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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Sep 14. 2023

주간 새미일기

2023.09.04(월)~2023.09.10(일)

2023.09.04 (월)

매일 일기를 쓴다는 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매일 짧게 한편 씩 쓰면 크게 부담이 되지 않겠다 싶어 시작했지만, 짧은 시간도 매일 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고 그렇게 하루 이틀 밀리다 보면 그 부담감과 메꿔야 하는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학습지(가령 '구몬'같은)를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하루에 3장만 하면 된다니 그 정도야 얼마든지! 하고 시작하지만, 그게 하루 이틀 밀리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시작하는데 엄두가 안나는 지경이 되는 건 순식간이다. 나에겐 지난주가 그랬다. 갑자기 합류하게 된 '수련회 준비팀' 일로 모여서 하루는 회의를 하고, 하루는 왕복 4시간을 운전해 답사까지 다녀오게 되었다. 원래 잡혀있던 약속부터 갑자기 생긴 약속까지 매일매일이 정신없이 흘러가다 보니 일기를 쓸 시간이 없었다. 결국은 일주일치를 통째로 밀린 꼴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부터 일주일 전의 일기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재밌는 건 하루하루 기억을 겨우겨우 더듬어 일기를 써 내려가는데, 그게 또 그렇게 나름대로 쓸 거리가 생기고 일주일간의 일기가 매워지더라는 거였다. 쓰려고 들면 또 쓸게 생긴다는 사실이 재미나서, 나는 이틀에 걸쳐 일주일치 일기를 다 몰아 썼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틀간의 일기를 또 밀렸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나는 월요일 일기를 목요일에 쓰고 있다... 그런데 또 쓰다 보면 쓰게 되겠지 뭐... 그렇게 생각한다...ㅋ


2023.09.05 (화)

지난주 수요일부터 둘째 하원시간을 5시로 미뤘다. 오랜 시간 고민해 오던 일을 결국 실행해 옮기고야 만 것이다. 둘째는 4시에 하원하고 첫째는 5시에 하원하는데, 그러다 보니 그 사이 한 시간이 무척 애매해졌다. 집에 들어갔다가도 조금 있다가 금방 또 나와야 하고, 그렇다고 계속 밖에 있기엔 에너지 소모가 너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4시를 고집했던 건, 그냥 나 혼자 미안한 마음이 있어서 그랬다. 첫째는 어린이집도 4세(만 2세)부터 보냈다. 둘째를 임신한 시점이었다. 그전까지는 내가 하루종일 놀아주었다. 그래서 아이와 그렇게 공원과 놀이터를 많이 놀러 다녔더랬다. 그런데 둘째는 3세(만 1세)부터 어린이집을 보내기 시작했고, 그마저도 하원하면 누나까지 있어 놀이터나 공원에서 오래도록 놀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첫째에 비해 둘째와 많이 놀아주지 못한 것이 미안해 4시 하원을 고집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 1시간 일찍 하원해서 내가 온전히 아이와 놀아주느냐 생각해 보면 그도 꼭 그렇지는 않은 날들이 많았다. 나는 그 한 시간을 아이와 재미나게 놀아주기보다 첫째 하원 전까지 어떻게 버틸까를 고민하게 되었고, 첫째 하원도 전에 그 1시간을 둘째를 쫓아다니느라 이미 녹초가 될 때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내가 그 1시간을 좀 더 내 시간으로 만들어 충천을 하기로 했다. 웬걸, 그 1시간은 1시간이 아니었다. 그 1시간 덕분에 나는 훨씬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고, 집안일을 하고도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쓰며 내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4시에 하원할 때는 점심 차려먹고 집안일만 좀 해도 금방 애를 데리러 갈 시간이 됐던 것 같은데, 1시간 차이로 이렇게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새롭게 생긴 1시간이라 내가 그 차이를 더 극명하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또 금방 5시 하원에 적응되면, 벌써 5시냐며 푸념을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지만 현재로서는 이 1시간의 자유가 주는 기쁨이 아이에게 갖던 미안함을 상쇄시켜버린 듯하다. 육아에 정답이란 없는 것이지만, 일단 지금은 이 1시간을 마음껏 누려보도록 해야겠다.


