여전히 그 마음을 납득이 되도록 설명하지 못하겠다. (이 세상에는 설명하지 못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마치 내가 아이에게 ‘낭만’을 설명하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일목요연하게 설명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분명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아는 것이다. 내가 그것을 그렇다 느꼈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그것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을 정도로 힘든 것이지만, 동시에 나에게 말로 못할 충만함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돌아보면 그 시간들이 나에게는 ’ 낭만‘이었을 것이다. 아니, 낭만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 낭만에 대해 물은 것도 아이였고, 나에게 낭만을 가져다준 것도 아이였다. 육아는 고되다. 나는 아이의 방학이 끝난 오늘에야 겨우 방학 막바지에 찾아온 독했던 감기를 겨우 털어내고 오랜만에 운동도 다녀오고 이렇게 앉아 일기도 쓴다. 그 자유 또한 나에게 분명한 행복이고 낭만이겠으나, 아이가 어느 날 나에게 ‘낭만’을 물어온 덕분에 깨달았다. 사랑스러운 너희들과 부대끼며 너희들의 그 찬란함에 웃음 짓던 순간들이 낭만이었음을. 내 삶 속에 낭만이 가득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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