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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Nov 12. 2023

주간 새미일기

2023.11.06(월)~2023.11.11(토)

2023.11.06 (월)

여름이는 잠이 없는 편이다. 그래도 이제는 좀 컸다고 자다가 깨는 경우는 현저히 줄었다. 다만 늦게 잠들고 일찍 깨어날 뿐. 밤 9시쯤에 양치를 하고 가을이 한 권, 여름이 한 권 책을 읽어주고 난 뒤 불을 끄고 각자 하루가 어땠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잠을 청한다. 그럼 9시 20분~30분 정도부터 본격적으로 잠을 재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도 그때부터 아이들이 잠들 때까지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한다. 가을이는 금세 잠이 드는데, 문제는 여름이다. 한참을 노래를 부르고 뭐라 뭐라 이야기를 한다. 가만히 듣다 보면 무슨 상황극처럼 대화도 나눈다. 처음에는 그 목소리가 꽤나 듣기가 좋다. 귀여운 목소리로 노래를 열심히 부르는 것을 듣고 있으면 '오~ 이 노래도 아는구나. 가사를 제법 정확하게 부르는데?' 하면서 놀라기도 하고, 대화체로 뭐라 뭐라 상황극을 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벌써 말이 이렇게나 늘었구나 하며 내적 웃음을 짓기도 한다. 그런데 듣기 좋은 것도 한두 번이지, 30~40분을 그렇게 떠들고 있는 것을 듣고 있으면 슬슬 짜증이 올라온다. 네가 자야 나도 육아퇴근을 하는데 잘 생각은커녕 노래를 흥얼거리며 아이가 날 퇴근시켜 주지 않으니 자는 척하는 것도 지친다. 그러다 좀 조용해지면 아 이제 자나 싶어서 몇 분만 더 있다 나가야지 하고 퇴근 생각에 신이 날 무렵. 어김없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다른 쿠션을 가져와 자세를 고쳐 눕는다던지, 저 멀리 다른 자리로 이동해 눕는다던지 하는 식이다. 그렇게 몇 번이고 자는 것 같다가도 엄마를 불렀다가 물을 달랬다가 하면 어느새 시간은 1시간을 훌쩍 넘어간다. 그럼 나는 1시간을 이 컴컴한 방에 누워 자는 척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에 화가 치민다. 그 한 시간이면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는데!! 요즘 보고 있는 미드에서는 아이들이 각자 침대에 누우면 엄마가 잘 자라고 인사한 뒤, 불을 끄고 방문을 닫고 나가던데. 나도 좀 그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물론 미드 속 아이들은 9살이었다.) 아이들과 나는 서로 다른 방에서 자기는 하지만 아이들이 잠들기까지 옆에 있어줘야 한다는 게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미드 속 그 엄마는 몇 살 때부터 아이들을 그렇게 재웠을까?' '난 이미 그러기에 늦어버린 걸까?' 고민하다가, '그래 여름이도 가을이 나이 정도가 되면 금방 잠들겠지.'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오늘은 10시 40분이 되어서야 아이들 방을 나설 수 있었다. 1시간 동안 누워 있으면서 애들 자면 이거 해야지 저거 해야지 생각했었는데, 막상 재우고 나오니까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 아, 이래서 자꾸 누워서 넷플릭스만 보는 거라고... 제발 조금만 더 빨리 잠들어줘라 여름아...ㅠ


2023.11.07 (화)

하루종일 아이들에게 영상을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왠지 모르게 뿌듯하다. 사실 그런 날이 드문데,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아침에 등원 준비를 할 때와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설거지를 해야 할 때가 영상을 보여주고픈 유혹이 강하게 드는 때이다. 영상을 틀어주면 아이들 방해 없이 내 할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 위기를 모두 무사히 넘겼다. 영상을 보여주지 않은 것이 뿌듯한 이유는, '안아달라. 장난감이 망가졌다. 어디가 불편하다. 뭐가 없어졌다. 동생이 때렸다. 종이접기를 가르쳐달라.' 등등 두 아이의 수많은 요구사항을 들어주면서도 내 할 일을 해낸 나 자신에 대한 뿌듯함이다. 심지어 오늘은 남편이 저녁에 자유시간을 갖는 날이라, 혼자 아이들을 보면서도 영상을 보여주지 않은 날이라 더더욱 뿌듯하다.


