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감정의 색깔이 다채로워 졌을 때.
엄마들 중에는 공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애가 펑펑 우는 것보다 조용하게 징징거리는 게 더 듣고 있기 힘들다는 걸…
우리 첫째는 소위 말하는 ‘순한 애’에 속한다. 그래서 투정을 잘 부리지 않는 편인데, 가끔씩 하기 싫은 일이 있거나 어떤 게 자기 뜻대로 잘 되지 않을 때 그 징징거림을 시작한다. 막 화내고 짜증 내는 게 아니라 혼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서는 훌쩍거리며 징징거린다. 아 정말 ‘속이 터진다‘라는 표현이 이럴 때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을 한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그 전날 아트박스에서 산 그림 그리는 킷트를 하고 싶다는 첫째. 주어진 밑그림에 칸마다 지정된 색깔의 물감을 칠하는 킷트였다. 처음에는 “나 잘해? 잘해?” 물으면서 잘했다는 칭찬에 즐겁게 색칠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테두리 작업을 하는데 그 징징거림이 시작되었다. 가는 붓으로 섬세하게 그려야 하는 작업이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었다. 삐뚤빼뚤 칠해지는 것에 속이 상한 첫째는 급기야 훌쩍이기 시작한다. 그걸 보고 있는 나는 속이 탄다. 내가 하라고 한 것도 아니고, 잘 그려서 어디다 제출해야 하는 숙제도 아니고, 그저 취미로 즐겁게 하려고 산 것인데 저렇게 속상해하며 칠을 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엄마가 도와주는 것도 절대 안 된다고 하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그 징징거림을 들어주는 일…
한참을 그런 아이를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애가 탄 할머니는 아이에게 잘 그렸는데 왜 우냐고 잘 그렸다고 연신 칭찬을 해주시는데도 아이는 계속 짜증이다.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까 고민을 했다. 그리고는 아이 옆에 앉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가을아, 여기 샘플 그림처럼 완벽하게 그리는 건 로봇이나 컴퓨터가 그렇게 그리는 거야. 사람이 삐뚤빼뚤 그렸기 때문에 그 작품이 세상에서 하나뿐인 소중한 작품이 되는 거야.” 아이에게는 그 말이 위로가 되지 않았나 보다. 다른 얘기를 해보기로 했다.
나는 핸드폰으로 반 고흐의 초기 작품을 찾아보았다. 아이는 내가 반 고흐 그림을 좋아해서 그의 유명한 작품들을 알고 있었다. 나는 누구 그림인지 말해주지 않고, 반고흐가 초기에 그린 초상화를 보여주었는데 아이는 보자마자 피식 웃었다. 이 그림 어떠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별로 안 예쁘다고 했다. 이게 누구 그림인지 알아? 했더니 아이가 모른다고 답했다. 그래서 나는 이것도 반 고흐 그림이라고 말해주었다. 반 고흐도 처음부터 그림을 잘 그렸던 게 아니라고, 그래도 계속 그림을 그리고 또 그리고 또 그리다 보니 지금처럼 우리가 아는 유명하고 멋진 작품들을 그리게 된 거라고 말했다. 만약에 반 고흐가 이렇게 그림을 그리고 ‘에잇! 별로야! 나는 그림에 소질이 없나 봐!‘하고 그만두었으면 그는 이렇게 멋진 화가가 되지 못했을 거라고 하면서, 가을이도 지금은 네 그림이 좀 마음에 안 들어도 계속 그리고 그리다 보면 멋진 작품을 그리게 되는 날이 올 거라고도 덧붙였다.
