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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Oct 05. 2023

주간 새미일기

2023.09.25(월)~2023.09.28(목)

2023.09.25 (월)

이번주는 가을이의 생일이 있는 주간이다. 몇 주 전부터 받고 싶은 생일선물을 묻곤 했지만, 대답은 늘 바뀌기 일쑤였다. 본인 스스로도 자기가 진짜 원하는 게 그게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 듯한 말투였다. 그러다 지난주 토요일 아이는 문득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나 생일선물 자전거 받고 싶어요!" 그렇게 해서 결정된 그녀의 생일 선물. 우리는 당장 자전거가게로 달려갔고, 분홍색 자전거를 시승해 보았다. 원래는 공주가 그려져 있는 자전거를 갖고 싶다고 했었기에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공주 자전거도 보여주었지만, 결국 최종 원픽은 시승해 보았던 분홍색 자전거가 되었다. 일요일은 가게가 쉬는 날이었기에, 나는 오늘 자전거를 사러 가게 다시 찾아갔다. 가게에는 자전거를 고치러 온 중년의 여자분과 남자분 두 분이 먼저 와 계셨는데, 금방 수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는지 나에게 자전거를 먼저 팔겠다며 사장님이 양해를 구하셨다. 자전거 보조바퀴를 조정하고 자전거를 세팅(?)하는 동안 나는 딸아이가 공주자전거보다 이 자전거를 택했으며, 어제 사러 오려고 했는데 쉬는 날이라 못 사서 딸이 무척 아쉬워했다고 그래서 내가 오늘 득달같이 사러 온 거라는 이야기 등을 했다. 옆에서 내 이야기를 듣던 중년의 그 여자분과 남자분도 자전거를 도둑맞은 이야기를 하며 나에게 자전거 도둑을 조심하라 일러주시는 등 몇 마디 대화를 나눈 뒤, 나는 마침내 자전거를 받아 가게를 나서게 되었다. 그런 나에게 그 중년의 남자분이 마지막으로 주옥같은 대사를 뱉으셨는데, "아가씨 같은데 저런 자전거를 타는 딸이 있네~" 하시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나는 더욱 기쁜 마음으로 대답했다. "저요? 아이고 저 아들도 있어요~ㅋㅋㅋ" 나의 대답에 사장님도 눈이 휘둥그레지시며 "아들도 있어요???ㅇㅅㅇ?" 하신다. 그 놀라움을 새삼 자랑스러워하며 나는 분홍색 자전거를 끌고 가게를 나왔다. 가을이 생일선물 사러 갔다가 내가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호호 ㅋㅋㅋ


2023.09.26 (화)

둘째는 밥을 잘 먹는 편이다. 밥 안 먹어서 속을 썩인 일은 거의 없는데, 문제가 하나 있다면 처음 보는 음식은 잘 안 먹는다는 것이었다. 먹어보고 맛있으면 좋아하게 되지만, 낯선 음식은 거절부터 하는 데다 싫으면 곧 죽어도 싫다는 식이라 처음 접해보는 음식을 먹여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늘도 그랬다. 내 딴에는 맛나게 밥을 해줬는데 반응이 신통치 않다. 밥 말고 까까를 내놓으라는 아이에게 막 핀잔을 주었다. 다행히 첫째는 얼른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밥을 다 먹은 것을 칭찬받고 싶었는지 첫째가 나에게 묻는다. "엄마 가을이 최고야?" "그럼~ 우리 가을이 밥 잘 먹어서 최최고지!!!" "그럼 아빠는?" "아빠도 밥 잘 먹으니까 최최고지!" "그럼 엄마는?" "엄마도 밥 잘 먹으니까 최최고지!" "그럼... 여름이는?" 드디어 나왔다. 확실한 비교대상. 여름이가 최최고일리 없었다. 나도 여름이에게 최최고를 줄 생각은 없었다. "여름이는 밥 남겼으니까 그냥 최고!" 그런 내 대답에 내심 기뻐할 줄 알았던 가을이가 얼른 여름이에게 가서 귓속말을 한다. 무슨 말을 했냐니까 그런다. "여름이는 그래도 누나한테 늘 최최고야!" 거기다 한마디 더 덧붙인다. "아무 데나 도장 찍어도 최최고야!" 내가 칭찬받은 것은 기쁘지만, 혹여나 내가 받은 칭찬에 동생이 비교를 당해 마음이 상했을까 걱정하는 아이. 결국 내가 차린 밥 맛 나게 먹어주지 않았다고 최최고를 주지 않은 나만 쪼잔한 엄마가 되었지만, 너의 배려심에 밥을 잔뜩 남긴 둘째에게도 웃어 보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가을이는 역시 최최고야!


