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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Jan 03. 2022

다음 함박눈을 기다리게 된 이유.

육아에 최선이라는 게 있을까?

주말에 함박눈이 왔다. 

눈이 제법 쌓여 밖에 나가 노느라 신이 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14층 우리 집까지 새어 들어올 정도였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주말 내내 집에 콕 박혀 있었다. 집에 있는 다고 쉬는 건 아니었지만 곧 있을 이사 준비에 마음이 분주했던 데다 4개월짜리 어린 동생이 좋은 핑곗거리이기도 했고, 아이 둘 감기로 시작해 나에게까지 옮겨왔던 감기에게 2주간을 시달렸던 것이 바로 지난주였다. ‘와 눈이다!’ 하는 들뜬 마음 보단 기상악화로 배달업체가 업무를 중단한 것에 ‘뭘 먹지’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선 던 것도 사실이다. 아이가 몇 번 나가 놀자는 식으로 말을 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질 않는 것을 보니 강력하게 어필하진 않았던 듯싶다. 그러니 밖이라니, 나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 부랴부랴 등원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서는데 앞집에 못 보던 아이템이 세워져 있다. 썰매였다. 조카도 이번 주말, 눈놀이를 위해 썰매를 샀다던데 앞집 아이도 그랬던 모양이다. 복도에 세워져 있는 썰매에 관심을 보이는 아이에게 대충 둘러댄 뒤 서둘러 엘리베이터를 탔다. 밖에 나오니 눈이 제법 쌓여있다. 새하얀 등원 길에 아이는 살짝 설렌 듯 보였다. 주말 동안 눈놀이를 나가지 않은 것이 살짝 미안해졌다. 그래서 눈 구경을 하느라 걸음이 더딘 것도, 이쪽저쪽 쌓인 눈을 만지고 뭉치고 던져보는 것도 기다려주었다. 집에서 무척 가까운 어린이집이라 아이 걸음으로도 3분이면 걸어갈 거리를 누군가 만들어 놓은 눈사람 옆에 서보라며 사진도 찍어주며 나름의 여유를 부렸다. 하지만 나는 딱 그만큼 미안했었나 보다. 눈사람을 보더니, 아이가 자기도 눈사람을 만들고 싶다고 하자 갑자기 마음이 갑갑해진다. 유아 차에 태워 데리고 나온 둘째도 있고, 얼른 애들 둘 중 하나라도 떼어놓고 조금이나마 자유롭고 싶다. 그래서 하원하고 만들자고 약속하듯 아이를 구슬려 냉큼 어린이집에 들여보냈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집에 들어가는 길, 지상에 세워둔 우리 차에 눈이 많이 쌓여있어 걱정스러운 마음을 안고 집에 들어갔었는데 하원 시간이 되어 다시 나와 보니 차에 눈이 말끔히 없어져있어 깜짝 놀랐다. 누가 우리 차에 쌓인 눈을 치워줬을 리는 없는데 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눈이 다 녹고 없다. 그러고 보니 날이 푹하다. 날이 따뜻해져 눈이 다 녹았구나. 그제야 아차 싶다. 하원하고 눈사람을 만들기로 했는데 어쩌지. 아쉬워할 아이를 안타까워하는 마음보다는 그런 아이를 어떻게 받아줘야 하나 걱정하는 마음의 ‘아차’였던 것도 엄마의 이기심일까. 역시나 하원한 아이는 눈사람 이야기부터 꺼낸다. 눈이 거의 다 녹았다는 말을 우물쭈물하면서 아이 눈치를 봤지만 생각보다 아이는 평온하다. 미안한 마음에 아이를 데리고 괜히 여기저기 기웃기웃 거리다 미처 녹지 못하고 지저분하게 남은 눈을 찾아내 두 뭉치를 간신히 뭉쳐 눈사람이랍시고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아이는 그것 가지고도 웃으며 좋아한다.


그 모습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 내려앉은 마음에 곧장 후회가 밀려든다. 저렇게 좋아하는데 왜 주말 내내 집에만 있었을까. 함박눈이 잔뜩 쌓였을 때 나가 놀았다면 아이가 얼마나 더 좋아했을까. 더 그럴듯한 눈사람을 만들어주었더라면 아이가 얼마나 더 신나 했을까. 하다못해 오늘 등원 길에라도 눈사람 하나 같이 만들걸. 늦는다고 뭐라 할 사람 하나 없는데 뭘 그리 서둘러 들여보냈을까. 폭신폭신하고 새하얀 함박눈이 아닌 반쯤 녹아 시커멓게 먼지가 내려앉은 눈을 조몰락거리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미안함에 마음이 먹먹하다. 사실 내 마음이 먹먹했던 것에 반해 정작 아이는 눈놀이를 하지 못한 것에 크게 미련이 없어 보이긴 했다. 하원 후 찾은 한의원에서 간호사 언니가 주말에 눈이 왔는데 무얼 했냐는 질문에 나만 머쓱하게 집에만 있었다고 대답할 뿐, 아이는 아까 만든 허접한 눈사람도 눈사람이라 쳐준 것인지 자랑스럽게 눈사람을 만들었다고 대답했더랬다. 그런데 왠지 그 대답에도 나는 괜히 더 미안해진다. 뒤늦은 후회를 해본들 눈은 녹고 없다. 그때는 이게 최선이라며 아등바등거려보지만 육아에 최선이라는 게 있나 싶다. 돌아보면 다 미안하고 더 잘해줄걸 싶은 게 육아인 듯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갑자기 눈 오리 만드는 집게를 사달라는 아이에게 냉큼 그러겠노라 대답한다. 눈 오리뿐이랴 썰매도 사 줄 테니 얼른 눈이 또 왔으면 좋겠다. 다음에 눈이 오면 꼭 밖에 나가 신나게 놀아 이 미안함을 만회하고 싶은 마음이다. 눈놀이에 신난 네 모습을 보며 오늘의 먹먹했던 마음을 빨리 풀어버리고 싶은 내 욕심이다.


잘 밤에 핸드폰으로 지난 사진을 들춰보다 며칠 전 다 녹은 눈을 뭉치며 놀고 있는 아이를 찍은 사진에서 눈이 멈췄다. 그렇게 그렇게 들여다보다 결국은 눈물이 터졌다. 식구들 다 자는 밤에 혼자서 훌쩍거리다 잠이 홀딱 깨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미안해 가을아. 엄마가 미안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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