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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Aug 30. 2022

밥 하다가 현타 온 썰

이것은 누굴 위한 두부부침인가

나는 요리에 취미가 없는 편이다. 즉, 요리라는 활동이 즐겁지 않다는 뜻이다. 결혼 전 한 때 집밥 고수들을 동경하던 때가 있었다. 나물을 맛깔나게 무치고, 각종 장아찌들을 직접 담가먹으며, 자기만의 레시피로 중무장한 그런 주부 9단 분들 말이다. 하지만 동경은 동경이었을 뿐, 결혼과 함께 나도 주부가 되고 밥상을 차리면서 알게 되었다. 이 길은 나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다행인 것은 가사라는 노동에서 밥을 하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내가 아직은 주부로 살아갈 수 있는 듯하다.) 나는 청소는 좋아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쓸고 닦는 것보다는 '정리'를 좋아한다. 좋아하다 보니 잘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남편이 그런 분야로 일을 해보라고 할 정도로 (그맘때 집을 정리해주는 티브이 프로그램이 있었다.) 나름 재능도 있다. 하지만 요리는 아니다. 재능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레시피 보고 따라 하면 얼추 그 맛이 나게 만드는 편이다.) 좋아하지를 않으니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고 그러다 보니 실력이 늘리 만무하다. 


주부로서 가장 하기 싫은 일이 무어냐 묻는다면 나는 '밥하는 거'라고 말하겠다. 밥하는 게 세상 제일 싫다. 그래서 자주 생각한다. 하루 한 끼만 먹고살면 좋겠다고. 아니, 그냥 알약 같은 게 나와서 그거 한 알만 먹으면 식사가 되는 거였으면 좋겠다고. 그러다 오늘은 저녁 메뉴를 고민하다가 이런 생각까지 했다. 만약 인간이 음식을 먹지 않고, 식물처럼 광합성으로 자라고 에너지를 얻는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주거 형태도 많이 달라졌겠지. 이렇게 아파트에 살지 않을 거야. 천장이 뻥뚤린 해가 잘 드는 가옥구조를 선호하게 될 거야... 그러면... 아 맞다. 저녁 뭐 먹지..?


내 머리에서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니 5살 딸에게 먹고 싶은 것을 물어본다. 

"가을아 저녁에 뭐 먹고 싶어...?" 

"돈가스!"

"돈가스는 없고, 동그랑땡 있는데 동그랑땡 먹을래?"

"좋아!" 


그렇게 메뉴가 정해졌으니 오늘 저녁은 집밥을 먹기로 한다. 안 그랬으면 마음에 드는 식당을 찾아 배달을 시키거나, 퇴근하는 남편에게 포장해 올 것을 부탁했을 것이다. 우선 동그랑땡을 굽고, (반조리식품이 있었다.) 동그랑땡만 할 순 없으니 다른 반찬을 만들어보기로 한다. 냉장고를 들여다본다. 두부가 있다. 남편이 좋아하는 두부를 계란물을 묻혀 부쳐주기로 하자. 그렇게 나의 '요리'가 시작되었다.


신혼 초에는 그래도 곧잘 음식을 만들어주곤 했었는데, 애를 낳고는 요리하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가사만을 할 때는 멀티로 일을 진행할 일이 잘 없었는데, 가사에 육아를 병행하다 보니 거의 모든 일을 멀티로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게다가 아이가 하나일 때도 요리가 힘들었는데, 애가 둘이니 멀티라 함은 2가지를 한꺼번에가 아니라 3가지 4가지를 한꺼번에로 바뀌었다. 그러니 요리가 더 쉽지 않다. 요리를 하면서 첫째가 찾는 물건을 찾아주고 아이가 하는 놀이를 보며(쳐다볼 때까지 와서 자기 좀 보라고 얘기한다.) 리액션을 해주어야 하고, 나에게 징징거리며 기어 오는 둘째에게 뭐라도 쥐어주며 관심사를 돌려야 한다.


저녁식사는 첫째까지 하원 한 뒤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꼼짝없이 애 둘을 보면서 요리를 해야 한다. 오늘의 두부부침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두부를 자르고 계란물을 만들고 있는데 첫째가 다가와 관심을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자기도 함께 요리에 참여하고 싶단다. 무엇을 시켜볼까 고민하다 파 썰어 넣은 계란물을 휘휘 젓는 것을 시켰다. 그러면서 나는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달군다음 부침가루를 그릇에 담고 있는데, 첫째가 계속 자기가 얼마나 잘 젓고 있는지 보라는 것이었다. 나도 봐주고 싶었는데 문제는 둘째가 다가와 징징거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엄마랑 누나가 다 부엌에 있는데 거실에서 혼자 놀리 만무하다. 뜨거운 불에서 음식을 해야 하므로 위험하니 유아 식탁의자에 앉히기로 한다. 의자를 끌고 와 아이를 앉히는데 첫째는 내가 안 본다고 성화다. 


