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새미 Sep 18. 2023

주간 새미일기

2023.09.11(월)~2023.09.17(일)

2023.09.11 (월)

나는 한복을 좋아한다. 아니 좋아했다고 말해야 하려나. 한동안 한복에 빠져서 이래저래 다양한 생활한복들을 사들였다. 화려하고 예쁜 한복들은 아이가 둘이 되니 점점 입을 일이 없어졌고, 옷장에서 나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형편이 되었다. 그렇게 기다리게 해 놓고 1년에 한두 번도 제대로 입어주질 못하니, 미안한 마음만 늘어갔고 그렇게 붙잡아두는 건 내 미련이겠다 싶어 보내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해서 또 3벌의 생활한복을 당근거래로 보내주었다. 누군가에게 가서 더 사랑받기를 바라며... 기다림이 오래가지 않길 바라며... 한 벌에 3만 원씩 해서 9만 원을 벌었더니 처음에는 여간 뿌듯할 수가 없었다. 미련을 버린 데다 돈도 벌고 옷장도 조금은 여유로워졌다는 사실이 퍽 대견했다. 그렇게 ’ 정리‘의 기쁨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사실에 내가 조금은 서글퍼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어제는 미적지근한 생일을 보낸 덕에 내가 별 볼 일 없는 아줌마가 된 기분이 들었었는데, 이제는 예쁜 옷을 입을 일이 없어 비싸게 주고 산 옷들을 중고거래로 싼값에 넘겨버렸다는 사실이 더해져 내 색깔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나는 원래 선명한 빨간색이었는데, 빛바랜 붉은색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이 뒤따랐다. 왜 그런 기분이 들었나 모르겠다. 생리기간이 다가오기 때문이었을까. 모르겠다.


2023.09.12 (화)

오늘 아침엔 알람이 아니라 가을이 기침소리에 잠에서 깼다. 마른기침을 쉴 새 없이 하는 아이에게 물을 따라주는데 짜증이 치밀었다. 나는 아픈 아이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아픈 아이 때문에 소아과를 가거나 가정보육을 해야 해서 내가 고생스럽게 될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사실 그것은 걱정이라기보단 짜증이나 화에 더 가까웠다. 아침을 먹으면서도 아이는 계속 기침을 했다. 기침소리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자, 나는 점점 더 예민해졌다. 아이에게 따뜻한 차를 타주면서 “왜 기침이 계속 나지?! “ 혼잣말인 듯 혼잣말이 아닌,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말을 내뱉었다. 그 말에 아이는 ”엄마 화났어? “ 하고 물었고, 나는 “아니야~ 가을이가 아픈 걸까 봐 속상해서 그래~“라고 대답해다. 하지만 나는 그 속상함을 감출 길이 없었고, 그 상황에 화가 나는 내가 당황스러웠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 원망의 대상이 없었고, 그런데 이 상황이 원망스러운 나는 그런 내 마음을 추스르느라 아침부터 애를 먹었다.

ps: 다행히 기침은 그날 아침에만 나타난 증상이었다.


2023.09.13 (수)

요 며칠 그렇게 기분이 나쁘더니 드디어 생리가 시작되었다. 생리기록 어플의 예측보다도 이르게 시작된 생리라 나조차도 생리기간이 가까워 왔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그동안의 속상함을 다 생리 탓을 하려니 그것도 머쓱한 상황이 되었달까. 그나저나 이제라도 인식이 되었으니 나름의 대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대처방법 중 하나는 단 것을 먹는 것이다. 아이들을 재우는데 슬슬 허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남편은 전화영어를 하러 건넌방으로 넘어갔고, 나 혼자 아이 둘을 재우는데 둘째가 쉽사리 잠들지 않는다. 뻐근해져 오는 허리에, 옆으로 꾸부정하게 누워 애들 자면 남은 생일 케이크 한 조각을 먹으리라 다짐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깜짝 잠이 들었다가 흠칫 놀라 깼다. ‘이렇게 잠들면 안 돼! 케이크 먹으면서 미드 봐야지!!’ 둘째까지 잠든 것을 확인하고 서둘러 방을 나섰다. 너무 피곤해서 쉽사리 잠은 깨지 않는데, 이대로 잠들기는 더 싫어서 안방침대에 누워 한참을 뒤척거렸다. 달달한 케이크 생각으로 피곤함을 애써 떨치며 냉장고를 열었는데 웬걸. 케이크가 없다. 그 순간은 당황스러웠지만, 개수대에 살포시 놓인 반찬통을 보고는 분노가 치밀었다. 전화영어가 끝나고 그 사이 남편이 먼저 케이크를 먹어버린 것이었다. 그 사실을 모르고, 애들 재우느라 수고했다고 다가오는 남편에게 주먹을 날렸다. “내 케이크!!!!!”이라는 말에 상황파악이 된 남편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아프다며 다른 쪽 팔뚝을 내민다. 남편의 양쪽 팔뚝을 흠씬 패주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 그의 육중함에 분노를 퍼부었다. 그러니까 살이 안 빠진다며, 넌 앞으로 샐러드만 먹으라고, 닭가슴살도 안 사줄 거라며 단백질 먹을 자격도 없다고 일격 했다. 이게 얼마나 화가 나는 일인지 생리를 하는 모든 여자들을 다 알 테지만 생리를 안 하는 네놈은 이해를 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하니 더 화가 난다. 아 허리는 점점 더 아픈데, 화가 난다.. 화가 난다... 화가 난다...