2023.11.08 (수)

아이들이 잠든 새벽에 있었던 일이다. 이틀 전 월요일 일기에 여름이가 요즘은 자다가 깨는 경우는 잘 없다고 썼는데, 웬걸 오늘 여름이가 갑자기 자다가 새벽 2시쯤인가 막 울더니 결국 안방으로 넘어왔다. 역시 사람은 속단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웃었다. 그래도 자다 깨서 온 건 참 오랜만이다 싶은 마음에 훌쩍이는 아이를 괜찮다고 다독이며 반갑게 꼭 안아주고는 머리도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 조금만 지나도 자다가 나에게 와서 이렇게 안길 일은 없겠지. 더 크면 밤에 안기기는커녕 낮에도 안기지 않을 테고, 밤에는 무얼 하나 궁금해도 방을 들여다보기가 조심스러운 때가 오겠지' 하면서 지금을 즐기자 하는 마음으로 (나도 왜 그렇게 긍정적인 마음이 들었나 모르겠지만) 아이를 토닥이고 등도 쓸어주고 더 꼭 안아보았다. 여름이는 금방 진정이 되었지만 왠지 안방 침대에서 재우면 자다가 침대 밑으로 떨어질까 싶어 다시 아이를 안아 올려 애들 방으로 건너갔다. 아이를 침대에 눕히고, 가을이와 여름이 사이에 나도 누웠다. 조용히 누워 자려는데, 왠지 뒤척이는 것이 가을이도 자고 있는 것 같지가 않았다. 캄캄해서 눈을 뜨고 있는지 감고 있는지 보이지가 않는데, 자꾸만 손톱을 쥐어뜯는 걸 보니 자고 있지 않은 것은 확실했다. 여름이 때문에 깼나 보다 하고 곧 다시 자겠지 싶어 가만히 누워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가을이가 내 옆에 안기듯이 바짝 붙더니 말을 하는 것이다. 그것도 울면서 하는 말이, 자기가 자다가 모르고 여름이를 쳤는데 그것 때문에 여름이가 깨서 울었고 그래서 안방으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얘기를 더 들어보니 그것 때문에 내가 화가 났을까 봐 그래서 자기가 혼낼까 봐 우는 것이었다. 난 이번에는 가을이를 안아주었다. 자다가 모르고 친 거니까 괜찮다고, 다 괜찮다고 가을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면서 가을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토닥여주었다. 이제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갑자기 여름이가 막 울면서 깬 것은 가을이가 자면서 굴러다니다가 여름이와 부딪혀서였던 것이다. 내가 이해가 되는 이유로 깼으니 오히려 화가 나지 않는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울면서 깨던 숱한 밤들을 생각해 보라.) 가을이는 여름이가 안방으로 넘어가자 눈물이 났다고 했다. 아마도 여름이가 누나가 때렸다고 일러바칠까 봐 그랬나 보다. 아이들은 울면 나에게로 온다. 그리고 자기가 왜 우는지 나에게 이야기한다. 그럼 나는 아이들에게 괜찮다고 말하고 다독여주면 모든 것이 괜찮아진다. 모든 상황이 이렇게 단순하게 흘러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중에 아이들이 더 크면 울어도 나에게 와서 이야기하지 않을 때도 있을 테고, 그럼 나는 괜찮다고 다독여줄 수도 없을 것이다. 괜찮다고 다독여주게 되어도 나의 다독임으로는 위로가 되지 않는 날도 있겠지. 아이들이 어려 내 품으로 찾아오는 이 시간들이 갑자기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실 자다가 깨는 것을 무척 힘들어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더 어릴 땐 그게 그렇게 힘들었다. 새벽 수유는 더더욱. 그런 내가 이 시간을 소중하다가도 생각하는 순간이 오다니 의아하다. 아마도 아이들이 그만큼 컸다는 뜻이겠지. 언제 내 품을 떠나 혼자 자려나 싶었었는데, 오늘은 내 품으로 찾아온 아이들이 사랑스럽다. 새벽 감성인가. 모르겠다.


2023.11.09 (목)

필라테스를 갔다. 작년 1월부터 꾸준히 하고 있는 운동이다. 웬만하면 주에 2회 이상은 나가려고 노력한다. 필라테스를 할 때는 발바닥에 미끄럼방지 기능이 있는 양말을 신는다. (여름에는 더워서 안 신고 할 때도 많다.) 그런데 오늘 수업을 막 시작했을 때 오른쪽 양말에 구멍이 났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내가 발톱을 빨갛게 칠해놓은 상태라, 색깔이 빨간 구멍은 내 눈에 쉽게 띄었다. 동작을 하다 보니 양말이 조금씩 밀리면서 그 빨간 구멍은 더 커지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구멍이 더 이상 커지지 않게 하려고 계속 양말을 매만졌다. 사실 엄청 크게 구멍이 난 것도 아니고 다 각자 자기 동작하느라 정신이 없어 내 발을 쳐다보는 사람도 없는데, (내 동작을 체크해 주시는 강사 선생님은 보셨을지 모르겠지만) 뭐가 그렇게 창피한 일이라고 발가락만 신경 쓰느라 수업에 영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양말에 구멍이 날 정도로 내가 그간 운동을 열심히 했던 거라고 생각해 보자. 그럼 양말에 구멍이 난 것은 창피해할 일이 아니라 자랑스러워해야 할 일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빨간 구멍이 훨씬 덜 신경이 쓰였다. 내가 그동안 2년 가까이 매주 2번씩 이 운동을 열심히 해왔으니 양말이 구멍 나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고, 내 인생에 이렇게 꾸준히 해본 운동이 없는데, 운동을 하다가 양말에 구멍 난 나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자. 그래, 대견하다 나 자신. 나는 워낙 칼발이라 원래도 양말에 엄지발가락 쪽이 잘 구멍 나는 타입이지만, 오늘은 그냥 자랑스러운 것으로 마무리하자. 집에 돌아가는 길에 새 양말을 주문했다. 그 양말들이 구멍 날 때까지 또 열심히 운동해 보자!


