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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Sep 05. 2023

주간 새미일기

2023.08.28(월)~2023.09.03(일)

2023.08.28 (월)

요즘 우리 가족은 아이들을 재울 때 다같이 한자리에 눕는다. 가을이, 여름이는 싱글침대를 두개 붙인 넓은 침대에서 함께 잠을 자기 때문이다. 원래는 그 상태로 누워서 아이들에게 책을 한두권 읽어주고 잠들었었는데 (아이들이 잠들면 남편과 나는 안방으로 가서 잔다.), 거기에 한가지 더해서 각자의 하루가 어땠는지 이야기 하는 것이 루틴으로 잡혔다. 오늘도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각자의 하루가 어땠는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이야기 하는 차례였는데, 남편의 말에 대뜸 여름이가 한 마디 덧붙인다. "아멘!" 그 한마디에 남편도 나도 빵터졌다! 대체 그 반응은 뭐야?ㅎ 아멘이라니ㅋㅋㅋㅋㅋ 한번도 우리는 누군가의 말에 아멘이라는 대답을 한적도 없고 아이들에게 시킨적도 없었다. 교회에 열심히 나가는 크리스쳔이지만, 사실 평소 식기도도 잘안하는데;;;ㅎ 아이가 '아멘'이라는 반응을 보이는게 신기하고 웃겼다. ㅋ 우리가 웃음을 터트려서 였을까. 아이는 그 이후로도 누가 말만 끝나면 아멘을 외쳤다. 처음에는 아이의 그런 반응이 그저 귀엽고 웃기다고만 생각했는데, 그 습관적인 대답은 생각보다 묵직하고 긴 여운을 남겼다. '아멘'은 히브리어로 '진실로', '확실히', '참으로', '그리 되게 하옵소서', '그렇습니다' 등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주로 기도나 말씀 끝에 쓰는 이 강력한 긍정은 아이가 말하는 이의 이야기에 공감과 지지를 보내주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아직 어린 아이는 우리들의 말을 다 알아듣지 못해도 '아멘'이라 화답한다. 아직 자기가 어떠한 하루를 보냈는지 말로 표현하지는 못해도, 우리의 말을 긍정해주는 아이. 아이가 그 말뜻을 알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아이의 그 말은 참 은혜가 된다. 아직도 왜 아이가 가르쳐 주지도 않은 그 말을 그 상황에 사용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아이의 입을 빌려 신이 우리에게 주신 말은 아니었을까. 뭐 그런 생각도 해본다. 


2023.08.29 (화)

지난 주말에 남편이 자유시간을 줘서 저녁에 혼자 나간일이 있었다. 그 때 가을이가 자기도 엄마랑 같이 나가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다음에 함께 외출하기로 약속했었는데 그게 바로 오늘 저녁이다. 나는 그렇게 해서 첫째와 외출을 하게 되었다. (남편은 둘째와 외출을 하였다.) 집에서 가까운 문구점에 가서 아이가 좋아할 만한 물건들을 사주고, (아이는 손톱에 붙이는 스티커와 슬라임을 골랐다.) 카페에 가서 슬라임을 가지고 놀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는 음료를 사마시기 위해 백화점에 들어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게 되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는데 메세지가 와서 팔에 차고 있던 애플워치가 진동을 울렸다. 그래서 나는 워치로 메세지를 읽고 있었는데, 아이가 갑자기 나더러 시계를 보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내가 당황해서 "응? 왜?" 하자,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다가 엄마가 다칠까봐 그런다면서 엄마가 다치면 자기가 슬프다고 말하는 아이. 고마웠다. 나를 이렇게 걱정해주는 이가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리고 내가 다치면 슬퍼할 이가 있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중요하고 귀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아이에게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아이의 그 짧은 말 덕분에 나는 그 시시한 메세지를 잊었다. 그리고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걸 기억했다. 


2023.08.30 (수)

아침에 등원 준비를 할 때 꼭 해야하는 일 중 하나가 첫째의 머리를 묶어주는 일이다. 자기 나름대로 하고 싶은 스타일이 있어서 그것에 맞춰 묶어주어야 하는데다 요즘은 앞머리를 없애고 싶다 해서 일자로 자른 앞머리를 뒤로 넘겨주느라 꽤나 긴 시간을 머리 묶는데 할애한다. 그 모습을 매일 보고 있던 둘째가, 요즘은 자기도 머리를 묶어 달라고 한다. 누나가 머리를 다 묶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자기도 같은 의자 올라 앉아 손으로 정수리를 연신 두드리며  "나두나두!"한다. 그럼 나는 그 정수리쪽 머리를 조금 모아 묶어 일명 '사과머리'를 만들어주고, 그 날 입은 옷 색깔에 맞추어 삔도 꽂아준다. 그럼 아이는 만족하며 의자에서 내려온다. 어린이집 선생님들도 그리고 지나가며 만나는 사람들도 연신 예쁘다고 해주어서 인지 아이는 그렇게 머리묶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어린이집 담임선생님이 머리삔좀 빌려달라해도 절대 빼주지 않는다는 둘째는 누나를 따라하는 재미를 그렇게 또 하나 발견했다.


