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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Jul 17. 2023

주간 새미일기

2023.07.10(월)~2023.07.16(일)

2023.07.10 (월)

둘째 어린이집 담임선생님이 지난주 일주일간의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셨다. 오늘 등원하는데 마침 담임 선생님이 나오셨다. 일주일 만에 만난 선생님을 본 아이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사실 별다른 반응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이는 원래 등원할 때 별 말을 하지 않는다. 선생님을 특별히 반가워하지도, 심지어 엄마인 나에게도 인사조차 잘하지 않고 들어간다. (되게 쿨하다고나 할까ㅋ) 그런 아이가 오늘은 담임선생님을 보자 뭐라 뭐라 말이 많다. 그간 선생님께 하고 싶었던 말들이 많았다는 듯, 입고 온 티셔츠 얘기도 하고 신도 벗지 않은 채로 선생님을 쳐다보고 얘기를 하기 바쁘다. 그 말들을 하나도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내가 받은 느낌은 그랬다. 왜 이제 왔냐고, 보고 싶었다고 반갑다고, 못 본 사이에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았다고. 그런 아이를 보니 괜히 뭉클하다. 그동안 선생님과 정도 많이 들고, 사랑도 많이 받았구나 싶다. 멋모르는 어린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런 반가움의 표시로 선생님께 받은 사랑을 돌려주는 아이가 고맙고 기특하다.


2023.07.11 (화)

남편과 연애할 때, (그러니까 결혼 전) 선물했던 것들 중에 아직도 가지고 있는 것들이 있다. 인테리어 소품들이라 아직까지 쓰고 있던 것이다. 시계랑 조명인데, 둘 다 제품에 나와 남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연애 때라 그랬겠지만 세상에 둘 뿐 인 것처럼 별데다가 다 이름을 다 새겼다 싶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시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몇 번 시간이 맞지 않는 것을 보고 흠칫 놀라 다시 맞춰두곤 했는데, 여러 번 다시 맞추고 배터리를 갈아봐도 자꾸만 시간이 늦는다. 인테리어 조명은 아이가 태어나고 걷기 시작한 후로는, 아이가 자꾸 만져서 넣어두었다가 얼마 전 거실에 서랍장이 생겨 그 위에 장식으로 올려두려고 다시 꺼냈는데 전원을 켜도 들어왔다 나갔다 하더니 이제는 불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게 비슷한 시기에 우리 두 사람의 이름이 떡하니 새겨져 있는 두 제품이 수명을 다하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직 우리 두 사람의 이름뿐이던 시간들, 우리 두 사람뿐이어도 반짝이던 날들이 끝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진작에 끝났지만 새삼 ㅎ) 그 시간은 끝났고 이제 더 이상 그 모습으로 반짝이지는 않지만, 우리는 이렇게 네 사람이 된 것이다.  우리 두 사람의 이름 옆으로 아이들의 이름이 새겨진 시간들이 흐르고 있고, 우리는 넷이 되어 더욱더 찬란하게 빛난다. 남편과 나 둘 뿐이던 시간들이 멈추고, 우리 둘이서 반짝이던 순간들이 빛을 다한 것은 아쉽지만 우리는 넷이 되어 더 풍성한 시간을 보내고 더 밝게 빛나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뭐 둘만 있었어도 좋은 점이 많았겠지만ㅋㅋㅋ) 본의 아니게 우리의 연애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이 동시에 망가져 새삼 이런 생각도 해본다.

남편과 나의 이름이 새겨진, 연애시절 그에게 선물했던 인테리어 소품들

2023.07.12 (수)

