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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Aug 02. 2023

주간 새미일기

2023.07.24(월)~2023.07.29(토)

2023.07.24 (월)

오늘은 아이들 영유아검진과 구강검진이 있는 날이다. 아이들 건강을 체크하러 가는 것인데, 왠지 내가 시험대에 오르는 기분이다. 그동안 아이들을 얼마나 잘 키웠나 검사받는 느낌이랄까. 특히 치과는 갈 때마다 죄인이 된다. 아이들 칫솔질과 치실, 가글까지 매일 열심히 해주는데도 충치가 생기면 내 잘못인 것만 같다. 치과 선생님이 아이의 썩은 이를 하나씩 짚어내실 때마다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낙제생이 되는 기분이다. 이 어금니도 탈락! 저 송곳니도 탈락! 아이라는 시험지에 빨간 줄이 그어지면 나라는 엄마의 점수가 확확 깎이는 듯하다. 그렇게 되면 '더 꼼꼼히 닦아주지 못해서 그런가?' '내가 너무 단 음식을 많이 먹였나?' 혼자서 자책인지 반성인지 알 수 없는 자체평가도 실시한다. 지난번 검진 때 지켜보자고 하시던 치아들이 더 나빠져서 죄다 치료를 하게 생겼다. 치과치료는 어른들도 힘든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웃음가스로 아이 기분을 좋게 해서 긴장감을 완화시키고 치료를 한다지만, 아이가 그 방법으로 치료를 잘 받지 못하면 진정치료(8시간 금식+주사)를 해야 한다. 작년 첫 충치치료 때는 웃음가스로 치료를 잘 받은 첫째였지만, (너무 잘 참는다고 칭찬도 많이 해주셨다.) 이번에도 잘 참아줄지는 모르는 일이기에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무엇보다 고생할 아이가 안쓰럽고 그 안쓰러움은 왠지 모를 미안함을 동반한다. 이를 잘 닦아도 잘 썩는 아이가 있고, 이를 잘 안 닦아도 잘 안 썩는 아이가 있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왠지 아이가 아프면 내 잘못인 것만 같다. 치과 치료 할 치아가 많다는 진단을 받은 날 저녁, 아빠에게 이제 자기한테 단 걸 많이 주지 말라고 말하며 의기소침 해진 아이를 어떻게 격려해 주면 좋을까. 아이보다 내가 더 의기소침해져서 큰일이다.


2023.07.25 (화)

