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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Feb 26. 2023

우리는 팀킬 중...

육아라는 전투 속에서 

남편의 연속적인 두 번의 수술로 (심각한 수술은 아니었지만 한동안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그런...) 내가 느끼게 된 육아의 하중이 늘어났었다. 그 기간이 생각보다 길어지자 지쳐가고 있는 틈을 놓치지 않고, 네 식구에게 감기 바이러스가 휘몰아치게 되었다. 나 아픈 것도 서러운데, 아이 둘의 감기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소아과를 들락거리는 사이, 드디어 그분이 찾아왔다. 몸과 마음이 바닥을 보이고 있으니 제발 충전을 해달라고 빨간불을 깜빡이는 그 이름은 바로 '번아웃'. 그런데 문제는 그분이 나에게만 찾아온 것이 아니라, 나의 전우인 그에게도 찾아왔다. 나는 피부가 뒤집어지고 뒤이어 생리가 찾아오는 것으로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했고, 그는 회복되지 않은 몸에 (가족구성원 중 마지막으로) 감기까지 찾아오며, 우리는 그 피날레를 장식할 화려한 불꽃놀이처럼 서로에게 감정들을 마구 터트려댔다.


다행히 그 불꽃놀이들이 시작됨과 동시에 남편과 나는 우리에게 번아웃이 찾아왔음을 알아챘다. 그리고 자신에게 찾아온 그 번아웃들을 서로에게 소개했지만,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번아웃을 신경 써줄 여력이 없었으므로 각자 잘 살자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육아에 '각자'라는 것은 없었다. 육아는 팀플레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가 되는 순간 끝나는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계속되는 불꽃놀이로 우리는 서로 '팀킬'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육아의 최전방, 온갖 총탄이 빗발치는 한가운데 '내편'으로 서있는 그는 나의 전우이다. (내 휴대폰에는 남편이 '내편'으로 저장되어 있다.) 하지만 번아웃이 찾아오면 나의 총구는 나의 전우를 향하게 된다. 육아라는 전쟁 속에 나 홀로 남겨진 것 같이 느껴지기 시작하면 원망은 쉽게 전우를 향한다. 왜 나를 혼자 두었냐고, 왜 나를 이토록 힘들게 하느냐고 그를 원망하는 것이 가장 쉽고 유일한 길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우가 적이 되면 그 어떤 적보다 위험하다. 우리는 서로의 약한 부분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의 갑옷 사이 여린 살이 드러나 있는 부분을 귀신같이 알고 있다.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우리는 그 여린 살을 골라 할퀴고 쥐어뜯는다. 그 무서운 일은 서로가 주고받는 말 몇 마디에 일어난다. 몇 마디 말로 우리는 서로의 가장 아픈 부분에 사정없이 총알을 쏘아댄다. 잔인한 팀킬이다.


이 팀킬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그것은 '자기만의 시간'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육아는 팀플레이이므로, 한 명이 혼자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한 명이 독박을 해야 한다. 이런 지독한 팀플레이라니... 서로가 조금 떨어져 있기 위해서도 서로가 필요한 상황. 결국 우리는 혼자가 되기 위해서도 서로가 필요하다. 그러니 자기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는 팀킬을 멈추어야 한다.


내가 그에게 와인바에 가서 멍 때릴 시간을 주었더니, 그는 나에게 북카페에 가서 브런치 먹을 시간을 주었다. 한결 나아졌지만 우리 사이에는 아직도 이따금씩 피슝~ 불꽃이 터져 나온다. 한순간에 끝날 불꽃놀이는 아니었던 게다. 하지만 우리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 만큼 그 위험한 팀킬을 서서히 멈추고 있다. 육아라는 전투 안에서 부부는 무서우리만치 끈끈한 팀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우리는 쌍번아웃이라는 위험한 시기를 지나고 있지만, 그 덕분에 네가 내 팀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하는 중이다. 결국 팀킬로 아픈 건 나였다. (그리고 그였다.) 이 팀킬을 멈추면 번아웃도 가겠지. 다시 찾아온다면 제발 번갈아 찾아오기를. 그래서 이런 팀킬만은 피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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