나의 이 장황한 위로는 통했을까? 글쎄…. 그 이후로도 아이가 한참을 징징거렸던 걸 보면 그다지 효과가 있는 위로는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냥 그 마음을 받아주기로 했다. 생각해 보면 나도 어릴 적에 그랬던 것 같다. 남들이 아무리 잘했다고 칭찬해 줘도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척 짜증이 났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 짜증을 가을이 보다 훨씬 격하게 표현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오랜 기간 나의 짜증이, 분노가, 화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이성적인 타입의 나의 부모님으로써는 나의 그 감정기복이 납득하기 어려운 문제였으리라… 그래서 나는 많은 경우 그것을 부정당해 왔던 것 같다. 많은 경우 우리 엄마는 나의 많은 분노와 화를 ‘참아 ‘는 주셨지만 ’인정’해주시진 않았던 것 같다. 무슨 말이냐면, 화를 내도 괜찮다고 해주시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늘 나에게 화내지 말아라… 짜증 내지 말아라… 하셨고(그 말도 맞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감정이 자꾸만 올라오는 내가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하며 큰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남편을 만나고 나는 처음으로 그런 말을 들었다. “화가 날 수 있죠. 화가 나면 화를 내야죠~ 화를 내도 괜찮아요~” 내 화를 인정해 주는 사람. 나는 살면서 그런 사람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와 결혼을 했다.
나는 20대 후반에 들어서야 인정받았던 나의 그 부정적인 감정들을 내 아이에게만은 빨리 인정해주고 싶었다. 화를 내도 괜찮다고, 짜증을 내도 괜찮다고, 속상해도 괜찮다고.
물론 나도 그 작업이 쉽지는 않다. 그리고 그 징징거림을 마냥 끝까지 받아주는 것도 답은 아닐 테니 말이다. 그날따라 남편이 야근을 하게 되는 바람에 나는 아이 둘을 데리고 친정에 갔다가 늦은 시간 집에 돌아왔고 첫째의 징징거림, 둘째의 눈물바람을 견뎌내느라 지쳐있었다. 그런 내 마음이 무의식의 한숨 속에 드러났을까, 나의 서늘해진 말투 속에 드러났을까 이 닦으라는 나의 말에 첫째는 결국 눈물을 터트렸다. “엄마 미안해…. 으앙…”
나는 아차 싶었다. 받아주기로 해놓고서는… 나는 얼른 무릎을 꿇고 아이를 안아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짜증 내고 속상해해도 괜찮아~ 가을이가 열심히 했는데도 그림이 마음에 안 들면 화가 날 수 있지~ 그건 가을이 잘못이 아니야~ 그런 감정이 드는 건 정상이야~ 그런데 가을이가 그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생각해 보면 좋겠어~ 가을이가 왜 그렇게까지 짜증이 났는지, 그 마음을 어떻게 해야 가을이가 받아들이고 소화시킬 수 있을지 잘 생각은 해봐야 해~ 얼른 이 닦고 책 골라~ 엄마가 책 읽어줄게 책 읽고 자자~“
아이는 진정이 되었고, 이를 닦고는 동생과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편안한 표정으로 잠이 들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아이는 한 번씩 징징거렸다. 아이는 마음이 우울하다고도 하고, 이상하다고도 표현했다. 요즘 들어 애가 왜 이러나 싶다가, 나는 문득 ‘인사이드아웃’이라는 애니메이션이 생각났다. 그 애니메이션에서는 아이가 어떤 감정을 느끼면 그게 색깔 구슬이 되어 나오는데, 아이가 좀 더 크자 하나의 구슬에 한 가지 색깔만 있던 것이 하나의 구슬에 여러 색깔이 섞여 나오기 시작했다. 그만큼 감정이 다양하고 복잡해진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아! 내 아이가 컸구나! 이제는 자기가 뭐라고 명확히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이 찾아오게 될 만큼 아이가 큰 것이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한 결 편해졌다.
나는 네가 그 다양한 색깔의 감정들을 충분히 느끼고 받아들이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때로는 싸워보기도 했으면 좋겠다. 네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돕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네 옆에서 널 지켜보고 기다리는 것뿐이겠지. (울 엄마 아빠도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쩌면 내가 그 감정을 대신 느껴주는 것보다 그게 더 어려운 일 일수도 있겠구나. 그렇지만 엄마는 너의 그 감정을 인정해 주려고 노력할게, 너의 감정을 부정하지 않도록 노력할게. 부단히… 노력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