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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Sep 06. 2022

애 키우다 화가 나면 공원에 가세요.

어느 공원 예찬론자의 고백

아침 등원 준비시간. 둘째가 첫째가 먹고 있던 시리얼을 와르르 엎었다. 엎어진 건 시리얼인가 내 마음인가... 잠시 멍하게 서있다가 첫째에게 시리얼을 다시 말아주고, 주저앉아 행주로 바닥을 닦았다. 행주로 시리얼은 주어 담았는데, 마음은 미처 주어 담지 못했나 보다. 안아달라고 우는 둘째가 와서 미끄러워진 바닥을 밟고 넘어질까 봐 신경이 곤두섰다. 곤두선 신경에는 걱정보다 짜증이 앞섰던 것 같다.


간단하게 먹었는데, 전혀 간단하지 않았던 아침식사를 마치고 첫째 옷을 입히고 머리를 묶어주고 있었다. 장난감에 실증난 둘째가 다시 안아달라고 징징거리기 시작한다. 머리를 땋아주고 있었는데 둘째가 매달리자 땋고 있던 머리가 망가질 것 같아서 또다시 짜증이 솟구쳤다. 양갈래로 고작 두 번만 따면 되는 것을 그 머리를 해주는 동안 둘째를 몇 번이나 떨어트리려고 왔다 갔다 했는지 모른다.


결국 머리 묶어주는데 한참이 걸렸고, 미처 다 땋아주기도 전에 다시 와서 매달리는 둘째에게 버럭 화를 내버렸다. 한쪽 팔에 매달리는 아이를 살짝 밀쳐내려다 아이가 뒤로 넘어졌고, 그 바람에 머리를 자동차 장난감에 쿵하고 박았다. 아이는 그때부터 미친 듯이 오열하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겨우 주어 담아 가라앉은 마음의 먼지들이 다시 소용돌이쳐 흙탕물이 된다.  시커메진 마음에 우는 아이를 붙들고 못난 말을 내뱉는다. 시커먼 말들이다.


첫째 머리를 다 묶어주었으면 둘째를 안아 달래주었어야 했는데, 마음의 흙탕물은 그런 마음조차 보이지 않게 짙었다. 오열하는 아이를 소파에 팽개치듯 내려놓고 세수를 하고 옷을 입었다. 그러는 동안 아이는 나를 쫒아다니며 더 크게 울어댔다.


등원 준비를 마치고서야 둘째를 안아 올렸고, 그제야 울음을 그친 덕에 첫째가 눈에 들어왔다. 나도 너무 힘들어서 그랬지만 미안한 건 미안한 거다. 엄마의 시커메진 속을 숨죽여 지켜보던 첫째에게 미안하단 말을 하며 한 번 꼭 안아주고선 유치원에 들여보냈다. 그리고 나는 둘째가 탄 유아차를 밀며 곧장 집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시커메진 이 마음을 원상복구 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공원만 한 곳이 없다는 걸 나는 안다. 2년 전 내가 썼던 글 중에 "공원에 가면 좋은 사람이 된다. (나무, 물, 하늘, 햇살의 힘)"이라는 글이 있다. 공원에 나가서 햇살을 쬐고 나무, 물, 하늘 같은 것들을 보다 보면 친절한 마음이 생겨 좋은 사람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 말들을 믿는다.


공원 쪽으로 방향을 틀자마자 아이는 기분이 좋아졌나 보다. 유아차 손잡이를 잡고 연신 몸을 좌우로 흔들며 춤을 춘다. 공원에 들어서서는 모르는 할아버지께 손인사를 건넨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도 벌써 가라앉기 시작한다. 먼저 공원 카페에 들러 아이는 시원한 보리차를 나는 아이스커피를 사들고 시커메진 마음에 들이붓는다. 그러고는 가을볕에 마음을 말린다. 따땃한 볕에 마음이 마를 동안, 살랑거리는 가을의 공기는 마음에 바람의 향기를 입힌다. 


본격적으로 이곳에 눌러앉아 마음을 정화할 생각에 정자로 향한다. 아이를 정자에 내려놓고 나도 벌렁 누워본다. 아 좋다. 가만히 멈춰 보니 나무도 그들이 만드는 그림자도 그 위에 하늘도 한결 선명하게 다가온다. 아이는 정자 위로 이따금씩 올라왔다가 사라지는 개미들을 쫒느라 여념이 없다. 짧은 손가락을 뻗어보지만 잡을 생각이라기보다는 같이 놀자는 말을 손가락으로 건네는 듯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새삼 너의 사랑스러움이 다시 선명하게 다가온다. 맞아, 넌 이렇게 귀여운 생명체였지. 그런 너를 안고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 사랑한다는 말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게 한참을 정자 위에서 뒹굴거리다, 공원을  바퀴 돌아보려 일어났다. 너에게 바람에 떨어진 잎사귀들을 주워주고, 앙증맞은 도토리들을 쥐어주며 웃는다. 그러자  모습을 보며 지나가던 할머니가 아이에게 인사를 건네신다. 아이가 13개월이란 나의 대답에 자기도 22개월짜리 손주를 돌봐주고 있다면서 "~ 예쁜데, ~ 힘들죠?" 질문이지만 공감의 말을 건넨다. 왜였을까 별말 아닌데  말이  순간 그렇게 위로가 되었다. "그래도 이렇게 날이 좋아 공원에 산책 나오니 얼마나 좋아~ 요맘때 너무 이뻐 살아있는 인형이야 인형~!" 하시며 가시는데, 새삼  말이  맞다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예쁜 아이와 공원에 나오니 얼마나 좋은가. 분에  순간이 행복임을 깨닫는다.


그렇게 공원에서 나의 맘은 원상복구 정도가 아니라, 흙탕물을 털어내고 깨끗하게 세탁한 새하얀 셔츠가 된다. 아마 아이의 마음도 그러했나 보다. 유아차에 앉은 네가 별 이유 없이 자꾸만 까르르까르르 웃는다. 네 웃음소리 덕에 나도 웃는다.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너이지만, 네 옹알이가 꼭 "여기 봐봐!"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그런 네 손가락 끝을 따라가 보니 어여쁜 꽃이 피어있다. 푸르른 나무가 잎사귀를 살랑거리고 있고, 눈부시게 푸른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웃고 있다.


확실하다. 공원에 오면 좋은 사람이 된다. 그것은 나무, 물, 하늘, 햇살의 힘이고 누군가의 따스한 말의 힘이고 아이의 웃음의 힘이다. 공원에는 그러한 것들이 있어서 폭풍이 휘몰아친 마음마저 말끔해지는 것이다. 마음이 시커메진 날이면 볕 좋은 공원에 나와야겠다. 아니 그냥 공원에 자주 나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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