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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Aug 22. 2023

주간 새미일기

2023.08.14(월)~2023.08.20(일)

2023.08.14 (월)

나는 욕심이 많다. 하고 싶은 게 많다. 필라테스, 일기 쓰기, 그림 그리기, 자격증공부하기, 책 읽기, 피아노 치기. 거기다 요즘은 영어회화학원까지 다니고 싶다.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모든 것을 기록하려는 욕심까지 있다. 일기는 그 자체로 기록이거니와 일기를 써서 이렇게 브런치에 올린다. 그림을 그리면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책을 읽으면 독후감을 써서 올린다. 피아노를 연습하면 동영상을 찍어서 올리고, 매일매일 찍은 아이들의 사진도 선별해서 설명을 달아 올린다. 무언가를 실행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지만 그것을 정리해서 기록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을 쓴다. 문제는 내가 전업주부라는데 있다. 집안일을 하고 아이 둘을 키우면서 내 시간을 갖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저 많은 일들을 다 하고 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하루에 한두 가지라도 하면 다행이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적이기 때문에 한 가지에 집중하면 나머지 것들은 거의 못하는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요즘은 매일 일기를 쓰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그림 그리기, 책 읽기, 피아노 치기는 거의 손을 놓았다고 보아야 하고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필라테스를 가고 간간히 자격증공부를 하는 것만으로도 빠듯하다. (이번주에 등록하려 했던 영어회화학원은 아이들이 아픈 관계로 잠정 연기 되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는 늘 뭔가에 쫓기듯 산다. 나 하고 싶은 거 하고 살고 싶어서, 맨날 이것도 해야 하는데 저것도 하고 싶은데 하면서 혼자 발을 동동 구른다. 애들 재우고 자격증공부를 하고, 일기를 쓰고 나면 책 좀 읽고 자야지 했던 마음은 욕심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러면서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단 마음에 자기 전 예능프로그램은 또 그렇게 열심을 보는 모순ㅋㅋㅋ) 그런 내 욕심들이 어디서 왔나 했더니, 우리 아빠였나 보다. 오늘 아이 둘을 원에 보내지 못하고 가정보육해야 하는 형편이라 무얼 할까 고민하다가 엄마아빠를 대동해 근처 산에 갔다. 계곡 물에 발을 담그고 노는데 아빠가 어느새 이어폰을 끼고 있다. 우리 아빠는 음악 듣는 것을 누구보다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음악을 듣는 것은 아닐 것이었다. 무얼 하고 있는 것인지 묻지 않아도 우리는 알 수 있었다. 아빠는 어떤 강의를 듣고 있는 게 분명했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아빠는 관심 가는 분야에 대한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신다. 퇴근만 하면 집에 와서 자기 전까지 내내 책들을 읽고 강의들을 듣는다. 누가 보면 대학원이라도 다니는 줄 알정도로, 밀린 숙제가 있는 사람처럼 아빠는 열심이다. 그런 아빠를 보고 있는데, 왠지 비슷한 내 모습이 보인다. 나는 아빠랑 생긴 것만 닮았지 성격도 성향도 정반대인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묘하게 이런 부분이 닮은 걸 보면 재밌다. 아빠도 나도 욕심쟁이다. 그래서 피곤하게 산다. ㅋㅋㅋ


2023.08.15 (화)

아이들을 재우려고 온 식구가 다 함께 아이들 침대에 누웠다. 남편이 오늘 하루 어땠는지 한 마디씩 하자고 했다. 내 차례가 되어 나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 하루 너무 힘들었고, 내일 애들 소아과에 가을이 치과까지 가야 하는데 아빠는 출장을 간다는 사실이 너무 스트레스다." 진심이었다. 그랬더니 가을이가 울먹이면서 말한다. "엄마~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ㅠㅠ" 나의 진심이 무척이나 서운했나 보다. 아이 앞에선 그래도 즐거웠던 일만 이야기했었어야 했던 걸까. 모르겠다. '미안해 가을아...ㅎ 근데 진짜 100% 진심이었어...."


2023.08.16 (수)

