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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Sep 14. 2022

아들 키우는 값

아이 몸의 상처가 엄마 마음에 흉터를 남길 때

여느 때와 다름없는 주말 아침이었다. 토요일이라 남편이 아이들을 보고 나는 늦잠을 좀 자고 있었다. 무슨 이유였을까. 요란하게 노는 아이들 소리에 나도 이제 슬슬 일어나야겠다 싶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머리를 묶고 있었는데 남편이 둘째를 안고 안방으로 들어왔다. 일어나서 애 좀 봐봐야 할 것 같다는 남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시선은 아이의 이마를 향했다. 오른쪽 눈썹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누나 침대에 보조 계단을 밟고 올라가다가 계단이 미끄러지면서 넘어져 침대 프레임에 이마를 찧고 말았단다. 


얼마나 다친 건지 제대로 보기 위해 밝은 거실로 나왔지만, 보긴 보아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둥지둥거렸다. 아이의 거센 울음소리와 붉은 피가 올라오는 상처에 남편도 나도 잠시 사고가 정지했던 듯하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어느 병원에 가야 하는 거지? 질문은 맴도는데 머릿속에 답은 떠오르지 않는다. 꿰매야 하는 건가? 이 정도는 안 꿰매도 되는 건가? 이 역시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응급실로 가기로 한다. 마침 우리 집 바로 옆에 대학병원이 있어, 응급실이 제일 가깝기도 했다. 


일단 남편이랑 둘째를 응급실로 보내고 (남편이 아이 다치는 상황을 보았으니 상황설명이 더 잘 될듯하여) 내가 집에서 첫째를 보려고 했다. 짐을 챙겨주고 응급실 가서 연락하라고, 필요하면 첫째 준비시켜서 가겠다고 했는데 내 품에서 진정되었던 둘째가 아빠 품으로 가자마자 다시 울기 시작한다. 나를 보며 손 내미는 것을 보니 엄마에게 안기길 바라는 모양이다. 결국은 내가 둘째를 안고 병원으로 향했다. 남편도 따라오고 싶어 해서 내복 차림의 첫째도 동행했다. 


그렇게 나는 일어나자마자 세수도 못한 채 (나는 모나리자라 집 앞 슈퍼에 갈 때도 눈썹은 꼭 그리는데 눈썹 그리는 것은 꿈도 못 꾸고) 얼른 옷만 갈아입고 나가는 모양새가 되었다.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에 가는 일은 처음이라 그 자체 만으로도 긴장인 데다 아이 상태가 어느 정도인 건지 어떻게 치료가 진행되어야 할지 예상조차 할 수 없어 더 긴장된 상태였다. 그러면서도 내 품에 안긴 아이가, 내 심장에 머리를 기대고 안겨있는 아이가 나의 긴장감을 느낄까 봐 본인도 아프고 무서울 텐데 내 긴장감을 느끼고 더 무서워하게 될까 봐 그게 또 걱정이다. 그래서 괜히 심장이 빨리 뛰지 않게 하기 위해, 태연한 척을 하느라 애를 먹었다. 


응급실은 따스할 수 없는 곳이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응급실 한쪽 구석에 죄인처럼 앉아있었다. 엑스레이를 찍고 와야 해서 아이는 또 한바탕 울었다. 다시 응급실로 돌아와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다행히 그사이 아이는 잠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오전 낮잠 시간이었다. 품에 잠든 아이를 안고 있는데 뜬금없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바로 어제, 첫째 등원 준비하느라 울고불고 매달리는 둘째를 뿌리치며 안아주지 않았는데 오늘 이렇게 한참을 아이를 안고 있게 되는구나. 어제 안아주지 않고 아이에게 화를 내서 내가 이렇게 벌을 받나 싶었다. 늘 무겁다고만 생각한 아이가 하나도 무겁지가 않다.


아이 상태를 보신 선생님이 봉합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진단은 일찌감치 내려주셨지만, 주말이라 상처를 꿰매주셔야하는 성형외과 선생님이 한 분 밖에 안 계셔서 오래 걸릴지도 모른단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남편에게 첫째와 집에 가있으라 했지만 남편은 기다리는 쪽을 택했다. 다행히 머리뼈에도 이상이 없고 뇌도 이상이 없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시름 놓았지만 밀려드는 환자들에 다시 심난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게다가 아이를 꿰매려면 수면마취를 해야 하고 수면마취를 하면 이러이러한 부작용이 있으며(토를 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하셨다.) 수면마취가 깰 때까지 기다렸다 가야 하기 때문에 훨씬 더 오래 걸릴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심난해진 마음을 더 어지럽게 휘젓는 그 말들을 애써 기억하려고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경청했다. 수면 마취 후에 아이를 깨울 때는 흔들면 안 되고 주물러 주어야 한다. 토할 수도 있으니 옆으로 뉘어야 한다. 속으로 계속 되뇐다. 


드디어 여름이(둘째 이름) 차례가 되었다. 한쪽에 마련된 침대에 뉘었는데 처음엔 어리둥절하더니 이내 울기 시작하는 아이에게 마취주사를 놓았다. 안아주니 금세 진정되었고 약기운이 도는 듯하여 침대에 다시 내려놓았는데 울지 않는다. 코에 호스를 꽂고, 손가락에도 기계와 연결된 집게를 집어놓아도 아이는 가만히 있는다. 그 모습이 괜히 슬프다. 수면마취지만 아예 잠드는 건 아니라고 했다. 어른들이 술 마신 것처럼 헤롱헤롱 해서 고통을 덜 느끼는 거라 했다. 눈썹에 마취 주사를 놓는데도 울지 않는다. 초점이 없는 눈에 간간히 무어라 웅얼거리는 소리가 애처롭다. 


