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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Oct 07. 2021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애둘맘의 일상_치과진료 그 험난함에 대하여

카페에서 수유 중인 나

둘째를 낳고 두 달. 애 낳고 나면 잇몸이나 이가 약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를 닦을 때마다 시린 증상이 계속되어 결국 치과 진료 예약을 잡아놓았다. 그것도 애가 둘인데 봐줄 사람이 없으니, 남편이 퇴근해서 들어오는 저녁 시간이나 주말에 진료를 받아야 했다. 주말은 예약이 어려웠고, 야간진료를 하는 유일한 날인 화요일에 예약을 잡았다. 오늘이 그 화요일이었다. 첫째가 하원하고 남편이 오기까지 두 시간. ‘버틴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애 둘 독박 육아의 두 시간이 지나면 남편이 오고, 그럼 나는 얼른 준비를 해 치과를 간다는 것이 계획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퇴근길에 지하철을 잘못 탔다는 남편. 타박을 하지 않았다.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좋게 생각하기로 하고, 하원 후 애 둘과 북카페를 갔다가 비가 올 것 같아 (사실은 첫째가 다친 손가락에 밴드를 붙여야 한다고 집에 가자고 우겨서)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 둘째 기저귀를 갈아주고 모유수유를 했다. 그러는 동안 첫 째는 잠옷으로 갈아입고 싶다며 옷을 골라와서는 수유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내 옆을 종종 맴돈다. 그럼 나는 남편이 올 시간만 애타게 기다리며, 애꿎은 시계만 계속 쳐다보게 된다. 첫 째도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그럴 시간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이 초초하다. (남편이 와서 먹이면 되는 건데 왜 내가 그걸 초초해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수유를 마치고 트림을 얼른 시키고는 (사실 트림을 하지 못하고 아이를 바운서에 앉혀놓았다.) 첫 째 옷을 갈아입혔다. 아직 남편은 오지 않았지만 이제는 치과 갈 준비를 해야 한다.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챙긴다. 드디어 남편이 도착했다. 애들은 밥을 먹었냐는 말에  둘째는 먹였고, 첫째는 못 먹였다고 진행상황을 전달하고 나서 서둘러 집을 나섰다. 전철 두정거장 거리의 치과. 전철이 빠를 것 같아 역으로 향한다. 앞차를 놓쳤지만 다행히 예약시간에 늦지는 않을 것 같다. 몇 분을 기다리자 3 정거장 전에 있던 다음 열차가 도착했고 나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저녁밥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는 그 사실이 제법 충격이었다. 왜냐하면 밥을 못 먹었다는 사실보다. 내가 밥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것이 왠지 모르게 서글펐다. 머릿속에서는 온통 아이 둘을 먹이고 나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던 것이다. 배가 고픈 것은 기본적인 생리욕구인데, 나의 기본적인 욕구를 새까맣게 잊을 정도였다니. 내 밥은 언제 먹을지 무얼 먹을지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것을 뒤늦게야 깨달았는데도 여전히 배가 고픈지도 모르겠다는 것이. (그만큼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이 모든 상황이 당황스럽고 슬펐다. 지하철을 타고 고작 두 정거장을 가는 길. 밥도 못 먹고 지하철에서 자리도 없어서 서서 가는 중이지만, 이대로 쭉 계속 지하철을 타고 어디론가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나 온전히 나 혼자만의 시간이 너무 소중한데, 이 시간이 이렇게 소중하다는 사실도 금세 내려야 한다는 사실도 이내 나를 또 슬프게 만든다. 아이가 먹다만 왼쪽 젖이 불어 가고 있다. 결국 나는 혼자이지만 혼자이지 못하는 것이다. 불어 가는 왼쪽 젖이 아이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밥도 못 먹었는데, 내 몸은 아이의 다음 식사를 위해 부지런히 준비를 하고 있다. 


스케일링을 받고 진료도 받았다. 급하게는 아니었지만, 치료할 치아가 꽤 있다는 결론이 났다. 마취를 하고 치료를 해야 하는 부분들이라 수유가 마음에 걸린다. 직접적인 영향은 없다고 하는데, 그래도 마음에 걸리는 엄마들은 치료 직후의 젖은 유축 해서 버리거나, 아예 그날 하루는 수유를 하지 않기도 한다고... 결국은 내 선택이라는 말을 멋쩍게 하는 치위생사 언니 앞에서 나도 애써 웃어 보이며 알겠다는 말과 함께 다음 치료 예약을 잡는다. 주말은 한참 뒤에나 가능하고 오늘처럼 야간진료하는 날 중에 가장 빨리 할 수 있는 날로 예약을 했다. 치과를 나서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심란하다. 이렇게 몇 번을 더 치과를 가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까마득하게 만든다. 올 때마다 마취 치료를 해야 한다는 사실도 마음 한구석이 무겁다. 내가 잘못한 건 아닌데, 내가 잘못한 것 같은 이 기분은 뭔지. 오늘처럼 내 저녁식사 마저 잊어버리는 하루를 몇 번이나 더 보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또다시 슬프다. 나를 위해서도 아이를 위해서도 ‘좋다고’해서 선택한 모유수유인데, 이게 좋은 게 맞는 건지 왜 이렇게 걸림돌이 될 때가 많게 느껴지는 건지. 그냥 내 기분 탓인지. 이게 산후우울증인 건지. 치과진료 한 번 받으러 나왔다가 온갖 생각에 감정에 머리도 마음도 터져버릴 것만 같다. 천천히 집에 걸어가며 머리 좀 식힐까 하다가 이내 다시 지하철역으로 들어선다. 아이도 덜 먹은 내 왼쪽 젖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함이고, 애 둘을 보며 쩔쩔 매고 있을 남편에 대한 배려이지만 그 안에 또 ‘나’는 빠져있는 것 같아 슬프다. 아 맞다. 나 저녁 안 먹었었지 또 잊어버리고 있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나만 못 먹었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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