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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Oct 16. 2023

주간 새미일기

2023.10.10(화)~2023.10.15(일)

2023.10.10 (화)

나는 요즘 집 근처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동화창작교실' 수업을 듣고 있다. 주 1회 4주간 듣는 수업이었다. 오늘이 세 번째 수업날이었는데, 첫 수업날부터 강사님이 반장을 뽑았으면 좋겠다고 하셨지만 우리는 여태 반장을 뽑지 못했다. (이 기초과정이 끝나면 심화과정이 이어질 것이기에 반장이 있으면 좋다는 것이었다.) 첫 시간에 선생님은 반장이야기를 하면서 마지막에 "주로 제일 젊은 분이 하시더라고요~"하고 말을 흐렸던 게 문제였다. 누가 봐도 내가 제일 어렸다. 정확한 나이는 몰라도 나만한 자녀를 둔 듯한 분 들이거나 내가 언니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더 나이가 많아 보이는 분들이었다. 서로 나이를 이야기하지 않아도 가장 어린 사람 하면 그것이 나 인 것은 확실했다. 그런데 아무도 나에게 반장을 하겠냐고 묻지는 않았다. 물었다면 나는 애가 둘이나 있어서 심화반을 이어서 수강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고 이런 강의가 처음이라 다른 분이 하시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정중하게 거절을 했을 것 같은데, 묻지 않으시니 거절하기도 뭣하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수업을 갈 때마다 은근히 반장 얘기를 꺼내시는 분들이 계신다는 것이다.  이쯤 되니, 어린 사람이 반장을 하더라는 말을 꺼낸 강사님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목소리도 크시고 적극적인 (다른 몇몇 분들이랑 친분도 있는 듯한) 분들이 계신데 그분 중에 한 분이 하시면 좋겠구먼, 엄마뻘 되는 분한테 반장 하시라고 말할 깜냥이 나에게는 없는데 강사님이 괜히 어린 사람 타령을 해서 나만 곤란하게 됐다. 그놈의 반장이 뭐라고. 정 정말 하고 싶은 분들이 없다면 나라도 하겠지만 그 마저도 나에게 직접적으로 묻지는 않으시니, 별로 하고 싶지도 않은 반장을 하겠다고 나서기도 웃기다. 이래저래 곤란하다. 


2023.10.11 (수)

요즘 가을날이 좋아 그런가 유독 일정이 많았다. 추석이 지나자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행사가 줄 줄이었고, 교회에서 수련회도 다녀왔다. 이렇게 일정이 많다 보니 일상이 세워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집안일도 버겁게 겨우겨우 처리하기 일쑤였고, 무엇보다 일기를 쓸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내가 일기를 쓰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내 감정을 소화시키기 위함이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가사를 하는 일상을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일들 속에서 다양한 감정들이 나를 찾아오고 또 지나간다. 내가 그것들을 소화시키지 못하고 그냥 흘려보내게 되면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보내는 것만 같고, 때로는 어떤 감정이 마음에 얹혀 힘든데도 그것을 소화시킬 시간이 없다 보니 얹힌 상태로 한참을 답답하게 보내다가 그대로 잊어버리게 되는 일들도 있다. 문제는 그렇게 잊은듯했던 마음은 언젠가 내가 상태가 좋지 않을 때 꼭 다시 올라와 나를 힘들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감정들을 소화시키기 위한 한 가지의 방법으로 나는 일기를 택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저러한 일로 바쁘다 보면 그 일기를 자꾸 미루게 되고, 그럼 나는 소화되지 못한 많은 감정들을 안고 살아간다. 요즘 내가 그렇다. 밀린 일기들을 숙제처럼 몰아 쓰다 보면 이게 맞나 싶기도 한데, 또 며칠 지난 뒤에 쓰는 일기를 통해 그때의 감정들을 더 잘 들여다보게 되는 일도 있기에 이렇게 라도 일기를 쓰는 게 낫다는 생각도 든다. 바쁘게 살아가다 겨우 시간이 나면 일기를 몰아 쓰는데, 일기 쓰는데 그 시간을 다 쓰게 되다 보니 내가 일기에 쫓긴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어젯밤에는 책장 앞에 멍하니 앉아 어떤 책을 찾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아, 맨날 책 읽고 글 쓰고 책 읽고 글 쓰고 그런 일을 하며 살고 싶다.'


