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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May 26. 2023

(감기에) 빼앗긴 들에 봄은 오지 않는다.

소아과를 가다가다 봄을 잃어버린 엄마 이야기.

우는 둘째를 달래며 소아과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나.

3월에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했다. 이제 드디어 아이들 없이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겠구나 벅찬 기대에 차 있었다. (혼자만의 시간 보단 혼자 집안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는 거에 가깝긴 하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적응하면 하고 싶었던 영어공부를 위해 학원을 다니리라 결심도 했었다. (물론 아직까지도 결심에만 머물러있는 상태긴 하다.) 아이는 그래도 제법 잘 적응을 해주었고, 친정엄마에게 아이를 부탁하지 않고도 운동을 갈 수 있다는 것에 감격하기도 했다. 그런데 둘째까지 원에 다니기 시작한 데다, 코로나로 늘 쓰고 있었던 마스크를 벗기 시작하니 온갖 감기에 장염까지 돌아가며 아이들이 아프기 시작했다. 두 아이가 번갈아, 때로는 동시에, 더 최악으로는 나랑 남편까지 온 가족이 감기에 걸렸다 장염에 걸렸다 했다. 비단 우리 집만의 일은 아니었기에 소아과는 늘 북새통이었다. 한시 간이상 대기하는 것은 다반사였고, 소아과가 문을 열기도 한참 전에 가서 ‘오픈런’을 하지 않는 이상 진료받는 것을 포기하게 되는 날도 있었다. 진료를 하는 날짜, 오픈하는 시간, 진료를 보는 선생님의 수가 다 다르니 온 동네 소아과를 섭렵하다시피 했다. 상황에 따라 이 소아과에도 가보고 저 소아과에도 가보았다. 그렇게 소아과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는 동안 3~4월이 지나갔다. (참고로 나는 아이가 많이 아프지 않으면 소아과에 잘 안 가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봄’이라는 계절 자체가 싫다는 생각이 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춥다가 따뜻했다가 오락가락하는 날씨가 아이들의 병을 부추기는 것 같았다. 나에게 이번 봄은 꽃이 피고 새잎이 나는 아름다운 시간이 아니라, 아이들이 아프고 또 아프고 또 아픈 시간이었다. 게다가 나까지 한번 걸린 감기가 낫질 않아, 한 달은 코세척을 하고, 병원을 가고, 약국을 가고 그 반복되는 루트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5월이 되고 날씨가 좀 더 따뜻해지자 아이들의 감기가 잦아들었다. 그랬더니 새로이 찾아온 그. 그 이름은 바로 ‘수족구’. 생각해 보니 첫째도 한 번도 앓지 않았던 수족구였는데, 감기가 끝나가니 수족구가 유행처럼 돌았다. 내 아이들도 피해 가지 못했고, 첫째 둘째 돌아가며 앓았다. 다행히도 증세가 약하게 지나갔지만 문제는 완벽하게 완치가 될 때까지 등원을 하지 못했으므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정보육을 해야 했다. 아이가 별로 아프지 않은 것은 감사할 일이지만 가정보육은 빡쎘다. 


어제의 일이다. (이제 5월 말이다.) 하루이틀 전부터 가벼운 콧물과 기침 증상을 보이던 첫째였는데, 집에 사다둔 감기약들로 잦아들기를 바랐었다. 그런데 어제 아침에는 가래 끓는 기침을 심하게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머리까지 아프다고 하니 (열은 없었다.) 병원에 가볼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날 새벽 5시에 잠이 깬 둘째가 계속 칭얼거리고 보채는 통에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아이가 다시 잠들고서야 (7시쯤이었을까) 나도 다시 잠들 수 있었기에 첫째도 나도 느지막이 일어난 터였다. 심지어 둘째는 일어나지도 못하고 계속 자고 있었다. 이미 소아과 오픈런은 실패 한 상황에서 소아과에 가 한참을 또 기다릴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해진다. 불행 중 다행으로 둘째 등원을 시켜주러 친정엄마가 와주셔서 첫째만 준비시켜 소아과로 향했다. 9시 20분부터 진료를 보는 소아과를 9시 13분에 도착했는데 1시간 넘게 대기를 했다. 소아과 앞에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며 기다리고 있는데, 마스크를 안 가져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신이 없었다.) 아이에게 핸드폰으로 좋아하는 영상을 틀어주며 기다리라고 한 뒤, 밑에 층에 약국에 얼른 뛰어가 마스크를 샀다. 나를 기다리는 아이가 초조해할까 봐, 엘리베이터를 타는 게 빠를까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게 빠를까 갈등하며 뛰어다니다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무릎을 땅에 세게 박았는데 (다행히 아무도 보지 못했다.) 아파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아이에게 뛰어가기 바빴다. 


