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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Oct 01. 2023

주간 새미일기

2023.09.18(월)~2023.09.24(일)

2023.09.18 (월)

첫째 가을이는 만 4세다. 이번달 말에 생일이니 곧 만 5세가 된다. 이제는 제법 혼자 할 줄 아는 것들이 많아졌다. 한 살 많은 사촌오빠가 대변 뒤처리를 혼자 하는 연습을 한다는 걸 알게 된 후로부터 본인도 연습하고 싶다고 하더니 며칠 만에 대변을 본 뒤에 혼자 물티슈로 엉덩이를 닦고 나오는 것을 마스터했다. 며칠 전부터는 오빠가 혼자 목욕을 하는 연습을 한다고 하니, 본인도 혼자 씻겠다고 나섰다. 이렇게 혼자 스스로 하겠다고 하는 것들이 늘어갈수록 나의 역할은 결국 한 가지로 귀결된다. 아이를 믿어주는 것. 오늘은 하원하고 날씨가 좋아 바깥놀이를 나갈 참이었다. 아이가 전부터 유치원에서 자주 가는 '무지개공원'을 같이 가자고 했었는데, 오늘 거길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인터넷 지도로 미리 찾아보고 대략적인 위치는 알고 있었지만, 나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공원이다. 길도 건너야 하고 제법 걸어야 하는 거리였다. 아이에게 안내를 부탁했다. 엄마는 길을 모르니, 가을이만 따라가겠노라고 했더니 왠지 신이 났다. 종알종알 가는 길을 계속해서 설명하며, 앞장서서 걷는 발걸음이 경쾌하다. 아이를 전적으로 믿어주면 아이는 이렇게 행복해진다. 그렇게 공원에 도착했을 때 아이는 얼마나 뿌듯해하던지. 그 공원에는 놀이터가 있었는데, 그 놀이터에는 신기한 그네가 있다고 했었다. 두 사람이 마주 보고 함께 탈 수 있는 그네였다. 둘째가 아직 어려 둘이 동시에 그네를 타겠다고 하면 밀어주고 잡아주고 하는 게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는데, 그 그네는 둘을 한꺼번에 안전하게 태울 수 있어서 퍽 좋았다. 한참을 그네를 밀어주며 이 그네 너무 좋다고 하니, 아이는 나를 보며 얼굴이 환해진다. "엄마 좋아? 거봐~ 내가 여기 좋다고 했지?" 자기가 소개한 놀이터를 엄마도 동생도 좋아한다는 사실이 아이는 그렇게나 자랑스러웠나 보다. 얼굴에 미소가 완연하다. 신나게 놀고 집에 와서 씻는 시간. 혼자 씻겠다는 아이. 남자애면 또 몰라도, 첫째는 머리가 숱도 많고 길어서 나도 감길 때 신경 써서 꼼꼼히 해야 한다. 그런데 머리도 혼자 감겠다니... 그러라고 하고 지켜보면서도 내심 헹구는 건 내가 마무리를 해줘야지 싶었다. 본인도 샴푸 후에 헹구면서 확인은 받고 싶었는지 머릿속에 비누가 남아있지는 않은지 확인해 달라기에 이때다 싶어 머리를 마저 헹궈주려는데, 막 역정을 낸다. 자기 머리에 손을 대지 말라는 것이다. 눈으로 확인만 해주고, 절대 대신해주지는 말라는 뜻이었다. 머리를 들춰봐야 속까지 잘 헹궈졌는지 볼 수 있다는데도 손 데는 건 절대절대 안 된단다. 어쩔 수 없이 겉만 보고 잘 헹궈졌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스스로 하게 되는 것이 많아질수록 내가 해줘야 하는 것이 줄어드니 편하지만, 아이를 전적으로 믿어주는 건 또 다른 어려움이긴 하다. 그래, 그마저도 널 전적으로 믿어줬어야 했던 거겠지. 그럼 네가 아까처럼 목욕도 신나서 했을 텐데. 머리 좀 제대로 못 감는다고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닌데 뭐. 이젠 혼자 목욕도 하고 대견하다며 칭찬으로 마무리했지만, 욕실을 나서는 너는 아까 공원에 도착했을 때만큼 신나 보이진 않았다. 미안해 가을아. 엄마도 믿어주는 게 아직 연습이 덜 돼서 그래. 앞으로는 더 연습해서 더 다양한 것들을 네가 즐겁게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믿어줄게. 그럼 그 믿음 안에서 길을 찾는 것도, 목욕을 하는 것도 너는 너만의 방식을 또 찾아가겠지. 네가 너의 방법을 찾아가는 길이 좀 더 신나고 즐겁도록 엄마가 널 더 믿어줄게. 엄마도 노력할게~!