육아라는 게 그렇다. 매일을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제 구강검진으로 6개 치아를 치료해야 하는 첫째가 오늘 먼저 2개 치아를 치료하기 위해 다시 치과로 향했다. 3시간 금식하고, 웃음가스 흡입을 위해 코에 호스를 대고 누웠다. 다행히 아이는 기분이 좋았고 호스를 대는데도 거부감이 없었다. 고무를 물고 입을 아 벌리고 누워, 치료할 이에 틀을 끼우고, 무서운 소리가 나는 기계들로 이를 갈아내며 치료를 하는데도 아이는 평안했다. 선생님은 혹시나 아이가 손을 얼굴 쪽으로 올릴까 봐 나에게 손을 잡고 있어 달라 하셨지만, 아이는 가만히 잘 있었고 나는 응원의 표시로 손을 잡고 있는 모양이 되었다. 왼쪽 위에 2개의 치아를 너무 순탄하게 치료를 잘 마치자, 선생님은 같은 쪽 아래 치아도 해보겠냐고 물으셨고 아이는 그러겠다고 했다. 시간이 길어지자 다리를 흔들거리며 답답해하기는 했으나 3개 치아를 무난하게 치료를 마치게 되었다. 선생님은 너무 잘한다며 "최고다." "100점이다."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간호사 선생님도 아이가 어린데도 너무 치료에 잘 받았다며 놀라셨다. 6개나 치료를 해야 해서 내심 마음이 무거웠는데, 진정치료로 넘어가지 않고 웃음가스만으로도 치료를 잘 받아준 아이에게 너무 고마웠다. 다음번 치료가 조금 더 오래 걸리고 힘든 치료라서 이번에 웃음가스로 힘들어하면 다음 치료는 진정치료로 하겠다고 하셨는데, 오늘 웃음가스로도 치료를 잘 받아서 다음번 치료도 우선 웃음가스로 치료를 해보기로 했다. 마음이 한 결 가벼워졌다. 낮시간을 이렇게 무사히 보냈으나 지옥은 밤에 열렸다. 둘째가 어제 구강검진으로 쪽쪽이 때문에 이가 많이 들렸다는 말을 듣고 나자 이젠 정말 쪽쪽이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도 말이 잘 통하는 두 돌쯤 수월하게 끊었으므로 둘째도 두 돌쯤 끊으려고 했는데 이번달 말이 딱 두 돌이기도 했다.) 그래서 어제저녁 아이에게 이제 이가 아플 수도 있으니 쪽쪽이를 그만하자고 제안했고, 의외로 아이는 순순히 물고 있던 쪽쪽이를 나에게 돌려주었다. 우리 부부는 일부러 아이에게 직접 쪽쪽이를 쓰레기통에 버리게 했고, 아이는 쪽쪽이를 스스로 쓰레기통에 버리며 "쪼쪼기 빠빠이~"하면서 인사도 했더랬다. 밤에 잘 시간이 되어 쪽쪽이를 계속 찾긴 했으나, 아까 쪽쪽이와의 이별을 상기시켜 주며 쪽쪽이를 주지 않고 재웠다. 오늘도 그렇게 해서 쪽쪽이를 주지 않고 재웠는데, 웬걸 2~3시쯤 깨서는 오열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요 며칠 계속 새벽에 깨서 울기는 했었는데, 어젯밤은 쉽게 그치지 않는 것이었다. 남편도 나도 쪽쪽이를 주지 않기로 약속을 했으므로, 쪽쪽이를 주지 않고 최선을 다해 아이를 달랬다. 아이는 의외로 쪽쪽이를 찾는다기보다 안고 서있어 달라는 요구를 했는데, 나랑 남편이랑 번갈아가며 한참을 안아주었는데도 내려놓기만 하면 울어서 더 이상 안아줄 수 없다고 누워서 자야 하는 거라고 타일렀다. 하지만 아이는 1시간 반을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오열했고, 결국 울다 지친 아이는 내 배 위에 누워 '엄마가 섬 그늘에' 노래를 여러 번 불러준 뒤에야 겨우 다시 잠이 들었다. 내 애지만 이럴 땐 정말 아이가 지옥에서 온 것 같아 보인다. 자다 깨서 12킬로짜리 애를 안고 서있는다는게 생각보다 훨씬 고된 일인데, 거기다 집안이 떠나가라 오열을 하니 몸도 마음도 급속도로 피 패해진다. 그러다 보면 오만 생각이 다 든다. '왜 나는 둘째를 낳아서 이 고생을 사서 하고 있나, 첫째만 있었으면 나의 오늘 하루가 순탄했을 텐데. 신생아 때도 수면교육한답시고 울렸다가 1~2시간을 오열하는 통에 결국 안아재우고 그랬는데, 그때 안아준 것 때문에 지금까지 이 고생을 하는 건가. 그럼 결국 내 잘못이란 말인가. 이제 곧 두 돌이 다되어 가는데도 자다 깨서 이렇게 운다니, 대체 언제 문 쾅 닫고 방에 들어가서 혼자 자는 건 거냐. 그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내가 애기 때 밤에 그렇게 안 자고 엄마를 힘들게 했다던데 나의 업보인가. 애들 다 크고 나 혼자 편하게 잘 때가 되면 이때가 그리워지려나. 다른 건 다 그리워도 잠 못 자는 건 안 그리울 것 같은데.' 등등등... 와 아무튼 지옥이었다. 내 애가 소리를 지르며 오열하는 걸 1시간 반동안 듣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지옥이다. 살려주오....

치과 치료를 받는 가을이 / 쓰레기통에 직접 쪽쪽이를 버린 여름이

2023.07.26 (수)

아이들을 태우고 차를 타고 가는 길이었다. 차 안이 너무 더워 창문을 열고 가다가, 에어컨을 켜고 창문을 닫으며 내가 말했다. "아휴~ 매미소리 너무 시끄럽다." 창문을 닫는 이유가 쩌렁쩌렁 울리는 매미소리 탓인 양 내가 말하자, 가을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엄마~ 그렇게 말하면 안 돼~" 내가 왜냐고 묻자 "그럼 매미가 속상하잖아~"라고 대답하는 가을. 원래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무척 배려하고 관심 갖는 첫째였다. 사람에게만 그런 줄 알았는데, 매미 마음까지 생각할 줄이야. 아차 싶었다. 나는"맞아~ 그러네~ 매미야 미안해~"하며 바로 사과를 했다. 그런데 첫째가 혼잣말인 듯 덧붙인다. "또 엄마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 나처럼 짝을 찾는 매미의 노랫소리를 소음으로 여기는 사람이 또 있을까 봐 걱정하는 가을이. 그 마음에 생각지도 못하게 심장을 세게 얻어맞았다. 그래,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들을 내 마음대로 평가해 버리는 건 잘못된 거지. 나에겐 그저 소음일지 몰라도, 그들에겐 노랫소리고 어쩌면 삶의 목적일 수 있는 일이니까. 그러니까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는 거지. 맞아. 딸아이의 말을 운전하는 내내 곱씹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말이 자꾸만 맴돈다.


