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새미 Aug 28. 2023

주간 새미일기

2023.08.21(월)~2023.08.27(일)

2023.08.21 (월)

오늘 동생과 이케아에 다녀왔다. 나는 이케아를 좋아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나는 꽤나 성취주의자인데, 육아나 가사에 있어서 무언가 성취감을 얻기란 쉽지 않다. 어떠한 결과물이 있어야 성취감을 얻기가 좋은데, 육아는 끝난 게 아니니 결과물이 없고 집안일은 끝도 없이 반복되니 결과물이랄 게 잘 없다. 그나마 집안일 중에서도 '정리'가 가장 눈에 띄는 결과물이 있는 편이라 나는 '정리'를 제일 좋아하는 것 같다. 게다가 나는 맨날 똑같은 것을 잘 견디지 못하는 데다 아이들은 계속 성장하니 가구배치나 물건수납이 계속해서 바뀔 수밖에 없고, 바꾸는 것을 즐긴다. 그래서 집안 가구를 바꾸고, 배치를 바꾸고, 수납방법을 바꾸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의 즐거움 중에 하나인 셈이다. 그런 나의 즐거움을 뒷받침하기 딱 좋은 곳이 바로 이케아다. 저렴한 가구들과 수납용품들, 소품들은 집안의 변화를 주는 데 있어서 부담을 덜어준다. 그러니 나름대로는 마음껏 도전을 할 수 있게 해 줌으로써 변화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 준다. 아이들이 험하게 써서 좀 흠집이 나더라도 화를 내지 않을 수 있고, 더 이상 쓰지 않게 된 가구들은 다시 이케아에 되팔 수도 있으니 더욱 좋다. 오늘도 속이 잘 들여다보이는 투명 수납함을 사 왔다. 아이들 장난감을 넣어주기 위해서다. 안이 잘 보이니 무엇이 들었나 금세 알 수 있고, 그로 인해 아이들의 접근성도 높아진다. 결국 보여야 가지고 노는데, 나는 어디다 넣어두고 싶으니 투명 수납함이 절충안이 되어줄 것이다. 그나저나 나는 옷장을 사고 싶은데, 부피가 큰 가구이니 남편과도 상의해 보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2023.08.22 (화)

오늘은 비가 내렸다. 다행히 아이들 하원시간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우리 집에 오신 엄마 차를 얻어 타고 첫째를 하원시켜 동생네 집에 가 저녁을 먹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하원하고 할머니 차에 오른 첫째가 이모네 가기 전에 집에 들러 자기가 좋아하는 쿠로미 인형을 가져가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모네도 장난감 많은데 굳이 인형 때문에 집에 들르자는 첫째가 피곤하게 여겨졌지만, 할머니는 손녀의 바람을 들어주셨다. 기왕 집에 들르는 김에 첫째 유치원 가방과 우산은 집에 두고 올 참으로 들고 내리는데, 첫째가 우산은 가져가고 싶다고 우긴다. 지금 비도 안 오고 짐도 많은데 우산은 집에 두고 가자는 나의 만류에도 첫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우산과 인형을 챙겨든 채 이모네로 향했다. 저녁을 먹고 한참을 놀다가 밤늦게 집으로 향했다. 동생네로 퇴근한 남편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려는데 갑자기 비가 막 쏟아지기 시작했다. 불행히도 남편 차에는 우산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는 첫째가 우겨서 챙겨 온 작은 우산 하나를 의지해 차에 타고 내리는 동안 나름대로 비를 피했다. 그제야 첫째더러 우산 챙기길 잘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깨가 으쓱한 첫째는 그걸 또 그렇게 뿌듯해했더랬다. 맞다. 어른은 늘 자기가 맞는 줄 알고 자기 말을 따르지 않는 어린이를 답답해 하지만, 사실 어린이가 맞고 어른이 틀릴 때도 많다. 이래서 어린이의 의견을 무시하면 안 되는 것이다. 작은 어린이 우산에 어깨를 욱여넣으며 비를 피하던 나란 어른은, 낯에 어린이에게 핀잔주었던 것을 반성했다.