2023.09.19 (화)

오늘은 남편이 저녁에 자유시간을 갖는 날이다. 남편과 나는 일주일에 하루씩 자유시간을 갖기로 했다. 남편은 화요일, 나는 목요일이다. 그래서 오늘은 작정하고 공원에 나가기로 했다. 고구마, 바나나, 귤, 포도 등 요깃거리가 될만한 것들을 바리바리 챙겨 들고 아이 둘 하원에 나섰다. 둘 다 하원시켜 어제 갔던 그 공원에 갔다. 놀이터에서 한참을 놀고 배고프다는 아이들을 데리고 옆 공원으로 향했다. 테이블이 있는 벤치에 앉아 고구마와 과일들을 저녁으로 먹고 2차로 다른 놀이터에 갔다. 아이 둘을 쫓아다니느라 나는 기진맥진인데 이제 7시라니... 고작 2시간을 놀고 이렇게 기운이 쪽 빠진단 말인가... 허허... 날이 흐려 컴컴해지기도 했고, 그래서 놀이터에 이제 노는 아이들도 거의 없고 하니 슬슬 집으로 가고 싶다. 저녁을 잘 먹으면 매점 가서 간식을 사주기로 약속했었으므로 마지막 코스로 매점을 택했다. 아이들은 신이 났다. 매점 앞에 유아차를 세워두고 둘째를 내려주고 있는데 대뜸 가을이가 그런다. "엄마 오늘 진짜 고생했다!" "응?? ㅎㅎㅎㅎ" 갑작스러운 말에 웃음이 먼저 나왔다. 갑자기 그런 말을? "엄마가 왜 고생한 거 같아?" "우리 둘 돌봐주고 놀이터도 같이 가서 놀아주고 그래서"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남편 없이 혼자서 애들 둘 쫓아다니고 챙기느라 몸이 너무 피곤하고 힘들었는데, 언제 집에 들어가서 언제 씻고 언제 재우나 싶어 까마득했었는데, 내 고생을 알아주는 아이의 말에 다시 힘이 났다. 게리 채프먼이 말한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 중에서 나는 '인정하는 말'이 나의 제일 큰 사랑의 언어다. 그만큼 나는 나를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말이 참 중요한 사람이다. 그런데 아이가 그 말을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배터리가 다 달아가고 있었는데, 아이의 말 한마디에 급속 충전이 되었다. 집에 돌아와 아이들을 씻기고, 밀린 설거지를 하고, 집안을 정리하고, 아이들을 재우는데도 계속 그 말이 맴돈다. "엄마 오늘 진짜 고생했다!" 내 고생을 누가 알아주기만 해도, 알아주고 있다고 표현만 해줘도 나는 힘을 낼 수 있다. 너의 그 한마디가 내내 고맙다. 

2023.09.20 (수)