아이가 얼마 전, 드레스(원피스)를 세 벌 선물 받았다. 미국에 사는 나의 사촌언니가 내가 딸에게 그런 드레스들을 잘 안 사줘서 자기가 사 왔다며 디즈니 공주들 드레스를 선물해 준 것이다. (엘사, 안나, 벨) 아이는 신이 났다. 유치원에 세 벌을 돌아가며 입고 가고, 키즈카페를 갈 때도 입고 가고, 심지어 오늘은 체육을 하는 날인데도 입고 갔다. 좋아하는 드레스가 생기니 아이는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열심히 입고 다닌다. 색깔 맞춰 구두도 골라 신고 한 껏 멋을 부려본다. 그런 아이를 보다가 문득 나를 돌아본다. 나는 그런 원피스를 사면 (일상복이 아닌 꾸며 입는 옷을 사면) 특별한 날에 입으려고 아껴둔다. 아무 날도 아닌데 입으면 왠지 좀 과한 것 같기도 하고, 사람들이 오늘 어디 가냐고 묻는 것도 부담스럽고, 무엇보다 육아와 가사를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옷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특별한 날에만 입는 경우가 많다. (가령 결혼식에 갈 때) 그런데 그러다 보니 평소에 입는 옷들보다 비싸게 주고 산 옷일 때가 많고, 내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옷이면서도 일 년에 몇 번 입을까 말까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아무 때나 드레스를 챙겨 입는 딸이 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쁘고 좋은 옷 아껴서 뭐 하겠는가 내가 입고 기분 좋으면 그만이지. 조금 불편해도 뭐 어때. 누가 특별한 날이냐고 물으면 좀 어때. 아끼다가 몇 번 못 입게 되는 것보단 백번 낫지! 맞다. 아끼다 똥 된다는 말이 있다. 좋은 거 아껴 뭐 하나. 딸아 네가 맞다. 오늘 체육시간도 너는 레이스를 휘날리며 뛰는 엘사가 되어 즐겁겠지 뭐 ㅎ


2023.07.13 (목)

가을이는 유치원에서 이것저것 잘 만들어온다. 작년에는 주로 그림을 그려왔었는데 요즘에는 그림 그리기보다는 만들기 위주다. 재활용품으로 멋진 작품들을 많이 만들어오는데 얼마 전엔 색종이로 종이접기를 해왔더랬다. 워낙 뭘 많이 만들어오니까 그런가 보다 했는데, 굳지 그 작품을 가져와서 자랑을 하길래 무얼 접은 거냐고 물어봤다. 아이가 “텐트!”라고 말하길래 설거지를 하다 말고 돌아봤는데 정말 텐트처럼 생겼다! 기대 없이 봤다가 제법 그럴듯해서 “우와 멋지다! 진짜 텐트 같네?!” 했더니 나에게도 접는 법을 알려주겠단다. 엄마가 지금은 설거지를 하고 있으니 설거지 다 하고 알려달라고 했다. 아이는 내가 설거지를 마치기만을 기다렸다. 설거지를 마치고 아이와 식탁에 마주 앉았다. 아이가 신중하게 골라준 색종이를 받아 들고 아이가 하라는 대로 종이접기를 따라 했다. 제법 과정이 복잡했다. 다 따라 접고 나니, 아이가 유치원에서 만들어온 텐트와 똑같은 색종이 텐트가 두 개 더 완성되었다. 이건 누가 가르쳐 준 것이냐고 물었다. 접는 방법을 정확히 외우고 있는 게 신기해서 물은 것이었는데, 아이는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어디서 보고 배운 게 아니고 자기가 직접 만든 거란다. 그러니까 원래 있는 방법이 아니고 자기가 창작해서 만든 종이 접기인 것이다. 게다가 똑같이 접는 방법을 알고 있는 걸 보니, 우연히 만든 게 아니고 나름 방법과 법칙을 갖고 있는 진짜 가을이만의 창작 작품인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 내내 방과 후 반으로 종이접기 반을 했을 정도로 종이접기를 좋아하고 잘하는 편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는 이미 나와 있는 종이접기 방법대로 늘 따라 접기만 했었지 내가 창작해서 종이접기를 한 적은 거의 없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이의 작품이 훨씬 더 멋져 보였다. 어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새로운 것을 만들어보겠다는 생각. 난 가을이 따라가려면 멀었구나...ㅎ 멋져! 가을!

오른쪽이 가을이의 작품 '텐트', 왼쪽이 접는 방법을 배워 내가 만든 또 다른 텐트


2023.07.14 (금)

돌봄 노동, 가사노동이 지긋지긋하다. 이거 말고 다른 거 하고 싶다. 엄마, 여보 말고 내 이름을 불러주는 곳으로 가고 싶다. 누구를 위해서 사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해서 살고 싶다. 오늘은 너무 그러고 싶다.


