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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Sep 20. 2022

엄마라는 직업에서 이직하고 싶다.

힘들면 누구나 한 번쯤 이직 생각하잖아요.

남편은 결혼 후 두 번의 이직을 했다. 두 경우 모두 밥 먹듯 하는 야근과 잦은 출장 때문이었다. 나는 가정주부라는 직업을 가지고 가사와 육아를 하고 있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출근도 없고 퇴근도 없는 24시간 풀 근무제이다. 그런데 월급도 없고 휴가도 없다. 근무량으로 보나 근무강도로 보나 이런 3D업종이 없는데, 진짜 문제는 이직을 할 수 없다는 데 있다. 퇴직도 안된다. 가끔 그 사실이 소름 끼치게 무서울 때가 있다.


평생을 엄마로 살아가야 하는데, 이쪽 직종은 업무에 적응할라치면 (아이는 계속 큰다.) 새로운 업무가 주어지므로 적응이랄 게 없이 늘 신입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둘째는 그래도 신입처럼 어버버 하지는 않게 되지만 애들마다 다 성향이 다르므로 결국은 새로운 업무일 때가 많다. 그렇다 보니 일을 잘 처리했다고 여겨지는 경우가 드물고, 잘했다는 기준이 모호하므로 내가 잘한 건지 못한 것 지도 잘 모를뿐더러 정보를 습득하면 습득할수록 더 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괴감만 매우 자주 찾아온다. 자기는 정말 좋은 엄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내가 이렇게까지 많이 참고, 오래 애쓴 일이 없었는데 이렇게 열심을 다해도 남의 인정은커녕 나 스스로도 나를 인정해주기가 참 어렵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엄마로써 주부로써 살다가 한 번씩 슬럼프가 올 때가 있다. 다른 모든 직장인들처럼 말이다. 엄마인 나도, 주부인 나도 싫을 때. 제발 이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내 행복을 찾아 떠나버리고 싶을 때가 찾아온다. 미안하지만 그럴 땐 아이들도 더 이상 예쁘지가 않고, 남편도 밉다. 그런데 모두에게 당연하듯 찾아오는 그 슬럼프가 엄마와 아내는 못내 죄스럽다는 게 마음을 더 어렵게 한다. 사랑하는 아이들과 남편을 두고 내가 이런 마음을 가져도 되는 건지, 내가 이렇게 밖에 안 되는 못난 사람인 건지 남 탓도 내 탓도 할 수 없음에 더 답답해지기만 한다.


나에게도 얼마 전 그런 마음이 찾아왔다. 나는 좋은 마음이던 힘든 마음이던 그때그때 표현하는 사람인데 잘 정리가 되지 않을 때는 글로 써보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되길래 와인을 벌컥벌컥 마시며 (참고로 나는 알코올에 아주아주 취약하다.) 문장으로 그 마음들을 뱉어보았다. 아래 문장들이 그때 뱉어낸 내 마음들이다.


"엄마, 주부 그만하고 싶다. 치워도 치워도 치워지지 않는 이 집도 싫다. 잘했을 때가 없다. 맨날 안 자고 우는 둘째도 지겹고, 조금만 언성을 높여도 오늘은 아빠랑 자겠다고 협박하는 첫째도 지겹다. (그래 놓고 아빠랑 잔 적 없다. 맨날 나랑 잔다.) 혼자 살고 싶다. 맨날 해도 티도 안 나는 집안일해봤자인데, 안 하면 그지 꼴 되는 것도 지겹다. 재미도 없는 거 애들이랑 놀아주는 것도 지겹다. 맨날 애들 흘린 거 기어 다니면서 닦는 것도 지겹다. 맨날 청소기 돌리고 빨래하고 장난감 치우고 또 치우고 또 치워도 금방 또 엉망 되는 것도 어이없다. 애들 때문에 나 하고 싶은 것도 맨날 못하는데 맨날 애들 거 사느라 돈 쓰고 시간 쓰고 애 좋아하는 거 해주려고 아등바등 거리는 것도 싫다. 하기 싫은 밥 하는 것도 지겹고 그마저도 맨날 대충 똑같은 거 먹여서 미안해하는 것도 싫다. 밥 먹여주는 것도 싫고 먹이느라 엉망 된 거 치우는 것도 싫다. 그러다가 내 밥도 제대로 못 먹는 것도 짜증 난다. 감기가 한 번 걸렸는데 낫질 않는다. 쉬어야 낫는데 쉬질 못하니까 안 낫고 안 나은 상태로 일은 계속해야 하니까 또 안 낫는다. 짜증 난다. 혼자 있고 싶다. 다 지겹다. 나한테 그만 들러붙었으면 좋겠다. 나도 출장 가고 싶다. 내가 남편보다 영어도 잘하는데."