나는 지독한 몸치에 유연성이라고는 1도 없고, 운동신경도 없어서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꾸준히 하고 있는 운동이 있는데 그게 바로 필라테스다. 둘째까지 출산하고 몸이 많이 망가졌다. 그런데 아이 둘 육아를 해야 하니 체력은 필요하다. 그래서 어떤 것이든 운동을 하긴 해야겠다 싶어 시작한 필라테스. 수업을 들을 때마다 늘 새로운 동작들로 자극을 주니, 지루하지 않아서 좋았다. 격한 동작을 하진 않지만 다리가 덜덜 떨릴 정도로 운동이 되니 성취감도 있었고, 꾸준히 하니 유연성도 조금씩 늘면서 안 들어가던 스커트가 들어가는 것으로 몸의 변화도 느꼈다. 그렇게 필라테스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중에, 키즈 필라테스 클래스가 열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게다가 영어로 수업을 한다고ㅎ 6살 딸아이에게 이야기하니 아이도 흔쾌히 해보고 싶단다. 태권도는 그렇게 다녀보자고 해도 절대 안 한다 너니 필라테스는 왜? 그러고 보니 아마 나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이들 등원시키고 바로 운동을 가는 터라, 내가 운동복을 입는 날이면 “엄마 오늘 필라테스가?” 하면서 관심을 보이던 딸이었다. 엄마가 맨날 간다는 저 필라테스라는 운동이 뭔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엄마가 늘 하는 운동이니 호기심도 있고, 자기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모양이다. 해보겠다고 해놓고도 금세 마음을 바꿀 때도 많아서 뭐 그러려니 해야지 했는데, 의외로 기대감이 크다. 센터 가서 체험 수업 등록 했다고 하니, 몇 밤 자면 갈 수 있냐고 묻고, 아빠에게도 자기 필라테스 수업 신청했다고 자랑을 한다. 드디어 그렇게 기다리던 키즈 영어 필라테스 수업날. 아침부터 드디어 필라테스 수업을 간다며 들떴다. 유치원을 하원하고 수업을 받으러 갔다. 처음 보는 친구들이 잔뜩이었지만, 다 같은 나이대 친구들이라 금세 친해졌다. 처음에는 선생님께 인사드리는 것도 쑥스러워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센터를 마구 뛰어다니며 신이 났다. 6명의 아이들이 부산스러웠지만 선생님은 역시 선생님이었다.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금세 아이들을 집중시키고 함께 교실(?)로 들어갔다. 사실 어른들 필라테스 수업을 할 때는 강사 선생님 말고 수강생들이 말을 할 일은 없어서 영어로 수업을 어떻게 하시려나 궁금했다. 그런데 확실히 영어 필라테스답게, 아이들에게 자기 이름을 소개하는 것부터 한 명씩 영어로 말하게 유도해 주시면서 수업을 진행하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 저렇게 자연스럽게 영어로 말하게 해 주시는구나...ㅎ 선생님은 100% 영어로만 수업을 하셨는데, 사실 제대로 알아듣기는 할까 싶었지만 수업 끝나고 선생님께 들어보니 아이들이 처음에는 잘 못 알아들었다가도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말해주면 신기하게 알아듣고 그대로 하더라는 것이었다. 역시 언어는 얼마나 노출되느냐가 중요하긴 한가 보다 싶다.ㅎ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중간에 간단한 게임도 진행하고, 스티커도 붙여주시고, 간식도 주시고 하면서 수업이 진행되었다. 중요한 건 수업 후의 아이의 피드백이었다. 집에 오는 길에 어땠냐고 물어보니 재밌었단다. 또 하고 싶어? 물으니 또 하고 싶다는 아이. 수업이 좋긴 좋았었나 보다. 선생님이 영어 하는 건 어렵지 않았어? 물으니, 처음엔 잘 못 알아들은 것도 있었는데 나중에는 알아듣고 잘 따라 했단다. 그러더니 갑자기 차 타고 가면서 “I like teacher!" "I like mommy!" 이렇게 영어를 ㅋㅋㅋ집에 와서는 자기가 배운 동작들을 보여주겠다며 탱탱볼을 달란다. 배운 동작들을 설명하는 것을 보니 이건 새, 이건 곰, 이런 식으로 동물 이름을 이야기한다. ㅎ 선생님이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동작에 동물이름을 붙이셨던 모양이다. ㅎ 그러고 보니 그 동작들이 진짜 새 같고, 곰 같고 그렇다. ㅎ 아이들이 쉽게 접하고 재미를 붙일 수 있도록 수업을 해주신 것 같아 좋았다. 아이도 다음 수업은 언제냐며 묻는다.ㅎ 가을이가 너무 만족했던 키즈 영어 필라테스 수업이었다!


