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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Oct 30. 2023

주간 새미일기

2023.10.16(월)~2023.10.27(금)

2023.10.16 (월)

얼마 전 첫째에게 자전거를 사주었다. 오늘도 유치원 하원 후 아이는 공원에 가서 자전거를 타고 싶어 했다. 둘째는 누나의 자전거를 무척이나 부러워하지만, 아직은 몸집이 작아 누군가 밀어주는 세발자전거에 만족해야 한다. 하지만 킥보드라면 (아직은 앉아서 타는 킥보드) 제법 혼자서 자신 있게 내달릴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첫째는 자전거(보조바퀴가 달린 두 발자전거), 둘째는 킥보드를 타고 집을 나섰다. 문제는 보호자가 나 한 명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킥보드를 타고 먼저 달려 나가 버리고는 내가 아무리 불러도 좀처럼 뒤돌아보지 않는데, 첫째는 아직 자전거가 익숙하지 않아서 빨리 달리는 것은 어렵다. 둘의 속도가 이처럼 다르다 보니 나는 어느 속도에 발걸음을 맞추어야 할지 난감하다. 결국 약간의 오르막이나 내리막이 있는 구간에서는 첫째를 도와주다가, 어느새 저 앞으로 혼자 달려 나간 둘째를 쫓아가서 멈춰 세우는 일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공원이 제법 가까운 거리에 있었지만, 차길을 건너가야 하는 길이라 나는 이래저래 분주했다. "여름아 기다려! 여름아 같이 가! 멈춰!! 멈추라고!!! 앞을 보고 타야지!!"를 하염없이 외치며 공원에 도착했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했다. 아이 둘 다 내가 잡아주고 도와주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첫째와 둘째 사이에서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종종거렸다. 집에 거의 도착할 즈음 아파트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몇 계단 높이의 오르막을 올라야 했다. 누나보다 빨리 오르막에 도착한 둘째는 호기롭게 오르막을 향해 발을 굴렀지만, 중간쯤에서는 힘이 달려 결국 바퀴가 뒤로 굴러간다. 다행히 내가 둘째를 쫓아 얼른 달려가 뒷걸음질 치는 킥보드를 잡아서 오르막에 무사히 밀어 올려주었는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뒤이어 도착한 첫째도 혼자서는 오르막을 오를 수 없으니 내가 잡아주어야 하는데, 둘째가 가만히 기다려줄 리가 만무하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바로 뒤이어 얕은 내리막이 있는 데다 (둘째는 그 부분에서 늘 킥보드를 타고 내려가다가 턱에 걸려 넘어진다.) 내려간 뒤에도 아파트 내 도로라 차가 다니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할 수 없었다. 순간적으로 난감했다. 그래도 얼른 첫째를 올려주고 둘째를 잡으러 가야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누군가 도움의 손길을 뻗어주었다. 같은 오르막을 올라가던 아저씨가 둘째를 잡고 계셔 주신 것이다. 난감한 나의 상황을 재빨리 파악하신 모양이었다. 덕분에 조급해하지 않고 첫째도 안전하게 오르막길을 오를 수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둘째가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지 않도록 잠시 잡아주신 그분께 너무 감사했다. 둘째도 "할아버지가 나 잡아줬어"하고 고맙다는 듯 이야기한다. (내가 잡고 있으면 그렇게 싫어하면서 아저씨가 잡아주니 가만히 기다려주던 둘째ㅎ) 두 아이가 모두 바퀴 달린 것을 탈 때는 혼자서 아이 둘의 안전을 책임지기 어렵다. 잠깐 공원에 갔다 오는 것에도 진이 빠졌던 터라, 둘 다 그 탈것에 능숙해지기 전까지는 혼자서 둘을 데리고 나가는 게 쉽지 않겠다 생각했었다. 그래도 이렇게 도움을 주시는 분을 만나니, 왠지 위로가 되고 힘이 난다. 둘째를 잠시 잡아주셨던 그분이 덩달아 내 멘털도 잡아주신 듯하다. 오늘의 감사함이다.


2023.10.18 (수)

어느 카페 화장실을 갔다가 들은 얘기다. 변기가 두 칸 있던 화장실이었다. 두 칸 모두 누가 들어가 있던 터라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말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은 아마 친구사이였던 모양이다. "ㅇㅇ(둘 다 아는 친구 이름인 듯) 이제 예뻐지겠다~" 그 부분에서 약간 궁금했다. 그전 대화를 듣지 못해, 뭘 해서 예뻐진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친구가 예뻐진다는 것에 둘 다 동의를 하는 모양이었다. "근데 친구가 예뻐지면 나도 기분 좋지 않아?" 한 친구가 말했다. 강한 긍정은 아니었지만 나머지 한 친구도 그 말에 동의하는 듯 대답했다. 상대 친구가 강한 긍정을 보이지 않아서인지 그 말을 했던 친구가 좀 더 덧붙여 이야기를 한다. "그런 거 있잖아 친구를 딱 만나러 갔는데 친구가 되게 예쁘게 하고 나왔어. 그럼 막 나도 기분이 좋아지고 내가 예쁘다고 칭찬하면 그 친구도 기분 좋고! 난 내 친구가 예쁘면 기분이 좋더라!" 그 말에 상대 친구도 맞장구를 친다. 그런 둘의 대화를 듣고 있는데 참 예쁜 마음을 가진 친구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칸에서 나온 것을 보니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쯤 되어 보였다. 친구가 예뻐지면 질투가 나는 것이 아니라 나까지 기분이 좋아지고, 게다가 그 친구에게 예쁘다고 말해주는 마음이라니. 남이 잘되면 배 아파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기뻐해주는 것. 나는 과연 어떤가 돌아보게 하는 말들이었다. 화장실에서 우연히 들은 대화내용이 자꾸만 되새겨지는 하루다.


