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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Aug 09. 2023

주간 새미일기

2023.07.31(월)~2023.08.06(일)

2023.07.31 (월)

여행 와서 삼일째 날이다. 이제 슬슬 여행의 피로가 쌓이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전날 밤, 그날 찍은 무수한 사진들을 정리하느라 늦게 잤는데, 애들은 또 새벽같이 일어났다. 몸은 일어났지만 정신은 일어나지 못했다. 아침밥이고 뭐고 다시 숙소 침대에 드러눕는다. 만화를 틀어달라는 아이들에게, 아침부터 무슨 영상을 그렇게 보냐며 핀잔을 주었지만, 아이들에게 TV를 틀어주고 나는 1시간 정도 자라는 남편의 제안에 못 이기는 척 그러자며 몸을 뉘었다. 설핏 잠이 들었던 거 같은데, 남편의 높아지는 언성에 이번엔 정신이 먼저 일어났다. (몸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남편은 전형적인 순한 사람으로 큰 소리 내는 법이 거의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아이에게 화를 내길래 무슨 일인가 하고 정신이 든 것이었다. 상황을 들어보니, 아이들에게 사골탕면(컵라면)을 주려고 뜨거운 물을 부었는데, 둘째가 그것을 계속 만지려 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남편답지 않게 지나치게 화를 내고 있었다. 작은 아이의 팔뚝을 잡아 세차게 흔들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더니, 이윽고 나에게도 불똥이 튀었다. 내가 덮고 있던 이불을 신경질적으로 걷어 던지며 "너도 일어나!!!" 하는 게 아닌가. 아니 자도 된다 그래서 잔 건데 왜 성질이람. 내가 일어나자, 마지막 피날레로 갑자기 숙소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가버린 남편. 그 모습을 보는데, 지난날의 내가 보였다. 아이 둘을 독박육아 하다 보면 저렇게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고, 그렇게까지 화를 낼 일이 아닌데도 지나치게 화를 내게 되던 시간들. 나는 내가 원래 화가 많은 사람이라 아이들에게 쉽게 화를 낸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그런 나의 성격을 못내 아이들에게 미안해했었는데 지금 보니 내 성격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화가 많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아이 둘을 보다 보면 몸도 마음도 쉽게 지치기 때문에 화를 내게 되는 거였다는 걸 남편을 보면서 느꼈다. 남편은 진짜 진짜 화를 거의 내지 않는 사람인데 아이 둘을 혼자 본 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저렇게까지 화를 내며 집밖으로 뛰쳐나가게 되는 걸 보면 아이 둘을 보는 게 그만큼 힘에 부치는 일인 것이다. 그렇게 화를 낸 것에 대해서 남편 스스로도 적잖이 당황을 한 모양이었다. 감정을 추스르고 들어와서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다. 그날 차를 타고 가며 아침의 일을 남편과 이야기 나누었다. 별것도 아닌 일에 너무너무 화가 나서 주체가 안되는데, 그런 자신이 싫고 아이들에게 미안했다고 남편이 그랬다. 그리고 그 와중에 자고 있는 내가 너무 미웠단다. 나도 애들을 보다 보면 그럴 때가 많다고 했다. 그래서 회식을 하고 오는 네가, 회사 사람들이랑 테니스를 치고 오는 네가, 출장 가서 자고 오는 네가 너무너무 미울 때가 있다고 했다. 아니, 생각보다 나는 자주 네가 많이 밉다고 했다. 너는 짧은 시간 애들을 보는데도 그렇게 화가 나는데, 나는 얼마나 자주 그런 나를 마주하겠냐고. 너는 그래도 내가 있어서 집 밖으로 뛰쳐나가기라도 했지, 나는 그러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라고. 그래서 하다 하다 안되면 방문을 잠그고 들어가 애들 우는 소릴 들으며 내 분을 삭일 때도 있다고 했다. 남편은 아마도 이번 경험을 통해서 육아하는 내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역시 백번 말하는 것보다 한 번 경험하는 것이 낫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내 경험과 비교하기엔 아주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ㅋ) 게다가 이번 일을 통해서 나도 좀 자유로워졌다. 남편에 비해서 맨날 성질이 더러운 사람으로 낙인찍혀 있었는데, 내 성질머리가 쉽게 끓어오르고 쉽게 식어버리는 건 맞지만 아이들을 보면서 그렇게 화를 내게 되는 건 비단 내 성격만의 문제는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고 나니 아이들에게도 좀 덜 미안하고 그런 나 자신을 자책했던 나에게 조금의 변명거리는 생긴 것 같아서 말이다. 애 보는 일이 이렇게나 힘들다. 그렇다.