폭풍 같은 아침시간을 보내고 첫째를 등원시킨 뒤 집에 들어와 한숨 돌리는데, 띵동 핸드폰 알람이 울린다. 오늘이 생리 시작 예정일이란다. 아... 그래서 아침부터 소아과를 가야 하는 이 상황이 그렇게까지 짜증이 났었구나 싶다. 그리고 문득 무릎이 되게 아프다는 걸 깨달았다. 호르몬의 영향권 안에 들어온 나는 짜증인지 화인지 우울감인지 모를 감정들을 떨쳐내기 위에 밖으로 나왔다.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든든한 생과일주스 한잔을 사 먹었다. 점심밥 차려먹기 귀찮아 내가 선택한 점심식사였다. 신나는 노래를 들으며 네일숍에 가서 예약한 시간에 맞춰 발톱에 예쁜 빨간색을 칠하고 나오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며칠 전부터 강해진 자외선에 선글라스를 하나 사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참에 백화점에 가서 선글라스를 구경했다. 편하고 맘에 드는 건 비싸고 저렴한 건 좀 불편하고 그래서 이것저것 잔뜩 써보기만 하고 사지는 못했다. 그래도 저녁에 먹으라며 김밥을 싸주겠다는 엄마의 말에 김밥을 받으러 엄마네까지 신나게 걸어갔다. 


문제는 엄마네 도착하자마자 울리는 전화였다. 아이들이 등원해 있을 시간, 제일 무서운 전화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오는 전화다. 설마설마하며 받았는데, 역시나... 둘째도 상태가 좋지 않단다. 하루종일 누워만 있고, 무엇보다 아침간식도 점심도 다 거부한 데다 미열이 나기 시작했다는 것. 데리러 가겠다 했다. 나는 그렇게 애만 바꿔서 또 소아과로 향했다. 간호사 언니도 둘째를 안고 들어오는 날 보며, 안쓰러운 미소를 건네며 또 오셨냐고 머쓱하게 인사를 하신다. 내가 진짜 친정보다 소아과를 더 자주 가는구나... 이 지긋지긋한 소아과 그만 좀 다니고 싶다....ㅠㅠㅠ 내적 울음이 솟구친다. 울고 싶은 건 난데, 소아과만 오면 대기하면서부터 울기시작하는 둘째다.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달래느라 내내 안고 서서 기다린다. 진료받을 땐 더 하다. 소리 지르듯 울고불고 난리가 난다. 아이의 울음소리 때문에 의사 선생님의 설명을 못 들을까 봐 서서 아이를 안고 달래며 선생님 말씀에 귀 기울인다. 폭풍 같은 소아과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나는 방전이 되었는데, 조금 있으면 첫째 하원시간이 다가온다. 


아... 그냥 어제 일을 다시 쓰는 건데도 진이 빠진다. 주말에 같이 놀러 가기로 했던 지인들과의 약속을 취소했다. 대체휴무로 더 길어진 주말이 전보다 더 무섭다. 오늘 아침에는 본격적으로 시작된 생리에 생리통이 심해 진통제를 두 알 삼켰는데, 생각해 보니 아침을 제대로 먹지 않아 빈속이었다. 집안일을 하는데 계속 속이 울렁거리고 토할 것 같다. 진통제 때문인가 생각하는데 서럽다. 남편에게 카톡이 와서 답장을 하는데 '여보 나 너무 힘들다'라고 말하려다 하지 않았다. 그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만 했는데도 눈물이 왈칵 쏟아졌기 때문이다. 그게 지금 내 마음이고 내 상태인데, 내가 그걸 계속 외면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외면했다기보다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다. 아 , 내가 너무 힘들구나. 아, 나 지금 무척 힘들구나. 내가 나를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났다.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내 상태를 알았다고 해서) 내가 뭘 더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인정은 해주었다는 것. 아이들을 돌보느라 나를 돌보지 못했다는 것. 그게 미안해 이렇게 글을 쓴다. 이렇게 글로라도 좀 토해놓으면 속이 편해지는 것 같아서... 울렁거리던 속이 좀 가라앉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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