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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Jul 25. 2023

주간 새미일기

2023.07.17(월)~2023.07.20(목)

2023.07.17 (월)

나는 한동안 ‘한복’에 푹 빠져있던 적이 있었다. 전통한복뿐만 아니라, 생활한복이 조금씩 다양해질 무렵이었다. 다양한 생활한복들을 사서 입는 게 즐거움이었다. 대부분 소량생산하는 제품들이라 가격대가 비쌌지만 나는 기꺼이 그 옷들에 돈을 투자했다. 그러다 나는 결혼을 했고, (퓨전한복을 입고 웨딩스냅을 찍었고, 결혼식에서도 한복드레스를 입었던 나였다.) 한동안은 한복을 즐겨입었지만 아이를 낳고부터는 그 일이 어렵게 되었다. 아이를 돌보기에 한복은 불편한 옷이었다. 아이를 보다 보면 옷에 눈물, 콧물, 분유, 이유식, 침 등등으로 범벅이 되는 일이 허다한데, 빨면 다려 입어야 하는 한복은 적합하지 않았다. 타이트하게 조이는 형태는 임신으로 불어난 몸을 불편하게 했고, 놀이터 바닥에 털썩털썩 앉기에 주저스러운 옷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는 한복과 멀어지게 되었고, 그러다 둘째도 낳게 되었다. 결국 나는 상당수의 생활한복들을 처분하기에 이르렀다. (다 이고 지고 있기에는 자리차지를 너무 많이 했다. 결국 아이들 옷에 밀려나게 된 것이다.)  당근에 팔기도 하고 나처럼 생활한복을 좋아하는 지인들에게 주기도 했다. 그런데도 결혼식 같은 행사를 가는 날이 아니고서는 입을 일이 없는 생활한복을 나는 여전히 무척 여러 벌 가지고 있다. 비싸게 주고 사서 아까워서 그러는 걸까. 뭐 그런 이유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 왠지 그 옷들이 ‘나’를 대변해 주는 것 같아 쥐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라는 사람을 표현할 수 있는 옷. 내가 좋아하는 것. 내 거. 아이를 낳으면서 나는 참 내 것 중에 많은 것들을 포기해 왔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 시간들, 내 취미들. 그렇기에 지금 당장 잘 입지 않는 옷들이어도 그것만큼은 포기하기가 싫은 것이다. 그것들마저 포기하면 앞으로도 나의 취향, 취미 그런 것들이 영영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아서. 지금은 몇만 원 안 하는 옷들도 고심하고 고심해서 하나 살까 말까 하는데, 내가 나를 위해서 내가 좋아하는 옷에 돈을 기꺼이 쓰던 그때의 마음을 잃고 싶지 않아서. 지금은 내 옷보다 아이들 옷에 훨씬 많이 돈을 쓰고, 아이들을 위해서 내 스타일도 바꾸었지만 (옷뿐만 아니라 화장, 머리스타일도 바뀌었다.) 나를 위해 꾸미고, 나를 드러내기 위해 과감하고 화려한 옷들 입기를 즐겨했던 나의 당당함(자신감, 자존감)을 잃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나는 여전히 그 생활한복들을 놓아주지 못한다. 오늘 외출했다가 민소매티를 하나 샀다. 철릭원피스를 로브처럼 입으려고 말이다. 그렇게 해서 일부러라도 생활한복들을 한 번씩 꺼내 입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를 잃지 않기 위해서. 나를 위해서.


2023.07.18 (화)

둘째는 원래 재우기 힘든 타입인데, 오늘따라 유독 안 잔다. 9시부터 잘 준비를 했는데 2시간을 재우려고 씨름하다 포기했다. 애가 자야 나도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좀 하는데, 애가 자질 않으니 내 시간도 그만큼 줄어드는 게 초조하다. 남편이랑 얘기도 좀 나누고, 일기도 쓰고, 온라인강의도 듣고, 보다만 영화도 좀 보고, 책도 읽고 하고 싶은 건 너무 많은데 잠도 자야 하니 시간이 없다. 네가 빨리 자야 저 중에 몇 개라도 하고 잘 텐데... 어제도 육퇴 후에 하고 싶은 거 하고 자다가 2시 반쯤 잔 것 같다. 밤마다 내 시간과 잠 사이에서 나는 치열한 고민을 하는데, 이놈은 잘 생각이 없다. 네가 원망스럽다. 결국 아이는 11시 반에 잠이 들었다. 아... 저 중에 뭐부터 할까... 또 잠을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그럼 또 내일은 더더 피곤할 텐데... 아아... 시간아 멈추어다오...ㅠ


2023.07.19 (수)

