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내 아이를 제일 모른다.

너의 다정함에 대하여…

by 장새미

첫째는 순하고 착한 아이다. 내가 육아가 처음이라 힘들었던 거지 (애 키우는 게 안 힘든 게 어딨겠냐만은) 첫째는 키우기 쉬운 편에 속했다. 엄청 잘 먹고 잘 자고 그런 애는 아니었어도, 떼를 쓰거나 고집을 부리거나 우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둘째는 달랐다. 더 안 먹고 (편식이 심하다.) 더 안 자는 데다 (한때는 재우는데 2시간씩 걸릴 때도 많았다.) 울기도 엄청 울고, 고집도 상당했다. 이 모든 것은 첫째와의 비교에서 오는 지극히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판단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첫째보다 훨씬 키우기 힘든 게 둘째였다.


그래서였을까 나에게 둘째는 (첫째보다) 나를 좀 더 힘들게 하는 아이라는 ‘편견’이 생겼었나 보다. 그래도 우리 집에서 제일 어린애니까 그 ‘귀여움’으로 모든 것을 용서받던 아이였다. (그런 걸 ‘응석받이’라고 하던가.) 나에게 둘째는 그런 이미지였다. ‘말 안 듣고 울고 떼써도, 귀여우니까 봐준다!‘ 내가 경험으로 만들어 놓은 이 이미지는 너의 다른 면모들을 손쉽게 가려 버렸다. 나는 내 맘대로 너를 ‘이런 아이’라고 정해두고는, 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겠다고 하고 있었다. (나는 너를 있는 그대로 보고 있지도 못했었는데…)


그런데 나는 요 며칠 너의 다른 면모들을 보게 되었다. 그건 바로 너의 ‘다정함‘이었다. 나는 놀랐다. 네가 이런 다정한 말들을 하는 아이 었다는 것이 말이다.


며칠 전 아침 아침식사를 하는 식탁에 앉아 너는 대뜸 유치원 친구를 보고 싶다 했다. 이사를 가게 돼서 올해부터 새로운 유치원으로 전학을 간 친구였다. 지난 1년 동안 같이 지냈던 친구긴 했지만, 나에게 워낙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이나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 너였기에 나는 그저 네가 그런 부분에 있어서 무심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런 네가 갑자기 “수호 보고 싶다~“ 하면서 짐짓 그리운 표정을 지어 보이니 나는 좀 놀라고 의아했다. 하지만 “수호는 새로운 유치원에 가서 잘 지내고 있을 거야~” 하고 다정하게 반응을 보였더니 너는 갑자기 “수호가 울면 어떡하지?” “부끄러우면 어떡하지?” 하면서 걱정을 했다. 전학 간 친구를 걱정하는 마음이 예쁘고 귀여웠다. 나는 ”여름이가 보는 수호는 어때? 새로운 유치원 가서도 잘 지낼 것 같아?”하고 물었다. 아이는 여전히 걱정된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긴 했지만 “잘 지낼 것 같아~”하며 응원의 마음을 비춰보였다.


나는 이 이야기를 유치원 같은 반 엄마들이 함께 있는 방에 나누며 수호의 안부를 물었다. 그러자 여름이 말고도 여러 친구들이 수호 이야기를 했다며 모두 그리운 마음을 표현했다. 수호 어머니는 “고마워라ㅠㅠ 여름이가 수호를 잘 알고 있네요 ㅠㅠ 부끄러워서 아직 친구는 못 사귀었다고 해요.. 그리고 어제도 한 번 눈물 났다고 하는데..”하시며 수호의 안부를 전해주셨다. 모두들 수호의 새 유치원 적응을 응원했고, 수호 어머니는 일하다 울고 있다며 수호가 그래도 유치원 생활을 잘한 것 같다고 아이들 마음이 너무 고맙다고 하셨다. 아, 이 다정함이란. 너의 그 다정한 말들이 수호엄마와 수호에게 가 닿은 것 같아서 기뻤다.