2023.11.10 (금)

내 남편은 어제오늘 워크숍을 갔고, 동생 남편은 출장을 가있는 상황이라 동생과 이 독박육아를 어떻게 잘 견뎌볼까 고심하다가 키즈펜션을 예약했다. 그래서 어제 동생과 둘이서 애 넷을 데리고 키즈펜션에 놀러 와 1박을 하고 놀았다. 키즈펜션이라 집안에 놀이시설과 수영장이 다 있는 데다, 고기까지 구워 먹을 수 있는 시설이 되어있어서 많이 이동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장점은 있었지만, 오늘 퇴실하고서 아이들을 데리고 근처 카페를 갔다가 어느 박물관까지 갈 정도로 우리는 열정을 보였다. 그렇게 화려한 1박 2일을 함께 보내고 든 생각이다. 물론 아이 넷을 데리고 어딘가를 간다는 것 자체는 힘들 일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더 어릴 때를 생각하면 한결 수월해졌다는 사실이었다. 불과 1년도 되지 않은 올해 2월 말, 나와 동생은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갔던 적이 있었다. 심지어 그때는 친정엄마도 함께 간 여행이라 어른이 셋, 아이가 넷이었는데 내가 그 여행을 다녀와서 다짐한 것이 있었더랬다. 절대 아이들의 수보다 어른들의 수가 적은 여행은 가지 말 것! 그런데 이번 여행은 어른들의 수(2명)가 아이들의 수(4명)의 절반 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제법 할만하다고 생각이 들었다는 것에 ‘아 아이들이 많이 컸구나 ‘하고 깨달았다. (물론! 이전보다 수월해졌다는 것이지, 힘들지 않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나와 동생이 대견했다. 지금까지 아이들을 이렇게 키운 것, 그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둘이서 여행을 다녀온 것이 퍽 뿌듯했다. 수고했다 동생아!


2023.11.11 (토)

첫째가 기저귀를 뗀 것이 27개월 때의 일이었다. 첫째는 말이 빨랐던 터라 20개월이 안됬을 때부터 (16개월이던가 18개월이던가) 유아변기를 사두고 아이에게 변기사용을 유도했더랬다. 하지만 아이는 자기의 때가 있었다. 첫째는 그것이 27개월이었다. 둘째는 따로 배변훈련을 하지 않았다. 애가 둘이라 배변훈련까지 신경 쓸 에너지가 없기도 했거니와, 내가 애쓴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제 때가 되면 하겠지 싶었다. 첫째가 썼던 유아변기가 있긴 했지만 아이는 그것을 높은 곳에 손을 뻗기 위해 쓰는 발받침 정도로 생각했다. 그래서 유아변기도 베란다에 치워뒀더랬다.  그러다 둘째가 얼마 전부터 변기에 앉아서 응가를 하고 싶다는 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유아변기를 쓰는 것을 본 적이 없으니 유아변기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누나를 비롯한 온 가족이 쓰는 변기에는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몇 번 기저귀를 벗기고 변기에 앉혀주었지만, 아이는 힘주는 시늉만 할 뿐 무얼 싸지는 않았었다. 아무것도 싸지 않아 놓고는, 괜히 휴지는 뜯어 변기에 버리고는 물을 내리고 나오는 식이었다. 그냥 놀이처럼 그렇게 변기에 앉기만 하더니, 오늘 드디어 변기에 진짜 쉬를 했다! 변기에 앉아 싸긴 했는데, 남자아이라 그런가 쉬를 다 변기 밖으로 싼 격이긴 했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변기에 앉아 볼일을 본 것이니 아낌없이 칭찬을 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둘째도 27개월이다. 나름대로 배변훈련을 일찍 시도해 보았던 첫째도,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았던 둘째도 결국은 27개월에 처음으로 변기에 쉬를 하게 된 것이다. 두 아이의 때는 모두 27개월이었나 보다. 더 오래 기다렸던 탓이었을까, 아니면 처음이라 그랬던 걸까 첫째가 변기에 처음 쉬했을 때 더 호들갑을 떨면서 좋아했던 것 같다. (아이에게 막대사탕도 선물로 줬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둘째에게는 기특한 마음이 더 크다. 내가 아무런 애를 쓰지 않았는데도, 저 혼자 알아서 변기를 사용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러나저러나 아이가 기저귀가 아닌 변기에 볼일을 보는 일은 퍽 신나는 일이다. 엄마가 되어보아야만 알 수 있는 감정일 테다. 남이 쉬 싸는 일에 신날 수 있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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