지난 치과 치료에 이어 나머지 치아들을 치료하러 치과에 가는 날이다. 지난번에는 진정치료로 넘어가지 않고 웃음치료로만으로도 잘 치료를 받았던 가을이라, 이번에도 웃음치료로 해보자 하셨다. 하지만 지난번보다 더 힘든 치료인 데다 시간도 더 걸릴 예정이라 아이가 잘 견디는지 보면서 진행하기로 했다. 아이가 받는 치료라 내가 대신 치료를 받아줄 수도 없고, 내가 노력할 수 있는 부분도 없다. 그래서 그게 그렇게 스트레스였다. 사람은 내가 노력할 수 없는 부분일 때 더 스트레스를 받는가 보다. 아이가 너무 힘들어하면 어쩌지.. 그래서 진정치료로 넘어가게 되면 8시간 금식을 해야 하는데... 그럼 진청치료하고 깰 때도 힘들어한다는데... 두 번에 나눠서 치료하게 되면 치과를 또 와야 하는데... 등등 걱정은 많지만, 걱정은 더 많은 걱정을 부를 뿐이었다. 나의 걱정과 달리 가을이는 3시간 금식을 하고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치료 의자에 누우면서도 싱글벙글. 본격적으로 치료에 들어가기 앞서 잇몸에 마취주사를 놓아주려 오셨다. 마취주사는 처음인데... 나도 맞아봤지만 치료받는 것보다 마취주사가 제일 아프지 않은가...ㅜㅜ 그런데 아이는 움찔하면서 "으~~" 아파하긴 했지만, 울지도 않고 잘 참는다. 잇몸 여기저기 여러 번 주사는 놓는데도 잘 참았다. 이에 고무를 끼우고, 치료할 치아에도 고정기를 끼운 다음 무서운 소리가 나는 기계들로 한참을 치료하데도 처음에만 불편하다는 듯 몇 번 움찔거리더니 나중에는 가만히 잘 치료를 받았다. 입을 아~벌리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들 텐데, 아이는 나의 걱정이 무색하게 치료 내내 잘 견뎌주었다. 선생님과 간호사분들도 계속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선생님은 나중엔 나를 쳐다보며 아이가 어쩜 이렇게 치료를 잘 받냐고 칭찬하신다. 내가 잘해서 칭찬받을 때와는 또 다른 기분 좋은 뿌듯함이 있다. 그런 걸 대견함이라고 하나... 지난번보다 오래 걸리는 치료라고 했는데, 치료시간도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옆 방에서 치료받던 초등학교 3학년 오빠도 울고불고 난리였는데, 가을이는 의젓하게 치료도 잘 받는다고 칭찬하시며 치료가 끝난 가을이에게 예쁜 반지도 선물해 주셨다. 치료를 다 받고 나오자 대기실에서 가을이 또래 친구가 치료를 받기 싫다고 버텨서 간호사 선생님과 아이 엄마가 아이를 설득 중이었다. 나도 거들었다. "친구(가을이)도 치료 잘 받고 나왔어~ 하나도 안 울고!" 그러니 너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였다. 나의 말에 간호사 선생님도 한마디 덧붙인다. "심지어 저 친구는 웃음가스로만 치료받는데도, 하나도 안 울고 잘 치료를 받았어요~" 그 말에 아이 엄마가 깜짝 놀라신다. "근데 저런 친구는 열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하죠~ 드문 케이스 긴 해요~" 그 드문 케이스가 내 딸이라 얼마나 감사한지... 가을이 만큼 순하고 수월한 애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치과치료까지 수월하게 받아주니 엄마인 나도 놀라울 따름이다. 물론 아이들은 시시때때로 바뀌니 순하던 아이도 어느 순간 어느 부분에서는 까칠하고 어려운 아이가 될 수도 있는 것이지만, (그게 바로 나다. 고등학교 때 격변을 함.) 지금까지의 가을이를 키우면서 느낀 건 이렇다. 나는 아마도 전생에 나라를 구해서 가을이의 엄마가 되었나 보다... 하는 마음.


놀이터에서 새 친구와 장난감을 나눠 노는 가을이

2023.08.17 (목)

어제 출장을 간 남편은 원래 오늘 돌아오는 일정이었지만, 일이 마무리되지 못해 출장 일정이 하루 더 늘어나게 되었다. 남편의 불행한 소식에 기운이 쪽 빠지지만,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아직 무너지면 안 된다!! 심기일전하여 아이들 저녁을 먹이고 집 근처 공원으로 나간다. (아이가 하원하자마자 공원에 가고 싶다는 걸, 밖에서 혼자 애 둘 저녁 먹이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 집에서 밥을 먹고 나가자고 겨우겨우 설득을 했더랬다.) 가을이는 공원에 나가면서 작은 가방에 새로 산 장난감(포켓몬스터 피규어들)을 챙겨가지고 나갔다. 공원에 있는 놀이터에서 놀고 싶다기에 놀이터로 향했다. 그곳에 먼저 와 놀고 있던 아이들이 있었는데, 그 아이들에게 대뜸 자기 장난감들을 나눠주는 가을이었다. 같이 놀자는 뜻이었다. 가을이는 이렇게 놀이터에 가면 언제나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어 함께 놀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가을이의 바람과는 다르게, 그 아이들은 금세 놀이터를 떠나게 되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그네를 타고 있었는데, 또 새로운 친구가 왔다. 이번에는 그 친구가 먼저 다가와 함께 놀자고 청한다. 그러더니 자기가 간식을 많이 싸왔다며, 가을이와 여름이에게 과자를 막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 친구의 과자를 잔뜩 나눠먹고, 가을이도 자기 장난감을 함께 나누어 놀았다. 그런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든다. 아이들은 함께 놀고 싶을 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나눠주는구나... 처음 보는 낯선 이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선뜻 나눠줄 수 있는 저 마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나는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가. 나는 친구가 되고 싶을 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나누었나. 나는 내 친구에게 나의 좋은 것들을 나누는가. 너희들 덕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2023.08.20 (일)

아이들과 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는데, 뒷좌석에 있는 가을이가 대뜸 이런 말을 했다. "엄마, 그거 알아? 모든 마음은 다 달라." "응?"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말에 잠깐 멈칫했다. 갑자기 무슨 말이지? 하다가, 금세 '그래 맞아 모든 마음들은 다 다르지...'싶다.  "누구의 마음이 다른데?" 하고 묻자, 유치원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열거한다. "친구들 마음도 다 달라. 가족까지 다 달라." 갑자기 딸아이는 그런 말을 왜 했나 모르겠다. 그런데, 그 말이 이상하게 계속 맴돌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래, 남편도 나도 서로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지... 여름이와 나도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고... 내가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그 사람도 나와는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거겠지... 다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건데, 나랑 다른 마음이라고 해서 내가 그 사람을 비난할 자격은 없는 거지... 맞아... 그런 거야... 그나저나 진짜 나한테 갑자기 그런 말을 왜 한 거지..? 정말 어떤 날은 아이의 말이 설교말씀보다 더 와닿을 때가 있다. (애들 덕분에 설교를 제대로 듣지 못하는 게 문제긴 하지만ㅋ) 어쩌면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는 주일날, 아이의 그 말들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육아를 하는 엄마는 육아 자체가 예배라던데, 오늘은 가을이가 말씀을 전하는 날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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