2023.10.12 (목)

오늘은 여름이 어린이집에서 운동회가 있는 날이었다. 엄마아빠가 함께 참석하는 운동회라 어린이집에서는 혼자서 잘하던 것도 엄마아빠가 있기 때문에 좀 더 투정을 부리고 안기고 하긴 할 거라는 담임 선생님의 말씀이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여름이는 그 어느 게임에도 참여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가만히 앉아서 썰매를 타거나 큰 대야에 앉아 있으면 엄마아빠가 들어서 날아가는 것처럼 해주는 활동에도 끝끝내 타지 않겠다고 버텼다. 결국 뭐라도 참여하게 해주고 싶은 체육선생님의 마음에 힘입어 혼자 유일하게 아빠에게 안겨 썰매를 타고, 엄마에게 안겨 대야에 앉아 날아보았다. 그 외에 활동에서는 계속 엄마아빠에게 내내 안겨있던 둘째. 어린이집 운동회였지만 엄마아빠만 적극적으로 게임에 참여한 꼴이 되었다. 운동회가 다 끝나고 점심식사를 한 후에야 컨디션이 돌아왔는지 바람개비를 들고 신나게 뛰어다니던 여름이. 다른 엄마들도 그런 여름이를 보며 이제야 여름이가 텐션이 올라왔다며 웃어 보였다. 나도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집에 와서 침대에 누워 여름이와 운동회 때 찍은 사진을 함께 보았다. 어떤 동영상은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시 틀어달라고 하는 여름이였다. 그러더니 사진 속 운동회 장소를 가리키며 하는 말. "나 여기 가고 싶어!" '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갔다 왔잖아 여름아. 운동회 때는 아무것도 안 하고 안겨만 있으면서 징징거리더니. 이제 와서 또 가고 싶다는 거 뭐야 ㅋㅋㅋㅋㅋ 그래,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너도 그 시간이 즐거웠던 거지? 엄마아빠랑 함께하는 그 시간이 좋았던 거지? 그래 엄마는 그렇게 생각할게~' 그러고는 아이에게 말했다. "그래~ 여름아 다음에 또 가자^^"


2023.10.13 (금)

자기 전에 온 가족이 침대에 누워 각자 오늘 하루 어땠는지 종종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원래는 남편과 나, 첫째만 이야기를 나누었었는데 요즘은 둘째에게도 묻는다. "여름이는 오늘 하루 어땠어?" 그럼 의외로 둘째는 누구보다 가장 길게 대답을 한다. 물론, 우리는 둘째의 말을 대부분 알아들을 수 없다. 간혹 들리는 몇 개의 단어를 제외하고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감으로 봐서는 진짜 오늘 하루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 게 분명하다는 느낌이 든다. 한참을 이야기하는 둘째의 말소리를 들으며 누워 있는데, 그렇게 할 말이 많았나 싶은 게 그동안 말을 잘 못한다는 이유로 물어봐주지 않은 것이 미안할 지경이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공감도 해주고 추임새도 넣어준다. "아~ 그랬구나~ 그랬어? 오오~" 그러면서 생각한다. '지금은 비록 내가 너의 말을 다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너와 이렇게 누워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게 참 좋구나. 너의 그 귀여운 목소리와 알지 못하는 단어들을 주워 담아 어딘가에 넣어두고 싶구나. 그랬다가, 어느 날 밤 너는 너의 방에 (혹은 너의 집에) 누워 자고 나는 내 방에 누워 잘 때, 너를 생각하며 한 번씩 꺼내어 다시 들었으면 좋겠구나. 그렇구나.'


2023.10.15 (일)

어제, 친한 동생네 놀러 왔다가 첫째가 자고 가자고 졸라서 온 가족이 그 집에서 자고 아침에 일어났다. 그 집에는 돌이 조금 지난 둘째가 있었는데, 두 돌 조금 지난 우리 집 둘째가 그 집 둘째에게 가서는 대뜸 "안아주까? 안아주까?" 하는 게 아닌가. 나참. 집에서는 저가 막내라 그런가 그렇게 안아달라고 안아달라고 난리면서 자기보다 어린 동생이 있다고 얼른 그 동생에게 가서 안아줄까? 하고 묻는 모습이 너무 웃겼다. 더 웃긴 것은 사과를 먹다가 동생이 근처에 다가오자 얼른 사과를 입으로 베어 물어 작게 잘라 동생을 먹여 주는 것이었다. 집에서는 제 것이라고 준 음식은 누군가와 잘 나누려고 하지도 않고, 누나랑 좀 나눠먹으래도 "내 거야! 내 거야!" 하면서 욕심을 부리는 게... 동생이 먼저 달라고도 안 했는데 선뜻 먼저 나눠먹는 모습에 나도 좀 놀랐다. 게다가 자기가 보기에도 아기라 큰 사과는 먹기가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는지, 입으로 베어 물어 작게 잘라주는 섬세함까지 보이다니...ㅎ 역시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인가. 여기서는 자기가 막내가 아니고 자기보다 더 어린 동생이 있으니 딴에는 제가 오빠라고 챙겨줘야겠다고 생각한 게 퍽 귀여웠다. 집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모습. 요즘 맨날 안으라고 투정 부리고 친구랑 형누나들 밀고 때리고 그래서 아직 인간이 덜됐다고 맨날 혀를 찼었는데, 그래도 동생이라고 챙겨주는 모습을 보니 크긴 크고 있구나 싶은 게 제법 기특하다. 막내 너도 누군가에겐 오빠구나...ㅎ 푸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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