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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Sep 01. 2022

놀이터에서 크는 아이들

그러니 부디 놀이터를 지켜주세요

비가 오고 날이 흐리다가 쨍하게 해가 뜬 날이다. 9월의 시작에서 하늘은 완연한 가을이 왔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런 하늘 밑을 걷노라니 아이를 하원 시키러 가는 내 마음도 왠지 설렌다. 이런 날은 나조차도 바깥놀이를 하고 싶다. 유치원을 나서는 아이에게 묻는다. 

"밖에서 놀다 들어갈까? 놀이터 갈래?"

"응!"


오늘은 아이와 내 마음이 통했다. (어떤 날은 날이 좋아 바깥놀이할 준비를 다 하고 맘먹고 와도 아이가 바로 집에 가자고 하는 날도 있다;ㅎㅎ) 우리는 아이가 좋아하는 놀이터로 향한다.


사실 첫째가 어린이집에 다닐 때는 하원 후에 거의 무조건 놀이터나 공원에서 놀다 들어가곤 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까지 놀다가 거의 마지막에 놀이터를 떠나는 날도 많았다. 그런데 둘째가 생기고 나서는 놀이터에서 노는 일이 쉽지 않다. 둘째가 유아차에만 얌전히 누워있는 아가일 때는 그래도 낫다.  아직 걷지 못하는 둘째를 안고서 첫째와 놀아주는 것은 보통 체력소모가 아닐 수가 없다.


얼마 전에는 놀이터에서 둘째를 안고 그네를 타겠다는 첫째를 열심히 밀어주고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은 모르는 엄마의 말문을 트이게 하는 그런 것이었나 보다. "아이고 둘째 안고 첫째 밀어주고, 엄마가 슈퍼맘이네요. 대단해요~" 그저 웃어 보였는데 조금 뒤 다시 말을 걸어오셨다. "허리 안 아파요? 보는 내가 다 허리가 아파ㅠㅠㅠ" 나는 힙시트로 둘째를 안고 있었는데, 아이를 고쳐 안으며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래도 아직은 할만해요! 이제 무거워져서 힙시트로 안는 게 한결 낫더라고요!ㅎ"아이가 하나인 그 엄마의 눈에는 애 둘과 놀이터에 나온 내가 퍽 대견했나 보다. 하지만 씩씩한 나의 대답에도 그 엄마는 왠지 둘째를 낳지 않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이 시기의 애 둘과 놀이터에 간다는 것은 그런 일이다. 어린아이를 챙기면서 큰 아이와 놀아주는 모습은 연민을 불러일으키기도 존경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누가 봐도 참 힘든 일이란 말이다. 이런 나에게도 희망은 있다. 둘째도 좀 더 커서 같이 놀았으면 하는 것이다. 그럼 나도 저기 밴치에 앉아 다른 엄마들과 수다를 떨며 눈으로만 아이들을 쫒는 저 엄마들처럼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있겠지. 


첫째는 놀이터에 들어서자마자 미끄럼틀을 타러 간다. 둘째도 처음에는 구경하느라 바쁜 눈을 따라 손가락으로 연신 무언가를 가리키며 유아차에 잘 앉아 있더니, 이내 탈출을 시도한다. 유아차에서 떨어질 지경이라 얼른 안아 올렸지만 자꾸만 내려달라 한다. 아직 걷지 못하는 둘째. 그래서 신발도 신기지 않은 내복 차림으로 나왔는데 난감하다. 이제는 힘도 세져서 뻗대는 아이를 안고 있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에라 모르겠다. 결국 맨발의 아이를 놀이터에 내려놓았다. 이 놀이터는 미끄럼틀을 타기 위해선 (계단도 있지만) 암벽 등반하듯이 올라가야 하는데, 그 앞에 내려주니 누나를 따라 자기도 기어올라간다. 워낙 기어오르는 데는 재주를 보이는 편인 데다, 맨발이니 미끄러지지도 않고 잘 올라간다. 그래도 가파르고 꽤 높아서 어른인 나도 긴장하고 올라가야 하는데, 둘째가 끝까지 올라갈 줄은 몰랐다.  옆에서 보던 다른 엄마들이 놀라며 몇 개월이냐 묻는다. 13개월이라는 나의 대답에 한 번 놀라고. "걸을 줄 아는 거죠?" "아니요 아직 못 걸어요^^;" 그런 내 대답에 다시 한번 놀란다. 