2023.09.27 (수)

가을이가 유치원에서 소원 등을 만들어왔다. 아마도 추석이 가까워오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소원 등 밑에는 종이띠를 오려 붙여 아이의 소원이 적혀 있었다. 아이의 소원은 전혀 예상치도 못한 엉뚱한 것이었다. “가족이랑 하늘날기.” 잉...? ㅋ 나는 다소 엉뚱한 소원에 웃음을 지었더랬다. 그저 귀엽다고만 생각했다. 동생네 모여 저녁식사를 하고 님편이랑 아이스크림을 사러 나가는데 엘리베이터에서 대뜸 남편이 그런다. “나중에 가을이랑 스카이다이빙이나 페러글라디딩이라도 가야겠어요~” 잉...?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싶어 “왜요?” 했더니, 아까 소원 등에 가을이가 가족이랑 하늘날기를 소원으로 적어왔지 않냐며, 지난번에도 새처럼 하늘을 훨훨 날고 싶다고 했다고. 가을이가 진짜 하늘을 날아보고 싶어 하는 것 같다는 남편. ㅋㅋㅋ 엉뚱한 소원을 적어오는 딸이나, 그 소원을 들어주고픈 남편이나 둘 다 참 귀엽다고 생각했다. ㅋ 나는 가을이가 무서워서 퍽이나 그런 걸 하겠다고 하겠다며 일축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이의 작은 말도 귀 기울여주는 남편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초등학생 때쯤, 난 커서 소프라노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나의 아빠는 그 말을 말도 안 된다는 식으로 웃어넘겼다. 나는 어릴 적부터 허스키한 목소리에 고음에는 특히 재능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을 거다. (나라도 그렇게 반응했을 거다.) 그런데 난 그 반응이 두고두고 못내 쓰라렸다. 지금까지 기억을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런데 나도 내 아이의 소원을 그저 웃어넘겨버렸다.  아이에게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내심 그 소원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 단정 지었던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달랐다. 남편은 진짜 하늘을 날개 해줄 방법을 고민해봐 주었다. 어쩌면 내 아이의 그 엉뚱한 소원은 그 소원을 그저 웃어넘기지 않고 함께 기억해 주는 아빠로 인해서 언젠가는 진짜 이루어질지도 모르겠다.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2023.09.28 (목)

추석과 개천절의 콜라보로 긴 연휴의 시작이었다. 저녁밥 차리기가 싫어 외식을 하기로 했다. 사실 밥 차리는 게 더 힘든지 식당에 애들 데리고 가서 먹는 게 더 힘든지 알 수 없다. 다만 적어도 밖에서 먹으면 설거지는 안 해도 된다는 건 위로가 되는 지점이다. 집을 나서는데 가을이가 챙길 것이 있다며 가방을 싼다. 아무것도 챙겨나가지 않는 날보다, 무언가를 챙겨나가는 날이 많기에 그러려니 했다. 식당에 도착해 주문을 하고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 어른들에게도 그렇지만 아이들에게도 참기 힘든 시간이다. 아이들이 부쩍 산만해지고 배고파 투정을 부릴 즈음 스멀스멀 유혹이 올라온다. 핸드폰으로 만화를 틀어줄까 말까. 그때, 가을이가 챙겨 온 가방을 열더니 책을 한 권 꺼낸다. 요시타케 신스케의 "더운면 벗으면 되지"라는 책이었다. 책을 읽어달라는 말에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책을 펼쳐 들었고, 두 아이는 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책을 한 권만 챙겨 온 데다 아이들 책은 금방 읽기 마련이지만, 대게 아이들은 같은 책을 읽고 또 읽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두번째로 책을 읽을 즈음 음식이 나왔다. 책을 한쪽으로 치워두고 주문한 음식을 먹으려는데 방금 조리되어 나온 음식이라 뜨거웠다. 둘째가 한 입 먹은 것을 퉤 뱉어내며 성질을 낸다. 그때, 책에 나온 내용이 퍼뜩 떠올랐다. "너무 뜨거워서 먹을 수 없다면" "다 같이 후후 불어 식히면 되지"라는 부분이었다. 내가 그 구절을 다시 이야기해 주자 아이들도 아까 읽은 내용이 기억이 났는지 그 문장을 따라하며 웃어 보인다. 우리 네 식구는 신나서 음식을 후후 불기 시작했다. 읽은 책을 이렇게 바로 실생활에 적용하며 분위기 전환이라니! 나는 집에 돌아오며 생각했다. 오늘 외출에서 가을이가 책 한 권을 들고 나온 것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고. 나는 왜 그동안 그 생각을 못했을까. 아니, 못하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둘째 기저귀부터 물티슈, 아이들 여벌옷까지 어디 잠깐 외출하려고 해도 챙겨야 할 것들이 많으니 책까지 생각이 미칠 여력이 없었던 게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아이들과 외출할 때 작은 책 한 권씩 챙겨가는 것도 참 좋겠다는 생각을 아이 덕분에 하게 되었다. 역시, 어른은 아이에게 배울 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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