2023.08.31 (목)

지난주 일기에도 썼지만 요즘 나의 힐링모먼트, 행복모먼트 중 하나는 둘째가 부르는 노래를 들을 때이다. 아직 말이 서툴러 아는 노래여도 주의 깊게 들어야 가사를 알아들을 수 있음에도 제법 가사를 비슷하게 발음 하는 구간이 나오면 그렇게 기특할 수가 없다. 아이는 같은 노래를 수십번 수백번씩 반복해서 부른다. 그렇게 수십 수백번씩 불러도 아이는 아직도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부르는 노래가 없지만, 그래도 아이는 계속해서 노래를 부른다. 그런 아이를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 그런 태도가 필요하다. 잘하지 않아도 완벽하지 않아도 내가 즐거운 것을 계속 하는 것. 갈수록 나도 내가 잘하는 것만 하려고 하고, 완벽하게 할게 아니라면 시작조차 하지 않으려하고, 내가 즐거운 것보다 내가 해야하는 것을 주로 선택했던 것 같다. 그러지 말아야지. 잘 못해도, 서툴러도, 내가 즐거운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지. 여름이처럼 그래야지. 


2023.09.01 (금)

매일매일 어린이집에서는 담임선생님이 아이의 사진과 함께 그 날 하루 원에서 아이가 어떻게 지냈는지 알림장을 써주신다. 나만큼 (어쩌면 나보다 더 긴 시간을) 아이와 보내는 선생님은, 나만큼 (어쩌면 나보다 더 많이) 아이의 성장을 자세히 지켜보게 되는 분이다. 그 모습을 너무 사랑스럽게 지켜봐주시는 선생님을 만나 하루하루가 감사하다. 만1세 시기가 제일 사랑스러워서 만1세반만 10년째 맡고 계신다는 선생님은 누가 봐도 아이들을 그 자체로 너무 좋아하시는 분이다. 그런 선생님이 오늘 알림장엔 이런 말씀을 남겨주셨다. "이젠 쑥쑥자라 어느정도 말벗이 되면서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 기특하지요❤️ 항상드리는 말씀이지만 지금이 제일 귀중한 시간인 것 같아요." 나도 요즘 둘째를 보다보면 순간순간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저렇게 귀여운 목소리로 저렇게 귀엽게 한마디씩 자기의 말을 늘려가는 아이와의 시간이 돌아보면 참 짧다는 것을 알기에 (첫째를 키우면서 보니 그 시간이 무척 짧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시간들이 더욱 보물같고 꿈같고 그렇다. 그런데도 육아에 가사에 이것저것 감당해야 할 일들이 늘 산재해 있어, 나는 그 순간들을 느끼고 즐기지 못할 때가 많다. 오늘은 선생님 덕분에 다시금 그 시간들의 귀중함을 되새기게 된다. 이제는 제법 말이 통하는 아이와 주고 받는 이 말들이 얼마나 반짝이는지 다시금 기억해야겠다. 이 순간들을 더 충만히 누려야겠다. 


2023.09.02 (토)

날씨가 좋은 주말이었다. 원래는 남편이 나에게 자유시간을 주고 아이들과 키즈카페에 가서 놀겠다고 했는데, 이 날씨가 아까워 아이들과 바깥놀이를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도심외각에 있는 농장형(?) 카페를 찾았다. 화분심기 체험도 하고 도토리도 주우며 햇살과 바람을 누렸다. 그곳에는 여러개의 해먹이 있었는데, 가을이가 그 중 하나의 해먹에 눕고 싶다고 했다. 아이를 해먹에 눕혀주고 살살 흔들어주자 가을이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이렇게 누워서 하늘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 내가 기분이 나빴던 기억들도 있는데, 누워서 하늘을 보면서 나쁜 기억들을 없애서 기분 좋은 추억들로 만드는거야. 하트 모양으로. 내가 좋아하는 모양으로. 그러면 기분이 좋아져." 해먹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하는 아이의 말들이 무지개 빛이었다. 내 자유시간은 놓쳤만 아이에게 이런 시간을 만들어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3.09.03 (일)

아이들은 먹을 것을 달라고 할 때 왠지 모르게 당당하다. "물 줘!" "나도 그 과자줘!" "나도 바나나 먹고 싶어!" 무슨 나한테 그 먹을 것을 맡겨놓았던 것처럼, 제 것을 찾아가는 사람처럼 군다. 거기가 내 집이던 아니던, 그 음식이 내 것이던 아니던. 그럼 나도 홀린듯 얼른 먹을 것을 건네 주게된다. 그 아이가 내 아이건 아니건. 오늘 교회에서도 그랬다. 내 옆에 앉은 언니가 삶아온 옥수수를 그 집 애들이 아닌 애들까지 죄 하나씩 다 달라고 온다. 내 아이도 당당하게 옥수수를 요구하고는 하나 받아들고 고맙단 말도 없이 사라진다. 옆에서 그 모습을 보는데 멋쩍어서 "뭐야, 뭐 옥수수 맡겨놨어?!" 라고 했지만, 생각해보니 아이들이 그렇게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게 맞고, 자연스러운 것이란 생각이 든다. 왠지 그 모습이 어쩌면 건강한 것 같달까. 먹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 욕구중 하나다. 그 욕구가 제 때 채워지지 않으면 우리는 건강한 상태를 (그게 육체적이던 정신적이던) 유지 할 수가 없다. 그런 중요한 욕구를 위해서 아이들은 눈치를 보거나 체면을 차리지 않는 것이다. 그것을 어른들에게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 그것이 건강한 어린이이고, 건강한 사회인 것 같다. 나도 내가 싸온 간식들을 다른 친구들이 조금만 관심을 보여도 얼른 건네준다. 그 간식 때문에 나의 눈치를 보게 하고 싶지 않아서다. 아이들이 계속 그렇게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냥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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