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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Feb 21. 2023

공깃밥 맛집

쪼그라든 마음을 쫙 펴주는 맛

아이를 데리고 다니다 보면 제약이 많고, 그렇다 보니 본의 아니게 자꾸만 눈치를 보게 된다. 특히 노키즈존이 많은 요즘, 카페를 갈 때도 제법 눈치가 보이고 식당의 경우 식사를 해야 하는 미션이 있기 때문에, 아이를 데리고 그 미션을 잘 수행할 수 있는 곳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아이들을 위한 시설이 아니라면, 그리고 노키즈라고 명시되어 있지 않다면 결국 ‘도전’을 해보아야 한다. 가서 직접 경험해 봐야 아이를 데리고 가기 좋은 곳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기 때문에다. ‘도전’이라 명시한 것은, 아이를 데리고 새로운 식당이나 카페에 가는 일은 꽤나 용기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동네에 지나다니며 눈에 들어왔던 일본식 카레집이 있었다. 때로는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려 먹기도 한다는 친정엄마의 말에 언젠가 한번 꼭 가보자고 했었더랬다. 그 언젠가가 오늘이라며 엄마와 함께 둘째를 데리고 가보기로 했다. 예상대로 예쁘고 깔끔한 인테리어에 젊은 손님들이 대부분인 식당이었다. 들어서자마자 아기 의자가 없는 것을 보고 살짝 주눅이 들었다. (아이가 가만히 앉아 있을 리가 만무한데 좀 걱정이었다.) 그래서 모퉁이 끝자리를 골랐다. 아이가 부산스럽게 굴어도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무의식이 선택한 자리였을 것이다. 그래도 살짝 위로가 되었던 것은 아기 식기를 바로 준비해 주던 직원 덕분이었다. 


나와 엄마는 식당의 대표메뉴인 카레와 함께 카레 우동을 시켰다. 맵지 않은 카레는 아이가 잘 먹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둘째는 밥을 잘 먹는 아이다.) 웬걸 카레를 거부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카레가 묻지 않은 밥을 떠먹여 주니 잘 먹는다. 어쩔 수 없이 공깃밥을 하나 추가 했다. 얼른 먹고 집에 가서 아이 밥을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당장 배가 고프다고 칭얼 대니 맨밥이라도 계속 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이에게 연신 맨밥을 먹이고 있는 우리에게 주방에서 요리를 하던 요리사분이 오셨다. (약간 오픈 키친이라 주방 안에서 식당 내부가 잘 보였다.) 손에는 공깃밥이 들려 있었는데, 그 공깃밥은 그냥 공깃밥이 아니었다.


밥에 계란프라이를 얹고 김가루를 뿌린 다음 참기름으로 마무리한 그런 공깃밥. 혹시 아이가 계속 맨밥을 먹는 거냐고 물으시며 아이에게 주라고 건네 주신 그 공깃밥에 나는 마음이 그만 녹아내렸다. 아기의자가 없으면 어떠랴 이것이 바로 ‘키즈 프랜들리’인 것을. 이런 배려를 받으면 그렇게 고맙고 고마울 수가 없다. 사실 그렇게 공깃밥 하나 만들어주는 것이 별것 아닐 수도 있지만, 내 아이가 환영받지 못할까 걱정하며 식당의 문지망을 넘어선 엄마의 입장에서는 이런 배려가 그 어떤 환대보다 마음이 벅차다. 


반려동물을 데리고 갈 수 있는 곳들은 늘어가는 것에 반해,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있는 곳들은 줄어든다. (노키즈존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서글픈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길 가다 마주친 일면식 없는 할머니에게 아이 양말 안 신겼다고 춥게 입혔다고 잔소리를 듣는 경우는 많아도, 유아차를 미는 나를 위해서 문을 잡아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애를 데리고 다니는 건 그 자체로 힘든 일인데, 그것을 더 힘들게 하는 상황들에 마음이 자꾸만 쪼그라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러다 이렇게 따뜻한 마음을 건네주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쪼그라들었던 마음이 한 번씩 펴진다. 그리고 그래서 더 고맙다. 줄 서서 먹는 집이라더니 정말 음식이 다 맛있었지만, 그날은 그 공깃밥이 제일 맛있었던 것 같다. 이 집은 공깃밥 맛집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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