2023.09.07 (목)

아이 둘을 등원시키고 운동을 가는 길이었다. 여전히 햇살은 뜨거워 뒷덜미가 따끔했지만, 바람은 시원했다. 바람이 시원해졌다는 사실에 갑자기 눈물이 날 뻔했다. 그래, 이제 가을이구나. 계속 더워서 몰랐는데, 계절은 그렇게 다음 순서로 차근차근 넘어가고 있었구나. 그 사실이 갑자기 벅찬 감정을 안겨주었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내 옆의 요 몇 사람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자주 열을 올리고, 나에게 주어진 몇 가지 일들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허둥지둥거리는데... 갑자기 가을바람에 그런 나 자신이 그렇게 작아 보일 수가 없었다. 그럴 일이 아니었는데, 그렇게 화낼 일이 아니었는데, 그렇게 초조해할 일이 아니었는데... 내가 그렇게 아등바등거려도 시간은 흐른다는 사실이,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온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큰 위로가 되었다. 변한다는 건 언제나 고통을 수반하는 것 같다. 변한 나의 역할이, 변한 나의 모습이, 변한 나의 상황이 힘겨울 때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여름의 시간은 결국 흘러가고 가을의 시간이 온다. 그 사이 나무는 한 뼘 더 자랐을 테고, 이제 색을 바꿀 테다. 그 사이 하늘은 미묘하게 달라졌고, 한 뼘 더 높아졌을 테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그 시간을 지나오면서 나의 모습도 변했을 텐데 나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나도 한 뼘 더 자라고, 한 뼘 더 성장했을까. 모르겠다. 여전히 더우니 말이다. 그래도 시원한 바람이 분다. 나도 그 변화들 안에서 성장했기를 바라본다. 눈에 보이진 않아도 온몸으로 느껴지는 바람처럼 나도 그렇게 성장했기를 바라본다. 지난여름보다 가을의 내가 더 나은 사람이길 바라본다.


2023.09.08 (금)

정리수납전문가 1급 자격증을 땄다. 나는 쓸고 닦고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정리는 즐기는 편이었다. 재밌었고, 더 잘하고 싶었다. 그러다 우연히 정리수납전문가라는 자격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거다 싶었다. 강의를 들으면서 그날 강의하는 부분을 나도 정리했다. 화장실, 아이들 방, 부엌 등등 차례로 정리를 해나가며 더 나은 방법들을 배우게 되었다. 그렇게 정리를 하다 보니 강의를 다 듣게 되었고, 간단한 시험을 통해 자격증을 얻었다. 민간자격증인 데다 강의만 다 들으면 시험도 그리 어렵지 않아 뭐 대단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작은 성취는 일상 속 꽤나 큰 기쁨이었다. 뿌듯했다. 누군가는 나에게 “개 어울려”라고 했고, 누군가는 내가 그 자격증 공부를 하기를 바랐다고 할 정도로 나는 정리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새롭게 배울 점들은 꽤나 흥미로웠고, 가사나 육아 이외에 다른 것을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작은 성취는 평범한 아줌마에게 약간의 자신감을 더해주었고, 다음에는 또 무얼 해볼까 즐거운을 고민을 하게 되었다.


2023.09.09 (토)

오늘은 교회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소풍을 가는 날이다. 코스는 이러했다. 지하철을 타고 ‘인천역’에 가서 월미바다열차를 타고 월미도에 간다. 그곳에서 배를 타고 영종도에 들어가 점심을 먹고 다시 같은 코스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맨날 차만 타고 다니던 아이가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해 보면 재미나겠다 싶었다. 그런데 맨날 차만 타고 다니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하철도 오랜만이고, 배는 더더욱 오랜만이었다. 월미바다열차는 나도 처음 타보는데, 문화해설사분이 함께 탑승해 인천의 여러 가지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셨다. 커다란 선박이 바닷길을 건너 곡물을 실어오면 팔처럼 생긴 기계를 통해 곡물들을 내리고, 파이프를 통해 그 곡물들이 저장고로 저장되고, 트럭들이 각각의 저장고 밑에 서면 고깃집에 있는 환풍구 같은 것이 내려와 곡물을 쏟아내 주는 과정을 보는데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도 그 모든 것이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 곡물저장고에 그려진 벽화가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 최대 외벽화라는 사실에 감탄했고, 배 위에서 내가 던진 새우깡을 용케도 낚아채 먹는 갈매기들을 보며 짜릿했다. 아이를 위해서 나온 소풍이었지만, 어른인 나도 새로운 경험들에 신이 났다. 애고 어른이고 한 번씩 이런 새로운 경험들을 해보는 것은, 삶의 활력소가 되는 즐거움을 준다. 고로 어른도 아이들처럼 한번씩 소풍을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가지 교통수단들을 타보며, ‘탈 것’을 좋아하는 둘째가 같이 왔으면 (무척 무척 무척 힘들었겠지만) 무척 신나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계속했는데, 첫째도 그랬다. “엄마, 다음번에 아빠랑 여름이도 같이 여기 와보자~ 아빠랑 여름이는 못 와봤잖아~“ 애고 어른이고 소풍은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어지는 그런 것인가 보다 하는 생각도 들었다.