2023.08.23 (수)

비가 내려 덥고 습한 오늘, 둘째를 데리고 첫째를 하원시켜 집에 돌아왔다. 집 문 앞에 서서 기다리면 첫째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연다. 숫자를 익히고 어느 정도 암기력이 되자 아이는 스스로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를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을 무척 뿌듯해하며 즐기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아이는 여러 번 잘못된 번호를 눌러 현관문을 여는데 실패했다. 덥고 습해서 불쾌지수가 높은데, 둘째까지 안겨 칭얼거리니 3번의 실패 후에는 내가 참지 못하고 비밀번호를 대신 눌러 현관문을 열었다. 그러자 첫째가 단단히 화가 났다. 짜증을 부리며, 비밀번호를 자꾸 틀려 너무 속상하다고 징징거린다. 그럼 혼자 나가서 다시 열고 들어오라는 나의 말에 혼자서는 무서워서 안된다며 또 징징. 비밀번호를 다시 누르지 않고는 계속 짜증을 낼 것 같아, 둘째를 안고 다 같이 다시 나가자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덥고 습한 복도로 나가, 첫째가 다시 비밀번호를 제대로 누르고 나서야 평화롭게 집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아이와 함께 지내다 보면 관계의 평화를 위해 이렇게 한 발짝 양보를 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어른인 나도 양보해 주기 싫을 때가 많지만, 그래도 양보를 하고 나면 얻어지는 것들이 있다. 아이들에게 볶음밥을 해주기 위해 당근을 써는 나를 보며 첫째가 말했다. "나는 당근을 싫어하지만, 엄마가 맛있는 요리를 해주니까 용기 내서 먹어볼게!" 그것은 아마도 내가 아까 다시 한번 현관문을 나서준 양보를 해준 것에 대해 첫째가 싫어하는 야채를 거부하지 않는 양보로 보답한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아이에게 맞춰주면 아이도 나에게 맞춰준다. 기브엔 테이크. 관계란 그런 것이다.


2023.08.24 (목)

오늘은 원래 가을이가 유치원에서 숲체험이 있는 날이었다. 며칠째 내린 비에 숲체험도 취소되었었는데, 비가 잦아들자 원에서 아침 일찍 공지가 올라왔다. 비 온 뒤의 숲의 모습을 보기 위해 숲체험을 진행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지난달에도 비 때문에 취소되었던 숲체험이기에 아이는 신이 났다. 아이의 장단에 맞추기 위해 나도 거들었다. "우와 비 온 뒤의 숲의 모습을 보러 간데 가을아! 너무 멋지겠다! 나무들이 비를 먹고 쑥쑥 컸겠는데? 엄마도 비 온 뒤 숲의 모습을 봐보고 싶다~!" 나의 맞장구에 아이는 더욱 기대가 되는 표정이다. 그런데 문득 정말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비 온 뒤의 숲을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그런 숲은 가본 적이 별로 없었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가면 되지?!"하고 마음먹었다. 운동 끝나고 점심을 먹고 숲에 가기로 한 것이다. 내가 숲에 간 시간에는 비구름이 걷히고 해가 뜬 뒤였다. 그래도 숲은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물이 흐르지 않던 길에도 물이 졸졸졸 흐르고 있었고, 나무랑 풀의 색도 왠지 한층 더 짙어진 듯했다. 비에 젖었을 몸을 나무 사이로 비쳐 들어온 햇볕에 말리고 있던 고양이도 만났고, 비가 올 때는 움츠리고 있었을 거미와 사마귀도 본격적인 사냥을 나선 듯했다. 나무 밑에는 가지각색의 커다란 버섯들이 자라 있었고, 매미는 가는 여름을 붙잡는 노래를 열렬히 부르느라 내가 코앞에서 카메라로 찍고 있는지도 모르는 듯했다. 1시간 정도 숲을 산책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땅을 밟던 그 촉감, 짙은 풀냄새, 그 습도, 그 색깔, 그리고 생명들이 주는 그 생동감까지 자연이 주는 만족감은 대단했다. 그날은 집에 돌아와서도 아이들에게 큰소리치지 않았고, 새로운 요리를 해 저녁밥을 먹었으며, 하루종일 컨디션이 좋았다. 역시 사람은 자연을 가까이해야 하는 것 같다. 숲산책은 육체건강에도 정신건강에도 좋다는 것을 느낀 하루였다.

