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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Nov 09. 2021

서른 세돌 엄마를 어른으로 키워주는 세돌 아이

내 감정을 '케어'해주는 딸

나는 불같은 사람이다. 평소에는 따뜻하지만 화가 나거나 슬프거나 불안해지면 그 불로 나도 남도 다 태워버릴 때가 많다. 감정에 충실한 편이라 화르륵 쉽게 불이 붙는 나는 아직도 내 화력을 조절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런 34살 엄마의 마음을 만져주는 이가 있는데 그건 바로 4살짜리 딸이다. 이제 갓 세 돌이 지난 딸이 내 감정을 ‘케어’ 해준다는 것이 딸에게는 종종 미안하기도 한 일이지만, 미안함보다는 고마움이 앞서는 것은 서른 세돌 엄마의 뻔뻔함이다. 

올여름, 내가 임신 중일 때의 일이다.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의 원아 중 한 명이 코로나 확진자의 밀 접촉자가 되는 바람에 어린이집이 비상에 걸린 적이 있다. 그 소식이 알려진 즉시 모든 원아들은 하원 조치되었고, 원아들과 가족들은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했다. 나는 막달이라 아이가 언제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시기였는데, 코로나 검사를 받고 우리가 음성이 나와도 그 밀 접촉자 원아가 확진이 되면 2주 동안 격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내가 코로나 확진되면 애는 어떻게 낳는 거지? 2주 격리되는 동안 아이가 나오면 어쩌나?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며 별별 생각이 다 들어 심란한 마음에 신경이 잔뜩 예민해져 있었다. 소식을 듣고 퇴근한 남편과 온 가족이 코로나 검사를 받기 위해 보건소로 향하는 길, 검사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줄이 너무 길어 땡볕에 임신 중인 나나 아이를 데리고 기다릴 순 없어서 오후 늦은 시간에 다시 가보기로 했다. 그렇게 집과 보건소를 왔다 갔다 하는 와중에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말끝이 날카로워져 남편에게 괜한 신경을 부리고 있는 나에게 “괜찮아~”하고 말해주는 건 세 돌도 안 된 딸이었다. 차 카시트에 앉아 계속해서 괜찮다고 말해준 건 본인도 무서워서였을 수도 있겠지만, 분명 한 건 우리 셋 중에 가장 침착했던 건 딸이었다는 사실이다. 엄마가 불안해하는 모습에 본인도 너무너무 불안했을 텐데, 불안하다는 이유로 예민하게 구는 나와 달리 아이는 우리를 토닥여주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남편보다 아이가 더 위안이 되었다. 남편도 그랬었나 보다. 그가 아직까지도 그날의 놀라움을 종종 이야기하는 걸 보면 말이다.


나의 불안함뿐만 아니라 화도 가라앉혀 주는 능력을 가진 딸은 꽤나 자주 그 능력을 놀랍게 발휘한다. 얼마 전 동생과 어떤 사건에 대해서 흥분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누가 들어도 화를 낼만한 이야기이기에 동생도 나도 점점 언성이 높아졌다. 그러자 옆에서 놀고 있던 아이가 다가오더니 내 입 위에 손을 가져다 대며 좀 진정하라는 듯 토닥이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내 얼굴을 자기 쪽으로 돌리며 자기 얼굴을 보게 하고는 활짝 웃는다. (딸아이의 눈웃음은 가히 치명적이다.) 나 보고도 그렇게 웃어보라는 뜻이다. 그럼 나는 웃어 보일 수밖에 없다. 순간 대화는 멈췄고 흥분하던 동생과 나는 동시에 웃었다. 계속 얘기를 나눴어도 더 열 받기만 했을 일이었는데 아이 덕에 멈췄다. 잠시 뒤 아이에게 왜 그렇게 했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울까 봐 그랬단다. 나는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면 울어버릴 때가 많다. 아이는 그것을 염려한 것이다. 저렇게 계속 화를 내다가는 울어버릴지도 모르니 더 불이 붙기 전에 멈추게 해 준 것이다. 


또 며칠 전에는 답답한 마음에 남편에게 버럭 화를 낸 적이 있었다. 나에게는 남편의 느긋함이 (그것은 남편의 장점이다.) 때로는 무척 느리고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많은데, (그리고 그것은 남편의 단점이다.) 내 나름대로 속상한 상황 속에서 발동된 그의 느긋함이 나는 못내 화가 났던 것이다. 내가 씩씩거리며 앉아 있자 딸아이가 다가온다. 그러고는 남편에게 이야기한다.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라고. 남편이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자, 나에게도 같은 요구를 한다. 아빠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라고. 나는 일어나 남편을 안아주며 화를 낸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아이의 요구에 화르륵 타올랐던 마음이 금세 가라앉는다. 나 스스로도, 나의 화를 늘 잘 받아주는 남편도, 쉽사리 가라앉히지 못하는 나의 마음을 딸아이는 그렇게 누그러트려주었다. 그것은 정말 마법 같은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 모습을 본 친정엄마는 눈물마저 보이신다. 나의 화력에 제일 많이 데었던 사람. 엄마에게 그 모습은 무척이나 감동적이었을 것이다. 기특한 손녀가 더없이 예쁘고 고마울 따름이다.


그밖에도 육아를 하다 보면 내 감정을 내가 주체할 수 없을 때가 많이 찾아온다. 최근에는 모유 수유하는 둘째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젖을 물지 않고 오열을 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여태 잘 먹다가 왜 그러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운 나는 그 상황이 되면 폭풍 같은 감정이 몰아친다. 속상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화도 났다가 슬퍼지기도 한다. 힘들어도 모유수유를 선택한 것은 너에게도 나에게도 좋자고 한 일인데, 죽어라 우는 애에게 젖을 물려야 하는 내 마음은 다 그만두고 싶을 만큼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다. 주체할 수 없는 마음에 눈물을 보이는 내게 다가와주는 것 역시 딸이다. 아이는 내 눈물을 닦아주고 웃어 보인다. “엄마 울지 마~” “여름이가 지금은 안 먹고 싶은가 봐~”하고 이야기해준다. 때로는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나를 웃겨보려고도 한다. “엄마 웃어봐~”하고 얘기하는 딸에게 지금은 못 웃겠다고 얘기해도 아이는 괜찮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런 아이를 보며 나도 웃어줄 수밖에 없게 된다. 


나는 생각보다 자주, 아이 덕에 더 나은 사람이 될 기회를 얻는다. 감정의 불길에 쉽게 사로잡히지만, 그 감정의 불길 속에서 나를 끄집어내 주는 아이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못난 엄마이지만 딸 덕에 ‘덜’ 못난 내가 되어간다. 그렇게 서른 세돌 엄마는 세돌 아이 덕에 조금씩 더 어른이 되어간다. 나도 아이를 키우지만 아이도 나를 키운다. 우리 두 사람 모두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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