이제 재료가 다 준비되었으니 본격적으로 두부를 부쳐보기로 한다. 썰어놓은 두부에 부침가루를 묻히고 계란물에 퐁당 빠트린 다음 프라이팬으로 이동하면 되는데, 첫째도 참여하고 싶음으로 두부에 부침가루를 묻혀 계란물에 퐁당 빠트리는 작업을 시켰다. 온데 부침가루가 튀고 부엌은 엉망이 되어 가지만 그런 것쯤은 내 멘탈이 감당할 수 있었다. 내가 감당하기 힘든 건 소리를 빽빽 질러대며 울기 시작한 둘째였다. 숟가락을 쥐어주면 잠시, 뒤집개를 쥐어주면 또 잠시 소강상태가 되긴 했지만 아이의 징징거림은 계속되었다. 이미 두부를 프라이팬으로 올리는 작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멈출 수 없다. 빽빽거리는 아이를 옆에 두고 계속 두부를 부친다. 점점 정신이 아득해진다.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건가 싶다. 엉망이 된 손을 씻으러 간 첫째가 자기 수건이 없다며 나를 찾는다. 그 와중에 미안하다며 수건을 찾아 건네준다. 


멘탈이 반 나간 상태에서 두부 부침이 완성되었다. 밥을 밥그릇에 덜고, 김치를 내어놓고 상차림을 하고 있는데 남아있던 멘탈 반마저 탈탈 털려 나가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 찬장에서 그릇을 꺼내다 떨어트려 그릇이 와장창 깨진 것이다. 그릇과 함께 나의 멘탈도 깨져나갔다. 하지만 멘탈은 두 번째 일이다. 아이 둘이 다가오기 전에 빨리 이 깨진 그릇을 치워야 한다. 다행히 둘째는 식탁의자에 올라가 있었고, 첫째는 큰일을 보러 화장실에 가있었다. 둘째에게 장난감을 쥐어주고 얼른 깨어진 그릇 조각들을 줍고 청소기를 밀었다. 어디까지 조각이 튀어나갔을지 모르니 부엌 전체를 꼼꼼히 청소기로 밀고 있는데 첫째가 나를 부른다. 큰일을 다 치렀다는 것이다. (뒤를 닦는 일은 내가 해준다.) 그릇이 깨져서 그러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 그러며 또 미안하다고 했다. 아이는 변기에 앉아 깨어졌다는 그릇이 무엇인지 무척이나 궁금한 모양이다. 깨진 그릇이 어떤 그릇인지 스무고개를 한다. 나는 부엌 바닥을 닦으며 아이에게 그릇에 대해 설명을 한다. 설상가상 바닥을 닦고 전기레인지도 닦다가 손가락까지 데었다. 에이씽... 다 닦고 아이 뒤도 닦아주고 나서야 퇴근한 남편이 들어왔다. 


남편에게 미역국을 먹을 거냐고 물었다. 여러 번 물었는데, 화장실에 들어간 남편이 잘 듣지 못해 대답을 않자 소리를 빽질렀다. "미역국 먹을 거냐고!!!!!!" 그간의 난리통을 알지 못하는 남편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대답을 한다. 그제야 생각났다. 아 내 멘탈. 내가 대뜸 소리를 지르자 첫째가 다가와 내 다리에 매달려 무섭다고 한다. 하... 난 정말 요리가 싫다. 큰맘 먹고 남편이 좋아하는 반찬 해주겠다고 나선 것이었는데, 이게 뭐냐. 결국 퇴근한 남편에게 소리를 빽 지르는 아내가 되었다. 아이에게는 무서운 엄마가 되었고 말이다. 


가족들을 위해서 요리를 하는 건데 이게 과연 가족을 위한 일인가 싶다. 첫째에게 미안하단 말을 하면서, 둘째를 울리면서, 남편에게 소리를 지르면서 저녁밥을 하는 게 맞나. 현타가 뽝 온다. 그 난리를 치렀더니 밥맛이 하나도 없다. 힘들게 만든 두부부침을 맛만 본다고 하나 집어먹고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다행히 남편은 이렇게 부치니 맛있다며 좋아했지만, 내가 한 요리는 웬만해선 다 맛있다고 해주는 남편이라 그런 것이겠거니 싶기도 하다. 


남들은 어떻게 밥을 해 먹고 사는 걸까. 나는 꼴랑 두부부침 하나 하고도 이렇게 탈탈 털리는 건 내가 아직 주부 1단이라서 그런 것일까. 9단의 길은 멀고도 험하구나... 힝... 광합성이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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