비 온 뒤의 숲 산책

2023.08.25 (금)

남편은 나에게 종종 꽃을 선물해준다. 주로 여러 가지 꽃이 함께 섞인 꽃다발을 선물하는데, 그럼 나는 그 꽃들을 화병에 옮겨 담아 식탁 위에 올려두곤 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꽃들은 시들기 시작하는데, 항상 애석하게도 그 꽃다발의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가장 크고 화려한 색깔의 꽃이 제일 먼저 시들 때가 많다. 그렇다면 어떤 꽃이 가장 마지막에 남느냐 하면, 안개꽃처럼 크기가 작고 눈에 띄지 않는 꽃들이 늦게까지 지지 않고 남아있는다. 최장 시간 버텨냈던 건, 꽃도 아닌 풀이었다. 꽃들 뒤에서 배경역할을 하는 풀잎 말이다. 이번에 선물 받은 꽃다발도 알록달록 정말 예쁜 꽃다발이었는데, 지금 식탁 위에 남아있는 건 하얀 안개꽃과 작은 국화(?) 꽃들이다. 색깔 있는 꽃들은 다 시들었고, 그 색깔 있는 친구들의 배경역할을 해주던 하얗고 작은 꽃들만이 남았다. 우리 집은 식탁도, 식탁 의자도, 벽지도 다 하얀색이라 흰 꽃들만 남은 꽃병은 장식이라기보다 그 자체로 배경인 듯 되었다. 그런데 그 꽃들을 보고 있자니 왠지 혼자 사색을 하게 된다.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며 큰소리로 노래 부르던 화려한 친구들은 금방 시들어 쓰레기통으로 들어갔고, 작고 소박한 친구들만 남아 작은 목소리로 소곤 거린다. 사실 가장 오래도록 남아 우리에게 말을 거는 친구들은 그런 친구들이 아닌지, 우리는 그런 말들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건 아닌지...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2023.08.26 (토)

