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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Oct 12. 2023

주간 새미일기

2023.10.02(월)~2023.10.06(금)

2023.10.02 (월)

날이 좋아 인천대공원에 있는 캠핑장에 갔다. 화창한 날씨를 만끽하며 숯불에 고기도 맛있게 구워 먹고, 초록색을 많이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며 신나게 산책도 했더랬다. 특히 불멍은 소리도 색깔도 이런 힐링템이 없다 싶었다. 아이들도 신이 났다. 그러다 유독 크게 웃는 가을이의 모습을 자주 보았다. 호숫가 데크에 서있기만 해도 잉어(?)들이 잔뜩 모여들었다. 아무도 먹이를 주지 않아도 수면에 올라와 입을 뻐끔거리며 난리였다. 가을이는 그 모습이 재미있었나 보다. 한참을 잉어들을 쳐다보며 깔깔깔 웃었다. 그런 가을이를 보고 있자니 그게 그렇게나 재미날까 싶었다. 저녁에는 장작불을 피웠다. 나무꼬지에 마시멜로우를 꽂아 구워 먹는 건 분명히 기분 좋고 신나는 일이었지만, 가을이는 장작이 타는 모습을 보며 여러 번 계속 깔깔 웃어댔다. 그게 그렇게까지 재미난 것이었을까?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렇게 밖에 나와 캠핑을 즐기는 게 분명 즐겁지만 저렇게까지 신나게 웃지는 않는데, 가을이는 작은 것에도 계속해서 웃는구나. 부럽다. 왠지 크게 웃으며 순간을 즐거워하는 가을이가 이 캠핑을 나보다 훨씬 더 풍성히 누리는 것 같아 부러웠다. 사실 나는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리는 것에 더 마음을 쓰지는 않았는지. 같은 것을 보고도 크게 웃지 못한 나는 왠지 모를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2023.10.03 (화)

가을이가 아빠의 검은색 조끼패딩을 걸치고는 옷 끝을 손으로 잡고 날개처럼 퍼덕인다. 그러더니 하는 말. “나는 검은 비를 뿌리를 검은 요정이다!” 저렇게 옷 한 벌 가지고도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역할을 만들어내어 노는 아이가 신기하고 기특해 웃어 보였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검은 비? 비는 물이니 다 투명하지 않나? 근데 검은 비는 뭐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가을이에게 물었다. “근데 가을아 검은 비는 뭐야? 왜 비가 검은색이야? “ “흐린 날 까만 먹구름이 뿌리는 비는 검은색이야.” 아... 그렇구나... 어두컴컴할 정도로 흐린 날, 시커먼 먹구름이 뿌리는 비는 검은색이라고 아이는 생각하는구나. 그래 맞아. 그러네. ”그럼 맑은 날 내리는 비는? 무슨 색이야? “ ”음... 연한 파란색!” 아 비는 투명하니까 하늘이 어떠한 색이냐에 따라 비의 색깔이 달라진다고 생각하는 거구나.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네. 음... 갑자기 아이가 보는 세상의 색들이 궁금해졌다. 나도 결국 내가 아는 데로 내가 배운 대로 색깔을 규정짓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의 색들을 바라보고 있었던 거겠지. 그런데 아이의 눈은 나보다 한층 투명했다. 문득 그런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보는 세상은 어떤 색깔이니?


2023.10.04 (수)

날씨가 제법 선선해졌다. 아침저녁으로는 창문 사이로 맞바람 치는 공기에 재채기가 나왔다. 주부에게는 이런 환절기에 할 일이 늘어난다. 계절이 바뀌니 옷도 바꾸어 정리해야 하고, 침구도 바꿔주어야 한다. 우리 집 식구들은 나 빼고 셋 다 워낙 더워하는터라, 여름침구로 버티고 또 버텼는데 이젠 정말 침구를 바꾸어야 하는 시기가 오고야 만 것이다. 맨날 자다가도 새벽에 춥다 춥다 생각하면서도 (나는 수족냉증이 있는데, 벌써 발이 시리기 시작했다.) 이불 바꾸는 걸 미루고 미뤘더랬다. 그게 뭐라고 이렇게 귀찮은 건지. 왜 낮에는 정신이 없어 생각도 못하다가 밤만 되면 ‘아 맞다 침구 바꿔야 되는데!‘ 하는 건지. 그렇게 나는 아직도 여름을 보내주지 못하고 있었다. 이불속에서 시린발을 비비면서도 냉감패드를 깔고 얇은 와플이불을 덮으며 여름더러 가지 말라고 가지 말라고 미련을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갔어도 한참 멀리 간 여름을 나는 이제 그만 보내주어야 한다. 붙박이 장에서 패드와 이불들을 꺼냈다. 폭신한 이불에 벌써부터 따스하다. 이제야 가을을 맞아들였는데, 금세 가습기를 꺼내야 할 것 같다. 옆집은 가습기 a/s라고 써놓은 박스를 내놓았던데, 나도 가습기가 잘 작동되는지 꺼내봐야 하는 걸까. 금방 또 롱패딩을 교복처럼 입고 다닐 겨울이 오겠지. 아 왜 이렇게 계절이 빨리 지나가는 걸까. 매년 돌아오는 계절인데도 쫓아가기가 버겁다. 할 일이 너무 많다.