2023.09.21 (목)

이번주는 뭔가 일정이 많았다. 화요일에는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동화창작교실 수업이 시작되는 날이었고, 수요일은 첫째가 유치원에서 생일파티를 하는 날이었다. 생일케이크랑 답례선물을 준비해서 가는데 아침에 비 까지 내려 등원하는데 고생을 했다. 오늘은 첫째는 숲체험, 둘째는 포도 따기 체험을 가는 날이라 나름대로 간식도 준비해 보냈어야 했다. 본격 가을 날씨에 접어들기 시작하니 유치원이랑 어린이집에서 이래저래 행사가 많았다. 게다가 교회 수련회 준비팀 활동까지 겹쳐 스케줄이 꽉꽉 들어차있었다. 덕분에 몸도 마음도 분주했지만 운동을 빼먹을 수는 없었다. 필라테스는 일정 기간 안에 일정 횟수만큼을 소진해야 하는 방식이라 일주일에 2~3차례는 운동을 나가야 했다. 다음 주에는 추석연휴까지 길게 있어 운동을 그만큼 나가지 못하니 이번주는 꼭 부지런히 운동을 가야 했다. 그래서 오늘도 운동을 갔는데, 결국 사달이 나고야 말았다. 나는 유연성이 정말 없는 사람이라 유연성을 기르는 동작을 할 때 유독 어려워하는데, 다리 찢는 동작을 하다가 무리는 하는 바람에 허벅지 안쪽이 찌릿하면서 통증이 왔다. (다음날 한의원에 갔더니 내전근이 파열된 거라고 하셨다.) 덕분에 빨리 걷는 것이나 무거운 것을 드는 게 어려워졌다. 원래도 성격이 급한 사람이라 후다닥 거릴 때가 많은데, 몸이 따라주질 않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요즘 너무 무리를 해서 좀 천천히 가라고 제동이 걸린 건가 보다. 예전에 한의원에서 체질 검사를 했을 때, 한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게 생각이 났다. 나는 마음상태가 몸에 많이 영향을 끼치는 타입이라고. 즉, 마음이 안 좋을 때 실제로 몸이 아플 수 있고 몸이 안 좋을 때 마음이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내가 요즘에 영 마음에 여유가 없다 보니 몸에 제동이 걸린 게 아닌가 싶었다. 몸이 아프게 되니, 이렇게라도 제동을 걸어야 할 만큼 내가 분주했구나 그래서 요즘 내가 신경이 곤두서있고 말도 까칠하게 했구나 하고 나를 이해하는 마음을 갖기 시작했다. 내가 분주해서 힘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분주한 상황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왜 힘들었는지를 알게 되고 나면 내가 나를 다독일 수는 있게 된다. 내가 나 스스로 힘들었던 나를 인지하고 이해하는 것이 회복의 첫 시작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그것을 다리가 다치고서야 비로소 시작하게 되었으니, 바쁜 와중에 다리를 다친 것이 꼭 운이 없는 일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2023.09.24(일)

아이들을 키우면서 늘 고민인 부분 중 하나가 미디어노출이다. 그중에서도 더 고민이 될 때가 바로 밥 먹을 때 미디어를 보여줄 것이냐 말것이냐의 문제인 것 같다. 밥 먹을 때 아이들이 미디어를 보고 싶어 하기도 하고, 미디어를 틀어놓으면 자리를 뜨지 않고 제자리에 앉아 밥을 잘 받아먹기 때문에 밥을 먹이는 입장에서는 편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밥 먹을 때 미디어를 틀어주고 밥 먹는 모습을 보면, 아이는 미디어에 온몸과 마음이 빼앗겨 그저 턱근육을 움직이는 것으로 음식을 섭취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걸 밥을 먹는 거라고 해야 될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웬만하면 밥을 먹을 때는 미디어를 안 틀어주려고 하는데, 오늘 내가 혼자 밥을 먹으면서 깨달았다. 나도 그냥 밥만 먹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밥을 먹을 때는 그래도 잘 그러지 않지만, 혼자 밥을 먹을 때는 나도 늘 핸드폰을 하거나, 핸드폰으로 미디어를 시청한다는 것을 알았다. 아 나도 그러는구나. 나도 영상물을 보지 않으면서 오로지 밥에만 집중해서 식사를 하지 못하는구나. 그러면서 아이들에게는 그러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구나. 허허...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 누가 누굴 가르치냐. 나도 못하는 걸 아이들에게 요구해서는 안되지...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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