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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Aug 25. 2022

닮아서 신기하고 , 달라서 재밌는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가족이고, 서로 닮았지만 남이다.

아이들은 부모를 닮는 경우가 많다. (아닌 부분도 많지만.) 그것은 당연한 듯하면서도 퍽 신기한 일이다. 일차적으로는 외모를 닮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첫째 딸의 경우 이목구비를 따로따로 놓고 보면 다 아빠를 닮았는데, 그것들을 합쳐놓은 이미지는 나를 닮았다. 특히 웃으면 완전 나와 판박이가 된다. 거참 신기한 일이다. (참고로 남편과 나는 닮지 않았다. 이미지가 완전 다르다.)


외모를 닮는 것도 신기하지만 (개인적으로) 더 신기한 건 성격이나 기질이 닮는 경우다. 우리 집 둘째는 이제 갓 돌이 지났다. 그렇게 어린 아기들의 경우 성격이나 기질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많고,  계속 바뀌기도 해서 뭐라고 규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둘째는 돌이 되기 훨씬 전부터 성격이 무척 아빠와 닮았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물론 아빠와는 후천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삶이 다를 테니 앞으로 또 다르게 변할 테지만)


우리 부부가 의외로 자주 부딪히는 지점이 있는데 그것은 서로의 성향이 반대인 부분에서 그렇다. 나는 성격이 급하고 빠릿빠릿한 사람이다. 그와 반대로 남편은 성격이 느긋하고 신중하다. 그런데 둘째가 그런 아빠를 꼭 닮았다. (나와 반대되는 부분이라 내가 더 강하게 느꼈을지는 모르겠다.)


남편도 행동이 매우 느린 편인데, 둘째도 그렇다. 뭐 하나를 집는데도 손이 약간 슬로모션으로 움직인다. 그것도 한 번에 확 잡지 않고 살짝 건드려 보면서 그것을 살피는 시간을 갖고, 본인이 안전하다고 생각이 들면 그때 좀 더 적극적으로 만진다. 엉덩이가 무거워 한 번 자리를 잡으면 많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뒤집기도 늦게 하고, 잡고 서는 것을 할 줄 알게 된 지 오래되었는데도 이제야 겨우 한두 발자국씩 걸음마 떼는 시도를 한다.


처음엔 겁이 많아 그런가 했는데, 그렇다고 하기엔 아무 데나 기어오르는 것을 무척 잘한다. 아주 가파르고 높은 곳에도 망설임 없이 올라간다. 그런데 여기서도 아빠를 닮아 신중함을 발휘한다. 대부분의 아기들은 기어오르는 것을 잘해도 내려오는 것을 잘하지 못한다. 그래서 낙상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데, 둘째는 아무 데나 잘 기어오르는 것에 비해 떨어진 적이 거의 없다. 왜냐하면 내려오려고 시도하다가 발이 잘 닿지 않거나 내려오기 어렵다는 판단이 서는 경우, 다시 올라가거나 매달려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려오기를 수없이 시도하지만 발이 닿지 않으면 절대 내려오지 않고 수없이 다시 올라간다.


얼마 전에는 범퍼침대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아이를 보았다. 범퍼침대 안에서 바깥쪽으로 나가기 위해 윗면 난간에 오르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범퍼 두께 탓에 안보다 바깥쪽 높이가 더 높아 내려갈 때 늘 발이 닿지 않았다. 그럼 다시 안간힘을 주어 난간으로 다시 오르거나 범퍼침대 안쪽으로 도로 들어가곤 했는데 어느 날은 실수로 범퍼침대 밖에 떨어진 적이 있었다. 우는 아이를 달래며 걱정했던 것도 잠시, 아이는 이후로도 계속 탈출을 시도했지만 한 번도 밖으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그 한 번의 실수로 무언가를 터득한 것일까.) 그렇게 무수히 밖으로 발을 내려보고 또 내려보며 도전에 도전을 거듭한 끝에 아이는 드디어 밖으로 안전하게 나가는 법을 터득했다. 자신의 다리 길이로는 절대 바깥 바닥에 닿을 수 없으니 상체 힘을 이용해 난간에 살짝 매달려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을 터득한 것이다.


나는 성격이 급해 머리보다 몸이 먼저 나가는 편이다. 그래서 여기저기 잘 부딪히고 (그래서 여기저기 멍투성이다.) 쏟고 엎지른다. 행동이 빨라 일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편이지만 꼼꼼하거나 신중한 편은 아니라 정확성이나 디테일에서는 완벽을 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남편은 나와 반대로 행동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느리지만 안전하고 확실하게 일을 처리할 때가 많다. 나는 둘째가 그런 남편을 닮아 느리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을 볼 때마다 신기하다. 어쩜 그런 것도 닮는지, 타고난 성품이 어쩜 그렇게 어릴 적부터 발휘가 되는 건지 생각할수록 웃기다.


그래서 벌써부터 앞날이 그려질 때가 있다. "그렇게 뭉그적 거리면서 언제 준비해서 언제 나갈 거야!!!" "그렇게 간단한 숙제를  그렇게 하루 종일 붙들고 있어!!"라고 잔소리하는 내가 보인다. 첫째에게도 '빨리'하라는 하지 말아야지  다짐하지만, 그래도 아침 등원 준비 때마다 습관처럼 "빨리 먹어라." "빨리 입어라." "빨리 일로 와라."  앞에 '빨리' 자석처럼 따라와 붙고야 만다. 하물며 천성이 느린 둘째에게는 오죽하랴... 


그러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에게는 둘째와 비슷한 남편이 있다는 것이다. 신혼 초에는 그 '느긋함'이 당최 이해가 안돼 소리를 빽 지른 적이 많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도 되고 받아들인 부분도 있어서 이전만큼 빽빽거리지는 않는다. 게다가 그의 신중함 덕분에 급하고 덜렁거리는 내가 해결하지 못한 것을 그가 해결해준 경험이 쌓이니 한 편으로는 고마워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니 둘째는 좀 더 편하게 적응이 되지 않을까. 게다가 종종 내가 그를 이해해주지 못하더라도 그를 이해해줄 아빠가 있으니 그것도 다행이라 할 수 있겠다.


지금은 느릿한 너의 행동조차도 그저 귀엽지만 나중엔 분명 나는 너를 무척 답답해할 테지. 하지만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보며 나는  무언가를 배우고 감탄할 게다. 며칠  범퍼침대를 안전하게 넘어가는 너를 너의 우직함에 속으로 박수를 보냈던 것처럼 말이다. 나의 삶에 느긋하고 신중한 사람을 둘이나 붙여주신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게다. 함께 살다 보면 나도 그러한 느긋함을 흉내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렇게 다리에 멍도  줄이고, 흘리는 국물들도 줄이고 말이다.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가족이고, 서로 닮았지만 남이다. 닮아서 신기하고 달라서 재밌는 사이. 우리 네 식구의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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