2023.10.26(목)

아이를 키우는 일은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내가 아이를 다 키운 뒤의 '결과'가 아니라 키우는 '과정'중에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분명 매일매일 자라고 있는데, 나는 매일매일 그것을 느끼고 사는 게 아니다. 하지만 문득문득 아이가 컸구나 느끼게 되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 순간은 퍽 감동적이다. 오늘은 저녁에 내가 외출을 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날씨가 제법 쌀쌀해서 카디건을 걸쳤는데, 가을이가 다가와 내 카디건의 단추를 채워주겠다는 것이다. 이제 혼자서 단추를 채울 수 있는 나이이지만 아직은 능숙하지 않아서 다섯 개의 단추를 다 채우는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아이의 키에 맞춰 무릎을 꿇고, 내 카디건의 단추를 채워주는 딸아이를 내려다보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지금까지는 내가 아이의 단추를 채워주는 모습이 나에게 훨씬 익숙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마도 그 모습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의 모습은 나에게 당연하지 않은 모습이다. 어느새 우리의 위치가 바뀌었는데, 내 마음이 바뀐 위치를 쉽사리 따라가지 못했다. 약간은 당황스러운 마음도 잠시, 아이의 손길에 단추가 하나씩 채워질 때마다 대견하다는 마음이 든다. 늘 내가 아이의 단추를 채워주었었는데, 어느새 내 단추를 채워줄 만큼 자라 나의 외출준비를 도와주고 있는 너의 모습을 보자니 감개무량하다. 거기다 더해서 여름이가 우리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주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았더니 제법 잘 찍었다. 맨날 툭하면 징징거리며 안아달라고 하는 네가 애기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런 네가 자라는 모습을 늘 사진으로 남기기 바쁜 나였는데 어느새 너는 자라 내 사진을 찍어주는 나이가 되었구나. 이렇게 서로의 역할을 잠시나마 바꾸어보니 너희 둘이 많이 컸다는 것을 느낀다. 고맙구나 잘 크고 있는 너희도 그 과정을 지나온 나도. 


2023.10.27(금)

6월부터 매일 쓰는 것을 목표로 일기 쓰기를 시작했다. 일주일 안에서 하루이틀 정도 빠지더라도 한 주에 한 번씩 지난주의 일기를 브런치스토리에 업로드했다. 그렇게 '주간 새미일기'를 써온 지 5달 차가 되었다. 육아를 하면서 사실상 매일 일기를 쓰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2~3일 치를 몰아 쓰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그러다 보니 점점 일기를 쓰는 게 하나의 일처럼 여겨지는 날도 있었다. '아 어제도 일기를 못썼네, 그럼 이틀이나 밀리는 건데.. 언제 쓰지.. 써야 하는데...' 이런 생각이 3일 4일 심지어는 5일 넘게 생각으로만 머물러 있었던 날들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혼자만의 시간이 생겨도 일기를 써야 한다는 압박감에 하고 싶은 다른 것이 있어도 밀린 일기를 부랴부랴 쓰는데 급급했다. 물론 밀려서 쓴다고 해서 일기를 쓰는 작업에서 오는 유익이 반감되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게 시간을 내서 쓰기까지 심적 압박감이 있는터라 마치 밀린 방학숙제를 몰아서 하는 기분을 떨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어제는 저녁에 자유시간을 갖게 되었지만, 일기를 쓰지 않기로 했다. 그동안 읽고 싶어서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소설책과 필사책을 가지고 카페로 향했다. 이번주는 일기를 쉬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필사를 하고 소설책을 읽는데 좀 자유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 한 두 주 일기 안 쓴다고 누가 머라 하는 것도 아니고, 큰 일 나는 것도 아닌데 너무 아등바등하지 말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재미난 일이 일어났다. 일기로 기록해두고 싶은 일들이 몇 가지 생각나는 것이었다. 그날 일었던 그 일, 그냥 흘러가 버리게 두기엔 아깝다는 마음이 들었다. 일기로 남겨두지 않으면 그 순간을 잊어버리고 지낼 텐데, 그런 또 그러기가 싫었다. 그래서 잊어버리기 전에 얼른 필사노트 빈 공간에 적어 내려 가기 시작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 혼자 웃음이 나왔다. 일기 쓰는 거 버겁고 힘들다고 좀 쉬자더니 금세 일기로 쓰고 싶은 일들을 떠올리는 내가 웃겼다. 아마도 지난 5개월 간의 일기 쓰기가 어느새 나에게 '습관'이 되어 버린 것인가 보다. 사실 지난주부터 근처 동화도서관에서 하는 '동화창작교실' 심화반이 시작돼서 직접 동화를 한 편 작성해야 하는 숙제가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라도 일기를 좀 쉬어볼까 한 것이었다. 그런데 습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일기도 쓰라 한다. 이젠 쓰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나 보다. 문득 그런 내가 나 혼자 그냥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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