2023.09.10 (일)

오늘은 내 생일이다. 남편은 며칠 전부터 갖고 싶은 선물이 있냐고 여러 번 물어왔지만 생각나는 몇 가지는 그냥 내가 인터넷으로 주문해도 될 일이었다. 그래서 그게 선물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선물보다도 혼자 시간을 좀 갖고 싶었다. 이사오기 전 자주 가던 북카페에 가서 저녁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남편은 못 이기는 척 알겠다고 했지만 못내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그래도 생일 당일인데, 가족끼리 같이 식사하고 생일케이크에 초도 불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혼자만의 시간은 포기하고 가족들과 같이 보내기로 했다. 교회를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저녁 메뉴를 이것저것 제안했지만 먹고 싶은 게 없었다. 맨날 같이 먹는 사람들과 맨날 있는 집에서, 맨날 먹던 비슷한 메뉴들을 먹자 하니 내 생일이 맨날 그저 그런 날 중 하나가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다 싫다고 했다. 그럼 집에 가는 길에 카페 앞에 잠시 차를 세워둘 테니 날더러 케이크를 사 오라는 남편 말에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내가 준비하는 생일케이크는 내 생일 케이크가 아니다. 아이들 초불게 해주려고 준비하는 남의 생일 케이크인 것이다. 하지만 별 수 없이 그렇게 케이크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이게 뭔가 싶었다. 날더러 북카페에 가지 말고 같이 시간을 보내자 했으면 저녁 메뉴라던지 생일케이크정도는 준비를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그저 그런 저녁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날더러 가지 말라고 한 건가.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결국 아이들은 차에서 잠이 들었다. 집에 들어와 아이들을 눕히고는 남편에게 화를 냈다. 이럴 거면 나 혼자 내 생일을 즐길 시간이라도 줄 것이지, 선물도 케이크도 식사도 하다못해 카드 한 장도 써놓지 않고서 이렇게 생일을 대충 때우려 하는 태도에 나는 진절머리를 냈다. 애들도 자겠다 그냥 집을 나왔다. 그런 내 뒤통수에 대고도 남편은 애들 깨면 모라고 얘기하냐며 애들 걱정을 했다. 그쯤 되면 내 생일인지 애들 생일인지 헷갈려하는 게 아닌가 싶은 지경이었다. 집을 나와 걷는데, 내가 별 볼 일 없는 아줌마가 된 기분이었다. 나를 평생 사랑하겠다고 약속하고 부부가 된 이도 대충 때우는 내 생일이 서글펐다. 내 생일이 그런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특별함이라고는 1도 찾아볼 수 없는 날이 되니 내가 그런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결혼을 안 했다면, 지금쯤 남자친구가 멋진 레스토랑에 데려가주지 않았을까. 남자친구가 없다면 나 혼자 뭐라도 하며 즐기고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쓸쓸한 사람이 되었는지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되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생일만은 좀 특별하게 보내고 싶은 게 욕심인 걸까. 아니다. 그럴 리 없다며 나를 다독였다. 나는 나 혼자서도 충분히 특별하고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었다. 이렇게 생일을 보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무작정 집을 나와 백화점으로 향했다. 꽃집에 들러 내가 좋아하는 꽃을 살 요량이었다. 해바라기는 없었지만, 작고 빨간 장미가 있어 한 다발을 샀다. 파티용품 파는 곳에서 작은 왕관과 “love"라는 글씨의 빨간 풍선도 사고, 알록달록 예쁜 가랜드도 샀다. 포토 부스에 들어가 아까 산 꽃을 들고, 왕관을 쓰고 사진을 찍었다. 나 혼자 그렇게 내 생일을 기념했다. 그러고 나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집에 돌아갔더니 남편이 사과 편지를 써서 주었다. 회사에서 가져온 이면지에 써준 편지였지만, 화는 조금 누그러들었다. 느지막이 일어난 아이들과 닭강정을 시켜 먹었고, 케이크에 초를 켜고 노래를 불렀다. 아까 사 온 풍선과 가랜드를 달고 사진을 찍는 것으로 생일파티는 마무리되었다. 결국 나를 가장 특별하게 만드는 사람은 누구도 아닌 나였다. 그래도 내년 생일에는 절대 내가 생일케이크를 사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직접 내 선물을 고르고 사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만은 남편이 하도록 할 테다. 내가 내 생일케이크를 사고 내가 내 선물을 살 꺼라면 난 그냥 나 혼자 살련다. 사실 나는 나 혼자서 더 멋지게 내 생일을 잘 축하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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