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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Mar 20. 2023

꼭 태어나게 해 준 사람이랑 살아야 돼요?

응? 아 꼭 그런 건 아니지;;;


우리 가족은 동생네와 가까이 산다. 차로는 5분, 걸어서도 갈만한 거리에 사는 데다, 동생네도 만 5살, 만 1살 아이 둘을 키우고 있기에 (우리 집은 만 4살, 만 1살) 왕래가 매우 잦은 편이다. 첫째들은 1살 차이밖에 나지 않고, 심지어 둘째들은 동갑이라 아이들끼리도 만나서 자주 같이 놀곤 한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 이모는 매우 가까운 존재이다. 같이 여행도 자주 가는데, 얼마 전 안면도로 함께 여행을 다녀왔을 때의 일이다. 


동생네 만큼은 아니어도 만만치 않게 가까이 사는 친정엄마 그리고 동생과 아이넷(동생네 둘, 우리 집 둘)을 데리고 안면도로 여행을 다녀왔더랬다. 호기롭게도 어른 셋이 아이 넷을 데리고 떠난 여행에서, 각자 자기 애들 둘 감당하기도 바쁜데 첫째가 또 이모껌딱지가 되었다. 첫째 딸은 이모를 무척 좋아하는데, 어디서든 이모가 있으면 엄마와 하던 모든 것을 이모와 하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그냥 좀 고집을 부리고 안되면 마는 것이 아니라, 이모랑 하겠다고 울고불고 똥고집을 부리는 지경이다. 이번 여행에서도 그랬다. 밥을 먹는 것도, 목욕을 하는 것도, 옷을 입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다 이모랑 하겠다고 한다. 엄마도 안되고, 할머니도 안되고, 꼭 이모여야 한다는 아이... 졸지에 이모는 아들 둘 챙기기도 바쁜데 딸하나를 더 챙겨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래도 이모는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다 해준다. 덕분에 나는 손을 덜었지만 내심 미안하다. 


그렇게 모든 것을 이모와 하겠다고 하는 것은 꼭 이번 여행이 아니어도 평소에도 그렇기 때문에, (어제는 이모와 목욕을 하고 싶다고, 내가 씻겨주는 내내 울었더랬다.) 그러려니 했는데 급기야 여행 둘째 날부터는 자기는 이모네 집에 살겠다고 하는 게 아닌가. 처음에는 나도 그러라며 농담조로 받아쳤었다. 그런 나의 대답이 진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건지 아이는 나와 눈만 마주치면 재차 자기는 이모네 가서 살 꺼라고 강조했다. 그러는 아이에게 계속 알겠다고 대답해 주다가 더 이상 알겠다고 해줄 수 없는 상황이 왔다. 집에 돌아가기 위해 각자 차를 타야 하는 순간, 아이는 자기는 이모네 집에 살 것이기 때문에 이모차를 타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었다. 이모차에는 카시트가 두 개밖에 없어서 안된다고 일축하고 일단 내 차에 태우는 것에는 성공했으나, 아이는 계속해서 자기는 이모네로 가야 한다고 성화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나도 설득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차를 타고 오는 동안 아이와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처음엔 현실적인 문제를 걸고넘어져보기로 했다. 이모네 집에는 가을이(첫째 이름) 침대도, 책상도, 의자도, 옷도 아무것도 없고 가을이 물건들이 다 우리 집에 있는데 이모네 가서 어떻게 살 거냐는 나의 질문에 아이는 대책 없이 괜찮다고만 한다. 물건이야 오빠랑 같이 쓰면 된다는 것이다. 현실직시가 통하지 않자, 나는 감정에 호소해 보기로 했다. 엄마가 보고 싶지 않겠냐고 엄마는 가을이가 보고 싶을 것 같은데 그럼 어떡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이는 그건 별일 아니라는 듯, 이모네로 자기를 보러 자주 오면 된단다. 이토록 확고한 아이의 태도에 나는 결국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나는 아이에게 뭐 때문에 그렇게까지 이모네 살고 싶은 거냐고 물었다. 엄마는 맨날 화를 내는데, 이모는 화를 안내서 좋기도 하고 오빠랑 맨날 놀고 싶기도 하다는 것이 아이의 이유였다. 혼을 내는 사람은 엄마지, 이모가 아니다. 오히려 이모는 엄마에게 혼난 아이를 위로해 주는 역할을 할 때가 많다. 게다가 엄마는 안된다고 하는 것도 많은데, 이모는 아이의 요구를 어지간해서는 다 들어주는 데다 말도 다정하게 해 준다. 막상 같이 살고 이모가 엄마역할을 하게 되면 이모도 혼을 내고, 안된다는 말도 많이 하게 될 테지만 아이는 그런 이모를 겪어본 적 없으니 알 턱이 없다. 오빠와 매일 놀고 싶은 마음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라 아이의 대답에 나는 “그렇구나~”하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긴 운전 시간에도 결국 우리의 대화는 결론을 맺지 못하고 말았다. 아이가 잠들었기 때문이다. 잠들기 전에 아이가 (컵홀더에 꽂아두자는 내 말에도 굳이 자기가 들고 있겠다고 우기다가) 차에 복숭아아이스티를 쏟고, 차에 기름이 떨어졌다는 경고사인이 울리는 통에 내가 멘탈이 붕괴되어 더 이상 그 대화 주제로 돌아갈 수 없었던 이유가 더 크긴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우리는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아니, 저녁식사를 위해 할머니네(나에겐 친정엄마) 도착했다. 저녁을 먹는 사이 아이의 출가 계획은 기억저편으로 넘어간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가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무슨 중대한 비밀얘기라도 해야 하는 것처럼 아무도 없는 할아버지 서재로 나를 몰래 불러내는 아이에게 조금은 놀랄 틈도 없이, 아이는 진짜로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질문을 했다. 