2023.10.05 (목)

둘째를 키우면서 새삼 깨닫는 것들이 있다. 둘째는 첫째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것. 당연한 사실이지만 그 사실이 순간순간 새삼스러울 때가 있다. 그 이유는 첫째와 둘째가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성별도 다른 데다 첫째가 유독 순한 애였다. (첫째를 키울 때는 몰랐지만ㅋ) 얼마 전 둘째가 네임펜으로 벽에 낙서를 했다. 갖은 방법을 동원해서 닦아보았지만 네임펜은 강력했다. 내 집이면 나만 열받고 끝나면 될 일이지만,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은 내가 주인이 아니다. 그러니 영 집주인 눈치가 보인다. 12월에 이사를 나가는데, 그전에 또 낙서를 할 까봐 아직 집주인한테는 말도 못 꺼냈다. 그림 그리기를 무척 좋아하는 첫째는 한 번도 벽에 낙서를 한 적이 없다. 물감놀이를 꺼내주고 사인펜, 색연필을 지천에 늘어놔줘도 종이에만 그리지 벽에 그리려고 시도조차 한 적이 없는데, 둘째는 내 책상 위에 기어올라와 연필꽂이에 꽂힌 다른 펜과 연필을 제치고 굳이 네임펜을 골라 벽에 낙서를 했다. 환장할 노릇이다. 또 며칠 전에는 어린이집 같은 반 친구 얼굴을 할퀴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안 그래도 누나나 사촌들을 물거나 때리는 일이 자주 발생해 걱정이었는데, 결국 사달이 나고야 말았다. 다행히 그 친구가 많이 다친 것은 아니었지만, 내 아이가 다른 아이를 아프게 했다는 것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일이었다. 상대 어머니는 아이들이 놀다 보면 그럴 수 있는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셨지만, 첫째는 전혀 전혀 그런 비슷한 일도 한 번 없던 아이였어서 나는 제법 마음이 불편했다. 그 친구에게 초콜릿과 연고를 선물하고, 아이 엄마 얼굴을 보고 사과를 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런 사건사고(?)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다 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둘째는 첫째와 다르게 나를 왜 이렇게 힘들게 할까 싶은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나만 힘들게 하면 그래도 괜찮은데,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아이가 나는 더 힘들었다. 아들이라 그런가 생각도 해보지만, 같은 어린이집에 있는 다른 순하디 순한 남자아이를 보면 꼭 아들이라 그런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그런 식으로 자꾸 첫째와 둘째를 비교하다 보니 그 자체로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아이는 다른 사람이다. 누가 더 낫고 누가 더 못한 것이 아닌데, 나는 자꾸만 그런 식으로 두 아이를 비교하고 있던 것이다. 와 겨우 두 명인데 그 둘을 비교하는 꼴이라니.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한다. 의식적으로 노력해야겠다. 두 아이를 비교하지 말자고. 계속 그렇게 억지로라도 생각해야겠다. 두 아이 다 각자의 멋진 내면을 갖고 있는 귀한 존재라는 것. 두 아이가 처음 맺게 되는 관계가 엄마(아빠)인데, 엄마부터 두 아이를 비교해서는 안된다. 뭐가 더 낫고 더 못한 건 없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을 똑같이 생각하는 건 사실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노력해 봐야겠다.


2023.10.06 (금)

오늘은 가을이의 가을 소풍날이다. 도시락을 싸야 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깨기 전에 먼저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준비했다. 그런 내 모습이 나 스스로 낯설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늦게 자는 것은 잘해도 일찍 일어나는 것은 유독 힘들어하는 사람이다. 게다가 나는 요리에 취미가 없다. 즉, 가사 중에 밥 하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아이를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싸고 있다니. 참 나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 내가 기특했다. 나답지 않는 일이라도 아이를 위해서 하는 것. 도시락을 싸야 한다는 생각에 며칠 전부터 은근 스트레스였는데, 막상 도시락을 싸고 있는데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진짜 엄마가 됐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그런 내 모습에서 새삼 우리 엄마의 모습을 보았던 것 같다. 나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녀야 하는 유치원에 다녔었다. (고등학교 때도 한동안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던 것 같다.) 아마도 내가 일어나기 전에 준비를 하셨을 테니 도시락을 싸는 엄마의 모습을 본 기억은 거의 없지만, 왠지 도시락을 싸는 나의 모습에서 엄마의 따뜻함을 보았던 것 같다. 우리 엄마도 나만큼 밥 하는 것을 싫어하는 엄마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수많은 도시락을 준비하셨을 엄마를 생각하니 나 혼자 새삼 감동적이었다. 정작 그 도시락을 먹을 땐 그런 생각을 잘 안 했던 것 같은데, 내가 엄마가 돼서 내 아이의 도시락을 싸면서 보니 그때의 엄마의 사랑이 뒤늦게 다가왔다. 생각할수록 감사함이다. 가을이는 아침부터 도시락을 보며 무척 행복해했다. 소풍을 다녀와서도 도시락이 너무 맛있었다고 여러 번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도시락 한 번 싸고 이렇게 즉각적인 사랑을 되돌려 받는데, 나는 그 수많은 도시락을 쌌던 엄마에게 그런 따스한 사랑의 말을 돌려주었던가 모르겠다. 아마 돌려드리지 않았던 것 같다. 엄마는 내 일기를 꼬박꼬박 읽으시니 지금이라도 말씀드려야겠다. 엄마, 도시락 너무 맛있었어요! 덕분에 즐거운 식사들을 했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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