2023.07.15 (토)

나는 사춘기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엄마가 설거지를 시키면 싫다 그래놓고, 혼자 조용히 가서 다 해놓았다. 설거지뿐만 아니라 부엌 정리까지. 하지만 부정적인 감정을 잘 드러내는 나는 언제나 집에서 제일 성격이 드러운 멤버로 꼽혔다. 지금도 그런 것 같다. 나는 남편에게 막 이러쿵저러쿵 불만사항을 다 얘기하면서도 결국은 남편이 원하는 것을 거의 다 들어준다. 우리 부부는 서로 싸운다기보다 내가 일방적으로 남편에게 화를 내는 형태에 가까운 싸움을 한다. 내 목소리가 크고, 내 감정이 더 격하게 때문에 늘 (나에 비해 훨씬 조용하고 차분한) 남편이 그 격분을 다 받아주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면 나는 늘 착한 남편을 구박하는 성질머리가 드러운 아내가 되는 것이다. 남들이 그렇게 얘기하니까 나도 내가 그냥 성질머리가 드러운 애가 되기로 했던 것 같다. (그래! 나 성질 드럽다! 왜! _ 다행히 자존감이 아주 높은 타입이다.) 그렇게 있는 성질 없는 성질 다 부리고 사는데 왜 나는 계속 억울하고 답답할까. 왜 자꾸 화가 날까. 그건 나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우리 부부와 자주 만나 교제하는 부부가 그러는 것이었다. 내가 의외로 남편이 원하는 걸 다 해준다는 것이었다. 남편에게 막 상냥하고 다정하게 구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나 자신조차도 잘 인식하고 있지 않았지만, 나는 남편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대부분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들어주면서 짜증을 있는 대로 낸다 할지라도) 그때 깨달았다. 내가 그렇게 짜증을 내도 남편이 나랑 결혼한 게 너무 좋다고 하는 이유를. (진짜 의문이었는데) 오늘도 결국은 남편 친구의 결혼식을 남편이 네 식구 다 같이 가고 싶어 해서 (궂은 날씨에 애 둘 데리고 멀리 결혼식을 가는 일은 아주 고되다.) 남편이 원하는 원피스를 입고 (내가 골라 입은 옷 다 별로라 그래서) 갔다. 너무 피곤하고, 고생스러웠지만 (나는 결혼식 내내 둘째를 안고 다니며 복도에서 창밖에 지나가는 버스구경을 했다.) 나는 그렇게 해주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힘들고 어려워도 상대방에 원한다면 어지간해서는 들어주는 사람.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 그런데 그것을 해주면서 성질을 부리니까  해줄 것 다 해주고도 못된 애가 되는 것이지만 말이다. 성질마저 부리지 않고 해주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더없이 착한 캐릭터가 되었겠지만, 나는 아직 그런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중생이다. 그래서 화가 나나보다. 아무것도 안 해주면 불평불만도 없을 텐데, 다 해주고도 인정을 못 받으니 억울한 게다. 그것마저도 나의 부덕함 탓이겠지만, 생각보다 나는 착한 사람이라는 것에 왠지 모를 씁쓸함이 남는다. 아니다. 난 원래 안착한데 착한 척할려니까 힘들어서 그런 건가. 아 모르겠다. 요즘은 남생각 안 하고 내 생각만 하고 살고 싶다.


2023.07.16 (일)

저녁 시간 설거지를 마치고 잠시 쉬는데, 가을이가 갑자기 나에게 와서 내 손에 뽀뽀를 한다. 그러더니 하는 말. “나는 지금 엄마 몸에 사랑을 불어넣고 있어!” 애들을 재우려고 누웠는데, 가을이가 그런다. “나는 엄마를 정말 사랑해! 그래서 내가 아까 엄마 몸에 사랑을 불어넣어 줬잖아! “ 그래서 나도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아이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그랬더니 아이가 하는 말. ”엄마가 정말 예쁜 사랑을 나에게 불어넣어 줬네?! “ 요즘 마음 밭이 바싹 말라있었는데, 네 사랑은 마치 시원한 오아시스 같다. 네 곁에만 있다면 이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사막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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