2023.08.01 (화)

아이 둘을 데리고 여행하면서 계획은 1도 세우지 않았었는데, 오늘은 처음으로 남편과 약간의 계획을 세워보았다. 아직까지 '우도'를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서 오늘은 동쪽 숙소를 체크아웃하고 우도를 가보기로 한 것이었다. 숙소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우도로 넘어갈 계획을 세우고 우도를 오가는 배 시간과 배 값도 알아놓았다. 그런데 점심식사를 하러 가는데 날이 진짜 너무너무 더웠다. (지금까지도 덥긴 엄청 더웠지만ㅋ) 식당 사장님도 자기가 제주 살면서 이렇게 덥기는 또 처음이라며 오늘 37도까지 올라간다고 했다고, 햇볕이 너무 뜨거워 창문 버티칼을 내린 것을 이해해 달라고 하시는 거였다. 점심식사를 하며 남편과 계획을 변경했다. 오늘 우도를 가면 그늘도 잘 없는 그곳에서 애들과 너무 힘들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렇게 더우니 오늘은 나무가 많은 숲으로 가자고 의견을 모으고 점심식사 후에 '사려니숲'에 가기로 했다. 플랜 B를 따라 차를 타고 사려니숲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또 다른 변수가 등장한 것이다. 거의 다 도착할 즈음 아이 둘 다 깊은 잠에 빠진 것을 보고는 다시 계획을 변경해야 했다. 아이들이 자는 동안 다음 숙소가 있는 제주 서쪽 끝으로 (첫 숙소가 제주 동쪽 끝이었다.) 아예 이동을 하기로 했다. 아이들은 이동하는 2시간 넘는 시간 동안 낮잠을 잤고, 우리는 숙소랑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한림공원을 가기로 했다. 이쯤 되니 다시 한번 생각이 들었다. 역시 아이들과 다니는 여행에서는 계획이 크게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ㅋ


2023.08.03 (목)

여름이(둘째)는 가을이(첫째)를 잘 괴롭힌다. 가을이가 워낙 순한 성격이라 괴롭혀도 반격을 안 하는 데다, 한창 몸으로 격하게 표현을 하는 시기인 둘째는 맨날 누나를 깔아뭉개고 깨물고 때리고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고 난리다. 오늘 아침도 침대에서 아이들과 쉬고 있는데 굳이 가만히 앉아 있는 누나 다리 위에 가서 눕는 둘째다. 몸무게는 고작 3킬로 차이 밖에 안 다는 데다 길이만 누나가 길지 덩치는 별 차이도 없는데 꼭 누나를 깔고 뭉갠다. 그래도 웃는 걸 보면 좋다는 표현도 그렇게 하는 것 같다. 그래도 첫째가 힘들 것 같아 일부러 둘째에게 핀잔을 주었다. "여름이는 왜 그럴까? 어제도 처음 만난 누나한테도 막 매달리고 때리고 말이야. (저녁에 같이 만나 놀게 된 8살 누나 얘기였다.)" 다른 누나도 괴롭힌다는 말에 묘한 경쟁심이 생겼는지 가을이가 더 강력한 것을 말한다. "나한테는 내 다리 막 깨물었잖아." 그 말에 나는 맞장구를 쳤다. "그러니까 말이야! 누나 막 물고! 으이그 여름이 이놈! 누나 다리 깨물면 돼 안돼!" 갑자기 이전 잘못까지 들추어져 괜히 혼이 나는 여름이를 향해 가을이가 한마디 던진다. "여름이가 누나 꼬집고 때리고 깨물어도 누나는 여름이를 사랑해~" 그 말에 갑자기 마음이 몰랑몰랑해진다. 동생이 그렇게 괴롭히는데도 저렇게 말해주는 마음이라니. 미우나 고우나 내 동생이라고 아껴주는 저 마음이 고맙다. 맨날 여름이에게 "안돼! 그만해! 하지 마!" 이런 말만 많이 하게 되는 요즘인데, 나도 종종 그렇게 말해주어야겠다. "그래도 엄마는 여름이를 사랑해~"