“엄마, (엄마처럼) 날 태어나게 해 준 사람이 있고, 날 태어나게 해주지 않은 사람이 있잖아~

(전자는 엄마인 나고, 후자는 이모를 말하는 듯했다.) 

그런데 꼭 날 태어나게 해 준 사람이랑 살아야 돼?”


엥? 이건 또 무슨 소린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약간은 당황스럽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응? 아 꼭 그런 건 아니지~!”

(그 뒤에 몇 마디를 더 나눈 것 같은데, 앞에 질문에 놀라서 뒤에 했던 말들이 생각나질 않는다.)


왠지 모르게 한번 더 곱씹어 생각을 하게 하는 아이의 철학적인(?) 질문에 일단 아니라고 대답은 했으나, 저렇게 까지 묻는 것을 보니 진짜 어지간히 이모네 살고 싶긴 한가보다 싶었다. 네가 이렇게까지 나온다면 나도 뭔가 너를 당황시킬 최후의 일격을 가해야겠다는 마음이 일었다. 평소 아이는 엄마인 나의 마음을 무척 신경 쓰는(?) 마음이 여린 아이이기에 나는 회심의 미소를 띠며 질문을 던졌다!


“가을이는 엄마보다 이모가 더 좋아?ㅜ”

(마음속은 회심의 미소였지만, 겉으로는 울적한 표정으로)


하지만 최후의 일격은 무슨, 타격은 도리어 내가 받았다. 아이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그런 걸 질문이라고 하냐는 듯한 말투로, 엄마보다 이모가 좋냐는 나의 질문에 “응!”이라는 심플한 대답으로 받아치면서 나를 K.O 시켰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인정할 수밖에... 이모랑 살라고 보내주는 수밖에...


하지만 그날도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헤어졌고, 아이는 다행히도(?) 우리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이후로도 지금까지 아이는 이모네 가서 살겠다는 말없이 우리 가족들과 우리 집에서 같이 잘 살고 있지만 그때 나에게 했던 그 질문은 쉽게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태어나게 해 준 사람과 꼭 같이 살아야 하냐는 너의 그 말이 아찔하고 귀여워 자꾸만 맘속을 맴돈다. 그나저나.. 엄마가 그렇게 화를 많이 내니...?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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