2023.07.27 (목)

낼모레는 둘째의 두 돌 생일이다. 그날부터 여름휴가가 계획되어 있어 오늘 가족들과 조촐하게 생일파티를 했다. 그랬더니 꼭 오늘이 아이의 생일인 것만 같다. 쪽쪽이를 끊은 지 4일째를 맞이하고 있는 둘째는 쪽쪽이의 허전함을 메우려는 건지 잘 시간만 되면 안으라고 보챈다. 아이를 안고 서서 생각했다. '너와 2년을 함께 했구나. 너는 우리 가족과의 2년이 어땟으려나?' 그랬더니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2년 동안 나도 꽤 고생 많이 했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 잘 못해준 것만 생각이 난다. 아이에게 소리 지르고 화내고, 못난 모습을 보였던 순간들 말이다. 아이를 안고 혼자 울었다. 깜깜한 방안이라 내 얼굴이 안보일 테지만 아이는 이상한 낌새를 챘는지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쳐다본다. 나도 아이 얼굴이 안 보이지만 아이의 표정이 보이는 듯하다. 엄마가 왜 그럴까? 어리둥절한 표정이겠지. 다시 내 품에 폭 안기는 아이를 더 꼭 안아주며 이야기한다. "여름아, 엄마 아들로 와줘서 고마워~ 엄마는 여름이가 엄마 아들이라 너무 행복해~ 엄마가 여름이 많이 많이 사랑해~" (내가 첫째에게 자주 해주던 말이다. 대사는 똑같고 아들이 딸인 것만 다르다.) 그랬더니 아이가 대답을 한다. "고마워~" 처음엔 기분 탓이려니 생각했다. 아직 말을 잘하지 못하는 아이라 발음이 분명치 않았기에 내가 그렇게 듣고 싶어서 들은걸 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아이는 사랑한다는 나의 말에 반복해서 고맙다고 대답했다. "고마워 엄마~ 고마워 아빠~" 그 자리에 없는 아빠까지 챙기며 고맙다는 말을 하던 아이는 내가 우는 걸 알았는지 팔이 짧아 내 등까지 손이 닿지는 않아 옆구리를 토닥토닥 두드려준다. 나는 잘 못해준 게 많아 미안한 맘 투성인데, 그런 내 사랑에도 고맙다고 말하는 아이가 있어 감사하다. 그냥 감사한 마음보다 더 복잡하고 큰 마음인데, 그 생경한 마음을 표현할 말을 나는 찾지 못하겠다. 아이에게 받는 사랑은 그런 것 같다. 너무 다채로워서 딱 무슨 색이라고 말할 수 없는 무지개처럼. 오로라처럼. 노을 지는 하늘처럼. 너와 함께한 시간이 고작 2년이지만, 난 이제 네가 없는 시간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실제로 나는 상상이나 공상을 많이 하는 편이데, 그 상상이나 공상 속에서도 이제는 늘 네가 등장한다. 그만큼 나에게 당연한 존재가 된 너지만, 너에게 받는 사랑은 당연하지 않다. 그래서 감사하고, 내가 훨씬 더 고맙다.


2023.07.29 (토)

이번 여름휴가는 제주로 간다. 비행 편이랑 숙소를 빼고는 아무 계획도 잡지 않았다. 아이 둘을 데리고 하는 여행은 변수의 연속이다. 설령 계획을 세우고 간다고 하더라도 계획대로 될 리가 만무하다. 날씨보다 변덕스러운 것이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획 없이 가는 것이 덜 스트레스다. (그건 내가 P이기 때문이겠지ㅋ)  무얼 보고 무얼 먹고 어딜 가기로 한 계획이 없다면, 무엇이든 해도 되고, 무엇이든 먹어도 되고, 어디로든 가도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획 없이 도착한 제주에서 점심을 먹어야 했는데, 자주 가던 식당은 유명한 집이라 대기가 너무 많았다. (주차자리도 없고, 식당도 매우 협소한 곳이었다.) 아이 둘을 데리고 긴 시간 대기할 자신이 없어  그 자리에서 평이 괜찮은 다른 식당을 알아봐서 즉흥적으로 갔다. 처음 가본 식당이었는데, 주차자리도 많고 식당 안도 넓어서 아이들과 쾌적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당 근처 표지판에서 ‘산굼부리‘라고 쓰여있는 것을 보고 점심을 먹고 즉흥적으로 산굼부리에 가기로 했다. 제주는 여러 번 와봤었지만 산굼부리는 처음이었다. 큰 기대 없이 가본 곳이었는데 풍광도 너무 멋졌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곳이었다. 분화구를 보기 위해 언덕을 걸어 오르 긴 해야 했지만 아이들과 함께 오르기도 어렵지 않은 곳이었다. 신나게 뛰어놀고, 멋진 가족사진도 찍었다. (우연히 만난 다른 관광객 분이 가족사진을 무척 열심히 찍어주셨다.) 숙소 근처 저녁식사를 한 동네 식당도 너무 맛있었고, 늦은 시간까지 하는 카페가 마침 숙소 근처에 있어 아이들과 즐거운 밤마실도 할 수 있었다. 계획이 1도 없는 아이 둘과의 여행이었지만, 첫날부터 알찬 하루를 보내 즐거웠다. 남은 시간들도 (무계획이니까) 기대 없이 보내다, 기대 이상의 시간들을 만들어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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