2023.08.04 (금)

여행의 큰 재미 중 하나는 음식 아니겠는가. 남편은 특히 먹는 게 중요한 사람이라 여행 가서 무얼 먹을지가 가장 큰 관심사인 사람이다. 그런 그도 애 둘과의 여행에서는 그 재미를 기꺼이 포기했다. 아이 둘을 데리고 이 더운 날 음식점을 찾아 이동하는 일도 일이거니와, 식당에 가서 둘 데리고 식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에너지 소모가 큰 노동(먹는 게 진짜 일이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신 숙소와 가까운 로컬 식당들을 가기로 했다. 아이들과 함께 먹을 만한 음식을 파는 가까운 식당들을 선택해서 갔는데, 웬걸 대부분 다 너무 맛있었다. 맛집을 일부러 찾아간 게 아니라 기대하는 마음이 많지 않아서 그랬던 건지, 더위와 물놀이에 배가 고파서 그랬던 건지 뭐 그 이유들도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대부분 만족스럽고 맛난 식사를 했더랬다. 그런데 오늘은 처음으로 제주에 사는 동생에게 인생고깃집이라는 추천을 받고 그 맛집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바다에서 해수욕을 하고 3시에 점심식사를 늦게 한 것도 있었지만 일찍 가면 사람이 많아 붐빌 것을 예상해, 일부러 일몰구경까지 마치고 8시 반에 추천받은 식당을 찾아갔다. 그런데 웬걸, 그 시간에도 대기자가 제법 있었다. 식당은 작았고, 자리가 많지 않아 앞에 3팀이 대기하고 있었는데도 우리는 열대야 속에서 30분 넘게 대기를 해야 했다. 아이 둘을 데리고 길거리에서 그 시간을 기다리는 일은 쉽지 않았고, 남편과 나는 신경이 날카로워져 서로를 원망하는 말들을 쏟아내기에 이르렀다. 그래도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 먹고 가기로 했는데 우리는 9시가 넘어서야 식당에 들어설 수 있었고, 좁은 식당 안에서 숯불까지 피우는데 둘째가 계속 돌아다녀 남편은 더더욱 예민해졌다. 삼겹살이나 오겹살을 제외한 부위들을 파는 식당이라 고기맛도 새롭고 맛있었던 것은 분명한데, 우리는 그 동생이 말했던 것처럼 인생고기맛을 느낄 수는 없었다. 늦은 시간이라 칭얼대는 아이를 달래느라, 돌아다니는 아이가 다치거나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할까 봐 신경 쓰느라 우리는 지칠 대로 지친 탓에 고기맛에 집중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동네에서도 숙소 근처 고깃집을 간 적이 있었다. 거기서도 불을 피워 고기를 구운 것은 똑같았지만, 손님이 우리밖에 없어 눈치 보지 않고 편히 먹을 수 있었다.) 어찌어찌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남편이랑 나는 그제야 유명한 맛집보다 동네 식당들에서 더 맛나게 식사를 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음식 맛도 맛이지만,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많지 않아 내 아이가 좀 떠들고 돌아다녀도 미안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 기다리지 않고 바로 식사가 가능했던 상황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던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좀 더 음식을 편하게 먹을 수 있어 그게 또 그렇게 맛있게 느껴졌을 것이었다. 역시 맘 편한 게 최고다. 몸이 고단할 수밖에 없는 여행에서 밥이라도 맘 편히 먹기 위해 유명 맛집을 포기했지만, 우리는 그 편안함에서 그 어느 맛집 못지않은 미식을 누릴 수 있었다.