2023.09.14 (목)

이케아에서 하는 이벤트에 당첨되어 작은 이단서랍장을 얻게 되었었다. 딱히 놓을 만한 곳이 없어 거실 소파 옆에 두고 사용했었는데, 문제는 아이들이 자꾸 그 서랍장에 올라서서 소파로 점프를 하고 논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서랍장이 소파보다 그리 높지 않다는 사실에 나는 그 문제를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결국 오늘 사고가 나고 말았다. 첫째가 서랍장 위에 서서 장난을 치다가 한쪽다리가 소파와 서랍장 사이로 빠지면서 가랑이 사이, 그러니까 외음부 부분이 서랍장 모서리에 부딪히고 만 것이다. 아이도 놀라도 나도 놀랐다. 다친 부위를 살펴봐주는데, 피가 살짝 비쳤다. 나는 당황했다. 그런데 더 나를 당황스럽게 했던 건 아이의 반응이었다. 아이는 웬일인지 아프다고 하지 않고 계속 "어떡해~ 어떡해~"하는 것이었다. 민감한 부위라서 그랬던 것일까. 모르겠다. 나도 속상하고 당황스러운 마음에 "그러게 왜 거기 올라가서 장난을 쳐~" 했는데, 그 말에 아이는 바로 "미안해~"하고 사과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바로 아니라고 괜찮다고 했다. 약을 발라주고 잘 지켜보기로 하고 아이를 꼭 안아주며 재차 말해주었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그런데 그렇게 괜찮다고 여러 번 이야기해 주었음에도 나는 그 "어떡해~"하던 아이의 그 말이 자꾸만 두고두고 마음이 아팠다. 뭐랄까... 작은 바늘로 심장을 후비는 느낌이랄까... 자꾸만 찌릿찌릿 마음이 쑤셨다. 아마도 내가 안 괜찮았던 모양이다. 나야말로 속으로 '어떡해~'하고 당황하고 있는데, 아이가 내 마음을 입 밖으로 내뱉으니 더 당황스러웠던 모양이다. 내 아픈 마음이 아이를 통해 다시 나에게 전달되는 것은 찌릿찌릿 마음이 쑤시는 일이었다. 그 순간 나도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던 마음을 아파하고 있는 아이에게 들킨 것 같아 미안했던 모양이다. 누구보다 그 상황이 무섭고 아팠을 아이에게 위로를 주기는커녕 내가 더 불안하게 만든 것은 아닌지, 나는 그게 무서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렇게 두고두고 마음이 아팠나 보다. 그랬나 보다...


2023.09.15 (금)

아이들을 하원시키고 집에 돌아와 저녁 준비를 하는 시간이 제일 큰 고비 중에 하나다. TV를 틀어줄까 말까 하는 고민에 있어서 말이다. 안 틀어주자니 불과 칼을 쓰는 주방에 계속 와서 이것저것 참견하고 요구하는 아이들을 감당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리고 아이들은 기가 막히게 안다. 그런 상황일 때 TV를 틀어달라고 하면 내가 못 이기는 척 넷플릭스를 켠다는 사실을 말이다. 오늘도 가을이가 TV를 틀어달라고 했다. 나는 웬일인지 그 요구를 거절했다. (놀랍게도 그럴 기운이 있었나 보다.) 엄마 요리할 동안만 본다고 해놓고, 밥 먹는 동안에도 보고 밥 먹고 나서도 보고 계속 주야장천 볼 것이라는 게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거절하고 부엌에 돌아가 저녁을 준비하는데 애들 둘이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무얼 하나 들여다봤더니 침대에 가을이가 눕고는 여름이는 연신 노트북 장난감을 두드리며 병원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TV 안 틀어줘도 둘이 잘 노는구나 싶어 뿌듯했다. 이게 바로 둘 낳길 잘했다고 생각이 드는 몇 안 되는 순간 중 하나다. 이보다 더 많은 순간들에는 둘 보기가 벅차서 TV를 틀어주고야 만다. 그래서 이런 순간이 더 귀하고 소중한 것이다. 둘이 잘 놀아준 덕분에 저녁을 비교적 수월하게 차릴 수 있었다. 감사한 저녁이다.