그런데 사실 나도 좀 놀랐다. 매번 집안이나 키즈카페처럼 매끄럽고 평평한 곳, 혹은 안전하게 매트가 깔려 있는 곳에서만 그렇게 기어오르는 것을 보다가 거칠고 상대적으로 안전하지 않은 곳에서 기어오르는 아이를 보는 마음은 사뭇 달랐다. 그런데 아이는 그 둘의 차이를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한 번 시도해 보고는 자신감이 붙었는지 두 번째 세 번째는 일도 아니라는 듯 올라간다. 


그러다 겁도 없이 미끄럼틀도 타겠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집에 있는 미끄럼틀을 워낙 잘 타서 지난번 놀이터에 나왔을 때 미끄럼틀을 한 번 태워보았는데, 집에서처럼 엎드려서 앞으로 내려오던 아이는 가파른 부분에서 무서웠는지 손을 짚고 말았다. 그 바람에 앞으로 고꾸라져 머리가 쿵하고 부딪히며 크게 울음을 터뜨렸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엔 미끄럼틀 타는 것을 말리려고 했는데, 아이가 망설임 없이 들어서는 바람에 한 발 늦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얼른 밑으로 내려가 기다리는데 놀랍게도 아이가 부드럽게 슝~하고 미끄러져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지난번과 같은 자세로 내려왔는데 이번에는 슈퍼맨 자세를 유지하며 자신감 있게 내려왔다.  거기서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그런 아픈 경험을 하고도 용기 있게 다시 미끄럼틀을 타겠다고 나선 것도, 지난 실패를 통해 무언가를 터득했는지 같은 자세로도 고꾸라지지 않고 잘 타고 내려온 것도 새삼 신기했다.


그렇게 몇 번이고 암벽(?)을 기어올라 미끄럼틀을 탄 아이는 어느새 손발이 새카매졌다. 맨발로도 별로 아파하지 않는 것 같아서 이번에는 바닥에서 걸음마를 시켜보았다. 집에서도 가끔 2~3걸음을 겨우 떼는 아이였다. 첫째는 이맘때 집에서 곧잘 걸어도 밖에 나오면 쉽사리 걸음을 떼지 못했었는데 (신발 탓이었나.) 이게 웬걸 집안에서보다 더 잘 걷는 것 아닌가. 걸음수도 훨씬 많이 그리고 훨씬 더 안정적인 자세로 걷는다. 날 뭐 얼마나 더 놀라게 할 셈이지? 오늘 아침에 집에서 걸음마를 시켜보았을 때도 3걸음을 채 떼지 못하고 넘어지고 말았었는데, 놀이터 나와서 갑자기 애가 큰 것 같다.


그렇게 걸어서 망설임 없이 모래밭으로 향한 아이는 모래를 연신 헤치며 신이 났다. 그런 아이를 보고 있자니 새삼 언제 이렇게 컸나 싶다. 미끄럼틀에서 넘어져 울던 지난주보다도, 몇 걸음 떼지 못하고 넘어지던 오늘 아침보다도 너는 또 자랐구나.


놀이터에는 다양한 놀이기구들이 있고, 같은 놀이기구라도 아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즐긴다. 그렇게 노는 모습을 보면 아이가 큰 것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못 타던 기구를 타게 되고, 그렇게 타게 된 기구를 또 다른 방식으로 놀게 되는 아이. 가파르다고 절대 안 타던 미끄럼틀을 어느 날 갑자기 용기 있게 타고, 앉아서만 타던 그네를 서서도 타게 되는 첫째처럼 말이다. 


얼마 전 아파트에서 주차 가능 대수를 늘리기 위해서 놀이터를 없애는 방안을 추진하려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주차공간이 늘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나도 같은 마음이지만, 그 방법으로 놀이터를 없애는 것에는 씁쓸한 마음이 남는다. 아이들은 놀면서 자라니, 놀이터는 아이들이 자라는 공간이다. 아이들이 자라는 공간을 없애고 차를 쉬게 할 공간을 만든다는 것은 어쩐지 아이들이 차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실 반려견 동반이 가능한 곳은 점점 늘어나는데, 아이들은 안 되는 노 키즈존이 점점 느는 것만 봐도 이 사회가 아이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그래도 놀이터는 지켜주자. 나는 애 키우면서 놀이터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싶은데 나만 그런가. 지금도 내 아이가, 아니 수많은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크고 있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니 어른들이 놀이터를 지켜줬으면 좋겠다. 꼭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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