가을이는 순하고 착한 아이라 어디서든 이쁨을 받는 편인데, (유일한 딸이라 가을이 이모도 할머니도 모두 유독 예뻐한다.) 그래서 그런가 다른 아이가 칭찬받는 것을 종종 질투할 때가 있다. 오늘도 그랬다. 친한 동생네 놀러 갔는데, 그 집 딸아이가 놀다가 방에 들어가 (가을이보다 2살 어린 동생이다.) 엘사 드레스로 갈아입고 나온 것이다. 모두가 드레스 너무 예쁘다며 한 마디씩 했다. 그 모습에 가을이가 갑자기 투정을 부리기 시작한다. 자기도 집에 엘사 드레스 있는데, 다들 그 친구만 칭찬한다면서 되지도 않게 화를 내며 눈물까지 글썽이는 게 아닌가. 이럴 때 난 정말 당황스럽다. 그 아이를 가을이와 비교하며 칭찬한 것도 아니고, 심지어 좀 아까 가을이가 입은 원피스도 예쁘다고 이미 칭찬을 해준 상태였다. 이게 그렇게 속상할 일인가. 적당히 위로해 주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가을이가 방에 들어가서 나와 얘기를 하고 싶단다. 방에 들어가 문까지 닫고 가을이와 마주 앉았다. 막상 얘기를 하려니 막막한지 나보고 먼저 얘기를 하라던 너에게 나는 이렇게 얘기했다. “가을아, 누군가가 칭찬받는 것을 속상해하는 걸 '질투'라고해. 누군가 칭찬받을 때 함께 기뻐해줄 수 있어야 마음이 넓은 사람이야~ 그걸 속상해하면 마음이 좁은 사람이고, 엄마는 가을이가 마음이 넓은 사람이 되면 좋겠어~” 그 말에 아이는 금세 다시 눈물을 글썽인다. 그래도 자기는 속상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몇 발짝 떨어져 나를 쳐다보며 "그럼 나는 나쁜 딸이야?"라고 묻는 너. 나는 당황스러웠다. 네가 나쁜 딸일리 없지 않은가. 나는 펄쩍 뛰며 대답했다. "아니야 가을아! 가을이는 절대 나쁜 딸이 아니야~ 질투하는 마음이 드는 것 자체는 나쁜 게 아니야~ 그런 마음이 들 수 있어~ 그건 괜찮아~!" 아이를 안아준다. 내 품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닦아내는 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그냥 가을이가 칭찬받는 사람을 함께 축하해 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해서 엄마가 그렇게 얘기한 거야~ 엄마에겐 늘 가을이가 최고야~ 속상해도 괜찮아~" 그날 밤, 온 가족이 침대에 누워 오늘 하루에 대해서 한 마디씩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이렇게 얘기했다. "오늘 즐거운 일이 많았지만, 엄마는 가을이가 속상한 마음까지 엄마에게 솔직하게 따로 이야기 나누어 준 게 가장 고맙고 좋았어~ 고마워 가을아~!" 생각해 보면 나를 방에 따로 불러내어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 나누고 싶어 했던 가을이가 참 고마웠다. 속상한 마음(질투하는 마음)이야말로 나누기 어려운 마음 중 하나가 아닌가. 아이는 몇 살까지 나에게 이런 마음을 나누어 주려나. 나중에는 정말 정말 속상해도 나에게 절대 나누어 주지 않는 마음들이 더 많아지겠지... 그래서 오늘이 더 고맙다.


2023.08.27 (일)

둘째는 노래 부르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요즘 부쩍 '말'이 늘고 있는터라, 노래가사도 부쩍 더 비슷하게 따라 하게 되었다. 음정 박자는 제법 비슷하게 따라 해도 가사를 따라 하는 게 쉽지 않았는데, 할 줄 아는 말이 늘 때마다 따라 부를 수 있는 가사가 늘어나니 노래 부르는 재미도 더 더해지는가 보다. 가만 보고 있으면 노래로 언어능력을 키우는구나 싶을 정도다. 교회에 가면 찬양을 부르는데 찬양을 부르면서 율동까지 따라 하는 여름이를 보고 있으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고, 본인은 본인대로 그렇게 신날수가 없다. 사실 따라 부른다고 해도 얼추 그 노래구나 알 수 있을 정도지 또박또박 가사를 다 정확하게 부르는 것도 아니고, 율동도 몇몇 동작만 비슷하게 따라 하는 정도지만 그 완벽하지 않음에서 '귀여움'이라는 게 생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부족하기 때문에 사랑스럽고,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미소 짓게 되는 것이다. 노래랑 율동은 3살 많은 첫째가 훨씬 잘하지만, 귀여움에서는 첫째가 둘째를 따라가지 못한다. 결국 우리는 웃게 하는 것은 완벽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그래, 꼭 모든 것에서 완벽할 필요는 없다. (그럴 수도 없지만.) 좀 못하고 부족해야 귀엽다. (뜬금없는 결론.) 그나저나 지금 이맘때의 아이의 노래들을 녹음해서 모아두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 피터 퀼이 노래 모음 테이프를 들으며 즐겁게 일을 하는 것처럼, 그런 노래 모음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요즘 나의 행복 포인트는 둘째의 노래다. 

매거진의 이전글 주간 새미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