2023.08.05 (토)

7박 8일의 여행이었다. 여행을 의미하는 'Travel'은 '고생', '고역'을 뜻하는 'Travail'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집으로 들어오는 순간, 왜 그런 말에서 여행이라는 단어가 유래하게 되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내 집이 이렇게 편했던가. 새삼스럽다. 익숙한 공간, 사물들이 주는 심적 안정감은 엄청났다. 매일 이곳에서 집안일만 하고 있는 게 너무 싫었는데, 훨씬 예쁘지만 불편한 남의 집에서 지내다 오니 편한 내 집이 좋긴 좋다. 나는 집이 일터라 늘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었는데, 벗어났다 오니 집이 좋다. 그런 느낌을 가져볼 수 있었던 것에 있어서도 이번 여행은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우리는 여행을 가서 불편함을 많이 겪었다. 그것의 이름은 새로움이었다. 일상에 돌아와서도 그 즐거움을 잃지 않기를 바라본다. 불편함이 주는 새로움 그리고 그것에서 오는 즐거움.


2023.08.06 (일)

덥고 힘들면 쉽게 짜증을 내게 된다. 열불이 오른다고 할까. 여행 후의 피로감이 아직 다 가시지 않은 주말은 고비였다. 손님들이 와있던 터라 분주했다. 저녁을 먹고 아이들을 씻기고, 손님들이 돌아간 뒤 엉망이 된 집을 치우고 나니 땀이 뻘뻘 난다. 이제 나도 얼른 씻고 애들 재워야지 하고 있는데 둘째가 주스를 달란다. 늘 마시는 빨대컵에 주스를 따라주려는데 같이 하고 싶단다. 요즘 스스로 하겠다거나 엄마가 해주던 일을 같이 해보겠다고 할 때가 많다. 그럴 시기이니 웬만하면 나도 그러마 하며 존중해 준다. 그래서 이번에도 같이 주스를 따르고 뚜껑을 닫으려는데, 나보다 빨리 뚜껑을 잡으려고 서두르다 주스를 쏟았다. 다 씻기고 잠옷으로 갈아입혀 놨는데, 그 옷에 끈적한 주스를 와르르 쏟는 모습을 보자 탁 하고 이성의 끈이 끊어진다. 부글부글 끓고 있다 결국 터졌다. 아이에게 윽박을 질렀다. 신경질적으로 옷을 벗기고, 버둥거리는 아이를 억지로 붙잡아 몸을 닦였다. 아이는 오열을 했다. 눈치를 보던 첫째는 얼른 이를 닦았고, (내가 마무리를 해준 후에) 스스로 입안을 헹구고 나왔다. "얼른 누워자!"라는 나의 호통에 얼른 침대로 가 눕는다. 울면서 나만 쫓아다니는 둘째에게 얼른 마시고 이 닦아야 하는데 주스 안 마실 거냐며 막 화를 냈다. 겨우 진정을 하고 주스를 마신 둘째의 이를 씩씩거리며 닦아주고 있는데, 갑자기 첫째가 찬물을 끼얹는다. "엄마 고마워~^^" "뭐가." "아빠 분리수거 할 동안 우리들 돌봐줘서~^^" (내가 그렇게 열폭하고 있을 동안 남편은 분리수거를 하러 나가 집에 없었다.) 하... 그것은 잔뜩 열불이 오른 나에게 찬물을 끼얹는 말이었다. 올랐던 열이 푸쉬쉬 꺼졌다. 이성이 돌아왔고, 아이들을 안아주었다. 아이들을 안고 미안하다 했다. 너희들 잘못이 아니라고 했다.  내가 윽박지르며 건넨 미운 말들에 네가 고운 말로 답해줘서 나는 또 나의 못남을 다시 한번 확인해야 했지만, 그 덕에 더 이상 화를 내지는 않게 되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했지만, 가는 말이 미워도 오는 말이 곱다면 우리는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나도 아이들이 미운 말을 할 때 고운 말로 답해줘야지. 그래서 아이들이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야지. 나도 그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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