누군가 살을 꿰매는 것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다. 성형외과 선생님은 상처부위의 눈썹을 깎고 본격적으로 꿰매기 시작하셨다. 둥글게 생긴 바늘이 살을 뚫고 들어갔다가 다시 뚫고 나올 때마다 나도 모르게 몸이 움찔움찔한다. 아이도 아는 건지 연신 뭐라 웅얼거린다. 그 소리에 몇 번이나 고개를 돌렸다. 보고 있자니 내 심장이 아프다. 실은 몸이 아니라 심장이 움찔움찔했던 것 같다. 작은 싱글 침대를 반도 차지하지 못하는 작은 몸이 더 작게 느껴진다. 그렇게 침대에 늘어져있는 아이의 몸이 자꾸만 슬프게 느껴진다. (그래도 긴장감에 눈물은 안 나오더라.) 다 꿰매고 이틀마다 동네 아무 외과에 가서 소독받으시고 일주일 뒤에 실밥 뽑으면 된다는 간략한 설명을 하는 의사 선생님의 표정은 시큰둥했다. 그럼에도 꾸벅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선생님도 가버리시고 침대에 휑하니 아이만 남겨졌다. 한동안 들여다보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너무 바빴다.) 아까 말씀하신 대로 잠들면 안 되니 연신 아이 이름을 부르며 팔다리를 주물러본다. 아이에게 잘했다고 다 끝났다고 이야기해보지만 아이는 여전히 초점이 없다. 그렇게 한참을 주무르는데 간호사분이 오셔서 호스와 손가락에 꽂아놓은 것을 빼주셨다. 다시 원래 자리로 가서 기다리시면 된다기에 아까 기다리던 그 의자로 돌아왔다. 허겁지겁 담당자분이 침대를 마련해주셨지만, 이내 팔이 빠져 고통을 호소하고 계시던 아저씨가 오셔서 침대를 양보했다. 내 품에 안겨 있으니 자꾸 자려고 하는 아이를 억지로 움직여보고 주무르면서 아이 이름을 계속 불렀다. 


그렇게 한참을 애를 쓴 끝에 아이는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듯, 손가락으로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옹알이를 했다. 그 모습을 본 담당자분이 처음 진찰해주신 의사 선생님께 아이 상태를 보여드렸고 퇴원해도 좋다는 말과 함께 약을 어디서 받아가야 하는지, 후에는 어떻게 처치해야 하는지, 문제가 생기면 어디로 연락을 해야 하는지 설명을 듣고서야 응급실을 나설 수 있게 되었다. 이미 점심때가 훌쩍 지난 때였는데, (그 사이 남편과 첫째는 점심을 먹고 왔다.) 배가 하나도 고프지 않았다. 아침부터 그 난리를 치르고 나니 집에 돌아와서도 나는 한참을 멍하게 있었던 것 같다. 저녁때쯤 되니 응급실에 갔다 온 일이 아득한데도 쉽게 붙들어지지 않는 마음이다.


그렇게 이틀마다 정형외과에 가서 소독을 받았고, 드디어 실밥을 뽑는 날!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날 아침 오픈런으로 병원에 가서 실밥을 뽑았다. 아마도 나는 그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나 보다. 응급실에 다녀온 이후로는 아이가 눈에 안 보이는데서 우는 소릴 하면  몸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원래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타입이었는데) 약간 트라우마처럼 아이가 또 다칠까 봐 긴장한 상태에 있었던 듯하다. 그러다 아이가 실밥을 뽑으면서 내 긴장도 덩달아 풀렸나 보다. 바로 그날 저녁부터 몸이 안 좋기 시작하더니 이내 감기 몸살이 세게 덮쳤다. 추석 연휴에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는데 그 정도 긴장감으로는 미룰 수 없는 감기였던 듯하다. 


아이의 안부를 묻는 지인들에게 아들 키우는 값 이렇게 한 번 치렀다고 농담처럼 이야기하곤 했지만 내 마음은 웃어넘길 수 없게 아팠나 보다. 아이의 상처 하나가 내 심장에도 그렇게 흉터를 남겼나 보다. 사실 뇌가 잘못된 것도 아니고 머리뼈에도 이상이 없으니 이만하길 얼마나 다행이냐며 감사한 마음도 분명 있었고, 앞으로 더 한 일들이 많을 텐데 이 정도로 이렇게 몸살을 앓아서야 되겠나 싶지만 엄마의 마음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이것도 여러 번 겪으면 의연해지려나. 근데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 정말. 아프지 말자 여름아... 그리고 자꾸 식탁의자를 발판 삼아 식탁에 올라가지 말아 줄래... 제발...


ps: 사실 개인적으로 아들 딸 구분 짓는 걸 안 좋아하는데 제목을 저렇게 정한 이유는 아이가 눈썹이 찢어지고 꿰매게 되면서 주변에 같은 상황을 (아이 얼굴 어디가 찢어져서 꿰매 본) 겪어본 엄마들에게 조언도 구하고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그들이 모두 '아들' 엄마들이었어서 그랬다. 나도 첫째는 딸인데 지금까지 딸은 살을 꿰매 본 적은 없다. 내가 둘째를 갖게 되었을 때 아들 엄마들이 그렇게 아들은 딸과 다르다며 힘들거라 입이 닳도록 이야기하더니 이런 걸 두고 그런 거였나 하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들이라서, 혹은 딸이라서 라기보다는 모든 게 '애바애'('케이스 바이 케이스'처럼 애도 애들 마다 다 다르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인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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