2023.09.16 (토)

컨디션이 저조했다. 목이 따끔따끔하고 몸상태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주말의 시작이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뭐라도 해야만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는 주말은 육아를 하는 부모들에겐 일주일 중 가장 힘든 이틀이다. 월요일이 기다려진달까... 오늘은 비소식이 있어 뭐라도 하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아이 둘과 집에 있는 게 절대 쉬는 게 될 수 없음으로, 비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 틈을 타 오전에 집 근처 공원을 나가보기로 한다. 집 근처 공원을 나가는데도 준비 과정이 왜 이리 힘든 걸까. 둘째는 입었던 옷을 맘에 안 든다며 이미 한 번 갈아입을 상태인데, 그 갈아입은 옷마저 마음에 안 든다며 벗기란다. 그 와중에 첫째는 머리를 이렇게 저렇게 묶어달라며 쫓아다닌다. 둘째 옷을 다시 갈아입히는데 현타가 왔다. 싫다는 애를 억지로 입히며 "뭐 다 싫다면 어쩌라는 거야!!" 하며 성질을 냈다. 둘째는 오열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첫째 머리를 묶어 주어주기 시작했다. 같은 반 친구가 앞머리를 뒤로 넘긴 이후로 멀쩡한 일자 앞머리를 없애 달라는 통에 요즘 애 머리 묶어주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지 모른다. 씩씩 거리며 머리를 묶어주는데 넌덜머리가 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1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남편과 아이들은 이른 점심처럼 짜파게티를 끓여 먹은 뒤였고, 나만 속이 비어있었다. 배가 고파 화가 난 걸까. "난 애들이랑 공원 안 가! 혼자 밥 먹으러 갈 거야!" 했더니 남편이 그러라고 했다. 남편과 아이들은 공원으로 향하고 나는 반대로 걸었다. 맥도널드 가서 햄버거를 먹고, 그동안 맨날 고민만 하고 사지 않던 그립톡을 샀다. 그랬더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역시 나에게 시간과 돈을 쓰는 것은 에너지 충전에 도움이 된다. 아이들과 떨어져 있는 게 도움이 된 걸까. 그래 맞아 그랬던 것 같다. 다시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공원으로 향한다. 한 시간 남짓 만에 만난 아이들인데 새삼 반갑다. 역시 맨날 붙어있는 건 도움이 안 된다. 좀 떨어져 있는 시간도 꼭 필요하다. 꼭...


2023.09.17 (일)

둘째 낮잠을 재우고 있었다. 둘째는 재우기 어려운 타입이다. 잘 안 자려고 한뿐더러, 졸려서 짜증을 막 내면서도 재우려고 방에 들어가면 그렇게 돌아다니고, 조금 진정해서 누운 다음에도 한참을 떠드느라 잠을 떨친다. 오늘도 내가 조용히 노래를 불러주는데 자기가 고래고래 따라 부르며 낮잠을 재우려는 나의 사기를 꺾으려는 듯이 군다. 그러다 자장자장 노래를 불러달라 하더니 자기가 더 크게 부르는 것이다. "자장~자장~ 우리 엄마!" "자장~자장~ 우리 엄마!" 어눌한 발음이어도 음정 박자는 정확하게 맞추는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데 새삼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를 재우기 위해 내가 그동안 아이를 안고 얼마나 많은 노래를 불렀던가. 이제는 자기가 커서 나한테 자장자장 노래도 불러주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니 그 모습이 그저 사랑이다. 아이를 꼭 안고 이마에 입을 맞춘다. 그래, 이렇게 내 품에 안아서 재우는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거겠지. 금방 지나가겠지. 소중히 해야지 이 순간을. 대체 언제쯤 되면 혼자 방에 들어가서 자나 싶지만, 이 순간을 아껴야지. 그래야지... 그래야지...ㅎ

매거진의 이전글 주간 새미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