나는 방의 구조를 바꾸는 것을 좋아한다. 사실 구조를 바꾼다는 건, 가구를 재배치한다는 말이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것을 잘 견디지 못하는 내가 집안일을 하면서 (집안일은 매일 똑같이 반복된다 무한히....) 무엇인가 가장 쉽게 변화를 줄 수 있는 것이 가구들의 위치를 이렇게 저렇게 바꿔보는 것이다. (그걸 깨달은 뒤로 나는 비싼 가구를 사지 않는다. 가구를 위치만 바꿀 때도 있지만, 원래 가구를 처분하고 새 가구를 들여 변화를 주어야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손에 꼽게 대대적인 변화가 있는 날이었다. 우리 집은 아이들 자는 방이 북쪽에 있어 에어컨과 가장 먼데, 애들 둘 다 몸에 열이 많은 편이라 유독 더워한다. 그래서 자다가도 꼭 깨서 안방이나 거실로 넘어와서 자곤 한다. (거실과 안방에는 에어컨이 있으므로 상대적으로 더 시원하다.) 그렇다 보니 아이들이 자다 깨면 우리 부부도 자연스럽게 수면의 질이 낮아진다. 이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아이들 침대를 에어컨이 있는 안방으로 옮기기로 했다. (아이들은 싱글 침대 두 개를 붙여서 같이 쓴다.) 고로 안방에 있는 퀸사이즈 침대가 아이들 침실이었던 방으로 가고, 아이들 침대 2개가 안방으로 와야 하는 큰 작업이었다. 사실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나 만큼 가구 재배치에 배테랑인 두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우리 엄마랑 내 동생이다. 엄마랑 동생이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고 나서서 용기를 내 실행에 옮겼다. 역시 경력자들은 달랐다. 생각보다 일이 빠르고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내친김에 거실에 나와있던 첫째 책상과 옷방인지 놀이방인지 알 수 없게 하던 아이들 장난감을 다 안방으로 들여놓았다. 그렇게 하니 아이들 책장을 제외하고는 아이들 것은 거의 다 안방에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 집은 전체 면적에 비해 안방이 유독 큰 구조이다.) 의외로 아이는 자기 방이 생긴 것 같은지 무척이나 좋아했고, (침실, 놀이방, 책상까지 다 한 방에 모인 것이 퍽 좋았나 보다.) 자기 방에 에어컨만 있으면 딱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에어컨이 정말 생겼다며 무척 신이 나 했다. 이렇게 변화를 주기까지 무척 고민하기도 했고, 남편의 반대도 있었고, 나조차도 확신이 없어 갈팡질팡했지만 역시 나는 이러한 변화가 에너지원이 되는 사람인 것 같다. 새롭게 바뀐 모습의 집을 다시 다듬고 꾸며갈 생각에 나도 좀 신이 닜다. 게다가 이 변화로 인해서 드디어 내 책상을 둘만한 자리가 생겼다! (야호!) 무엇보다 아이들이 자다가 깨지 않고 숙면을 취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너희들에게 안방을 내어주었으니, 나에게 숙면을 다오. 제발. ㅎ


2023.07.20 (목)

오늘 드디어 내 책상을 샀다. 신혼 때는 책상이 있었는데, 아이를 낳고 처분했더랬다. 사실 그때의 그 책상은 남편과 함께 쓰는 용이었다. 하지만 이번 책상은 나만의 책상이다. '요시타케 신스케'의 그림책 중「고무줄은 내 거야」라는 책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집안에 굴러다니던 고무줄을 엄마에게 허락받고 갖게 된 아이는 이렇게 말한다. "이 고무줄은 내가 가지는 거야. 이제 내 거야. 내가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거지? 멋지지 않아? 누구의 것도 아닌 나만의 고무줄이야!" 이 아이는 고무줄 하나를 가지고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뻐하며 고무줄과 목욕도 하고 잠도 잔다. 아이가 좋아해서 수도 없이 읽어주었던 책이다. 그렇게 여러 번 읽었음에도 늘 그저 그 아이의 마음이 귀엽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가 내 책상을 갖고 보니, 이 아이의 마음이 백번 이해가 되는 것이었다. 나는 주부라 하루종이 이 집에서 일을 하는데, 정작 내 공간은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았다. 일하는 공간이 아닌 내가 나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공간 말이다. 그런데 나에게 드디어 그런 공간이 생겼다. "이 책상(공간)은 내가 가지는 거야. 이제 내 거야. 내가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거지? 멋지지 않아? 누구의 것도 아닌 나만의 책상(공간)이야!" 딱 그런 마음이 든다. 내 것이 생겼다는 것이 이렇게 설레고 기쁜 일이라는 것에 새삼 놀랐다. 이깟 책상 하나로 내가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는데, 왜 그동안 그 조차 하지 않았는지 당황스러울 정도로 말이다. 지금도 나는 아이들을 재우고 이 책상에 앉아 이 일기를 쓰고 있다. 노트북을 들고 식탁이나 침대 위로 떠돌지 않고, 바로 앉아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나만의 이 공간이 무척 소중하다. 책 속에서 아이는 그 고무줄로 멋도 부리고, 나쁜 사람들도 잡고, 어디든 날아가고, 운동도 하고, 심지어 지구도 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도 이 책상에서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꼭 그런 기분이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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