이것은 슬럼프 구렁텅이에 빠진 날것의 나의 마음이다. (보통은 이런 마음이 아니다.) 나도 내가 왜 이렇게까지 지치는지 잘 모르겠다. 우리 남편은 가사나 육아 참여도도 높고 나에게 무척이나 잘해주는 사람인 데다, 이 글을 쓰기 직전 주말에 남편이 (애들 없이 나 혼자) 호캉스도 보내줬는데 나는 왜 쉽사리 이 슬럼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나약한 사람인 걸까. 그렇게 자책도 해보지만 그렇게 자책을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기에 슬럼프 극복에 도움 되는 방법은 결코 아니다.


뭐 개인적인 성향이 영향을 미치기는 할 것이다. 나는 반복되는 일상을 힘들어하는 자유분방한 스타일인 데다 하고 싶은 게 많은 욕심쟁이다. (좋게 말하면 다재다능... 아닌가....ㅋㅋㅋ)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는 사람이면서, 목표를 달성하는 것에 큰 기쁨을 느끼고 다른 사람의 인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찌 보면 육아와 가사에 맞는 인재는 아닌 듯 하지만, 또 반대로 생각해보자면 성향에 꼭 맞는 일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며 설사 성향에 제법 잘 맞는다 하더라도 안 힘든 일이 어디 있겠느냐는 말이다.


얼마 전, 친한 부부와 (내년쯤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부부였다.)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런데 자꾸만 육아의 힘든 부부만 이야기하게 되는 것 같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육아라는 게 힘든 것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어서 소상히 이야기할 수 있는데, 좋은 것은 추상적이라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아 자꾸 힘든 것만 얘기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를 통해서, 엄마라는 이름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놀라운 것들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 행복들은 고된 등산을 해야만 정상에서 볼 수 있는 황홀한 풍광과 같다. (그것도 날씨가 좋아야 볼 수 있다;;;) 그 멋진 풍광을 보기에 앞서 나에게 닥쳐오는 현실적인 고난들에 산을 오르면서 나는 자꾸만 넘어지고 마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한 번씩 슬럼프가 오기는 해도 또 지나가고 나면 아이들이 죽도록 이쁘고 남편에게 나는 기본적으로 행복하다고 말할 정도로 상태가 좋을 때도 많다. 문제는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이 슬럼프 앞에서 나는 이직이나 퇴직을 할 수 없으니 극복 방법을 좀 찾으면 좋으련만. 이 엄마(주부)라는 이름이 무겁고 따갑게 느껴질 때에도 나는 이 이름을 벗을 수 없다는 것이 더없이 무섭다. 그 무서운 이름 앞에 한없이 작아지던 나에게 위로가 되었던 말이 있었다. 제주 여행을 갈 때마다 반갑게 들르는 책방이 있는데, 그 책방 사장님이 엽서에 써주신 말들이었다.


"새미님제주는 오늘 강풍주의보래요. 계절이 바뀔 때는  바람이 많이 불어요. 살면서 어떤 단계를 건너갈 때마다 이런 바람을 맞았던  같기도 합니다. 바람이 멎고 나면 다른 곳에 도착해 있곤 했죠. 잘하고 있어요. 새미님. 그러니 의심하지 말길 바라요. 지금 미님 마음을 흔드는  바람이 멎고 나면, 분명 다른 세계에 당도해 있을 거예요.^^"

-다정을 담아, 제주에서 책자국 드림


그 엽서를 읽자마자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이 엽서를 냉장고에 붙여두고 가끔씩 읽어보는데, 그때마다 눈물이 울컥울컥 올라온다. 잘하고 있다는 말이 필요했던 걸까. 거센 강풍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흔들리는 나의 마음을 도닥여주는 말들. 나는 다른 세계에 당도하기 위해 이 시간들을 겪는 것이라는 잊고 있던 사실을 다정하게 되짚어주는 말들. 어쩌면 우리에게는 그런 말들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직장에서 너무 힘들면 누구나 이직을 꿈꾸고, 때로는 실제로 이직을 하기도 한다. 엄마도(주부도) 마찬가지다. 너무 힘들면 우리도 이직을 꿈꾼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늘 이직이 아닌 '버티기'를 선택하는 수많은 엄마들(주부들)에게 잘하고 있다고 이야기 해주자. 그들이 바람에 세차게 흔들리더라도 응원해주자. 곧 그들은 다른 세계에 당도할 멋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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