어느 날은 자기 전 침대에 누워 유치원 단짝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 친구가 경찰과 도둑 놀이에서 자기를 자꾸 도둑을 시켜 속상하다고 했다기에, 나는 그것에 대해 여름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자 아이의 반응이 놀랍다. “아 맞아! 주원이가 교실에서도 도둑을 하고, 에어바운스에서 놀 때도 도둑을 했어. 주원이가 계속 도둑을 해서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너는 그렇게 친구의 마음을 공감했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감동적이었는데, 너는 거기에 하나를 더 보탰다. ”내일은 내가 주원이 대신 도둑 하겠다고 해야겠다~“ 아! 이 얼마나 예쁜 마음인지 ㅠㅠ 친구를 위해서 하기 싫은 일을 대신해주겠다는 그 다정한 마음에 나는 퍽 감동을 받았다. 나는 그 마음이 예쁘고 착하다며 아이를 안아주고 연신 칭찬을 해주었다.


너는 친구들에게만 그런 다정함을 보이는 건 아니었다. 얼마 전에는 내가 너무 피곤한 탓에 아이를 하원시켜 데려온 뒤 집에 들어와 안방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그러고 나는 “아~ 엄마가 오늘 몸이 너무 안 좋네~” 하면서 누구에게 왜 하는 건지도 모르겠는 변명을 했다. 그러자 둘째가 얼른 나를 뒤따라 안방으로 들어왔다. “엄마 아파?” 하더니 내 배를 막 쓰다듬어 주는 게 아닌가. “여름이 손은~ (잠시 멈춤) 좋다~” (여름이 손은 약손~이라고 해야 하는데 약손이라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나 보다.) 그렇게 연신 내 배를 문질러주더니 나를 안아주기도 하고 뽀뽀도 해준다. (“여름이가 안아주면 엄마는 너~무 행복해”라고 했던 나의 말을 떠올렸던 걸까) 하지만 배가 고프다는 첫째의 말에 나는 금방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기운이 없다는 핑계로 밥에 김자반을 섞어 주먹밥을 만들어주었다. 그게 다였다. (반찬처럼 오이 하나를 깎아주었던가)


그런데 아이는 주먹밥을 맛나게 먹으며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엄마~ 아픈데도 이렇게 맛있는 밥을 해줘서 고마워! 엄마는 최고야!!” 나는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던가. 민망함도 잠시… 대충 차려준 저녁상이 미안할 틈도 없게 너는 주먹밥 한 그릇을 금세 비웠다. 먹는 내내 너는 나에게 아픈데도 맛난 밥을 해줘서 고맙다고 몇 번이고 이야기했다. 나는 너의 그 다정한 말들이 참 고마웠다. 네 덕분에 나는 저녁밥을 대충 차려준 형편없는 엄마가 아니라 아픈 몸을 이끌고도 맛난 밥을 차려준 멋진 엄마가 된 것이다. 너의 다정함은 어디까지일까….


이 모든 것이 한 주 안에 일어났던 일이다. 자잘한 것들을 더 하면 더 많겠지만 말이다. 이쯤 되면 너는 원래 다정했는데 내가 그동안 너의 다정함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었는지, 네가 요즘 들어 부쩍 다정해진 건지 궁금해진다. 그러다 예전에 너와 보드게임을 했던 날이 떠오른다. 브루마블이라는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돈을 다써서 더 이상 벌금을 내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파산이다.) 그러자 둘째는 나에게 벌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해주는 것을 넘어서 자기 돈을 나에게 막 나눠주기까지 했다. 나는 그런 반응이 첫째가 아닌 둘째가 보였다는 것에 내심 좀 놀랐더랬다. 그래, 너는 원래 다정한 아이였던 것이다.


내가 너를 자꾸만 울보, 떼쟁이, 똥고집으로 보아와서 몰랐던 것이다. 네가 이렇게 다정한 아이였는데 내가 자꾸만 그런 너를 울보, 떼쟁이, 똥고집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새삼 그런 나의 편견이 미안했다. 앞으로는 너를 더 자주 다정한 아이, 친절한 아이, 마음씨가 예쁜 아이라고 말해줘야지… 너는 분명 그런 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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