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새미 Jun 16. 2022

무너질 모래성을 짓는 이유

찰나이기에 즐거운 

얼마 전 애들과 함께 바닷가에 놀러 갔었다. 내 아이를 비롯해 따스한 햇볕 아래 많은 아이들이 모래놀이를 하고 있었다. 나는 돌이 안된 둘째가 모래를 집어먹지는 않는지 설렁설렁 지켜보며, 모래놀이를 하는 첫째 옆에 캠핑의자를 펴고 앉아 있었다. 우리 바로 옆에서도 두 자매가 열심히 모래성을 만들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파도가 덥석 물기 딱 좋은 위치에 앉아 모래성을 만들고 있던 것이다. 파도가 조금만 세게 쳐도 모래성은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는데, 그 파도를 온몸으로 막아가며 필사적으로 다시 모래성을 올리고 또 올리고 하는 것이었다. 


앉아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다. '조금만 더 위쪽으로 올라와서 지으면 될 텐데...' 그러고는 그런 생각을 한 나 자신을 나 스스로 나무랐다. 그 아이들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모래성을 짓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이 돼버린 나를,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나는 서글픈 마음으로 나무랐다. 내가 그 자매들과 같은 나이일 때 혹은 더 어린 나이일 때 아니 그 보다 더 많은 나이일 때에도, 나는 누구보다 그런 모래성을 짓는데 열심인 아이였기 때문이다. 


여름이면 가족들과 함께 바다나 계곡에 자주 놀러 가곤 했는데, 계곡에 가면 나만의 수영장을 만들겠다며 맨손으로 돌들을 그렇게나 열심히 옮기고 또 옮겼었다. 바닷가에 가면 무슨 중요한 임무라도 받은 듯 모래사장에 주저앉아 손바닥부터 손톱 사이사이까지 끼어든 모래들이 잘 지워지지도 않아 한참을 반짝일 만큼 열심히 모래성을 만들었더랬다. 그때는 나도 꼭 저렇게 파도가 들이치는 곳에 앉아 모래성을 만들었었다. 왜 그랬을까. 그러고 보니 수없이도 많은 모래성을 지었었지만 한 번도 왜 그랬었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다. 글쎄... 어른이 된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니 아마도 그게 더 재밌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이유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파도가 몰려와 무너지는 게 재밌었던 것이다. 영원히 무너지지 않고 오래오래 남을 철옹성 같은 모래성이 아니라, 철썩이는 파도 한 번에도 우르르 무너져 버리는 모래성이 더 즐거웠던 것이다. 


그 두 자매를 보면서 내 어릴 적을 생각해 보고, 그러고는 문득 깨달았다. 어쩌면 우리를 정말 행복하게 하는 것들은 (우리를 정말 즐겁게 하는 것들은 ) 영원한 것이 아니라 찰나의 것이 아닐까. 무너지면 다시 올리고 올리고 해야 하는 모래성처럼. 산등성이 너머로 금세 꼴깍 넘어가버리는 순간의 해가 만드는 황홀한 하늘처럼. 부서지는 파도처럼. 흘러가는 구름처럼. 꽃이 피었다 지고, 녹음을 만들었다 낙엽으로 전사하는 나무처럼. 영원하지 않은 것들. 


그 모습 그대로 영원하다면 우리는 그것들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자꾸만 무너져서 다시 지어 올려야 하지만, 실은 그 고난이 있어서 우리는 즐거워했던 것 아닐까. 그런 게 진짜 '재미'가 아닐까. 어른이 된 나는 자꾸만 그 고난을 피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고난이 없으면 그래서 더 편하면 더 효율적이면 더 내 맘대로 된다면 좋을 것이라 생각하게 된 어른이 된 것이다. 그래서 그런 나에게는 진짜 '재미'가 사라지고 있었던 것 같다. 정말 재밌다고 느낀 무언가를 했던 건 언제였던가. 재미를 느낀 무언가는 정말 조금도 힘들지 않았던가. 


이렇게 얘기하고 나니 나의 본업인 '육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키우는 건 힘들다. (둘은 더 힘들다.) 그렇지만 그 시간 또한 영원하지 않기에, (특히 아이들은 금방 자라니까 어쩌면 그 시간들은 찰나에 가까울 수도 있다.) 진짜 즐거울 수도 있는 것 아닐까. 나는 어쩌면 그 안에서의 고난과 고생을 줄이려고만 하다가, 내가 찾을 수 있는 진짜 재미와 즐거움, 행복을 놓치고 사는 건 아닌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정신없이 바쁘고 힘든 육아지만, 그 속에서의 재미를 놓치지 않고 살기를. 파도에 무너지는 모래성을 보면서도 까르르 웃을 수 있기를. 아이와의 "영원하지 않은" 이 시간을 즐길 수 있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언젠간 다 혼자 하게 되어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